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02화 (201/252)
  • 202화. 보여 줄 시간

    지금 시점에서의 시위.

    그 그림에 의문을 가진 건 강명문뿐만이 아니었다.

    강은숙 이사장도 의문을 품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화가 나는 정도였지만, 머리를 식히고 다시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강문고 학부모들이 그런다고…?”

    서윤수 교수의 연구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강은숙 이사장은 생각했다.

    정말 강문고 학부모들이 시위를 할까?

    오히려 그들은 시위할 시간에 자식들 입시에 더 신경을 쓸 사람들이었다.

    자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생긴다?

    그럼 그걸 고치려고 하기 보다는 다른 학교로의 전학을 꾀한다.

    더러는 빠르게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본 후 수능을 치르거나 해외로 유학을 보내려고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 교내 행사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시위를 벌인다?

    그것도 깔끔하게 현장에서 범인까지 모두 잡아낸 사건인데, 굳이 또 공론화해서?

    “수상해.”

    이사장은 강명문이 했던 말을 되새겨 봤다.

    -교장 선생님께 해명자료 요청 주시겠어요?

    교사들이 특강 대기실로 향하기 직전, 강명문은 이사장에게 한 가지를 당부하며 말했다.

    -그 자료, 미리 인쇄해 두셔서 꼭 지석 선배가 나간 다음에 움직이시라고 해 주세요.

    -심지석 선생님이요? 심 선생님도 뭔가 하시려는 건가요?

    그 질문에는 그저 씨익 웃어 보이는 강명문이었다.

    이사장은 강명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의문들을 정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장은 짧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들은 학부모가 아니다.

    오히려 입시에 불리하다고, 사학비리를 공론화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은 학교다.

    물론, 강명문 덕분에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자식에게 ‘직결되는 일’이 아니면 관심 밖이었다.

    바로 이, ‘직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 포인트였다.

    ‘행사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 학부모들은 모두 큰 불만이 없었어.’

    그때 모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했을 때도 긍정적인 답변들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모인 학부모들은 직접적으로 행사장에서 피해를 받은 학부모들이 아니었다.

    그럼 지금 모여 있는 사람들은 다른 학부모들일 터였다.

    하지만, 강문고 학부모들은 이런 일로 시위까지 하려 하지는 않을 사람들이었다.

    판단을 내린 이사장은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를 찾았다.

    “응, 나야. 해명자료 준비했어요?”

    [네 누님, 지금 거의 다 했습니다.]

    강철면 교장이 다소 피곤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자료 만들면 바로 언론에 뿌리지 말아요.”

    [어? 언론에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맞아요. 그런데 강 선생님이 생각이 있으신 것 같아요. 이따 심지석 선생님이 움직인다고 하니까 그때 나가면 되겠어요.”

    강철면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뒤로 했다. 강명문과 강은숙 이사장의 계획이다. 충분히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전화를 끊은 이사장은 여전히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올라와 있는 기사들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제는 댓글들도 부정적인 댓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빨리 막지 않으면….”

    한숨을 쉬면서 의자에 등을 기댄 이사장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그리고 강문고 정문.

    모여 있던 기자들이 심지석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물었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강문고 학부모님들이 집회를 하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신미나 기자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리에 턱, 앉더니 곧장 노트북을 열었다.

    “무, 무슨 소리야! 우리는 강문고 학부모 자격으로….”

    “아주머니 자녀가 몇 학년 몇 반인가요?”

    옆에 서 있던 경필의 물음에 다른 학부모의 눈이 파르르 떨려 왔다.

    “내, 내가 그걸 왜, 왜 가르쳐 줘야 하는데?”

    “방금 전에도 이상했으니까요. 그리고 누군지 알면 제가 도와줄 수도 있어요.”

    경필의 말에 학부모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런 건 몰라도….”

    “자세하게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의 연이은 질문 공세에 집회를 나온 학부모들(?)이 난색을 표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심지석이 기자들에게 말했다.

