212화. 개싸움 (1)
진순철이 발표한 기자회견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강남서초권의 일부 학교들만 입시 정보를 먼저 채가는 문제가 나오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자신은 강남서초구의 학생들이 공평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는 전국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강남서초구의 구청장의 말이었다. 당연히 교육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물론이고, 학교 다닐 때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호소력이 강했다.
-어쩐지, 강남서초쪽 학교에만 뭐 밀어주는 거 아냐?
-그럼 강명문도 어디서 돈 주고 정보 빼왔나?
-그게 아니고서야 그 실적이 말이 됨? 내신 5등급이 연천대 갔다며.
-ㅋㅋㅋㅋㅋㅋ세상 믿을 사람 하나도 없네.
댓글창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댓글들도 모두 곽형조가 댓글 알바를 고용해서 작업 중이라는 사실을, 신미나가 알 도리는 없었다.
신미나는 기사에 올라오는 댓글들을 보면서 부계정으로 접속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저번 시위 사건도 있었는데 그거처럼 이거도 구라 아님?
그렇게 남긴 댓글에도 나름대로 좋아요가 달리기는 했지만, 다른 댓글 알바들의 글만큼의 여파는 없었다.
“큰일 났네….”
교육이라는 주제는 대한민국에서 굉장히 민감한 주제였다.
특히, 교육 혜택을 누구는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한다는 내용은 더더욱 그러했다.
“지방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어….”
댓글 알바들은 그 지점을 공략했다.
강남서초 지역의 학교를 다니지 못해 입시 정보가 부족했던 사람들. 그래서 상대적으로 명문대를 나오지 못한 사람들.
그들이 가지고 있을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건드렸고, 그 파급력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결국, 진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댓글에 등판했다.
-내가 00지역 일반고에서 내신 올 1등급이었는데 서울한국대 떨어짐. 문제 있는 거 아니냐 진짜?
-수능 백분위 98 넘었는데 서울한국대 떨어졌다. 담임쌤이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였음.
-나도 강남서초에서 공부했으면 스카이 갔겠네. 돈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냐.
댓글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의 분노가 점차 증폭됐다.
일부 학교들이 입시 정보를 채간다는 내용은, 어느새 강문고가 입시 정보를 채간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라면서 한 발 살짝 물러나며 말한 진순철의 멘트는 언급되지도 않았다.
댓글들의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던 신미나가 손톱을 연신 깨물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 모든 일들이 강명문 선생에게 덮어씌워진다. 그런 불안감이 온 신경을 지배했다.
그때 신미나의 핸드폰이 우웅- 울렸다.
“아! 선생님!”
신미나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되신 줄 알았잖아요! 지금 어디세요?”
[아직 한목대에 있습니다.]
강명문은 한목대에서 여러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출발 시간이 다소 지연되고 있었다. 앞으로 있을 입시 세미나에 대한 회의였다.
[생산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기사가 나왔더군요.]
그는 SNS를 자주 이용하던 정아가 전달해줬다면서 기사 내용을 말했다. 마침 신미나가 확인하고 있던 기사와 동일했다.
“맞아요. 그러니까 빨리 오세요. 지금 문제가 심각해요! 댓글도 보셨죠?”
[생산적인 이야기, 안 궁금하세요?]
자신의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는 강명문이었지만, 신미나는 딱히 그 부분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강명문이 말한 생산적인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어떤 건데요?”
[강문고에서 주기적으로 입시 세미나를 열기로 했습니다.]
“입시 세미나요?”
그게 무엇인지 물어보려는 찰나, 강명문이 사진을 하나 보냈다.
[방금 회의하면서 노트북으로 정리한거라 조악하기는 한데,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강명문이 전달한 사진을 확인하면서 신미나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서, 선생님, 이거….”
[보도 좀 부탁드려도 되죠?]
그렇게 말하면서 강명문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방금 나온 기사들 반박 좀 하게요.]
“네, 네! 당연하죠!”
강명문이 보낸 사진에는 그가 계획한 ‘입시세미나’에 대한 예상 일정이 적혀 있었다.
‘게다가 이거 전국 단위잖아! 온라인 세미나면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거야!’
[참, 거기 제일 밑에 내용 있죠? 그거도 강조를 좀 해 주세요.]
신미나는 강명문의 말을 들으면서 사진 최하단에 조그맣게 적혀 있는 내용을 확인했다.
