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00화 (199/252)
  • 200화. 준비는 됐나?

    상황은 이랬다.

    오 선생에게는 일부러 강당 앞쪽에서 대기하게끔 이야기했다.

    우리는 최소한의 안전사고를 피하기 위해, 학부모들에게 자리에 앉아서 대기하라고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만약 사고로 위장한 무언가가 나타난다면, 약간의 선동이나 군중심리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제일 앞에서 군중이 혹할 만한 내용으로 소란을 피우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오 선생에게 앞에서 대기하게끔 했고, 유사시에는 도망가지 못하게 제압할 수 있도록 했다.

    경필이의 아버지인 문경철에게는 홍 선생 강연 도중 구석에서 짧게 요청을 했었다.

    -지금부터 커튼 뒤쪽에서 잠복수사를 부탁드립니다.

    -잠복수사요?

    -네.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요. 뒤에서 무언가 공작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경철은 내가 강문고에서 일어난 사건들 때문에 최대한 많은 일들을 조심하고자 한다고 생각했다.

    -강 선생님처럼 안전의식이 뛰어나신 분이 학교 선생님이시니 참 든든합니다! 게다가 잠복수사라니! 현역 때 이후로 오래간만이군요 하하하!

    그는 입가에 미소가 만연한 채 무대 뒤로 사라졌었다.

    어쩐지 신나 보이는 건 착각이었겠지?

    아무튼, 그 결과 지금의 상황이었다.

    문경철이 잠복하고 있는데 수상한 2인조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스탭인가? 싶었는데 교복도 입고 있지 않았고, 교사처럼 보이지도 않아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 진짜 붙입니까?

    -잠시만요… 음… 소화기 챙겼죠?

    -강당에 있는 거 쓰면 되지 않을까요?

    -아 저거를… 일단 꺼내 봐요. 하… 미치겠네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두 사람 중 한 명은 임대원 성적처리연구부장이었다. 그의 옆에는 강문고에서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임대원의 말을 듣더니 품에서 작은 페트병과 라이터를 꺼냈다. 두 사람은 라이터와 페트병을 번갈아보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문경철이 둘에게 달려들었다.

    김영호와 이야기를 마친 내가 뒤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문경철이 두 사람을 제압한 시점이었다.

    “다행히 서장님이 계셨으니 망정이었죠.”

    비록 예비에 그치기는 했다지만, 위험한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게다가 방화를 계획한 인원 중에는 임대원 부장도 끼어 있었다.

    “강 선생님.”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강세혁 검사가 앞으로 나왔다.

    “저를 오늘 초대하신 이유가 이거 때문이시군요.”

    “맞습니다. 뭔가 벌어질 것 같았습니다.”

    강세혁 검사가 머리를 쓸어넘기면서 한숨을 쉬었다.

    “정확히 어떤 경위였는지는 차차 알아보면 되겠죠. 싹 다 데려가세요.”

    “네!!”

    학생들이 112에 신고를 해서인지 이미 강당 내부에는 경찰들이 도착해 있었다.

    “어?”

    그중 경필이 아버지를 알아본 한 경찰이 입을 떡 벌리고는 손을 이마 옆으로 가져갔다.

    “충성!!”

    “응? 아, 오랜만이야.”

    문경철이 히죽 웃으며 경례에 답했다.

    “경필이 아버지도 경찰이시지?”

    옆에서 다가 온 지석 선배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서경찰서장이십니다.”

    “수, 수서경찰서!?”

    옆에서 듣고 있던 윤 선생, 차 선생도 몰랐다면서 입을 틀어막았다.

    “으윽….”

    짧게 신음소리를 낸 임대원 부장을 보면서 김 부장이 소리쳤다.

    “자, 자네!! 지금 이게 뭐 하는 건가!!”

    갑작스런 호통에 어떡하냐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학생, 학부모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하, 학교 행사에서! 어,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는, 오는 날에!”

    김 부장의 시선을 바라보던 임 부장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다 부장선생님이 시키셨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이제는 생사람 잡고 있네! 겨, 경찰분들! 빨리 이 사람 데리고 가세요! 뭐 하고 계시는….”

    “김영호 선생.”

    소리를 지르는 김 부장을 향해 강 검사가 다가갔다.

    “십억이 생기면 어디에 쓰실 겁니까?”

    “!!”

    김 부장의 낯빛이 잔뜩 어두워졌다.

    “잘 들어. 오늘이 아니면 기회는 없어. 알아들어? 이번에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야 한다고. 빨리 섭외해서 데리고 와.”

    강 검사의 말을 들은 김 부장의 눈동자가 파들파들 떨려왔다.

