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01화 (200/252)

201화. 오답노트

한목대에 도착하기까지 다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운전기사의 운전이 너무 부드러웠기 때문이었다.

“흠냐… 흐암….”

차 선생이 옆에서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잠꼬대를 했다.

“한 입만 더….”

“어휴, 귀찮아.”

나는 내 옆으로 밀고 들어오는 차 선생을 밀어냈다. 차 선생은 내 옆으로 살짝 밀쳐졌음에도 잠에서 깨지 않고서 계속 잠꼬대를 했다.

“음냐… 너만 먹냐…?”

“뭔 꿈을 꾸는 거야 대체.”

그런 차 선생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앞뒤로 기지개를 켜고 핸드폰을 들었다.

<부재중 전화: 신미나 기자 4통>

‘뭐지?’

신 기자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전화를 걸어 볼까, 생각하다가 주변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이들을 발견했다.

‘조금 이따 하지 뭐.’

그리고 나도 다시 눈을 감았다. 핸드폰이 한 번 더 지잉 울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흘려넘겼다.

* * *

“강 선생 왔나!!”

한목대에 도착하자 우리를 반겨 준 건 서윤수 교수였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그럼그럼! 나야 늘 안녕하지! 강 선생도 잘 지냈고?”

“안녕하셨어요 교수님?”

뒤에서 박 선생이 따라 내리면서 밝게 인사를 했다. 이어서 오 선생, 홍 선생, 차 선생도 내렸다.

마지막으로 이사장이 차에서 내리면서 서윤수 교수에게 다가갔다.

“은숙이도 잘 왔어! 숙소는?”

“시내 호텔로 잡아 뒀어.”

두 사람은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끼리 회포를 잠시간 풀었다.

“자, 그럼 사담은 이 정도로 하고, 논술 특강 대기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서 교수가 자리를 막 뜨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무시하지 못하고 꺼내 들었다.

“선배, 무슨 일….”

[야! 기사! 기사 봤어!?]

“기사요?”

나는 다른 교사들을 보면서 기사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눈빛으로 물었다. 모두가 그게 무엇인지 몰라 고개를 젓거나 눈을 그저 꿈뻑거릴 뿐이었다.

“무슨 기사 말입니까?”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나는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박 선생이 가까이 다가와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를 귀담아들었다.

[당장, 당장 강문고라고 검색 한번 해 봐! 아니다, 포털 사이트 메인만 들어가도 다 뜬다고!]

박 선생이 급하게 핸드폰으로 강문고를 검색했다.

“… 이게 뭐야?”

“왜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박 선생의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다른 교사들도 천천히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 미친놈들이!”

“이사진, 이 새끼들!”

홍 선생과 오 선생이 격한 반응을 보이며 분노했다.

“감히 이딴 기사를 써낼 수 있단 말인가!”

흥분하는 오 선생을 본 서 교수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리고 서 교수도 기사를 확인했다.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사장도 핸드폰 화면을 보더니 핸드폰을 쥔 오른손을 꽉 쥐었다.

“강 선생님, 당장 학교로 돌아가겠습니다!”

“여러분, 잠시만요.”

나는 이사장을 포함해서 흥분이 최고조에 달한 교사들에게 말했다.

우선 핸드폰에 대고 지석 선배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선배, 이따 이상한 사람들 오면 다시 연락 주세요.”

[이상한 사람들?]

“네. 수상한 사람들이요. 학부모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에는 내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보셨죠? 그렇게 흥분하실 필요 없습니다.”

“강 선생님! 이게 흥분 안 하고 있을 일이에요? 지금 이 사람들,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나 펼치고 있잖아요!”

박 선생이 소리를 지르면서 기사를 하나하나 읽었다.

“강문고 교사들의 안전의식 부족은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의 책임이 막중함을 다시금 인식하게 해 주었다. 공교육의 희망이라 불리던 강명문의 실체는 이미지 메이킹이나 하는 연예인 같은 사람이다? 이게 지금 말이나 되는….”

“괜찮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이야기를 했다.

“정말 괜찮습니다. 이사진이 열심히 떠들라고 하시죠.”

그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오 선생도 엑스칼리버를 쥐고 있는 오른팔의 힘을 서서히 풀었다.

“생각이라도 있나?”

“물론입니다. 지금은 논술 특강에 집중해 주시면 됩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한숨을 푹 쉬면서 짐을 챙겼다.