<모든 세미나 과정은 녹화 후 강문고 홈페이지에 게시>
<인터넷 라이브 참여가 어려우실 경우 강문고로 문의 주세요. 자료 인쇄본을 우편으로 보내드립니다.>
내용을 확인한 신미나가 어이가 없다며 황당한 웃음을 날렸다.
“아니, 이렇게까지요?”
[당연합니다. 지금 그딴 걸로도 시비 털 인간들인데, 인터넷이 없는 지역은 어떡하냐, 컴퓨터 없으면 보지도 말라는 거냐, 이딴 소리 나올 게 뻔하거든요.]
강명문의 말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며 신미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입시 정보를 오픈하는 강문고인데 불법적으로 정보를 채가고 그럴 리가 없다! 이런 기조로 작성할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그리고 기자님, 하나가 더 있는데 말입니다….]
이야기를 이어 가다가 잠시간 말을 멈춘 강명문은 핸드폰 너머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석이니?”
[기자님, 안녕하세요!]
핸드폰을 바꿔서 받은 동석은 신미나에게 물었다.
[기자님, 파일 하나 보내드릴 건데, 이거 진짜진짜 중요한 거거든요?]
“응? 그게 뭔데?”
[엄청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꼭 기자님만 들고 계시고,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마세요.]
[맞아요! 이따가 어차피 온라인에 풀릴 거예요!]
이번에는 은장의 목소리였다. 이어서 강명문이 다시 핸드폰을 잡았다.
[동석이가 보내 주는 파일 꼭 확인하시고, 입시 세미나 기사랑 동시에 올려 주세요.]
“동시에요?”
[네. 그리고 기사 올리기 5분 전에 저희한테 먼저 연락 주세요.]
신미나는 핸드폰을 이어폰에 연결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노트북에서 이메일을 확인했다.
받은 메일함에 1개의 신규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그 안에는 방금 동석이 말한 의문의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파일을 다운 받아서 확인한 신미나의 얼굴이 복잡미묘하게 변했다.
“선생님, 이거….”
그녀가 본 자료는, 폭탄 그 자체였다.
그냥 폭탄도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핵폭탄과도 같은 폭탄.
강명문은 그 폭탄을, 자신에게 터트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신미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노트북 키보드에 얹었다.
“제가… 해도 괜찮은 거예요?”
[기자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강명문은 확신을 갖고 말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기자들 중에서 가장 신념이 있는 사람.
비록 본인은 먹고 살기 위해 적당히 교육 언론사에 취업했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달라졌다는 확신이었다.
[교육 분야에서 세상의 진실을 파헤쳐 보고 싶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신미나는 파일의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주변에 혹여나 누군가가 지나가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기자 생활이 끝날 수도 있다. 신입 기자가 터트려도 될 만한 사이즈가 아니었다.
[지금이 바로 그 기회입니다.]
그러나 강명문은 신미나를 믿었다. 그녀라면 지금 상황에서 도전할 것이라고 말이다.
“…좋아요. 까짓거, 잘리면 쌤이 어디 꽂아 주시겠지!”
그리고 신미나는 여전히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면서 자신감이 있는 척 말했다. 그러자 강명문이 핸드폰 너머로 한숨을 쉬었다.
[꽂아 줄 만한 곳은 없습니다만… 제 조교라도 하실래요?]
[기자님! 조교는 절대 안 돼요! 공짜로 부려먹어요!]
[조교만은 제발!!]
강명문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졸업생들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신미나는 학생들의 말을 들으면서 피식 웃었다.
‘지금 그런 농담이 나올 때야?’
그러나 그 농담 덕분에 긴장했던 가슴이 진정되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기사 작성해서 올릴 준비할 테니까요.”
[참, 편집장님 설득도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그 말에 신미나가 피식 웃었다.
“당연하죠. 제가 누군데요.”
신미나의 손에서 떨림이 멈추었다. 이제는 오히려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리고 있었다.
* * *
신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곧장 강문고로 향했다.
동석이, 은장이, 정석이, 명천이, 정아, 태성이, 채영이도 함께였다.
녀석들까지 태울 만한 차량이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윤 선생의 차량과 함께 우리가 타고 온 차량, 내일 일정이 비었다며 놀러 가겠다는 서 교수의 차량까지 하니까 딱 맞았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서 우리는 강문고에 도착했다.
“쌤, 준비됐어요.”
동석이는 교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노트북에 인터넷을 연결하고는, 파일을 업로드할 준비를 했다.
“기자님 연락은요?”
“아직 없어.”
