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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클래스-198화 (197/252)
  • 198화. 비교과 관리의 모든 것 (2)

    윤 선생과 지석 선배의 강의가 끝나자 다시 한 번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두 사람이 진행한 강의의 핵심은 이거였다.

    희망진로, 희망전공에 맞는 대회를 준비하자.

    어설프게 이 대회 저 대회 다 챙기려고 하지 말고 선택과 집중을 하자, 였다.

    특히 이번 강의는 학부모들에게 인상이 많이 남은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 애한테 어울리는 대회부터 알아봐야겠네요.”

    “그러게. 너무 토론만 하지 말고 독서나 창의력 대회도 봐 봐야겠어요.”

    학부모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왔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좋네.’

    이번 특강이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것은 맞지만, 학부모들도 같이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강문고의 특성상 학부모들의 입김이 학생들에게 많이 작용했다.

    항상 부모가 하라는 대로 공부만 했던 학생들. 공부만이 왕도라고 생각했던 학생들.

    그래서 주변의 다른 걸 모두 숨기고 살아가야만 했던 녀석들.

    그런 학생들에게 박 선생이 덕심을 숨기지 말라고 일침을 놓았다.

    숨겨온 덕력을 보여 주는 것이 지금 입시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윤 선생과 지석 선배는 대회를 준비할 때도 희망 전공과 어울리는 대회를 우선적으로 챙기라고 말했다.

    눈에 보여지는 스펙이 많기만 하면 좋다고 생각했던 학부모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성할 수 있었다.

    “대회 수상 실적 많다고 인정해 주는 건 아니니까.”

    실제로도 수상실적이 많으면 평가자들이 좋게 본다고 생각해서 전교권 학생들에게 상을 몰아주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강문고뿐 아니라 많은 학교에서 그렇게 해왔다.

    당연하게도 대학에서는 이런 꼼수를 모두 알고 있었고, 실제 평가할 때도 전공과 관련해서 심도 있게 파고든 대회가 아니면 긍정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수상실적 몰아주기가 반복되자, 결국 미래에는 대회 수상은 1개만 반영하는 걸로 변경, 최종적으로는 아예 대입에서 미반영하게끔 바뀌었었다.

    그렇기에 지금 시점에서 저런 분석을 해낸 것은 제법 의미가 있었다.

    윤 선생과 지석 선배, 두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작년 합격생 사례를 분석했는지가 엿보이는 강의였으니까.

    “수고하셨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내려오는 윤 선생과 지석 선배에게 차 선생이 음료수를 건네며 말했다. 고맙다고 답하면서 음료를 받아든 지석 선배가 이온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푸하! 와, 긴장되서 죽는 줄 알았어.”

    “그래도 심 선생, 잘하던데? 생각보다 안 떨어서 더 놀랐잖아.”

    윤 선생의 말에 지석 선배가 히죽 웃었다.

    “열심히 연습한 보람이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어제도 교직원 화장실 들어가서는 하루종일 인쇄한 PPT만 바라보고 있어가지고….”

    “야! 조용히 안 해!”

    선배가 민망한 듯 내 입을 손으로 막았다.

    “크하하하! 아무튼, 둘 다 고생들 했어. 이제 나랑 차 선생 차례구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껏 기합이 가득 찬 차 선생이 오 선생과 함께 강단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올라가서 다음 강의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강당 뒤편과 위를 번갈아 바라봤다.

    “쌤!”

    그때 옆에서 여학생 한 명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지금 다 찍고 있어요!”

    은솔이가 학교 비품으로 빌린 카메라로 촬영중이라며 좌석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을 보니 민주와 태웅이가 열심히 카메라를 조작하고 있었다.

    “좋아, 잘 했어. 지금 듣고 있는 내용들 전부 기억해야 한다. 알았지?”

    “네!”

    녀석들에게는 이번 특강이 끝나면 특강 내용을 기반으로 숙제를 내줄 생각이었다.

    이런 특강은 단순히 ‘듣고 끝냈다’, 가 아니라 ‘특강을 듣고 진짜 내 진로를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라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과정이 적히면, 녀석들의 진로 탐색 과정이 들어가서 대학에 어필되기도 좋을 터였다.

    <활동을 했다고 끝내지 말자! 학생부는 학생의 역사다!>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 선생과 차 선생이 준비한 강의 자료가 나타났다.

    [커흠, 안녕하십니까. 역사 교사이자 교감 직무대리, 교무부장 직무대리를 겸하고 있는 오석상입니다.]

    고개를 숙이는 오 선생을 향해 이번에는 다소 경직된 박수가 들려왔다.

    학생 녀석들이 평소 오 선생의 이미지를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안녕하십니까, 같은 역사 교사이자 사회를 맡고 있던 차석기입니다!]

