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작당모의 (1)
유성철. 춘영고등학교 2학년으로 평소 문학에 관심이 많고, 작가로의 꿈도 꾸고 있었다.
책도 많이 읽었고, 습작품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내 백일장이나 에세이 대회 같은 글과 관련된 대회는 쓸어 담고 있었다.
-그 정도면 논술 준비해도 되지 않을까?
친구들의 권유, 그리고 동네 교과 학원 선생님의 권유에 의해 성철이는 논술을 준비했다.
그러나 문학적 글쓰기에 익숙한 성철이가 논술 형태의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성철이에게 논술을 추천해 준 그 학원 선생님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방향을 잘못 짚어 주었습니다. 성철이는 문예특기자가 제일 적합합니다.”
물론 문예특기자에 반영될 수상 실적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예고 학생들과 문예특기자 전문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을 이겨야 한다. 그래서 지금 레벨로는 최종 거론까지는 되겠지만, 입상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아직 2학년이기에 기회가 많습니다. 올해 말에 열리는 문예특기자 반영 백일장만 다섯 개가 넘습니다.”
상록 백일장, 한용 백일장, 순향 백일장, 다담 백일장, 중앙 백일장 등, 성철이가 준비할 수 있는 백일장이 다수 있었다.
“국문학과 교수님들 말씀처럼 성철이에게는 글쓰기 역량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 실적으로 충분히 문예특기자에 도전해 볼 수 있습니다.”
“쌤, 그럼 저 지원 대학….”
성철이가 침을 꼴딱 삼키면서 물었다.
“혹시 숭일대 갈 수 있을까요?”
“거기는 하향지원이야. 넌 중문대, 동건대 라인부터 시작이다.”
내 말에 성철이가 깜짝 놀라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 제, 제, 제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성철이 내신이 몇 인지나 아시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네? 중문대 특기자 전형은 내신 안 보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이번에는 주변에 있던 여러 교사들이 깜짝 놀랐다. 당연히 성철이도 놀랐다.
“네!? 진짜요!?”
반면 조부겸을 비롯해 다른 교사들은 그럴 리가 없다면서 반대 의견을 펼쳤다.
“거짓말하지 마! 하다못해 과학 특기자나 체육학과도 20%는 반영하는데 그게 무슨….”
“하… 진짜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나는 한숨을 쉬면서 서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님, 죄송한데 중문대 입학처 홈페이지에서 수시 모집 요강 인쇄해 주실 수 있습니까?”
계속해서 입술을 씰룩거리던 서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들었다.
“어, 그래 나야. 중문대 입학처 들어가서 모집요강 좀 뽑아 와. 아, 그건 천천히 하고 이거부터 해. 한 부만 있으면 되겠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 교수의 조교가 인쇄지를 들고 들어왔다.
“교수님 여기 있습니다.”
서 교수는 조교에게 받은 용지를 나에게 전달했다.
<중문대 2012학년도 수시모집요강>
파일을 확인한 나는 문예특기자 전형이 적혀 있는 페이지로 곧장 이동했다. 그리고는 종이에 적힌 내용을 조부겸에게 들이밀었다.
“보이십니까?”
“이런 미친….”
조부겸의 말대로 중문대는 체육 특기자마저도 교과 점수를 일부 보기는 한다. 그러나 연기, 문학 전공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수상실적 점수로 80%, 현장 적성 실기로 20%.
즉, 적절한 실적을 낼 수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 봄 직한 전형이라는 소리였다.
“주, 중문대는 그렇다 쳐! 그럼 동건대는? 거기는 내신 볼 거 아냐!”
“그건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철이가 국어랑 영어만큼은 1, 2등급 나오지 않습니까?”
내 말에 성철이가 대답했다.
“네, 저 수학이랑 과학은 좀 그런데 국어, 영어는 작년에 1등급 나왔습니다!”
녀석의 자신 있는 대답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동건대 문예창작학과 문예특기자 전형은 내신 산출할 때 국어와 영어 교과만 반영합니다.”
“뭐, 뭐라고…?”
“그러니 성철이는 교과 성적 반영에서 고득점을 받을 수 있죠. 그리고 지금 보니까 성철이는 면접도 잘 볼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교사 앞에서 이렇게 말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재능이고, 역량이었다. 그렇기에 동건대 면접도 문제없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동건대 문예특기자는 2차에서 면접을 30% 반영하는데, 설령 교과 성적 부족해도 1차만 붙으면 면접에서 뒤집을 수 있습니다.”
