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11화 (210/252)
  • 211화. 교육 혁신을 이루겠습니다.

    교사들은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더 잘 이끌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대학교로 보낼 수 있을까.

    그러나 여기에 정답은 없다.

    아무리 열심히 지도해도, 나와 맞지 않는 학생은 있고, 운이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학생들을 잘 지도하지 못했다는 데에 죄책감을 가지면 한도 끝도 없다.

    만약 이 감정이 극단적으로 향한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학생들의 미래를 나몰라라 하는 사람으로 변한다.

    강문고에 있는 대다수의 교사들이 그랬다. 그들은 적당히 시간을 보냈고, 적당히 월급을 챙겼다.

    그렇기에 나는 나영희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안쓰러웠다.

    그로 인해 고통받는 최지은 선생이나 윤지 같은 이들은 더욱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이번 특강이 끝나기 전에, 이 이야기를 꼭 해 주고 싶었다.

    “성인이 되면 학생들은 각자 자유롭게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게 됩니다.”

    동석이처럼 어떤 학생들은 교사의 지도를 받고 더 나은 진로 방향성을 만들어 간다.

    “그 날개가 상했는지, 멀쩡한지, 더 좋은 날개로 업그레이드를 했는지는 모릅니다.”

    은장이처럼, 처음에는 전략적으로 인문광역을 지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옳은 선택이었고, 학생도 대학생활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없던 날개가 돋아날 수도 있습니다.”

    명천이와 정석이처럼, 인생의 목표가 새롭게 정립되는 경우들도 있다.

    더러는 태웅이나 은솔이처럼, 고3이 된 이제야 현실을 극복하고 알에서 막 깨어난 녀석들도 있다.

    “저는 그런 학생들을 많이 만났고, 상담, 수업을 통해 진학시켰습니다.”

    전생에서 입시코디를 하던 시절에도, 나는 솔직한 상담만을 해 왔었다.

    그게 경제적 부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입시를 통해 학생들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선생님의 상담, 지도 방식은 학생들을 한쪽으로 옭아매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상담을 받고 솔직담백한 이야기와 함께 새로운 목표를 갖는 것. 많은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몰랐던 자신을 찾게 되기도 하고, 부모와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말도 많고 탈고 많은 게 입시판이지만, 그걸 통해 변화하는 녀석들은 분명 많이 있었다.

    “오히려 여러 가능성을 열어 주고, 학생이 가장 잘하는 걸 찾아 주면서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지금 민주, 용희, 경필이에게 해 줬던 것처럼 새로운 길을 찾아주고 응원해 주는 것. 그게, 녀석들을 위한 것이었다.

    나영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아있었다. 강의실 내부에 강양외고 제자들이 있는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그녀는, 그저 주먹을 쥔 채 힘없이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놓아 주시죠.”

    내 말에 차 선생이 앞으로 나섰다.

    “선생님, 제가 감히 끼어들기가 조심스럽지만…. 지은이는 정말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네가 뭘 알아?”

    공격적인 말투에 차 선생이 흠칫 놀랐다. 그러나 이내 자세를 고치고는 말했다.

    “같이 학교를 다녀 봐서 알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원래 역사를 좋아했고, 그래서 학과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도 역사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고요.”

    잠시 최지은을 돌아본 차 선생은 나영희를 일으켜 세웠다.

    “다시 예전처럼 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 주세요. 지은이도 그런 선생님의 모습 때문에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최지은이 나영희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아….”

    “…괜찮아요.”

    최지은이 모든 걸 이해한다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게 신호탄이 되었다.

    “아아아…!!”

    나영희는 최지은과 맞잡은 손을 보면서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몸을 덜덜 떨며 흐느꼈다.

    그 조용한 흐느낌이, 학부모의 역할과 선생의 역할을 모두 해내려던 나영희를 구원해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나영희가 진정되기까지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최지은과 잠시간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낸 나영희는 두 눈이 퉁퉁 부어오른 상태로 복귀했다.

    이미 첨삭시간은 모두 끝난 뒤였다. 잠시 쉬는 시간을 활용해 우리는 한곳에 모여 앉았다.

    “흠, 흠. 못난 꼴을 보였군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는 나영희를 학생들도, 교사들도 나무라지는 않았다.

    모두가 그녀의 아픔을 이해해 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논술 특강에서 추한 모습을 보인 건 사실이니…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나영희를 보면서 나는 손을 살짝 저었다.

    “됐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아무렇지도 않은 내 말투에 나영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조부겸과 한지현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괜히 시비 걸어서 미안했습니다.”

