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07화 (206/252)

207화. 첨삭, 아니 상담 시간

윤기준은 강명문과 통화를 끝내고 여유 있게 한목대에 도착했다. 아직 자신이 들어갈 과학모의논술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윤수 교수님….’

작년에 강문고에서의 한목대 특강 이후에 받았던 연락처를 뒤적이던 윤기준은 서윤수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손가락을 올렸다.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자 통화가 연결되었다.

[아이고, 우리 윤 선생님 아니십니까!]

서윤수는 정말 오래간만에 연락을 한 친구를 반기는 것처럼 활기차게 말했다. 윤기준은 그 반응에 살짝 놀라면서도, 원래 서윤수가 이런 사람임을 떠올리고는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안녕하십니까, 하하하! 네, 제가 일이 조금 있어서 늦었습니다. 건강하셨지요?”

[그럼요, 그럼요! 오늘 이렇게 윤 선생님까지 와 주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과학논술 전문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강명문이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 모양이었다. 윤기준은 살짝 웃으면서 준비했던 멘트를 꺼냈다.

“그런데 교수님, 잠깐 시간 괜찮으신가요?”

[지금요? 네, 괜찮습니다.]

“제가 맛있는 음료와 디저트를 좀 사 왔는데 같이 드시면서 담소라도 나누시면 어떨까 해서요 하하하.”

윤기준의 말을 들은 서윤수가 핸드폰 너머에서 잠시간 침묵했다. 그러더니 껄껄 크게 웃었다.

[암, 그럼요! 제 연구실로 오시면 됩니다!]

서윤수가 껄걸 웃으면서 연구실 위치를 알려주었다.

“참, 그리고 이건 강명문 선생님 부탁이기는 한데….”

윤기준은 서윤수에게 강명문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지금 말입니까?]

“네, 혹시 지금 움직이실 수 있는 교수님이 계실까요?”

[강 선생님이 지금 시점에서 그런 사람을 찾는다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서윤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적임자가 두 명 있습니다. 연락을 한번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괜히 무리하시게 한 게 아닌지….”

윤기준의 걱정과 달리 서윤수는 오히려 한층 더 흥미로워졌다면서 윤기준을 안심시켰다.

[잘 됐습니다. 저도 이따가 구경을 좀 가야겠군요.]

“논술 특강 현장에요?”

[네. 우리 강 선생님이 또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 주시겠습니다.]

핸드폰 너머에서 서윤수가 음료수를 꿀꺽꿀꺽 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국문학과 교수님을 꼭 초대하고 싶다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됩니다.]

서윤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왔다.

* * *

논술특강 현장에서는 한참 첨삭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한 조를 맡아 학생들의 논술 내용을 첨삭해 주었다.

“1번 문제에서 네 답변은 방향성이 안 맞아. 여기에서 제시문과 문제를 잘 보면….”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면서 학생 한 명 한 명을 첨삭해 주었다.

학생들의 실력은 크게 좋거나 나쁘지 않았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인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논술을 진지하게 준비한 학생 자체가 적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학생들에게 논술 답안의 정확성보다는 논술 문제의 접근법을 알려 주고 있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쓰면 안 된다고 했었지?”

반면, 다른 학교의 교사들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핵심이 하나도 없잖아, 핵심이! 방금 전 강의 못 들었어?”

“…이런 해석법은 처음 보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방식이야. 여기서는 이런 내용으로 쓰면 안 돼. 쌤이 작성한 답안을 봐.”

나영희, 조부겸, 한지현 모두 어쩐지 조급해 보이는 피드백들뿐이었다.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인데도 대입에 맞춘 첨삭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저러지?’

그들의 모습은 무언가에 쫓기듯 보였다.

아니면, 저쪽 학생들은 실력이 좋나?

그래서 저렇게 고3스러운 피드백을 해 주려고 애쓰나?

하지만, 저건 고3들에게 해주는 피드백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학생 본인이 작성하지 못하는 방향의 피드백들이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번 논술 특강 초반부터 느끼고 있었던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어진 조부겸의 말을 듣고 확신으로 바뀌었다.

“성철이 넌 이걸 논술이라고 쓴 거냐?”

조부겸의 앞에는 고개를 푹 숙이고 펜을 쥐고 있는 남학생이 있었다. 녀석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몸을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지금 이걸 글이라고 썼느냔 말이야. 쌤이 했던 말들 잊었어?”

“… 죄송합니다.”

성철이라 불린 학생은 자신이 쓴 모의논술 답지를 살짝 구겼다. 그 모습을 바라본 조부겸이 혀를 찼다.

“쯧, 이렇게 해서야. 내가 너 논술 공부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했는데, 오늘 왜 신청한 거냐?”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앞에 나서면서 조부겸의 말을 막았다.