나의 자신감 있는 말에 주변에 있는 학생들, 교사들의 얼굴이 모두 정지화면처럼 되었다. 그러다 나영희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나야. 응, 지금 찾아봐. 동건대. 올해 모집요강으로. 찾았어? 문예특기자 봐 봐.”
그렇게 몇 번의 질문을 누군가에게 하던 나영희의 얼굴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알았어.”
전화를 끊은 나영희가 조부겸에게 말했다.
“학교 후배 교사에게 물어봤는데 진짜라고 하네요.”
“이게 무슨….”
조부겸이 탄식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 유명해질 만하군요. 어떻게 보자마자 바로 정보가 나오십니까?”
“제가 입시 공부를 좀 빡쎄게 하는 편입니다, 하하하.”
지금 겉모습만 20대 후반이지, 입시판에서 놀았던 시기가 국어 교사 시절의 몇 배는 되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에게 그런 걸 밝힐 생각도 없었으니, 적당히 핑계를 대며 넘어갔다.
“논술 특강 시간인데, 다른 학생들 첨삭이 늘어지게 된 건 아닌가 걱정입니다.”
내 우려 섞인 말에 다른 학생들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오히려 내 상담을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저기, 선생님. 저도 상담해 주시면 안 돼요?”
그러다 한 학생의 말에 다른 학생들도 숨겨왔던 속내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저, 저도요!”
“쌤, 저도 봐주세요! 저 논술 준비해도 되나요?”
“저 논술 말고 다른 전형 뭐 해도 될까요?”
학생들이 갑자기 질서 없이 나에게로 몰려들었다. 행사 진행 스태프들이 놀라서 달려왔다.
“자, 잠깐만요!”
“학생들! 일단 자리에 앉아요!”
어수선한 강의실을 정리하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나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시선을 나영희, 조부겸, 한지현에게로 돌렸다.
“이만하면 실력 검증은 된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내 말에 세 교사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그들은 무언가 반박할 말을 찾는 듯했지만, 이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훽 돌렸다.
“다, 다시 첨삭 시작해 주세요!”
그리고 그 모습을, 강의실 뒤편에서 서윤수 교수가 껄껄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 * *
한바탕 소동이 지나갔고, 첨삭도 마무리가 되었다.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면, 나에게 첨삭을 받는 학생들이 논술 첨삭과 함께 대입 상담을 희망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쉬는 시간에는 내가 담당하지 않은 조의 학생들까지 와서 상담을 요청했다.
덕분에 나는 쉬는 시간 없이 학생들을 만나서 상담을 해주고,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강 선생님, 완전 스타강사 같은데요?”
박 선생이 살짝 놀리듯 물었다. 다른 교사들도 키득거렸다.
“목 아파 죽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홍 선생이 건네는 음료수를 받아 마셨다. 시원한 이온음료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조금이나마 나은 느낌이 들었다.
“역시 선배님, 공교육의 희망다우세요!”
“아니 제발 그 별명은… 자꾸 그러면 저도 인어공주라 부릅니다.”
내 진담 섞인 농담에 홍 선생이 한층 더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선배님이 다른 사람들 대신 눌러 줘서 기분 좋더라고요!”
사실 논술 첨삭 시간에 상담을 겸해서 진행한 건 매뉴얼의 참고사항도 있었지만, 홍 선생 때문도 있었다.
‘감히 초기에 기를 꺾으려고 해?’
강문고 교사들을 왜 그렇게 미워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이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아주 지저분하게 하겠다는 선전포고.
때문에 이번 첨삭 시간에, 논술 시간 때부터 눈여겨봤던 성철이를 상담해 줄 생각이었다.
“나도 보면서 속이 다 시원했네! 아주 그 세 사람 표정이 가관이었지, 크하하하!”
“그나저나 안쪽은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오 선생의 말에 차 선생이 내부가 조금 걱정된다면서 말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밖에 나와 있을 수 있는 이유. 그건, 지금이 과학모의논술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윤기준 선생을 제외하면 우리는 모두 인문계열, 예술계열이었기에 잠시 쉬는 시간이 생긴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나영희가 시비를 걸었다.
-강문고도 과학분야는 없을 테니까, 여기서는 별로 승부 볼 수가 없겠네요.
