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03화 (202/252)
  • 203화. 한목대 논술 특강 (1)

    “일단 학교 일은 정리가 좀 됐습니다.”

    “그러니까요. 기사들도 난리 났던데요?”

    박 선생이 핸드폰을 꺼내서 현재 포털 사이트 기사들을 보여 주었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뻔한 강문고! 교장과 교사, 학생들이 오해를 풀다!>

    “지석 선배랑 교장 선생님, 아주 잘 나오셨네요.”

    기사 속 사진을 보면서 농담을 건넸다.

    “다 예상하셨던 일이에요?”

    “얼추 생각은 했습니다.”

    나는 들고 온 음료수에 꽂힌 빨대를 쪽 빨았다.

    “이번 논술 특강에서 조심하셔야 할 게 있을 것 같아서 세 분을 불렀습니다.”

    오 선생은 이번 특강에서 조심할 일이 없었다. 그는 강문고에서도 유명한 교사였고,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윤 선생도 과학 논술 담당이고, 늦게 합류할 거라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문제는 여기 모인 네 사람이었다.

    나, 박 선생, 차 선생, 홍 선생.

    인문계열과 예체능을 맡고 있는 우리가 문제였다.

    “차 선생님, 강양외고 친구분 계시지 않습니까?”

    “아, 네, 네.”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우회하지 않는 돌직구에 차 선생을 비롯해 두 교사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깃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번 더 물었다.

    “그걸 알지 못하면, 이번 논술 특강에서의 주요 표적은 차 선생님이 되실 겁니다. 어떤 관계인지 알려 주시겠어요?”

    차 선생은 우리를 한 번 둘러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지은이는…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입니다. 둘 다 강양외고 1기 졸업생이고, 같은 동건대 역사교육과 출신입니다.”

    차 선생이 외고 출신이라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홍 선생과 박 선생도 처음 알았는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차 선생이 잠시 말을 잇기를 망설였다. 그러다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전 여친이기도 합니다.”

    “역시.”

    “역시나.”

    “그렇군요.”

    차례대로 박 선생, 홍 선생, 내 반응이었다.

    차 선생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말했다.

    “알고 계셨습니까!?”

    “아까 반응이 너무 헤어진 여친 만나는 모습이라 모를 수가 없었죠.”

    박 선생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그게 다는 아닙니다만….”

    차 선생이 말끝을 흐렸다.

    “말씀하시기 좀 그러면, 나중에 해 주셔도 됩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생각을 정리를 좀 해야 해서….”

    차 선생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말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대신 화제를 논술 특강 준비사항으로 돌렸다.

    “차 선생님, 공부는 많이 하셨습니까?”

    “네, 논술 공부라면 많이 했습니다.”

    “오늘 특강에서 차 선생님은 역사 문제뿐 아니라 인문학 문제 전반을 다뤄 주세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한 듯 차 선생이 고개를 갸웃했다.

    “역사 문제 이외에요?”

    “네. 역사는 오 선생님이 메인으로 잡아 주실 겁니다. 차 선생님은, 인문계열 전반을 함께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

    차 선생이 잠깐 턱을 손으로 매만졌다. 그리고는 표정을 확 풀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인문학 공부는 지겹도록 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의 답을 들은 후 이번에는 홍 선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홍 선생님은 미술 담당이라고 그쪽에서 또 공격이 들어올 겁니다. 제대로 알고나 접근하는 게 맞냐면서요.”

    “그렇… 겠죠…?”

    홍 선생이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오늘 홍 선생님이 오신 건 다른 것보다도 교대 논술 때문입니다.”

    오늘 특강을 오기 전에, 나는 홍 선생에게 그림이 같이 나오는 문제 때문에라도 홍 선생이 필요함을 이야기했었다.

    실제로, 당시 교대 문제들 중 일부에는 그림 자료를 함께 해석해야 하는 내용들이 간혹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도표는 해석할 줄 알아도 그림은 해석할 줄 몰라 했다.

    이런 부분 때문인지 많은 학교들이 그림을 넣지 않기도 했지만, 또 몇몇 주요 학교들은 그림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한목대 논술 특강에서는 그림을 제시문과 함께 해석하는 문제들도 학생들에게 제공해 줄 예정이었다.

    “아마 그런 논술 문제의 확실한 답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은 홍 선생님 정도일 겁니다.”

    “당연하죠! 여, 열심히 할게요!”

    실제로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서 하는 말이었지만, 홍 선생에게는 응원이 된 모양이었다.

    “박 선생님은 절대 그 누구의 도발에도 넘어가지 마세요.”

    “도발이요?”

    “네. 불필요한 말다툼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반드시 참으셔야 해요.”