“좋아요. 진짜 뭔가 대책이라도 있는 거죠?”

“그렇다니까요. 걱정 마세요.”

박 선생을 안심시키면서 나도 가방을 어깨에 멨다.

“교수님, 안내 부탁드립니다.”

“진짜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서 교수를 향해서도 빙긋 웃어 보이자 서 교수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는 말했다.

“껄껄! 좋아좋아. 그래야 강 선생이지. 강문고의 에이스, 공교육의 희망! 이쪽으로 오게!”

어딘가 부끄러운 별명을 붙이면서 서 교수는 우리들을 교사 대기실로 안내했다. 빈 강의실 하나를 임시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어….”

안으로 들어가던 차 선생이 잠깐 멈칫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고개를 쓱 들이밀며 들어가자 차 선생이 당황하면서 버둥거렸다.

“자, 잠시만요 강 선생님!”

“응?”

한쪽에서 책을 읽고 있던 여성이 우리가 들어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는 인원인 것 같았다.

“석기?”

“아.”

차 선생의 얼굴이 정지화면이라도 된 것처럼 멈췄다.

“뭐야?”

“안 들어가고 뭐 하세요?”

오 선생과 박 선생이 번갈아 가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석기 맞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여성이 반갑게 달려 나왔다.

“어, 어어어, 아, 안녕?”

신이 나서 달려오는 여성과는 달리 차 선생은 안절부절못하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쳤다.

“잘 지냈어? 강문고에서도 온다고 하길래 너도 오려나, 했는데! 잘됐다 야!”

“으, 응, 그러게. 나도 반가워.”

차 선생이 이렇게까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우리는 모두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만 봤다.

“아, 인사드려야지. 강문고 선생님들?”

“응? 아, 응 맞아.”

“안녕하세요! 양구외고의 역사 교사 최지은입니다!”

최지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이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힘차게 인사를 했다. 우리는 모두 그렇구나,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강문고 영어 교사 박은환이라고 합니다.”

“저는 미술 교사 홍유진입니다!”

“마찬가지로 역사 교사 오석상입니다. 차 선생님과는 관계가…?”

오 선생의 물음에 최지은이 차 선생의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차 선생은 당황해하면서 한 발짝 옆으로 물러났다.

“아, 저희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에요!”

그제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는지 나를 비롯한 모든 인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그렇겠네요….”

“두 개 학교 동창이면 그럴 수도….”

오 선생, 박 선생, 내가 음, 음, 하며 납득한다는 표정을 짓자 차 선생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 그런 거 아닙니다!”

“응? 왜 그래?”

차 선생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최지은이 그를 놀리듯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강명문입니다. 강문고 국어 교사입니다.”

한창 시끌벅적할 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최지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바라봤다.

“이분이….”

“네?”

“그쯤 해 두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중년 여성이 앞으로 다가왔다.

“최 선생, 아무리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지만, 예의는 지켜 주셔야죠.”

“…네, 죄송합니다.”

몸을 푹 숙인 최지은이 방금 전과는 달라진 텐션을 보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선생님이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서 반가우셨나 봅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내가 대표로 인사를 하자 여성이 싱긋 웃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강명문 선생님. 저는 양구외고 영어 교사 나영희입니다.”

그녀의 뒤로 다른 사람들도 일어나 인사를 했다. 모두 양구외고 교사들이었다. 우리도 그에 화답하면서 각자 자리에 앉았다.

“강명문 선생님께서 대단하시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나영희가 두 팔을 책상 위에 올리고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하하하, 과찬이십니….”

“얼마나 대단하신지,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는 날이 없으시던데요.”

그렇게 말하던 나영희가 핸드폰을 꺼냈다.

“오늘도 안전사고 문제가 나오고 있고… 어라? 지금 보니까 학부모들이 학교 앞에서 시위도 하려고 하는 것 같네요. 교사로서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오 선생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나영희를 노려봤다. 그러나 나영희도 나름대로 짬이 있는지, 그런 오 선생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하하하, 그것도 다 제가 하도 뛰어나니까 시샘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건 익숙합니다.”

“익숙?”

나영희가 콧방귀를 날리고는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래요. 익숙하시겠죠.”

아니, 진짜 익숙한데.

회귀하기 전에 당했던 정치질만 이거의 몇 배는 되었었다.

