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09화 (208/252)

209화. 작당모의 (2)

박 선생, 홍 선생, 차 선생, 이사장과 함께 택시를 나눠서 탔다. 그리고 우리는 학생들이 있는 춘천의 한 펜션으로 향했다.

“안녕 얘들아!”

“잘 지냈어?”

박 선생과 홍 선생의 인사에 녀석들이 반갑게 말했다.

“쌤들!! 얼른 오세요!”

“저희 많이 구워 놨어요! 드세요 빨리!”

“어? 벌써 한 잔 하신 것 같은데.”

은장이, 채영이, 명천이가 한 마디씩 던졌다. 나는 녀석들에게 다가가서 고기를 하나 집어 먹으며 말했다.

“잘 좀 구워라. 이게 뭐냐? 겉에 다 태웠네.”

고기를 굽고 있는 정석이의 집게를 뺏고는 고기를 여기저기 뒤집었다. 정석이가 어어어, 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웬일로 고기까지 구워 준대요?”

박 선생이 의외라며 말했다.

“원래 사람이 안 하던 행동을 하면….”

“둘 중 하나지. 천지가 개벽하거나….”

“다른 꿍꿍이가 있거나….”

태성이, 정아, 정석이가 중얼거렸다. 그 옆에서 동석이만이 손뼉을 쳤다.

“아, 쌤! 그거 갖고 오라고 하시는 거죠!”

“역시 동석이. 네가 제일 눈치가 빠르구나.”

내 말에 동석이가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방에 들어가더니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저희 다 분석해 봤어요. 정리도 싹 다 해뒀고요.”

동석이의 말에 녀석의 머리를 마구 헤집으며 칭찬했다.

“잘했다, 요 녀석!”

“헤헤, 감사합니다!”

동석이는 우리가 논술특강을 하고 있는 사이에, 여기 있는 친구들과 함께 GF파일을 분석, 정리했다.

동석이가 노트북을 열어서 자료를 열었다. 그리고 나는 잠시 집게를 내려두고 자료들을 확인했다.

“아주 좋은데?”

나는 양쪽 입꼬리를 잔뜩 올리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조만간 있을 곽형조와 또 다른 세력의 공격.

그 공격에 카운터를 칠 반격의 열쇠가, 노트북 안에서 잠을 깨우고 있었다.

“내용은 어때요?”

박 선생이 궁금하다면서 다가왔다. 다시 고기를 굽기 시작한 나를 뒤로하고 동석이가 박 선생에게 노트북 화면을 보여 주었다.

얼마간 자료를 확인한 박 선생과 홍 선생, 차 선생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걸 오늘 다 했어?”

“수식이랑 필터랑만 걸어 두면 금방 하죠 뭐.”

정석이가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는 듯 으스댔다.

“야, 넌 한 거 없잖아. 은장이랑 동석이가 다 했지.”

“나, 나도 옆에서 거들어 줬는데 뭘!”

명천이의 타박에 정석이가 당황해하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은장이가?”

“저 사회적기업 동아리 하잖아요. 행정일 같은 거 처리하려면 엑셀 같은 건 공부해 두면 좋거든요.”

여러모로 참 대단한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생 녀석들은 내가 구워 준 고기를 한 점씩 먹으면서 저들끼리 낄낄거렸다.

“진짜… 문제가 심각하군요.”

반면, 이사장은 표정을 굳히고는 엑셀 파일을 천천히, 자세하게 살폈다.

“이만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는데… 여태까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네요.”

이사장은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들을 반성하고, 자책했다. 물론, 이사장 혼자서 이 일들을 막을 수 있지는 않았겠지만,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는 듯 보였다.

“너무 그러지 마십….”

“이사장님! 이거 드세요!”

내 말을 끊은 채영이가 고기를 두 점이나 올린 쌈을 이사장의 입에 가져갔다.

“응? 어어, 흡!”

갑작스런 채영이의 돌진에 당황한 이사장은 채영이가 건넨 쌈을 입에 겨우겨우 넣었다. 우걱우걱 쌈을 씹는 이사장을 보면서 채영이가 히죽 웃었다.

“어때요? 맛있죠!”

“우물, 네, 우물, 맛있, 우물우물, 네요.”

채영이는 옆에 준비해둔 음료수까지 이사장에게 건넸다.

“예전에 쌤이 알려 주신 게 있어요.”

녀석은 나를 슬쩍 보더니 말했다.

“전략으로 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 말에 나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도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

작년 가을에 터졌던 채영이의 성형수술 사건. 그때 나는 채영이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한 성형수술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조언했었다.

뭐, 다른 속내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채영이도, 당시 납치(?)를 당했던 명천이도 입시 결과가 좋았다.

“이사장님이 아까도 말씀하셨잖아요? 돈과 인맥으로 해결하고 싶지 않았다고요.”