    박 선생은 방금 있었던 강양외고 사건도 있었기 때문인지, 내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외고 선생님들이 괜히 외국어로 시비를 걸거나 그럴 수도 있다는….”

    홍 선생이 중얼거리자 박 선생이 걱정 말라며 손을 흔들었다.

    “저도 어지간한 외고 선생님 수준은 되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녀의 말에 괜히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 싸우지 마세요.”

    “아, 안 싸운다고요.”

    눈을 흘기는 박 선생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다 된 것 같군요. 이제 가 볼까요?”

    밖을 보니 오 선생이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강 선생님은요?”

    따로 역할이 정해지지 않은 듯한 나를 향해 차 선생이 물었다.

    “저는 여러분 총괄 지휘 겸, 인문 논술 첨삭 담당으로 될 겁니다.”

    물론, 첨삭만 하는 다른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그걸 굳이 밝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대기실로 이동하는 중에도 기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 다툼 없이 지나가면 조용하고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 *

    시간에 맞춰 대기실에 도착해서 보니 방금 전보다 더 많은 인원들이 모여 있었다.

    “아 이분들이….”

    “그 사람인가? 강명문인가 뭐시긴가.”

    “…흥.”

    지금의 반응을 보인 세 사람은 자신들을 강원 춘영고로 소개한 교사들이었다.

    “안녕하세요, 뉴스에서 많이 뵀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이 남성과 그의 후배들인 원일고 교사들이었다.

    우리는 이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학생들은 앞으로 1시간쯤 뒤에 강당으로 들어올 겁니다.”

    진행을 담당하게 된 입학처 직원이 우리를 안내했다.

    “학생들은 주어진 논술 기출 문제를 풀고, 시간이 다 되면 전체 지문 특강이 있을 겁니다. 그 이후에는 선생님들께서 현장에서 첨삭해주실 겁니다. 그러니 각 문제를 설명하는 선생님도 각각 선발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직원이 건네는 논술 문제들을 받아 들었다. 두툼한 용지에는 여러 인문논술 주제들이 들어 있었다.

    역사, 예술, 사회, 정치, 경제, 법 등의 주제들이 다양하게 기출문제로써 녹아들어 있었다.

    ‘꽤 오래 걸렸겠는데?’

    한목대 교수들이 모여서 만든 문제들이라고 자랑을 하는 입학처 직원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럼 기출 논술 지문을 한번 읽어 주시고, 강의를 해 주실 선생님을 추천해 주세요.”

    직원의 말을 듣자마자 우리는 처음 계획 그대로의 인원을 적어내려 갔다.

    영어 지문은 박은환.

    역사 및 인문 전반은 차석기.

    그림이 포함된 인문논술은 홍유진.

    역사는 오석상.

    이렇게 인원을 정리한 우리는 곧바로 명단을 제출했다. 다른 학교 교사들도 대표자가 나와서 강의를 할 인원을 제출했다.

    그리고 여러 기출 문제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균등하게 강의할 수 있도록 배분이 되었다.

    “그럼 이렇게 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입학처 직원이 인쇄된 종이를 대기실 화이트보드에 턱, 붙였다.

    “응? 뭐야? 강명문은 안 해?”

    춘영고 국어교사인 조부겸이었다.

    “네, 저는 첨삭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그러자 나영희가 있는 방향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풉.”

    “…풉?”

    “아이고 죄송합니다. 강명문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쉬워서요.”

    야실거리는 나영희의 뒤에서 또 다른 여성이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공교육의 희망이 하는 강의를 듣고 싶었는데….”

    원일고 사회교사인 한지현이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진심으로 아쉬워하기보다는, 이번 강의에 참여하지 않는 나를 무시하는 듯한 말투였다.

    “아무래도 강명문 선생님은 자기 실력을 보여 주기가 부끄러운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나영희의 말에 조부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전 또 강문고에서 이렇게 멀리까지 와주신다 해가지고 오늘 참석했는데, 이렇게 나오시면 참….”

    “저도 그래요.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길래 기대하고 있었는데.”

    한지현이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면서 말했다. 조부겸은 다리를 꼬면서 책상에 걸터앉고는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저렇게 자신감이 없어서야. 어디 무서워서 이름값 좀 올리겠습니까? 크하하하!”

    신이 나서 나를 놀리는 조부겸을 보면서 오 선생이 일어섰다.

    “그쯤 하시죠. 이번 특강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행사지, 우리끼리 말싸움하려고 온 자리가 아닙니다.”

    “네, 그러시겠죠.”

    나영희가 콧방귀를 날리면서 나를 향해 걸어왔다.

