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비교과 관리의 모든 것 (3)
카페에 앉아 천우원은 앞에 앉은 인물들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이게 뭐죠?”
강은숙 이사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증거들.”
그 말에 이사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GF파일인가요?”
“GF파일에 모든 게 들어 있다고 생각하나?”
천우원이 비릿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은숙이 자네한테만 오픈하는 거야.”
“왜 저한테만?”
이사장의 물음에 천우원이 천천히 말했다.
“지쳤어.”
천우원은 지난번, 조신자와 한무회를 만나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두 사람의 말대로, 한명심과 류지훈의 사건 이후 곽형조는 천우원에게 문자 한 통 보내지 않았다.
[당분간 근신해.]
이 문자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렇다면, 근신하는 동안 곽형조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 부분이 문제였다.
적어도 천우원이 알고 있는 곽형조는 배신자라 인식된 사람을 가만 놔두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천우원은 고민했다.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은, 지금 만나는 인물과의 거래에 달려 있었다.
“흠….”
강은숙 이사장은 천우원이 건넨 종이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러다 조금은 놀란 듯 천우원을 바라봤다.
“이런 내용은 처음 보지?”
천우원이 흐흐 웃으면서 물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천우원이 건넨 종이에는 비공식적인 부정부패 내역들이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GF파일은 어디까지나 우리 아래 사람들을 조종하기 위해 만든 파일이야. 그러니 실제 윗선을 잡을 만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지.”
“….”
“그 내용,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들이야. 형조 형님을 밀어내고 자네 뜻에 맞는 사람들로 이사진을 꾸리려면 그 파일이 필요….”
“그렇군요.”
이사장은 천우원의 말을 끊고 살짝 웃었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종이를 천우원의 방향으로 슬쩍 밀었다.
“자네…!”
“이사님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 종이는 필요없겠네요.”
밀려 들어온 종이에 오른손을 올린 천우원이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이게 있어야 공식적으로 곽형조를 검경에 넘길 수 있….”
“아, 그게….”
이사장은 곤란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저도 있거든요.”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이사장의 반응에 천우원이 입을 벌렸다.
“저도 있다고요. 이 자료들.”
“어, 어디서, 아니, 누구, 누구한테 받았나?”
정말 강은숙 이사장이 이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그럼 지금까지 이사진의 비리를 정리하거나 캐고 다녔던 건 자신뿐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혹시나 이사장에게 자료를 건넨 사람이 곽형조라면?
선수를 잘못 쳐도 단단히 잘못 친 모양새가 되었다.
“서, 설마 곽형….”
“곽 이사님은 아니에요.”
이사장은 앞에 놓인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서 얻었는지는 영업비밀로 할게요.”
언젠가 강명문이 했었던 말을 떠올리면서 강은숙 이사장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잠… 은숙아! 잠깐만!!”
자리를 떠나는 이사장은 천우원의 외침에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역시, 천 이사님도 모으고 있었어.’
이사장은 카페를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나를 믿어야 한다.
며칠 전 만났던 남성은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나한테, 너희에게 없는 파일이 있다.
-파일이요?
-그래. 그 파일이 있어야 곽형조, 천우원을 밀어낼 수 있다.
남성은 강진 할아버지의 의지를 잇기 위해 준비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까지 이사진 내에서 했던 일들을 정리했다.
-그런데 왜 지금 시점에서 이러는 거죠?
-…나는 강진 어르신의 제자니까.
그 말에는 이사장도 놀랐었다.
적어도 할아버지의 뜻을 이으려는 제자가 지금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주현서 이사님….”
그가 건넨 파일의 내용은 천우원이 준 내용보다도 더 많았다. 천우원은 자신이 했던 부정부패 증거들을 보여 주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곽형조의 부정부패 증거들은, 주현서가 보여 준 자료와 내용이 일치했다.
“일단은… 10% 정도는 믿어 볼게요.”
때문에 조금이나마 믿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건에 대해 조만간 강명문과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지금쯤이면….’
가칭 강명문 입시연구소에서 준비한 특강이 끝나갈 시점이었다.
어디까지 진행되었을까 궁금해하던 차에, 전화벨이 울렸다.
“네, 강은숙 이사장….”
[이사장님, 학교십니까?]
다름 아닌 교감 직무대리 오석상 선생이었다.
“아뇨, 오늘 미팅이 있어서요. 무슨 일이죠?”
[학교로 빨리 와 주셔야겠습니다.]