    “…저도 예민하게 반응했어요. 미안해요.”

    조부겸이야 그렇다쳐도 한지현이 사과를 할 줄은 몰랐다. 내가 의문을 품은 채 바라보자 한지현이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그… 사실 좀 질투 섞인 그런 거도 있었거든요.”

    그 말을 들은 우리, 강문고 교사들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다시금 강원도 지역 고등학교 교사들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정말 그러셨던 이유가 궁금하군요. 그렇게까지 예민하실 필요가 있었습니까.”

    오 선생이 묻자 세 사람이 잠시간 침묵했다. 그러다 나영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실적 문제와 질투. 이 두 개가 가장 컸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어서 최지은이 이야기했다.

    “최근, 우리 학교 입결(입시결과)이 별로 좋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뭔가 언론에서 자꾸 강문고, 강문고 하니까 학교에서도, 학부모들도….”

    “그런 거였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떤 상황인지 정리를 했다.

    “왜 너희는 저 학교, 저 선생처럼 못 하냐, 이러면서 불이익을 준다거나 그런 거였습니까?”

    “네. 실적 압박 때문에 정식적 스트레스가 심했고, 들리는 소문에는 교사들 감봉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어요.”

    “감봉을요!? 사유가 되나요?”

    최지은의 말에 박 선생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걸로 감봉을 할 수야 없겠지만, 그 정도로 압박이 심하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 지역은 입시 정보를 얻기도 힘들고, 대학 강연이나 대형 학원 설명회를 듣기도 힘듭니다.”

    최지은과 노영희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두 사람의 말처럼, 지역에 있는 학생들은 대치동이나 목동 등 주요 학원가를 다니기 어려웠다. 때문에 학부모들 중에는 대치동 유명 학원에서 설명회를 한다 하면 연차를 써서라도 설명회를 듣고, 대치동 족보를 챙기기도 했다.

    또한, 서울권 대학교들의 입시설명회에 참석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온라인으로 얻는 정보는 제한적이니까.

    그러니 지금 시점에서 이들은 정보와 지역적 한계를 겪고 있을 터였다.

    “그 한계 때문에 강양외고에서는 실적 문제가 대두되었죠. 특목고인데 애들 입결 신경 안 쓰냐고….”

    “그 여파가 다른 지역 사립고에도 영향을 미쳤겠군요.”

    강원도의 자사특목고 중 하나인 강양외고에서 실적에 따른 감봉 이야기가 나왔다면, 다른 학교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었다. 조부겸과 한지현은 그게 맞다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서 논술 특강에서 나름대로 실적 같은 걸 만들어 보려고 했습니다만….”

    “너무 예민했던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두 사람이 한 번 더 사과를 했다. 사실 원인을 따지자면 이들이 잘못한 게 아니었다.

    실적 압박과 동시에, 뜬 소문이기는 하나, 감봉까지 언급되고 있는 분위기 조성이 더 큰 문제였다.

    ‘실적과 금전적 압박이라….’

    입시 실적은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하는 척도 중 하나다. 그러니 실적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강문고가 작년 실적이 좋았기 때문에 올해 인기가 많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더불어 내 실적과 함께 인성도 유명해짐에 따라 나와 강문고의 명성은 더욱 올라갔다.

    하지만, 다른 학교는 어땠을까?

    당연히 비교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적이 부족합니다!

    -이건 선생님들의 무능 때문 아닙니까!

    -한국고를 이기려면 더 분발하세요! 선생님들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됩니까!

    회귀하기 전, 한명심이 학교 교사들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비슷하네.’

    어쩐지 전생의 내가 생각나서 세 교사를 비롯한 강원도 지역 내의 교사들을 바라봤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갑작스런 내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강문고에서 정기적으로 입시 세미나를 열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 논의하도록 하죠. 장소는… 가급적 강문고에서 했으면 합니다만….”

    그래도 지역적 한계라던가, 일정 때문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현장 참여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 인터넷 라이브 방송으로 보여드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라이브 방송?”

    나영희가 그게 무엇인지 물었다. 그에 차 선생이 대신 대답했다.

    “요즘 인기 많은 아메리카TV 같은 겁니다.”

    “아메리카TV는 뭐야?”

    “그건 제가 이따 설명할게요, 어머니.”

    차 선생과 최지은이 키득거렸다. 나영희는 민망한 듯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인터넷만 되면 어디서든 들을 수 있습니다. 실시간 채팅도 가능하니까 질의응답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내 부연 설명에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게 될까?”