    “아까 강당 밖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아, 아니, 아닙니다, 저, 저는… 그, 그래요! 증, 증거! 증거 있습니까? 증거도 없으면서 사람을 범죄자로….”

    김 부장의 말에 강 검사가 씨익 웃었다.

    “증거라면 있습니다.”

    그의 말에 맞춰 2층에서 촬영중이던 학생들이 내려왔다.

    민주, 태웅이, 은솔이, 용희였다.

    “그… 저희가 이번 행사를 영상으로 남기기로 해가지고….”

    “왔다갔다 하면서도 찍었거든요….”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내민 태웅이와 은솔이였다. 강 검사는 둘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강 검사는 카메라를 조작해서 방금 촬영한 영상을 확인했다.

    [예! 지금 도착해서 작전 들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괜찮을 겁니다.]

    “아, 아니야!”

    영상의 소리를 들은 김영호 부장이 손을 휘젓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앞에도 하나 더 있습니다.”

    강 검사가 카메라를 조작하자 그보다 더 앞선 영상이 나왔다.

    방금 전 다리를 다쳤다며 소란을 피운 남성과 김 부장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저, 저거….”

    “봉투 아냐?”

    영상을 가까이서 보고 있던 홍 선생과 윤 선생이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현장범으로 체포하기에는 충분하겠습니다. 체포하세요.”

    “네!”

    그러자 김 부장이 경찰의 손을 팍, 치면서 소리쳤다.

    “당신이 뭔데 경찰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강 검사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검찰 출입증을 꺼내 김영호의 눈앞에 들이밀 뿐이었다.

    “아….”

    “데려가세요.”

    어지럽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배경으로 삼고, 김영호 부장과 임대원 부장, 그리고 사로를 치려던 남성 둘이 그대로 체포되었다.

    “그러게 말했지 않습니까.”

    내 말에 김 부장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끝나면 시간 비워 두시라고 했죠? 저희랑 상담시간 필요하실 거라고.”

    그 말에 김 부장이 얼굴이 한껏 더 찌푸려졌다.

    “그런데 그 상담시간도 부장님이 발로 차 버리셨군요. 안타까워라~”

    어깨를 으쓱하며 지나가는 나를 향해 김 부장과 임 부장이 동시에 소리쳤다.

    ““강명문 이 개새끼야!!!!!!””

    귓구멍을 손가락으로 후비면서 그들이 체포되는 길을 지켜봤다.

    그리고 다시 소란스러운 강당 안쪽으로 들어갔다.

    방금 도착했는지 신 기자가 경필이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오 선생은 이사장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고, 다른 교사들은 지금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교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그 와중에 경필이는 학생회 녀석들과 지석 선배, 윤 선생과 함께 강당을 정리하면서 학부모들을 빈 교실로 안내했다.

    아무래도 빈 교실에서 상담을 진행할 생각인 것 같았다.

    “자식이, 지금 상황에서 교통정리도 할 줄 알고. 기특하네.”

    “제 아들이 공부는 잘 못하지만 저런 건 참 타고났습니다, 하하하!”

    어느새 다가왔는지 경필이 아버지가 말했다.

    “정말 강 선생님이 아니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짧게 인사를 한 경필이 아버지는 짐을 챙겼다.

    “아무래도 오늘 선생님과 상담을 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인어공주 선생님과도 말씀을 많이 나누고 싶었는데….”

    “그 별명은 제발 그만….”

    옆에서 듣고 있던 홍 선생이 얼굴을 한 손으로 감쌌다.

    “하하하! 아무튼, 또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까지 학교 그만 두시면 안 됩니다 두분?”

    경필이 아버지는 그렇게 농담을 던지면서 강당을 바깥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우리도 들어가 볼….”

    “아니, 잠시만요! 이렇게 저를 두고 가신다고요? 인터뷰 하셔야죠!”

    신 기자가 부리나케 달려와서 나에게 녹음기를 들이밀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상세하게 말씀 좀 부탁드릴게요!”

    “방금 경찰분들한테 다 들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래도요! 학교 선생님들의 활약이 들어가 있으니까 그렇죠!”

    “그리고 이렇게 막 들이대도 되는 겁니까?”

    “에이, 우리 사이에!”

    “아는 사이니까 더 조심해야죠.”

    “선생니이이이임~”

    신 기자의 말도 안 되는 귀여운 척을 들으면서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치, 너무해 정말.”

    “공식 입장 발표가 있을 겁니다. 그거 있기 전까지는 오늘 취재하신 내용으로만 부탁드립니다.”

    한숨을 푹 쉬는 신 기자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저 멀리서 이사장의 차량이 도착하는 걸 확인하면서 다음 스텝을 고민했다.

    * * *

    소동이 정리되고, 이어진 상담까지도 문제없이 마무리되었다.