    “자녀가 강문고에 다니지도 않는 분들이 여기에서 왜 이러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국 학부모 모임 같은 데에서라도 나오셨습니까?”

    심지석은 학부모들(?)을 쓱 둘러보았다.

    “당장 여기에서 나가세요. 강문고 학부모님들이 아닌 다른 분들 때문에 학교가 시끄러운 건 참을 수 없습니다.”

    기자들은 심지석의 모습을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 강문고 학부모라니까!”

    “그니까 그걸 어떻게 믿냐고요!”

    민주가 소리를 지르자 학부모가 두 눈을 부릅떴다. 여학생이라 만만하다 생각했던 것이었다.

    “학생, 여기가 어디라고 소리를 질러 소리를!!”

    “말씀해 보세요. 자녀분이 몇 학년 몇 반 누군데요?”

    “그걸 알아서 뭐 할 건데!”

    “그걸 알아야 도움을 드리든 말든 하죠!”

    “2학년이다!”

    “제가 지금까지 뵀던 학부모님들 중 아주머니 같은 분은 없었는데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제가 작년까지 학생회장이었으니까요!”

    작년까지 학생회장을 했던 민주는 현 2, 3학년 중 어지간한 극성 학부모들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들을 알아야 학교 행사를 준비할 때도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민주는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학부모들(?) 중에는 안면이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말씀해 보세요. 몇 학년 몇 반 누구죠? 아니면, 강문고 관계자도 아닌데 여기 오신 건가요!”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민주의 모습에 여성이 당황해했다.

    “이, 이게….”

    “그쯤 하시죠.”

    뒤에서 나타난 남성에 의해 모두가 말을 멈추었다.

    “교장 선생님!”

    경필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기자들은 인터뷰하기 좋은 사람이라도 찾았다면서 심지석에게 향하던 마이크를 일제히 강철면에게로 돌렸다.

    “교장 선생님, 지금 이 상황 설명을….”

    “강문고 학부모도 아닌 사람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걸 보십시오.”

    강철면 교장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기자 한 명에게 내밀었다. 강문고 전담기자인 신미나 기자였다.

    “이건….”

    “오늘 불거졌던 각종 음모들에 대한 해명자료입니다.”

    기자들의 눈이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안전의식 부족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닙니다. 만약 아침에 올라온 기사들 말대로라면, 학교 행사에서 즉석 방화범 대책으로 소방대원분들이나 경찰분들이라도 배치를 해야 할까요?”

    강철면은 강은숙 이사장과 나눈 통화 내용 그대로를 읊었다. 이사장의 요청에 따라 해명자료를 준비했고, 해명자료를 시위대가 오는 시점에 오픈하기로 했다.

    강명문과 강은숙의 준비성에 대해 속으로 감탄하면서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오히려 그분들이 오기 전에 상황을 정리한 선생님들을 칭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지금 이 상황들이 혹시….”

    신미나 기자가 생각하기로 지금 이 상황은 딱 한 가지가 아니면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누군가를 매장하기 위한 음모군요.”

    그녀의 말에 강철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미나가 말했던 ‘누군가’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강명문 선생님을….”

    셔터를 연신 눌러대던 한 기자의 이 말이 도화선이 되었다.

    “교장 선생님! 지금 이런 일을 꾸민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사학비리를 저질렀던 사람들이 복수라도 하는 걸까요? 한 말씀 해 주십쇼!”

    “제가 지금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자, 다들 해산해 주세요, 해산.”

    강철면이 기자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심지석도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신미나에게 다가갔다.

    “기자님, 명문이가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강 선생님이요?”

    심지석이 건넨 종이를 받아든 신미나의 두 눈이 왕만두처럼 커졌다.

    “명문이가 이번 일에 관여한 사람들 단체를 미리 조사해 봤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거 저도 도와드렸어요! 아빠도 수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종이에는 오늘 시위에 참여한 시위전문단체의 명칭과 함께, 해당 단체가 속한 정당이 적혀 있었다. 그것도 화살표로 그려 놓은 간단한 관계도까지 정리된 형태로 말이다.