채영이가 한껏 가슴을 폈다.

“그러니까, 이사장님은 지금까지 전략적으로 힘을 비축하고 계셨던 거예요!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고요!”

이사장은 채영이를 보면서 약간 감동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눈물이 살짝 고인 것 같은데?

“고마워요, 채영 학생.”

“에이, 아니에요! 저도 쌤한테 배운 건데요 뭘!”

‘자식, 저런 말도 할 줄 아네?’

나는 채영이가 성장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열심히 집게를 놀렸다.

“그럼 이사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는 결단할 때였다.

우리는 이걸 언제 터트릴까.

그 적절한 시점을 이사장이 결정해야 했다.

“논술 특강이 끝나는 내일 오후.”

이사장은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컵을 터억!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쪽에서 공격이 나타나면, 바로 그 순간 풀겠습니다.”

“오늘 그렇게 망신을 당했는데요?”

은장이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니까 뭐든 해 보려 하겠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언론플레이. 아마 곽형조 입장에서는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 일격이 오답노트 덕분에 막혀 버렸다.

그렇다면 곽형조, 주현서 같은 사람들은 공격이 막혔으니 움츠리고만 있을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시점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칠 계획을 꾀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사람들이 움직일 때를 기다리면 돼.”

“바로 내일 움직일 것 같다는 말씀이시죠?”

정석이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들에게 당부했다.

“그런데, 내일 너희가 당장 움직일 필요는 없어. 다만, 그 이후부터는 후배들과 함께해야 할 거다.”

“후배들이랑요?”

동석이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 의문을 가진 채로 고기를 집어 먹었다.

“뭐, 그건 지나 보면 알아. 그러니까 다들 기말 준비 미리미리 해둬라. 공부할 시간 없을 수도 있다.”

“어휴, 여전히 잔소리, 잔소리.”

태성이가 투덜거렸다. 나는 집게를 놓고 녀석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아야!”

“그럼 대학생에게 특강 깔아 주리?”

“아… 그건 진짜 싫은데….”

이번에는 명천이가 혼잣말을 했다. 나는 녀석들을 향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튼, 내일은 열심히 놀다가 들어들 가. 기사가 뭐가 뜨고 그래도 모른 척 보내고.”

“왜요?”

“으이그, 당연히 들킬지도 모를까 봐 그렇지. 오늘 우리는 그냥 친구들끼리 놀러 온 거잖아.”

태성이가 가진 의문에 정아가 아까 이야기 들었지 않느냐면서 다시 설명을 했다.

“정아 말이 맞아. 다들 이해했지?”

““네!!””

힘차게 대답하는 학생들을 확인한 후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다 익은 고기를 덜어주었다.

“그럼 마시고 먹으면서 쉬시죠. 저희는 내일 특강 때문에 오래 놀기는 어렵지만요.”

박 선생의 제안에 홍 선생과 차 선생도 좋다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나도 이제는 젓가락을 들고 다 익은 삼겹살을 집었다.

“음, 좋은 고기 샀는데?”

오늘 명천이네 학교로 온다고 용돈 좀 썼구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택시에서 미리 빼둔 쇼핑백을 꺼냈다.

“이게 뭐예요?”

“양주.”

정석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기 시작했다.

“대박!”

“헐, 양주 사 오셨어요?”

태성이와 은장이도 깜짝 놀라며 물었다.

“빈손으로 올 수는 없잖아?”

“와… 대박, 양주 마시기 쉽지 않았는데, 쌤 감사합니다!”

정석이는 성실성대 신입생이 되더니 술맛만 알아간 모양이었다. 녀석이 군침을 흘리면서 잔을 미리 앞으로 갖고 왔다.

그러나 녀석의 기대는 박스에서 꺼낸 양주를 확인하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캐프틴…큐…?”

편의점에서 삼천 원에 구매할 수 있는 캐프틴 큐였다. 애꾸눈 선장이 맥주잔을 하늘 높이 치켜올리고 있는 로고가 인상적인 술이었다.

“아, 쌤! 저 이거 안 마셔요!”

“뭐야, 알아 이거?”

“마셔 봤죠! 이거 진짜 맛 이상하잖아요!”

정석이가 잔을 다시 치우며 투덜거렸다. 술을 확인한 태성이도 한숨을 쉬었다.

“아… 이거 저번에 정석이가 사 왔던 거다.”

“공업용 알콜 같았어….”

채영이의 말에 은장이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공업용 알콜을 마셔 본 적이 있어!?”

“아니, 마셔 봤겠냐! 그거 먹었으면 여기 있겠냐고!”

학생들이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풉.”

녀석들을 보고 있던 이사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수 초간 신이 나서 웃음을 터트린 이사장이 눈물이 났는지 눈가를 살짝 휴지로 닦았다.

