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한목대 논술 특강 (2)
“명천아!”
한목대 정문에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던 명천을 향해 동석이 돌진했다.
“깜짝이야! 야, 왜 그래!”
“학교에서 보니까 반가워서 헤헤.”
“친구가 반갑다고 달려드는데 좀 안아 주고 그래라.”
“됐어. 정석이 넌 공부는 하고 있냐?”
뒤에서 히죽 웃으면서 다가오는 정석을 향해 명천 역시 가볍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라. 기말고사는 올 A+ 목표로 한다!”
“목표는 항상 쉽지.”
자신감있게 말하는 정석의 옆에서 은장이 중얼거렸다.
“뭐야, 너도 공부 안 하잖아!”
“너보다는 잘 하거든? 이번 1학기는 그래도 4.0은 넘을 것 같은데?”
은장이 가슴을 한껏 펴고 자랑을 했다.
“와… 진짜로?”
“무슨 1학년부터 학점을 챙겨….”
정석과 태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응? 나도 4.0은 넘겠던데?”
이어진 동석의 말에 정석, 태성의 얼굴이 한층 더 구겨졌다.
“야야, 뭐 여기까지 와서 학점 얘기야? 우리 오늘 명천이도 보고 한목대에서 놀기도 하고, 춘천 여행도 하고! 그러려고 한 거 아니었어?”
선글라스까지 끼고 온 채영의 말에 정아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주말이니까 다들 이렇게 모였지, 항상 몇 명 빠졌었잖아.”
학생들은 지금까지 강명문이 자신들을 부른 일들을 떠올렸다. 분명 졸업한 지 반년도 안 지났는데, 이미 몇 번이고 학교를 왔다갔다 한 기분이었다.
“후… 진짜 자주 왔다갔다 했지.”
명천의 한숨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오늘은 왜 부르셨대?”
“그러니까. 아무 이유 없이 우리보고 놀자고 하셨을 리는 없는데.”
정아와 채영의 말에 학생들 모두가 키득거렸다.
“아, 진짜 1년 조교 말이나 되냐고오~!”
“그럼, 말이 안 되냐?”
갑자기 나타난 강명문에게 태성의 이마로 종이몽둥이가 날아왔다.
“아야!”
“안 때렸어 인마. 엄살은.”
강명문이 모의논술이 시작되기 직전, 잠깐이나마 제자들을 보러 온 것이었다.
그가 자리에 모여 있는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잘 왔다. 그럼 먼저 확인부터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강명문이 이상한 눈초리로 명천을 바라보자 명천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쌤, 제발 그건….”
“저 알아요! 명천이가 학교에서 인싸인지 아싸인지 하는 그거!”
동석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조용히 좀 말해!”
“명천이가 이렇게 부끄러워할 정도니까 분명 인싸가 맞겠지! 가자!”
강명문의 인도 하에 학생들이 일제히 이동을 시작했다.
“야 근데 인싸가 뭐야?”
“인기가 많다는 거 아냐? 아싸는 외톨이잖아.”
학생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중얼거리면서 명천과 강명문을 따라갔다. 조금 걷고 있자 기숙사 학생들인지 명천을 알아보는 친구들이 좀 있었다.
“명천아, 친구들이야?”
“웬일이야? 친구들도 데리고 오고.”
“좀 조용히 해 줘 제발….”
아무래도 대학교 친구들도 명천을 인싸로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기숙사 방 구경을 좀….”
“외부인은 못 들어가요. 너희들 숙소는?”
“근처로 잡아 뒀지!”
한목대가 위치한 춘천 지역은 관광지로 유명하다 보니 인근에 숙박업소가 많았다. 은장은 근처 펜션을 잡아 뒀다면서 명천에게 말했다.
“오늘 고기 구워먹을 거니까, 그 전에 학교 소개 많이 해 줘!”
“서울한국대 구경도 안 시켜 줬으면서….”
“에이, 너 서울 오면 서울한국대 정도야 오기 쉽잖아! 다음에 구경시켜 줄 테니까, 얼른 가자!”
은장이 명천의 손을 잡고 한쪽 방향으로 이끌었다. 다른 학생들은 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캠퍼스에 봄날이….”
중얼거리는 태성의 옆구리를 정아가 팔꿈치로 때렸다. 옆구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태성을 보면서 정석이 혀를 찼다.
“동석아.”
떠들썩한 학생들을 보면서 강명문은 동석을 불렀다.
“갖고 왔지?”
“네, 갖고 왔습니다!”