    “그리고 이건 담임쌤 전달 말씀이에요. 정확한 증거가 없으면 경찰은 움직일 수 없지만, 기자님은….”

    “이런 거 밝히는 게 바로 저! 신미나 기자죠! 저만 믿으세요!”

    교육 언론에서 일하지만, 사회의 비리를 파헤칠 수 있게 되었다며 신미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의 당찬 모습에 민주가 풉, 하고 작게 웃었다. 경필은 전문시위꾼들이 자리를 비우기까지 강문고 정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 * *

    “네, 수고하셨습니다. 민주랑 경필이도 별일 없었죠?”

    [그래. 잘 끝났어. 그나저나 어떻게 안 거야? 그 사람들 진짜 감쪽같던데.]

    선배가 의아하다면서 말했다. 나는 거기에 답하지 않고, 궁금해하던 걸 물었다.

    “신 기자님은 잘 받아가셨죠?”

    [신이 나 가지고 바로 달려가시더라.]

    그 모습이 괜히 머릿속에 그려져서 작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또 뭐 생기면 연락 주세요.”

    [거기서도 조심해. 지금 이런저런 공격 하려고 난리도 아닌 것 같아.]

    선배의 말대로 이사진이 제법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알겠다고 답하면서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경필이랑 민주는 자습 중입니까?”

    [아, 그 녀석들, 방금 뭐 먹으러 갔는데?]

    “이것들이….”

    주말에 나와서 공부하라고 그랬더니 오자마자 간식거리부터 찾아?

    “걔네들 스터디 제대로 하는지 체크 좀 해주세요. 담임이 없다고 아주 빠져 가지고, 공부는 안 하고 벌써부터 간식타임이나 갖고 있네요.”

    [알았어요 쌤….]

    옆에 민주가 있었는지 시무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주 있었구나? 옆에 경필이도 있니?”

    [네, 있습니다! 방금 오는 길이었습니다!]

    “잘 됐다. 너희들 귀 활짝 열고 똑똑히 들어. 학생의 본분은 공부고, 너희는 입시를 준비하는….”

    그렇게 나는 십여 분 동안 녀석들에게 잔소리를 했다. 내 잔소리를 듣던 민주가 힘없이 대답하는 소리가 살짝 들려왔다.

    [됐어됐어. 애들 고생했는데 잡겠다.]

    지석 선배가 중간에 끊어 주지 않았으면 아마 잔소리가 계속 이어졌을 터였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아무튼, 거기서도 조심해.]

    전화를 끊은 나는 핸드폰으로 열어 두었던 기사들을 확인했다.

    <학부모라더니 전문시위꾼? 돈 받고 고용된 그들은 누구인가?>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이런 기사들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화면을 슥슥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면서 씨익 웃었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니까.”

    이번 일은 곽형조가 꾸민 일로 예상되었다. 전생에서도 이런 언론 플레이는 곽형조의 전문영역이었으니까.

    그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쓰라고 기부한 돈, 교사들이 횡령했냐!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학교 정문 앞에 모여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몇 년 뒤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이 강문고 학부모가 아니라 돈을 받고 고용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답노트가 괜히 있는 게 아니지.”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분명 가짜 시위꾼들을 불러서 난장판을 일으킬 거라 생각했다.

    마침 이번 논술 특강에는 지석 선배가 참여하기 어렵다 했으니, 선배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강 선생님.”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열어둔 내 방 문 앞에 박 선생이 서 있었다.

    “아, 오셨어요?”

    내 방으로 들어오는 박 선생을 따라 차 선생과 홍 선생도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학교가 진정되었으니, 이제 여기에 신경을 써야지.’

    초반부터 기싸움이 심했지만, 결국 이번 논술 특강에서 강문고는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서 교수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미리 언질을 주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단순했다.

    공공의 적의 실력이 그들의 예상보다도 더 뛰어남을 보여 주면 된다.

    “잠깐 회의 좀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내 방에 들어온 세 사람을 보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제 강문고 교사들의 실력을 보여 줄 시간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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