    “이렇게 젊고 능력도 좋으신 선생님이 계신데 왜 중요한 자리에서 발을 뺄까요?”

    그러더니 그녀는 손을 슬쩍 펼쳤다. 마치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목을 집중시키듯이 말이다.

    “생각하기 어렵지는 않아요. 자기 실력에 자신이 없는 거죠.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거면… 지금의 이미지가 싹 다 만들어진 걸 수도 있겠네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머리에서 어떤 꼭지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나영희를 향해, 조부겸을 향해, 그리고 한지현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하나, 둘, 셋, 넷….”

    자리에 있는 모든 교사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센 나는 큭큭, 소리를 죽이며 웃었다.

    “여기 있는 분들 다 합쳐도 작년에 제가 배출한 합격생 수의 절반이나 될가 말까 하겠군요.”

    “뭐, 뭐라고요!?”

    한지현이 기분 나쁘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고는 더 큰 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제가 왜 강의에 안 들어가는지 궁금하십니까? 괜히 제가 잘못 끼었다가 양학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그런 겁니다.”

    “양…학?”

    나영희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최지은을 돌아봤다.

    “아, 그거… 양민학살이라고, 고수가 초보를 학살한다 그래서….”

    “…그러니까 우리가 초보에 불과하다?”

    조부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영희가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습니다. 초보들이 몰려 있는 전장에 천하제일고수가 나타날 필요는 없죠. 여기 강문고 선생님들만으로도 충분히 중수, 아니 고수에 이르시는 분들이니까요.”

    나는 강문고 교사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와… 그럼 뭐, 자기는 천하제일고수고 우리는 겉절이야?”

    “그래도 나름 고수로도 쳐 주셨어요.”

    “그건 오 선생님 같은데요 차 선생님?”

    박 선생, 차 선생, 홍 선생이 속삭였다. 오 선생은 그런 우리를 재미 있다며 바라보고 있었다.

    “작년 춘영고의 인서울 및 주요대학 수시 입결은 50명.”

    “!!”

    “작년 강양외고 인서울 및 주요대학 수시 입결은 60명.”

    “…그래서?”

    “원일고 작년 인서울 및 주요대학 수시 입결 45명.”

    “…흥.”

    숫자들을 합치다가 나는 피식, 입꼬리를 한쪽으로 올리며 웃었다.

    “합쳐 봤자 155명. 중복 합격에 이 인원들을 모두 여기 계신 분들이 합격시켰을리는 없으니까… 절반으로 자르면 70명이 조금 넘는군요.”

    이런 일들이 있을까봐, 미리 오늘 참여하는 학교들의 수시 입결을 찾아봤었다. 그걸 이렇게 꺼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작년에 수시로 합격시킨 학생들만 족히 100명은 넘습니다.”

    뚜벅뚜벅 그들을 향해 걸어가던 내가 조부겸과 한지현, 나영희를 슬며시 노려봤다.

    “실력이 안 되니까 이렇게 인신공격이나 하시려고 하는 거, 참 보기가 그렇네요.”

    “뭐, 뭐야!?”

    나영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이게 어디서 큰 소리야! 자네 몇 살이야!”

    “나이부터 들이대는 조부겸 선생님의 실력, 아주 자~알 알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미소를 숨기고서 그들에게 말했다.

    “장담하죠. 여기 계신 분들의 강의, 우리 강문고 선생님들 강의보다 한없이 부족할 거라는 사실을요.”

    “예!?”

    “선배님!?”

    차 선생과 홍 선생이 당황해했다. 반면, 박 선생과 오 선생은 달랐다.

    “참나, 나한테 싸우지 말라고 해 놓고는. 좋아요, 이참에 제대로 한번 해 보죠.”

    “아주 좋군. 이런 선의의 경쟁, 아주 좋아. 간만에 몸 좀 풀려나?”

    어쩐지 강의가 아니라 주먹을 우둑우둑 풀고 있는 오 선생도 있었지만, 아무튼.

    “이번 논술 특강, 우리를 이기고 싶으십니까?”

    나영희가 침을 꼴딱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 좀 하셔야 할 겁니다.”

    이제 곧 학생들이 들어올 시간이 다 되어갔다. 멀리서 학생들을 인도하는 논술 특강 안내자의 설명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강문고는, 저 혼자만의 학교가 아닙니다.”

    나는 모여 있는 교사들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강의를 하는 사이에….’

    이들이 강문고의 다른 교사들과 대결을 펼치고 있을 때,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명천아~ 우리 왔다!!!!

    -빨리 왔잖아!?

    연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손으로 잡으면서 녀석들과 함께 할 일들을 남몰래 정리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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