    “됩니다. 앞으로 10년도 지나지 않아서 온라인 라이브 수업이 활성화될 전망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약 9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온라인 라이브 강의가 유행하게 된다.

    그 수업은 학교, 학원 모두 마찬가지였다.

    당연하게도, 나 역시 학원을 운영하면서 온라인 라이브 강의를 많이 했었다.

    때문에 나에게 온라인 라이브 강의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 기회에 학교가 입시 정보를 적극적으로 오픈한다는 모습도 보여주면 좋겠지.’

    본인들끼리만 입시 정보를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많은 정보를 오픈하고자 하는 모습. 그 모습을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도 중요했다.

    당연히 자세한 스킬은 제외하고, 일반적인 입시정보들 위주로 오픈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꾸준히 내 실적과 함께 강문고 실적도 좋아질 테니 말이다.

    “그렇게만 해 주면 감사하죠!”

    “우리도 지역 학교들 정보 알려 줄게.”

    조부겸과 나영희가 향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를 논의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대로 정해도 되는 거야?”

    윤 선생의 물음에 익숙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역 학교들과의 교류. 아주 좋습니다.”

    이사장이 푸근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학교 차원의 행사로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돌아가면 교장선생님과 함께 논의해 보기로 하죠.”

    “언론에도 알리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에요. 그래야 홍보효과도 있겠죠?”

    나와 이사장이 서로 의견을 주고 받자 교사들의 얼굴에 황당한 미소가 서렸다.

    “강 선생, 설마….”

    “계획했던 거 아니에요?”

    “선배님 이번에도…?”

    오 선생, 박 선생, 홍 선생이 의문을 품고서 물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 * *

    논술 특강도 마무리가 되고, 졸업생들도 춘천 여행을 끝내 가는 시점.

    곽형조는 삼성동의 일식집에서 후배를 만나고 있었다.

    “잘 지냈나?”

    진순철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묻는 선배에게 잔을 올렸다.

    “선배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연임도 문제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제 있었던 언론 플레이. 비록, 빠르게 정체가 발각되었지만, 그 여파는 제법 컸다.

    -그런데 왜 강문고만 시끄럽냐?

    -강문고에서만 대학교랑 뭐 해먹는 게 있는 거 아님?

    그런 이야기들이 인터넷 상에서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많았다.

    -저거 사기꾼들이라는데, 기사 뭘 본 거?

    -답답하다. 시위단체 댓글 알바냐?

    그렇기에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지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자네가 강남서초구청장을 연임할 수 있으면 나에게도 좋지.”

    곽형조가 술잔을 털어 넣으면서 옆으로 흘러내린 술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하지만 강력한 한 방이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시점에서 움직이기에는 리스크가….”

    “자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진순철이 선배의 날카로운 눈매를 보면서 고개를 숙였다.

    “후배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진순철은 자신의 정치 선배인 곽형조를 신뢰했다. 그가 제시했던 방법을 고수했을 때,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소 본인과 맞지 않는 전략도 있었지만, 그 부분에는 내색하지 않았다.

    ‘우선 내 목적 달성이 중요하다.’

    물론, 곽형조 앞에서는 그런 속내를 숨기는 진순철이었다.

    “강남서초 명문고등학교인 강문고. 왜 강문고에만 입시 정보가 집중되었는가. 강명문과 대학이 불법 커넥션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야기로 터트려 주자고.”

    “그건…!”

    “지금 인터넷에서도 나오는 일부의 의혹. 그게 사실인 것처럼 꾸미자는 거야.”

    곽형조가 끌끌 웃으며 회를 입으로 넣었다.

    “확실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거라면….”

    “그래. 강명문이 진짜 대학 관계자나 다른 누군가와 커넥션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아.”

    그는 진순철을 향해 잔을 들었다.

    “그런 논란이 나왔다, 안 나왔다가 중요한 거지.”

    “아…!”

    이어질 언론플레이와 선거에서의 우위를 기대하면서 진순철이 양손으로 공손히 잔을 잡았다.

    “선배님의 혜안, 본받겠습니다.”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그리고 다음 날, 기사가 올라왔다.

    <강문고에만 집중된 입시정보! 불법 커넥션이 있었나?>

    기사가 뜬 직후, 진순철은 기자회견을 했다.

    [강남서초 고등학교의 불법 교육 현장을 적발하고, 교육 혁신을 이루겠습니다!]

    현 강남서초구청장의 기자회견은 순식간에 포털 기사, 뉴스를 타고 전파되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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