“자, 자, 처음부터 신경전 벌이시는 건 좋은데, 이번 논술 특강은 선생님들끼리 경쟁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다과세트를 들고 들어온 서윤수 교수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띠고서 강의실로 들어왔다.

“아직 시간은 조금 남아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근처 숙소로 먼저 이동하시겠습니까?”

서 교수의 제안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안내해드려.”

“네, 교수님.”

꾸벅 인사를 한 조교들이 우리를 승합차로 안내했다. 태연하게 차에 오르는 나를 향해 오 선생이 걱정스럽다며 물었다.

“강 선생, 진짜 괜찮은가?”

“네, 괜찮습니다.”

“선배님, 그래도 뭔가 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홍 선생도 걱정이 되었는지 차에 오르자마자 나에게 말했다. 박 선생과 차 선생도 얼굴에 근심을 가득 띄우고 있었다.

“오답노트가 있어서 괜찮습니다.”

“오답노트요?”

박 선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핸드폰이 우웅 진동을 울렸다. 핸드폰을 들어서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통화버튼을 꾹 눌렀다.

“네, 선배.”

[진짜 왔어. 어떻게 할까?]

선배의 말을 들은 나는 양쪽 입꼬리를 한껏 위로 올렸다.

“오답노트에 적어 둔 정답으로 가야죠. 참, 학생들도 데리고 가는 거 잊지 마시고요.”

내 말에 핸드폰 너머에서 선배가 숨을 꼴딱 삼켰다.

[나 너만 믿고 한다 그럼?]

전화를 끊은 나를 향해 다른 교사들이 몰려왔다. 그들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내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입을 떡 벌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강명문과 전화를 끊은 심지석은 숨을 들이쉬었다. 교문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이십 여 명 남짓한 학부모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후….”

마음을 다잡은 그는 결심이라도 한 듯 주먹을 꽉 쥐고 교문 앞으로 걸어갔다. 옆에는 미리 이야기를 해둔 2학년 문경필과 심우현, 3학년 오민주가 있었다.

“이야기는 들었지?”

“네, 들었습니다!”

경필의 힘찬 답변과 함께 우현도 말했다.

“담임쌤께도 방금 연락왔어요. 이거 잘 대처해야 한다고.”

“저도 오늘 아침에 받았어요. 그런데 진짜 다 맞추시니까 신기하시네요.”

민주의 중얼거림에 심지석은 그저 짧게 웃을 뿐이었다.

“그럼 가자.”

““네!!””

네 사람은 어느새 교문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앞까지 다가갔다. 그곳에는 벌써 몇 몇의 취재진들이 와 있었고, 어떤 학부모는 인터뷰도 하고 있었다.

“심 선생님!”

그중에는 신미나 기자도 있었다.

“선생님이라고?”

신미나가 심지석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학부모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의 시선을 동시에 받자 심지석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면 어떡하지?’

만약 강명문이 알려 준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강명문도 이번 만큼은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물론, 그런 것치고는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눈앞의 시위대를 본 심지석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평생 이런 일을 본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그때 민주가 심지석의 팔을 당겼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을 밝게 빛내는 제자를 본 심지석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고맙다.”

그리고는 한 학부모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강문고 선생님이시네. 이것 보세요! 학생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으세요?”

“맞아! 잘못했으면 우리 애가 사고에 휘말릴 뻔했잖아요!”

학부모들이 일제히 피켓을 들면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심지석은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던 멘트 하나만을 떠올렸다.

‘명문이가 알려 준 그 말만 제대로 하자.’

속으로 여러 번 다짐을 한 그는 어렵게 입을 뗐다.

“…님 아니십니까?”

“뭐라고요?”

“3학년 2반, 차은수 학생의 어머님 아니십니까?”

그 말을 정면으로 받은 아주머니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가 풀어졌다.

“그, 그래요. 제가 맞습니다.”

“어?”

심지석은 심히 당황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옆에 서 있던 경필과 신미나 기자가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반면 민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쌤, 왜 그러세요?”

“선생님?”

“차은수…? 누구예요?”

“어? 아냐, 아닙니다, 그게… 음….”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제가 3학년 2반 담임인데 차은수라는 학생은 없습니다.”

“!!”

방금 전 답변을 했던 학부모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아주머니들… 강문고 학부모 아니시죠?”

심지석과 학부모들의 표정이 엇갈렸다. 그리고, 학부모의 얼굴을 향해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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