“오늘 특강 끝나기 전에 한목대에서 확인 좀 해 보자. 나도 중간에 시간 낼 테니까.”
동석은 강명문의 말을 들으면서 노트북이 들어 있는 가방을 매만졌다.
* * *
“시건방진 새끼가….”
각 지문을 강의할 담당 교사가 확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나영희는 대기실 건물의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강명문….”
아무리 강남서초권 명문고등학교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도 강원도에서는 알아주는 외고였다.
그런데 감히 이런 식으로 승부를 걸었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더러운데, 강명문은 그들을 깔보는 듯 말하기까지 했다.
“어디 두고 보자….”
나영희는 이빨을 뿌득 갈았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물고 있던 담배가 한쪽으로 꺾였다.
“지은아.”
꺾인 담배를 휙 던져서 버리고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최지은에게 말했다.
“석기, 이길 수 있지?”
“네. 이겨 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야만, 네가 우리 학교에서‘도’ 뛰어난 교사임을 보여 줄 수 있단다.”
나영희의 입가에 악마같은 미소가 걸렸다.
“그게, 나에게 갚는 은혜임을, 너도 알고 있겠지?”
“네, 선생님. 아니, 어머님.”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는 최지은으로부터 두려움과 긴장이 반씩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논술 특강 첫 번째 시간은 모의 인문논술 부터였다.
자리에 모인 강양외고, 춘영고, 원일고 등 강원도 지역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지금부터 80분간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런 사전 특강 없이 시행되는 모의 논술이었다. 학생들은 긴장한 채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지식과 역량을 총동원해서 진지하게 논술 시험에 임했다.
“음….”
학생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나는 몇 가지의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곽형조와 천우원, 주현서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전문시위꾼을 보낸 일들이 막혔으니 어떤 조치를 취할지 따위의 가정이었다.
‘응?’
생각을 이어 가는데 한 학생의 논술 답안지로 시선이 쏠렸다.
‘오.’
나쁘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역사와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지문들이 나왔고, 덩그러니 그림 하나만 있는 지문도 있었다,
충분히 어려울 법한 지문이었다. 처음 기출문제를 받아들었을 때, 첫 번째 모의논술이 가장 어렵겠다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앞에 있는 이 녀석은 일필휘지로 자신의 생각을 적어내려갔다. 게다가 그에 따른 본인의 해석이 제법 자세했다.
‘하지만….’
다만, 그 내용은 논술의 답안이라 보기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어디까지나 논술은 별도 지시가 없는 이상, 주어진 제시문과 주어진 문제에 대해 답변하는 시험이었다.
이 학생의 답안은, 대학교 과제물로 제출하기 좋은, 자기 나름대로의 창의적인 답변일 뿐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키워 볼 만 하겠어.’
역시 이 동네에도 괜찮은 학생들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논술 현장 관리감독을 지속했다.
* * *
“끝났습니다. 모두 답안을 제출해 주세요.”
한목대 입학처 직원의 말에 학생들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와… 어렵다….”
내용 자체가 생소한 지문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법도 했다.
“10분 휴식 후 지문 해설 시간이 있겠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10분 후에 이 자리 그대로 앉아 주세요!”
직원의 안내를 받은 학생들이 우루루 밖으로 나갔다.
“이따 대학교 투어 할래?”
“나도 할래!”
“와… 대학생 선배들 보니까 멋있다.”
“의대 선배들 말하는 거지?”
학생들이 시끌벅적하게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학생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간 시점을 확인하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첫 타임은….”
화이트보드에 붙어 있는 종이를 보고 있자 홍 선생이 몸을 바짝 세웠다.
“저, 저저, 접니다!”
이번 첫 번째 모의 논술의 제시문이 인문과 예술, 그림이 합쳐진 문제였기에 홍 선생이 선정된 것이었다.
홍 선생의 말에 모여 있던 다른 교사들이 풉, 웃음을 터트렸다.
“신경쓰지 마세요.”
홍 선생이 웃음소리를 들었을까 염려한 박 선생이 홍 선생에게 말했다. 그러자 홍 선생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괜찮습니다 선배님! 저는 선배님처럼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파이팅 넘치는 교사가 될 거니까요!”
“어? 어, 어… 네, 그, 그러세요.”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박 선생도 뭐라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모양이었다.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파들파들 떨려 왔으니 말이다.
“그럼….”
나는 어깨에 가방을 메고, 대기실 바깥으로 향했다.
“볼일 보고 올 건가?”
뒤따라 나온 오 선생이 말했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빨리 오게. 우리가 강연하는 거 봐야 하지 않겠나.”