“본인도 이런 특강을 들어 봐야 어떤 걸 더 보완할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강 선생님은 여기가 아니라 옆 조 아닙니까?”

조부겸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성철이의 답지를 슬쩍 살폈다.

“내가 잠깐 봐도 괜찮을까?”

“네? 아, 네….”

“뭐야? 잠깐….”

학생과 조부겸의 엇갈린 반응을 들으면서 성철이의 답안을 들었다.

‘예상대로.’

성철이는 처음 모의논술 시간을 주었을 때, 내가 주의 깊게 살폈던 학생이었다. 녀석의 답안을 쭉 읽어 본 나는 결론을 내렸다.

“확실히 논술스럽지는 않네.”

“… 네,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죠? 그러니 어서 선생님 조에 가서….”

“성철이라고 했지?”

나는 조부겸의 말을 무시하고는 성철이에게 물었다.

“아, 네, 춘연고 2학년 유성철이라고 합니다.”

“너, 글 쓸 생각 없냐?”

그러자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듣던 조부겸은 물론이고, 다른 조 첨삭을 해 주고 있던 나영희와 한지현도 고개를 들었다.

“강 선생님?”

“아, 죄송합니다. 제가 성철이 논술 답안을 잘 읽어 보니까, 논술스럽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글을 쓰라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녀석, 문학에 익숙합니다.”

내 말에 성철이가 살짝 신이 난 듯하면서 말했다.

“아, 그거 제가 원래 그런 거 좀 좋아해서 그런 거 같아요. 다른 소설 읽고 괜히 필사도 해보고, 소설도 써보고….”

“유성철, 조용히 해. 지금은 논술 시간이다.”

조부겸이 성철의 말을 잘랐다. 성철이가 시무룩해져서는 말을 멈췄다.

“뭐, 잠깐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5분이면 됩니다.”

“… 얘는 우리 학교 학생입니다.”

그는 조금씩 나를 꺼려하는 듯 말했다. 성철이의 눈빛이 서서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까. 조부겸은 성철이의 앞을 슬쩍 막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오늘은 논술 특강 시간입니다. 이런 류의 상담은….”

“아뇨, 오늘 행사 진행 시 참고사항에 이런 게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조부겸에게 미리 준비해 뒀던 종이를 꺼냈다. 이번 행사 안내 매뉴얼이었다.

“여기 보시면 ‘논술 첨삭과 동시에 상담을 해 주시면서 진학 로드맵을 설정해 주셔도 됩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서윤수 교수가 작년 내 입시 설명회가 인상적이었다면서 이번 한목대 논술 특강 매뉴얼에 추가한 사항이었다.

바로, 특강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간단한 입시상담을 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점이었다.

논술 첨삭, 강의는 물론이고, 학생의 현재 논술 레벨에서 목표로 하기 좋은 학교는 어디인지, 아니면 다른 전형은 어떤지. 그런 부분을 알려 주었으면 한다는 말이었다.

-우리 학교 의예과나 간호학과 논술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학생이 있다면 더더욱 추천해주었으면 합니다, 하하하!

이런 말을 덧붙이기도 했고 말이다.

내 말에 조부겸은 매뉴얼에 적힌 걸 이제 떠올렸는지, 인상을 한층 더 구겼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이걸 하나하나 다 해 주면 시간이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5분씩만 하면 오늘 하루 만에 여기 있는 학생들 전부 상담해 주고도 남으니까.”

뭐, 실제로 릴레이 입시 컨설팅 할 때도 5분 진행으로 50명 한 번에 하기도 했고.

“… 알겠습니다, 빨리 끝내 주십쇼.”

결국, 그는 한번 발을 뺐다. 그러더니 팔짱을 끼고 옆으로 물러섰다.

마치 내가 어떤 상담을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게, 조부겸이 옆에서 눈에 불을 켜고 나와 성철이를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에이, 부담스럽게.’

게다가 나영희와 한지현도 하던 첨삭을 멈추고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어차피 한 번은 있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성철이를 돌아봤다.

“미안, 조금 걸렸다.”

“아, 괜찮습니다!”

녀석이 씩씩한 척 답했다. 하지만, 녀석도 지금의 시선이 다소 부담스럽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도 빠르게 상담을 끝내고자 곧장 본론을 꺼냈다.

“습작품들 좀 볼 수 있을까?”

“네!”

성철이는 습작품이라면서 가방에 있던 A4 용지 뭉치를 꺼냈다. 그 내용을 쓱 훑어보면서 생각했다.

역시, 이 녀석에게 어울리는 학과, 전형이 따로 있다.