핸드폰 너머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구급차 소리인지 사이렌 소리도 들려왔다.
“알았어요. 빨리 갈게요.”
이사장은 옆에서 다가 온 수행비서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학교로. 바로 가죠.”
* * *
홍 선생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주요 교과 이외의 과목에서 인성 영역을 보여 주자는 내용이었다.
[미술에서는 창의력을, 음악 합창에서 지휘자를 하면 리더십을, 체육에서 축구나 농구를 하면 팀워크를. 예술 교과목 활동에서도 입시에서 중요한 평가요소들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음미체 공부를 소홀히 했던 학생들에게 반성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학부모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미체 수행평가라고 해서 대충 인터넷에 있는 내용을 복사 붙여넣기를 했던 일들을 반성했다.
“지금이라도 좀 해야겠네.”
학생들이 저들끼리 소곤댔다.
[감사합니다!]
홍 선생의 강의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내 강의?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내용들이 입시에서 어떻게 활용이 되냐면….]
나는 첫 번째 연사인 박 선생의 강의부터 네 번째 연사인 홍 선생의 강의까지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설명했다.
“저게 저런 식으로도 쓸 수 있어?”
“와, 대박. 나 작년 체육대회 자소서에 써야겠다.”
“우리 딸도 동아리 활동 좀 하라고 해야겠네요.”
“그러니까요. 면접에서 할 이야기를 만들려면….”
입학사정관제나 교과면접 전형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당연하게도, 1시간이 넘게 이어진 특강이었지만, 청중들은 모두 정신을 또렷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애들 안 지쳤는데?”
“그러게. 저거 봐, 결국 자기가 다 하네.”
지석 선배와 윤 선생이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박 선생과 홍 선생도 예견한 일 아니었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 방금 선생님들께서 알려 주신 꿀팁들 잘 기억하고, 이번 입시, 성공적으로 치르도록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겠습니다!]
내 강의가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이번 특강 시간은, 이제 상담만 남아 있었다.
* * *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이번 강의가 만족스러웠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고는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개인 상담 시간을 갖겠습니다! 희망하시는 학생, 학부모님들은 잠시 기다려 주세요!]
차석기가 마이크를 잡고서 안내방송을 했다. 학생, 학부모들 모두 자리에 앉아서 방금 전까지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강당 내에 변화가 일어난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아, 죄송합니다. 지금 세팅 중이어서 잠깐 대기를….”
“무슨 소리야? 지금 상담받을 수 있다면서. 선착순 아니야?”
갑자기 나타난 중년 남성이 막무가내로 제일 먼저 상담을 받겠다며 단상 앞에 버티고 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학생회 학생들과 다른 교사들이 말렸지만, 남성은 고집을 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선착순이라며! 그럼 당연히 줄을 서야지! 내가 뭐, 못 할 말이라도 했나?”
그런 남성의 말을 들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어… 줄 서야 하는 거 아냐?”
“그러게. 오래 기다리면 한 시간도 걸릴 것 같은데.”
“그렇게나 걸릴까요? 너무 긴데.”
“우리 애도 학원 가야 해요. 그럼 빨리 받는 게 낫지.”
그리고 자리에 앉아 있던 학부모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자, 잠시만요!”
다급해진 학생회 학생들이 양손을 펼쳐서 학부모들을 제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속수무책이었다.
“아, 밀지 마요!”
“누가 밀어요? 어?”
갑작스레 많은 인파가 몰려들면서 서로 몸싸움까지 일어났다.
그 과정들을 강명문은 침착하게 바라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2층을 보니 태웅과 민주가 어딘가를 집중해서 촬영하고 있었다. 카메라 렌즈가 가리키는 시선을 따라 내려가자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오 선생님.”
“아니, 이게… 응? 강 선생, 왜 그러나?”
“앞에서 소란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대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강명문의 표정에서 심각성을 읽었는지 오석상의 얼굴이 한껏 굳어졌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엑스칼리버를 손에 쥐었다.
“알겠네.”
오석상은 단상 옆으로 가서 사람들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믿음직스럽게 바라본 강명문은 익숙한 뒤통수가 보이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돌아갔다.
“예, 예! 지금 도착해서… 그렇습니다. 아,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괜찮을… 네, 걱정 마십쇼. 설령 이게 안 되더라도 한 가지가 더….”
“부장 선생님.”
고개를 최대한 숙여서 목소리를 죽이고 있던 김영호 부장이 고개를 훽 들었다.