    지금은 차 선생이 사회자를 윤 선생에게 넘겨준 상태였다. 차 선생은 윤 선생을 향해 감사 인사를 한 번 하고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많은 학생들, 학부모님들이 명문대학교를 목표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 선생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몇 가지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좌중은 대답하지 않고 오 선생의 말을 기다렸다. 오 선생도 답변을 기대하지는 않았는지, 바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건 바로, 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나타난 PPT화면은, 정말이지 나도 깜짝 놀랄 만한 자료였다.

    “우와….”

    “이게… 뭐야?”

    “어쩜….”

    청중들 사이에서 짧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건, 작년 합격생의 학교생활을 옆에서 지켜본, 제가 작성한 학생만의 역사기술서입니다.]

    오 선생은 작년 합격생의 학생부를 토대로 옆에서 지켜본 내용을, 마치 역사서처럼 편찬된 디자인으로 만들어왔다.

    한 편의 자서전처럼 작성되어 있는 표지와 내용들을 보면서 학생들이 감탄했다.

    “쩐다…. 나도 저렇게 적혀 있나?”

    “야, 저건 권왕쌤이 정리하신 거잖아.”

    “아니, 그래도 좀 부럽다. 나도 저렇게 만들어지면….”

    [지금 잡담을 하고 있는 학생들.]

    오 선생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학생들을 가리키자 녀석들이 흠칫, 몸을 숙였다.

    [잠깐 올라와 봐라.]

    그 말에 학생들의 표정이 지옥에라도 오라고 호령받은 것처럼 사색이 되었다.

    [혼내시려는 거 아니니까 올라와요, 얼른.]

    그런 분위기를 감지한 차 선생이 급하게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두 남학생이 쭈뼛거리며 단상 위로 올라왔다.

    [학년, 반, 이름.]

    짧고 굵은 오 선생의 말에 학생들이 쩌렁쩌렁 강당이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2, 2학년 5반! 유지용입니다!”

    “가, 같은 반! 한보석입니다!”

    녀석들은 여전히 잔뜩 긴장한 채 다리를 벌벌 떨고 있었다.

    [긴장들 풀고. 자네들은 관심분야가 뭔가?]

    오 선생의 질문에 유지용 학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관심분야가 없습니다!!”

    그 말에 좌중이 빵 터졌다.

    “으하하하! 야!!! 거기서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미쳤나 봐!! 깔깔!”

    그렇게 신나게 웃는 청중들 사이에서 딱 한 명, 머리를 숙이고 얼굴을 손으로 감싼 학부모가 보였다. 아마 지용이 어머니인 것 같았다.

    [좋아. 관심분야가 없다면, 없는 거지. 한보석, 자네는?]

    “저, 저, 저는! 역, 역사교사가 꿈입니다!”

    보석이의 말에도 청중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야 이 미친놈아! 역사쌤들 있다고 그렇게 뻥을 치냐!!”

    “거짓말하지 마라! 우우!!”

    장난 섞인 야유까지 듣던 보석이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나 진짜 역사 좋아한다고!”

    입술을 삐죽 내민 보석이를 보면서 오 선생이 말했다.

    [그러면 두 학생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번 정리를 해 볼까요? 차석기 선생님.]

    “네!”

    차 선생은 두 학생의 이야기를 토대로 미리 준비해둔 디자인 폼에 스토리를 정리했다.

    <진로가 없었지만, 비교과 특강을 듣고 자극 받아 진로탐색을 열심히 하게 되었다. 유지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한보석은 역사교사가 되고 싶다는 사실을 2학년 1학기 내내 숨겨 왔다. 지금까지 숨겨 왔던 이유는, 알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스토리가 담긴 도서 디자인이 완성되자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방금 자네들이 이야기한, 쩌는 자서전의 일부라네.]

    오 선생이 끌끌 웃으면서 두 남학생에게 말했다.

    [도와줘서 고맙다. 이 자료는 오늘 강의가 끝나면 파일을 줄 테니까 기념으로 삼도록 해.]

    그리고 오 선생은 엑스칼리버로 유지용 학생과 한보석 학생에게 자리로 돌아가라며 빈 자리를 가리켰다.

    “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다시 자리에 들어간 학생들은 혹시나 오 선생이 파일로 주는 걸 잊을까 싶어 자서전처럼 디자인된 본인들의 스토리 이미지를 열심히 촬영했다.

    [학교생활기록부는 학생들의 역사가 기술된 자료입니다. 그리고 대학은 이 자료를 토대로 학생들을 평가합니다.]

    오 선생의 말에 이어서 차 선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를 모릅니다.]

    [방금 이 위로 올라온 학생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과연, 지금 같은 자리가 아니었다면, 내가 아직 진로고민을 하고 있는 건지, 역사교사를 꿈꾸고 있는 건지, 교사들이 알 턱이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은 명백했다.