“아, 정말. 강 선생님이 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알겠다니까요.”

“그야 그렇죠. 이렇게 병 주고 약 주니까요.”

나는 캐프틴 큐는 장난이었다면서 진짜 선물을 꺼냈다.

“헉! 발렌데이 17년!?”

정석이가 다시금 침을 질질 흘리며 술잔을 들고 왔다.

“근데 너희들은 집에서 이 정도는 많이 보지 않냐?”

“보는 거랑 마시는 건 다릅니다, 스승님. 아버님이 저에게는 절대 술을 허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부디 제자에게 이 귀한 음료 한 잔만 부탁드립니다.”

“스승에게 먼저 줄 생각은 안 하는구나.”

“앗! 죄송합니다! 먼저 올리겠습니다!”

정석이가 사극에나 나올 법한 연기를 펼치면서 능청스럽게 술을 따랐다. 녀석의 연기가 신호탄이 되어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술과 고기를 들었다.

“재밌게들 놀다 가라!”

종이컵이 허공에서 소리를 내지 않으며 부딪혔다. 그날,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오래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

다음 날, 논술 특강 2일차 시간이 되었다.

“이번 제시문에서 보면….”

오늘의 첫 모의 논술은 어제와 동일하게 인문계열이었다. 학생들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교사는 나영희였다.

‘괜찮은데?’

확실히 차 선생의 말처럼 나영희의 실력은 꽤 뛰어났다.

아니, 조부겸과 한지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맡은 파트에서의 설명을 들어보니 제법 매력적인 강의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은 첨삭시간만 돌아오면 확연히 달라졌다.

“이렇게 글 쓰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허어… 넌 이렇게 쓰면 논술 못 쓰겠다. 주제가 하나도 안 드러나잖아.”

“… 쌤이 적어 준 모범답안대로 외워서 하라니까 말을 안 듣네.”

예상되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강원도의 학교들. 서윤수 교수와도 이야기를 나눴던, 지역 고등학교 교사들의 시기 어린 질투.

그런데 그런 질투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내 실적과 명성을 질투하는 사람은 전국 어디에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이들이 이렇게까지 조급해하는 건….

“강 선생님.”

첨삭 시간이 끝나고 벤치에 앉아 있던 나에게 차 선생이 다가와서 커피를 건넸다.

“아, 네.”

“다음 강의, 제가 하지 않습니까? 바로 다음에는 지은이가 하고요.”

“네, 그렇게 기억합니다.”

“죄송한데, 지은이 좀 봐 주시겠습니까?”

차 선생의 부탁에 나는 영문을 몰라 잠시간 말을 하지 못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갑작스러웠죠.”

“이유가 있습니까?”

그는 살짝 이야기하기를 망설이더니 작게 속삭였다.

“그냥… 불안합니다.”

“어차피 헤어진 연인인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시는 이유가….”

“저희가 헤어지고 싶어서 헤어진 게 아니라 그렇습니다.”

그때 우리 옆으로 다가온 홍 선생이 차 선생의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설마 부모님 때문에 헤어진, 뭐 그런 거예요?”

“네!? 언제 오셨습니까?”

“그런 거냐고요, 차 선생님. 궁금하게 하지 말고 대답 좀 해 주세요!”

차 선생은 한숨을 푹 쉬더니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얼추 비슷합니다.”

그 말을 들은 홍 선생이 아침 막장드라마의 반전 전개라도 본 것처럼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은이는 지금 대기실 옆 강의실에 있을 겁니다.”

나는 차 선생에게 받은 커피를 한입에 털어마시고는 대기실 옆 강의실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건, 무언가 계획을 하고 있는 나영희와 최지은의 모습이었다.

“두 번째 시간 끝나면 그 학생부터 첨삭해 봐.”

“네. 그런데 걔는 인문논술이 아니라 상경계열로 가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내가 하지 말라고 했어. 걔는 인문이야. 상경이랑 안 맞아 걔는.”

“하지만 지원이는….”

“최지은 선생.”

“…네.”

“내 말에 토 달 생각은 하지 마.”

최지은을 압박하던 나영희가 다시금 말했다.

“지원이한테는 단단히 일러뒀으니 그렇게 알아. 최 선생은 내가 하라는 것만 제대로 하고. 알겠어?”

“…알겠습니다, 어머니.”

고개를 숙인 최지은을 확인하고 나는 특강 강의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직접적으로 최지은과 대화하지는 못했다. 대신,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나영희와 최지은의 모습. 너무나 익숙했던 대화와 행동 때문에 느꼈던 기시감.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그런 기분을 느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여태껏 봐 왔던 학부모와 학생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 이러다 성인들 상담까지 해 주게 생겼네.”

그래도 필요하다면.

두 사람에게 어떤 상담을 해 주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특강 강의실 문을 활짝 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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