“어, 어어어, 강, 강 선생, 어어.”
“누구랑 통화하십니까?”
그때였다. 갑자기 단상 앞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짧은 비명소리가 강당 내부에 울려 퍼졌다.
“내 다리! 내 다리!!! 부러졌잖아!!!!”
강의가 끝나자마자 상담은 선착순이니까 줄을 서겠다며 난리를 피운 남성이었다.
그리고 그 비명소리를 들은 김영호의 입가에 짧은 미소가 번졌다.
‘웃어?’
강명문은 김영호의 미소를 확인하고 그의 앞에 얼굴을 댔다.
“재밌으세요?”
“!?”
깜짝 놀란 김영호가 몸을 살짝 뒤로 옮겼다.
“저거 봐도 재밌으려나 몰라?”
강명문은 위에서 그들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그걸 확인한 김영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무, 무무, 무슨….”
“저 사람도 혼자 쇼하지 말고 꺼지라고 하십쇼.”
서슬 퍼런 눈으로 김영호를 바라보던 강명문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기자님하고 인터뷰라도 하려면 그게 나으실 겁니다.”
그는 핸드폰을 들어서 신미나 기자에게 연락한 내역을 보여 주었다. 김영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그럼 알아들으신 걸로 알겠습니다. 꺼지라고 전달하면, 여기 가만히 대기하세요.”
강명문은 김영호에게 명령하듯 말하고는 강당 뒤편으로 향했다.
그사이, 오석상은 다리를 다친 남성과 마주하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참, 의사나 간호사 학부모님! 잠깐 와주세요!”
오석상은 학부모들 중 의사나 간호사가 있을지 몰라 소리를 쳤다. 마치 당연히 이 자리에 누군가는 있을 거라는 듯한 억양이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남성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런 사람들이 어디 흔하게 있겠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일 없는 아줌마, 아저씨들….’
“잠시만요, 제가 간호사예요!”
“뭐, 뭐라고?”
남성의 얼굴빛이 조금씩 변해 갔다.
“저는 의사입니다! 잠깐 비켜주세요!”
강당에 모인 학부모들 중 보건계열에 종사하고 있는 학부모들이 손을 들면서 달려왔다. 그러자 남성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아, 아니, 그게… 그냥 살짝 삐끗한 거 같기도 하고….”
“아프지 않을 거라 착각하고 놔두면 더 병이 커집니다. 어서 보여 주세요.”
후다닥 달려온 의사 학부모가 다리를 주물렀다.
“…안 다치셨는데?”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성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인파를 헤치고 도망가려고 발을 옮겼다.
그 순간,
터엉!!
남성의 몸이 공중을 날아 바닥에 처박혔다.
“끄악!!”
남성은 짧게 비명을 지르고는 몸을 축 늘어뜨렸다. 오석상이 남성을 붙잡아 엎어치기를 한 것이었다.
“케이블타이!”
그 말을 들은 경필이 후다닥 케이블타이를 들고 달려왔다. 제압한 남성의 손목을 케이블타이로 묶은 오석상이 그를 바닥에 똑바로 앉혔다.
그와 동시에 커튼 뒤쪽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악!!”
“따라와, 이 새끼들아!”
경필의 아버지인 문경철이 양손으로 두 남성의 귀를 잡고 질질 끌고 왔다. 그리고는 귀를 잡은 그 채로 단상 위에 내던졌다.
“커헉!!”
“너희들을 방화 예비범으로 긴급체포한다.”
문경철이 두 사람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서, 서서서, 서, 서장님…? 임, 임부장도?”
말을 더듬는 김영호를 무시하고, 문경철은 미란다 원칙을 이야기했다. 그 옆에서 강명문이 소화기를 든 채 걸어왔다.
“오늘 학부모님들도 같이 오시는 거 알지 않았어요?”
강당 앞으로 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영호는 오석상에게 제압당한 남성과 문경철에게 체포된 남성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강문고에서 몇십 년을 근무하셨는데….”
히죽 웃은 강명문이 눈매를 날카롭게 바꾸면서 말했다.
“오늘 참여하시는 학부모님들 직업 현황도 제대로 파악 안 하시고 사고 계획하셨나?”
“뭐, 뭐? 아, 아니, 나는….”
“이제… 교감 선생님, 교무부장 선생님 뒤를 따라가셔야죠?”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린 강명문의 말에 김영호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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