최대한 빠르게 기사를 써보겠다던 신 기자는 아직까지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 조금 지나고, 핸드폰이 울렸다.
[선생님 죄송해요! 기사 좀 더 어그로 끌게 쓰려다가 좀 걸렸어요!]
“편집장님 설득은요?”
[당연히 어렵지 않았죠!]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마 그 내용이라면, 미래교육 편집장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잘 됐네.’
이렇게 공식적인 기사로 나갈 수 있게 된다면, 다른 언론사에서도 주목할 게 뻔했다.
나는 신 기자에게 타이밍을 알려 주었다.
“저희가 지금 인터넷에 뿌릴 겁니다.”
[어디에요?]
“서울한국대 학생들 커뮤니티 사이트입니다.”
동석이는 은장이의 계정을 빌려서 서울한국대 커뮤니티에 글을 올릴 계획이었다.
“그리고 연천대에도 올릴 겁니다. 이어서 성실성대, 국인대, 한목대는 물론이고 트위티에도 올릴 겁니다.”
[그, 그렇게 많이요?]
신 기자가 잠시 놀란 듯했다.
“네. 지금 올릴 테니, 기자님도 1분 뒤에 올려 주세요.”
나는 곧바로 동석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옆에는 명천이가, 정석이가, 정아가 앉아서는 각자 핸드폰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간 대기하고 있던 신 기자가 기사를 올렸다.
<강남서초의 입시정보, 강문고에서 전국에 온라인 세미나 개최 확정!>
<강문고 비리의 온상, 학생들이 밝혀내다!>
* * *
“이게 뭐야!!!!”
곽형조는 들고 있던 물컵을 집어 던졌다. 벽에 부딪혀 퍼석,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래교육의 신미나라고?”
그는 분노에 사로잡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는 미래교육의 편집장에게 전화를 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이딴 기사를 컨펌 내 주고 있어!!”
소리를 버럭 지르는 곽형조에게, 오히려 핸드폰 너머의 상대가 차갑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였기에 곽형조도 숨을 골랐다.
“…너 그걸 다 믿는 건 아니겠지?”
[믿는지 안 믿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내용이 오르내리는 게 불편한 거죠.]
“뭐, 뭐야?”
[저희는 교육 언론입니다. 우리들의 기사를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 학부모님들도 많고요. 당신네들과 엮였다는 것 때문에 우리 언론사가 망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미래교육 도지훈 편집장은 신미나 기자가 기사를 들고 왔을 때 잠시간 망설였다.
‘정말 이걸 폭로해도 괜찮나?’
우리는 어디까지나 교육 언론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이 들어 있는 파일을 꺼내도 괜찮을까?
그 고민을 마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편집장님! 교육 문제니까 당연히 우리가 다뤄야죠!
신미나의 말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공교육에서 발생한 문제들입니다. 우리 언론사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노선을 확실하게 정했습니다.]
“뭐, 뭐라고?”
[우리는, 공교육의 희망들과 함께할 겁니다.]
도지훈의 말에 곽형조가 이빨을 뿌득 갈았다. 그가 도지훈에게 반박할 말을 찾는데 도지훈이 선수를 쳤다.
[그리고 이제는 싸움 준비 좀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소리를 지르는 곽형조에게 도지훈이 숨을 죽이고 작게 웃었다.
[일 터진 것 같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도지훈은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쥔 손에 분노를 가득 담아 책상을 쾅 내리쳤다.
“이런 시발!”
그런 곽형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기사 보셨습니까?]
주현서였다.
“봤어 나도!”
[아… 그럼 사모님도 알고 계시는 건….]
주현서가 핸드폰 너머로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너, 그게 무슨 소리냐.”
[뭐야, 기사 안 보셨네. 잘 좀 봐봐요.]
곽형조는 불안한 마음에 포털사이트를 다시 확인했다. 페이지를 여러 번 고쳐 보니 또 다른 기사들이 올라와 있었다.
<강문고 이사의 지저분한 불륜 관계 폭로!>
기사를 확인한 곽형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무언가를 집어 던지거나 소리를 지를 힘도 나오지 않았다.
‘어, 어떻게, 어떻게 알았지!?’
오직 그 의문만이 머릿속을 멤돌 뿐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강명문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정면에 위치한 모니터에는 지금 곽형조가 보고 있는 기사와 동일한 기사가 열려 있었다.
“어디 개싸움 한번 해 보자고.”
선빵을 내주고, 카운터를 날리는 것.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