-네? 저희 과학 선생님도 오셨습니다만.
-… 우리는 외고니까 없는 게 당연해요.
누가 뭐랬나, 참나.
대체 왜 외고에서 과학 논술까지 신경을 쓰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영희는 여기에서도 열등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우리에게 시비를 건 사람들은 전부 인문계열이니까요.”
“수학, 과학은 안 그런데 왜 인문에서만 이러는지….”
“그러게 말입니다. 이유가 예상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만….”
그렇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기야!”
강양외고의 최지은 선생이었다.
“어? 어, 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쉬는 시간에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하려고. 아, 지금 바빠?”
최지은이 순수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간만에 근황 토크도 하고 전공 얘기도 하고 그럴까 싶어서. 시간 안 돼?”
“그게….”
차 선생이 우리 눈치를 보면서 대답을 망설였다. 그때 나영희가 뒤에서 나타나서는 소리를 질렀다.
“최지은 선생!”
“네, 네!!”
최지은 선생이 깜짝 놀라며 차렷 자세를 했다.
“…내가 철없이 행동하지 말라고 했죠?”
“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최지은은 나영희에게 잡혀서 걸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나영희가 걸어가면서 하는 말을 살짝 엿들었다.
“어설프게 사람 만나면 안 됩니다.”
“안 그럴게요, 어머니….”
‘응?’
그렇게 다른 방향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에게서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딘가에서 많이 봐왔던 모습. 최지은과 나영희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전부터 봐왔던,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런 거군.”
“네?”
내 혼잣말에 차 선생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나는 그저 씨익 웃으면서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 * *
과학모의논술과 함께 과학논술 강의, 첨삭까지. 윤기준 선생은 그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했다.
“윤 선생님이 이 정도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전에 과학고에서 잠시나마 근무했었던 윤 선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어지간한 과학 논술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지도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그의 강연과 첨삭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내용도 좋았고, 어려운 개념은 쉽게 설명했으며, 이후 변형 기출문제까지 예시로 보여 줄 정도였다.
“학생들 반응도 아주 좋았습니다. 훌륭하십니다, 하하하!”
서 교수가 맥주를 건네면서 껄껄 웃었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 교수와 함께 간단히 맥주를 마시러 온 참이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입시는 강 선생만큼은 아니어도, 물리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습니다.”
윤 선생이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강 선생, 좀 괜찮은가?”
맥주를 다 마신 서 교수가 나를 보며 물었다.
“언론이 시끌시끌 했잖은가 오늘.”
서 교수는 아마 아침에 올라온 기사들 이후의 일을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낫습니다. 내일 되면 뭔가 더 움직임이 생기겠죠.”
실제로 호프집에 오기 전, 신 기자로부터 연락도 받았었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세요!
-아, 죄송해요. 바빴습니다.
-정말이지… 아무튼, 오늘 그 단체들 뒷조사 좀 해 봤어요. 선생님 예상대로 정치권이랑 연결되어 있었고요.
신 기자는 내가 던진 떡밥을 토대로 여기저기 조사를 다녔다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연결된 곳은 무려 강남서초구청장.
-그쪽 단체와 연결된 정당 쪽 구청장이 우리를 미끼로 삼아 교육 혁신을 이루겠다며 공약을 펼쳐 구청장을 연임할 전략을 세울 생각이었다, 이딴 거군요.
-… 제가 설명하려던 건데 재미없게.
핸드폰 너머로 뾰로통한 목소리가 들려왔었다. 아무튼 신 기자의 말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강문고를 이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마 곽형조는 그쪽 정치세력과 손이 닿아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 굳이 강문고여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걸 모르겠어요.
-단순합니다. 세간의 주목을 받으니까 교육혁신이니 뭐니 떠들기 좋은 먹잇감이 된 거죠.
-아…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네요.
아무튼, 그런 상황이었다.
그럼 지금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그 부분을 이사장과 논의할 계획이었다.
“은숙이랑은 이야기 많이 해 봤고?”
“네.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 둬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습니다.”
내 말에 서윤수 교수가 가슴을 텅텅 치면서 말했다.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게! 발 벗고 나서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이후 술자리는 다음 일정 때문에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저녁 8시가 조금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나?”
호프집을 나오는 나에게 서윤수가 물었다. 나는 그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졸업생들과 바비큐파티 하러 갑니다.”
이제는 녀석들과 함께 작당모의를 할 시간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