기분 좋게 웃는 오 선생을 보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 황금시간을 놓칠 수야 없지.’
그리고 핸드폰을 열어 계획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시작되었나 보네.”
학교를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던 정석이 모의논술이 열리는 강당 건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곧 쌤도 오신대.”
한목대 의과대학 주변에 있는 벤치에서 일곱 명의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벤치 앞에 있는 테이블에는 과자와 음료수 봉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맥주 마시고 싶었는데.”
“낮술 마시려고?”
“대학생의 낭만 아니겠냐.”
“난 마셔 본 적 없어.”
정석, 동석, 태성, 정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을 보면서 다른 학생들이 낄낄거렸다.
“여기들 있었구나.”
과자를 먹으면서 티타임을 즐기는 학생들에게 강명문이 다가왔다.
“어? 이사장님?”
“반가워요, 여러분.”
강명문은 이사장과 함께 학생들을 찾아왔다. 그리고 이사장을 보자마자 동석이 노트북을 꺼내며 자랑했다.
“저, 이사장님 덕분에 공부 할 수 있었어요! 진짜 감사드려요!”
“에이, 뭘 그런 걸 가지고요. 여러분들한테는 수학여행비도 지원 못 해 줬는데요?”
이사장이 호호, 웃으면서 학생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헤헤, 그래도요. 제가 꼭 성공해서 은혜 갚을게요. 아, 담임쌤도요!”
동석의 말에 강명문이 씨익 웃어보였다.
“그럼 그 은혜, 지금 좀 갚았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학생들이 소름이 돋았는지 팔뚝을 쓸어내렸다.
“또 뭘 시키시려고….”
“별거 아니야. 그저, 여기에서 너희가 이 파일을 같이 보면 좋겠어서 말이지.”
강명문은 주머니에서 USB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한명심과 류지훈으로부터 받은 GF파일이 들어 있는 USB였다. 또 다른 하나는 강은숙 이사장이 보관하고 있던 원본 GF파일이었다.
“이게 뭐예요?”
고개를 갸웃하는 동석에게 이사장이 말했다.
“강문고의 역사가 담겨 있는 자료죠.”
“이걸 저희한테 왜….”
은장의 질문에 이사장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할아버지인 강진 어르신의 뜻이었어요.”
“네?”
“뭐가요?”
정석과 명천도 차례대로 의문을 품고서 물었다.
“만약, 당신이 돌아가시고 학교가 어지러울 때, 믿을 수 있는 학생들과 함께 헤쳐나가라고 하셨죠.”
이사장이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강 선생님과 함께 정말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 주었어요.”
동석은 강명문이 건네는 USB를 받아들었다.
“그래서 같이 보고 싶었어요.”
이사장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자료를 보면 알 거라면서, 고개를 살짝 움직일 뿐이었다.
“이거부터 열어 봐라 동석아.”
“…네.”
이사장이 갖고 있던 GF파일의 원본이 담겨 있는 USB였다. 사뭇 진지해진 분위기 속에서 동석은 강명문이 말한 USB를 먼저 노트북에 꽂았다.
그리고 열리는 파일을 확인한 학생들이 화면을 보려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아야!”
갑자기 다가와서 경로가 겹쳤는지, 태성과 정석이 부딪힌 이마를 감싸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건….”
반면, 가만히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은장과 동석, 정아, 채영, 명천은 숨을 삼켰다.
“Gangjin Scholarship Foundation?”
영어를 천천히 읽은 명천에게 정아가 물었다.
“스콜라십 파운데이션이 뭐야?”
“장학재단….”
대답은 명천이 아니라 은장으로부터 나왔다.
“강진… 장학재단?”
동석의 말을 들은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이사장은 학생들의 시선을 한 번에 받았다. 강명문도 학생들에게 합류해서는 이사장에게 의문의 시선을 보냈다.
“강문고에 장학재단이 있었습니까?”
강명문이 이사장에게 물었다. 이사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강진 장학재단 소속의 장학생들과 직원들 명단. 그게 처음에 존재했던 GF파일이에요.”
마우스 휠을 움직이는 강명문의 손이 빨라졌다.
“그리고 저는, 강진 장학재단을 부활시킬 거예요.”
이사장의 말을 들으면서 강명문은 명단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리고 짧게 혀를 찼다.
일부의 명단이지만, 그곳에 적힌 명단은 충분히 강명문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주현서도 있었군요.”
이사진 중 한 명인 주현서의 이름도 파일 안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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