    다행히 빈 교실은 많았고, 우리는 각자 교실을 하나씩 잡아서 상담을 진행했다.

    이사장은 특강 시간에 있었던 사고를 전달받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대체 어디까지 썩어 있는 겁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비리척결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벌어지는 이런 행태들에 분노한 것이었다.

    “이사진이 자리 잡고 있던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남아 있겠죠.”

    나는 태연하게 말하면서 핸드폰으로 기사를 확인했다.

    <특강 시간에 난입한 괴한! 알고 보니 학년 부장의 음모!?>

    신 기자의 기사 이외에도 강문고의 부정부패를 지적하는 기사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강 선생님, 빨리 이사진을 밀어내야 할 거 같아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이사장이 한숨을 쉬면서 의자에 앉았다.

    “그러면 언제쯤 그때가 될까요?”

    “논술 특강을 다녀오는 시점. 그때가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더 당겨질 수도 있었다.

    “일단은, 순수하게 이번 승리를 기뻐하시죠.”

    “알겠어요. 그리고….”

    무언가 말하려던 이사장은 고개를 살짝 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인사를 마친 나는 이사장실을 나와 약속된 삼겹살 가게로 향했다.

    그날 밤, 우리는 특강을 잘 마쳤다는 기분과 함께 현장범들을 붙잡았다는 승리감에 고취된 상태로 회식을 했다.

    지석 선배, 박 선생, 오 선생, 차 선생, 홍 선생, 윤 선생. 이번 특강의 주역이었던 이들을 향해 건배를 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들이 있어서 정말이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술을 털어 넣었다.

    * * *

    강문고 비교과 특강 사건이 있고 바로 다음 날, 김영호와 임대원이 해임되었다. 이사장의 빠른 결단 덕분이었다.

    그리고 강세혁 검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자신들은 이사진에게 조종을 당했다고만 하더군요.]

    역시나.

    “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스는… 잘 가지고 계십니까?]

    나는 강 검사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뽑기 상자여서 꽝인지 당첨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강 검사가 핸드폰 너머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든 생기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짐과 동시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강문고 사건은 계속해서 회자되었다. 진범은 따로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여러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올랑 말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사이, 학교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 대회>도 열렸다.

    [수상자는 2학년 1반 문경필!]

    자신의 선행을 뻔뻔하게 자랑하는 시간인 이 대회에서, 최우수상은 경필이가 차지했다.

    -자신감 갖고 철판 깔아. 그럴 자격 생겼다.

    내 조언에 따라 정말이지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자기자랑을 해댄 덕분이었다.

    또한, 경필이의 지금까지의 성과를 모두가 인정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좋아,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는 한목대 모의논술 특강을 준비했다. 당장 오늘 출발이었기 때문이었다.

    “준비되셨죠?”

    내 앞에 모여 있는 교사들을 보면서 물었다.

    “그래.”

    “짐도 다 챙겼고.”

    “준비도 많이 했어요.”

    “저, 그림 논술 문제 뭔지 다 찾아봤어요!”

    오 선생, 박 선생, 차 선생, 홍 선생이 한 마디씩 던졌다.

    “난 이따 갈게. 늦어져서 미안.”

    “잘 하고 와. 여기서 응원할 테니까.”

    교내 일정 때문에 늦게 합류하는 윤 선생이 미안하다며 음료수 세트를 건넸다. 지석 선배도 아쉽다는 말과 함께 격려를 해주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럼 이따 봐. 늦게 갔다고 나 따돌리면 안 된다?”

    윤 선생의 농담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사장이 준비해 둔 승합차에 올라탔다.

    “갈까요?”

    이사장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운전기사가 부드럽게 액셀을 밟았다.

    * * *

    강명문이 교사들, 이사장과 함께 한목대로 출발한 시각, 신미나 기자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말이 돼?”

    다급해진 그녀의 손가락이 마우스를 연신 클릭하고 휠을 돌렸다.

    “뭐야 이게….”

    신미나는 핸드폰을 들어서 강명문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안 받는 거야 진짜!”

    응답 없는 핸드폰을 자리 한켠으로 던져 버리고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강문고 특강의 방화가!? 알고 보니 교사들의 안전의식 미흡 때문?>

    <안전사고에 취약했던 학교 현장! 강문고가 그 첫 사고 사례가 되다!>

    <유명세에 올라탄 기습 특강, 결국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했나.>

    얼마 전에 벌어졌던 특강을 두고, 새로운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사들을, 자신의 서재에서 담배를 피우던 곽형조가 끌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나락으로 떨어질 준비는 됐나?”

    손에 쥐고 있는 담배의 담뱃재를 툭툭 털면서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실수한 거야 자네.”

    그날, 강문고는 또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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