    [결국 이 학생부라고 하는, 학생만의 역사기술서는 선생님이 학생을 관찰한 내용을 작성하는 겁니다.]

    오 선생은 잠시 말을 멈추고 방금 단상 위로 올라왔었던 두 학생을 바라봤다.

    [만약 지금 학생들처럼, 각자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기술되기를 바란다면, 선생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언제든 열려 있습니다! 옆에 계신 오석상 선생님께서는 강문고 오대천…, 아니 침묵의….]

    [차 선생.]

    차 선생이 말을 더듬거리자 오 선생이 주의를 줬다. 그러자 청중들 사이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흠, 죄송합니다. 아무튼, 여기 계신 강문고 선생님들 모두, 학생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 특강이 끝나면 짧게나마 상담시간을 가질 겁니다. 그때,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알려 주십시오. 그럼 그 내용이 여러분만의 역사기술서로 옮겨질 겁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비교과 영역을 기재하는 사람은 학교 교사들이다. 그러나 교사도 사람이 이상, 학생들의 모든 사항을 파악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지금 오 선생과 차 선생은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너희들의 역사를 들려줘라. 그러면, 우리가 그걸 최선을 다해 기술해 주겠다.

    그리고 그게 각자의 역사를 담은 하나의 입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투박한 면은 없지 않아 있었지만.’

    자서전 디자인으로 역사서를 표현하고, 학생들의 3년 동안의 기록을 역사로 비유한 점이 돋보이는 강의였다.

    [감사합니다!]

    강의를 마치고 두 사람이 내려왔다.

    “끝내줬습니다!”

    놀랍게도 그 말을 한 건 우리가 아니라 차 선생이었다.

    “정말이지, 오 선생님 말씀하실 때 소름이 계속 돋았습니다!”

    단상에서 내려온 그는 오 선생을 끊임없이 칭찬했다. 오 선생은 그 말을 들으면서 한 치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자, 자. 이제 다음 타자, 준비해야지?”

    지석 선배가 자기 차례가 끝나서인지 한결 여유로운 표정을 하며 말했다. 그와 대조되는 얼굴의 홍 선생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나에게 다가왔다.

    “서, 서서, 선배님, 저, 저저, 제가 발표, 하는 거, 드, 드, 들으실….”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홍 선생을 향해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라고, 저는 잠시 나가 있겠습니다.”

    “네!?”

    그러자 홍 선생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왜 그러시죠?”

    “아니 그게… 그래도 귀여운 후배가 발표하는데 좀 들어주시면….”

    “긴장되시는 거 아니었나요?”

    그렇게 말하는 내 옆에서 박 선생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어휴, 됐어요. 홍 선생님, 긴장하지 말고 잘하고 와요. 분위기 좋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박 선생의 말에 홍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참나….”

    딴에는 생각해 준다고 그랬구만.

    ‘아무튼, 그건 그거고….’

    나는 슬그머니 대기자리에서 벗어나 강당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천천히, 비밀스럽게 강당 뒤쪽으로 몸을 딱 붙이고 움직였다.

    [미술 교사 홍유진입니다!]

    인어공주쌤이 나타났다면서 환호성을 지르는 청중들 덕분에 나름 비밀스럽게 이동할 수 있었다.

    ‘김영호 부장이랑… 임대원 부장도 있네?’

    그리고 이동하면서 두 사람을 확인했다. 무언가 불안한 듯 두 사람은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강당 뒤쪽에 설치되어 있는 콘센트쪽으로 누군가가 다가갔다. 정면 강의에서 사용되는 빔프로젝터 전원이 연결되어 있는 자리였다.

    전선 가까이 다가가던 남성이 다리에 걸리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갑자기 나타난 굵은 손이 전선 가까이 가던 남성을 훽 낚아챘다.

    “어, 어?”

    그 기세에 놀란 남성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는 기분이 상했다는 듯 말했다.

    “… 당신 뭐야!”

    “저기 걸려서 넘어지실 뻔했습니다.”

    손이 굵은 남자가 바닥의 전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손목을 감싸고는 쳇, 소리를 내며 자리를 피했다.

    ‘쳇?’

    또 이상한 짓거리를 꾸미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은 저 남성이 도와준 덕분에 큰일이 벌어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남성이 눈을 꿈뻑이더니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강명문 선생님이시군요! 아들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방금 전 수상한 남자를 붙잡았던 굵은 손이 나를 향해 뻗어 왔다.

    “경필이 아빠, 문경철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분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인데?’

    나는 예상 외의 인물이 등장한 사실에 조금 놀라워하면서 굳은 살이 잔뜩 새겨져 있는 손을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경필이 아버님.”

    기왕 왔다면, 그의 도움도 받으면 좋겠지.

    “잠시 괜찮으실까요?”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강당 뒤쪽의 빈 공간을 가리켰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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