생각을 마친 나는 습작품을 손에 쥐고서 성철이에게 말했다.

“문학적 소양이 충분한데? 습작품 조금만 다듬으면 백일장에서도 상 좀 받겠어.”

“그렇지 않아도 교내 백일장은 제가 다 쓸어 담고 있습니다!”

“아니, 내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 대입에 반영이 될 수 있는 백일장을 말하는 거야. 상록백일장, 한용백일장 이런 대회들. 준비해 본 적 없지?”

성철이는 내 말을 들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생각도 못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넌 여기서 논술을 쓰고 있을 때가 아니야. 백일장, 문학상 준비해. 그리고 특기자 전형으로 문예창작학과 입학해라.”

“응? 특기자?”

조부겸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아니 무슨 문예 특기자입니까 특기자는! 예고도 아닌데 이 녀석이 글을 쓰면 얼마나 썼다고 말입니다!”

“내가 봐도 너무 과한 것 같기는 해요. 논술을 못 쓴다고 문학, 작가 공부를 해라? 글이나 써라?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나영희도 옆에서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은 정말 논술에서는 논술만 보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작년 순향백일장 수상자 중 일반고가 몇 명 있었는지 아십니까?”

순향백일장. 상록백일장이나 한용백일장 만큼 명망 높은 백일장은 아니지만, 특기자 전형을 준비할 때 수상 자격으로 반영되는 백일장이었다.

“순향백일장이 뭐야?”

“문예특기자로 지원할 때는 수상실적을 봅니다. 그리고 반영하는 대회, 백일장, 문학상이 정해져 있지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서 성철이를 바라봤다.

“성철이의 습작품을 봤을 때, 충분히 반영되는 백일장에서 수상을 할 법해 보였습니다.”

문예특기자가 예고 학생들이 많이 수상을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예고 학생들만 선발하기 위해 이 전형을 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반고 학생들 중에도 역량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선발하기 위한 전형이 바로 문예특기자 전형이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부터 눈여겨봤던 성철이. 녀석의 글쓰기 역량은 논술문이 아니라 문학에 더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생각은 녀석의 습작품을 확인한 후 확신으로 바뀌었고 말이다.

게다가 작년 순향백일장의 수상자들 중 일반고 학생이 절반을 넘었었다.

물론, 일반고 학생들 중에서도 학원의 힘을 받은 학생들의 수가 많은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성철이 정도라면,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수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스스로 암기만 잘 해두고 공부할 수 있다면 백일장 입상도 꿈은 아니었다.

“그걸 선생님이 어떻게 아시죠? 아무리 국어교사라지만 그것만 보고서 특기자를 준비하라고는….”

그야 내가 입시코디를 할 때 문예특기자 애들도 많이 지도를 했었으니까 알고 있지. 과학은 전공분야가 아니어서 못했지만 말이다.

이런 사실은 숨기고서 나는 현실적인 추가 대응법을 꺼냈다.

“그래서 제가 다른 전문가분들도 좀 모시려고 합니다.”

“전문가…?”

조부겸과 나영희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마침 윤 선생으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곧 오시겠네요.”

그리고 몇 초가 지나가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멍하니 나를 지켜보고 있는 차 선생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면서 문을 열었다.

“강명문 선생님?”

문을 열고 들어온 중년 여성과 젊은 여성이 나를 보며 물었다.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한목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인 박지연.”

“저는 손유진입니다.”

뒤를 보니 서윤수 교수가 빙긋 웃으면서 서 있었다.

“국, 국문과 교수?”

나영희가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서 두 교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강명문입니다.”

그리고는 방금 전까지 읽고 있었던 성철이의 습작품을 둘에게 보여주었다.

“간단히 평가 좀 부탁드립니다. 괜찮지 성철아?”

“네, 네. 괜찮습니다.”

두 교수는 성철이의 습작품을 들여다보더니 흥미롭다며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언제 쓴 거예요?”

“이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성철이는 자신감이 훅 빠진 모습으로 대답했다. 자신의 작품이 교사들뿐 아니라 대학 교수들에게까지 보여진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고, 당황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중년의 박지연 교수가 성철이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특기자로 준비하지 말고 우리 학교, 우리 학과로 오라고 하고 싶을 정도네요.”

“그, 그게 정말입니까!?”

박지연 교수의 말에 놀란 건 성철이가 아니라 조부겸이었다.

“네. 학생의 글에는 감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정말 좋네요.”

“제가 봤을 때도 그렇습니다. 잘 쓰는데요?”

나는 그것 보라면서 조부겸과 나영희를 향해 어깨를 한껏 폈다.

논술 첨삭, 아니 논술 상담 시간, 그 첫 번째 사례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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