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비교과 관리의 모든 것 (1)
[앞으로 약 5분 후에 특강이 시작됩니다. 자리에 앉으셔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사회를 맡은 차 선생의 말을 시작으로 강문고 교사 특강이 시작되었다.
총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강당에 가득 들어왔다.
그렇기에 학생회 학생들과 이들을 돕는 경필이네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부족한 의자를 가지고 왔고, 좌우 사이드까지도 빼곡하게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첫 번째 연사인 박 선생은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긴장되나?”
박 선생의 옆에서 최종적으로 발표 PPT를 점검하던 오 선생이 말했다. 박 선생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거든요.”
“사실 나도 그래.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옆에서 지석 선배가 괜찮을지 걱정된다며 중얼거렸다. 보니까 잠시 안내를 마치고 내려온 차 선생도, 뚫어져라 인쇄해 둔 자료를 공부하는 홍 선생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긴장을 하지 않은 사람은 나, 오 선생, 윤 선생 정도였다.
“윤 선생님은 괜찮으십니까?”
내 물음에 윤 선생이 미소를 지었다.
“다리 떨리는거 안 보여?”
다시 보니까 윤 선생의 다리가 살살 떨리고 있었다.
‘큰일이네.’
아무래도 나와 오 선생을 제외하면 모두 긴장을 생각 이상으로 하고 있는 듯했다.
“걱정 마시고, 선생님들 편하신 대로 이야기해 주시면 돼요.”
“이사장님!”
긴장한 채 손을 덜덜 떨고 있던 홍 선생의 뒤로 이사장이 나타났다. 그녀는 우리에게 음료수를 하나씩 건네면서 천천히 말했다.
“선생님들은 선생님들만의 장점이 있으니까요. 학부모님들이 신청하실 때 학교로 연락을 많이 주신 것도 알고 계세요?”
“학교로 전화를요?”
박 선생의 물음에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문고에서 사건사고가 많았는데, 그 와중에도 학생들 챙기려고 노력해 주셔서 너무 고맙다고, 전학 고민 중이었는데 안 그래도 될 것 같다고.”
“거기에 더해서 이 선생님들이 있으면 믿고 따라갈 수 있을 거다, 라는 말씀까지 있었죠.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이사장에게 물었다. 이사장이 맞다면서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를 바라봤다.
“강 선생님 말씀처럼, 그런 학부모님들의 반응이 많았어요. 이번 기획 준비하신 선생님들 모두가 강문고에 있어서는 상징적인 존재가 된 거예요.”
그렇게 말하던 이사장은 나와 홍 선생을 보며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었다.
“물론, 공교육의 희망과 수학여행의 인어공주가 있으니까 더 그랬겠지만요 호호호.”
“하… 제발 그 별명은 그만하십시오.”
“저도… 창피해서 미칠 거 같아요 이사장님….”
나와 홍 선생의 불만 섞인 말에도 이사장은 그 말을 취소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그 말 덕분에 교사들의 긴장이 풀리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 경직되어 있었던 사람들 모두가 키득거리면서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시작합니다. 다들 최선을 다해 주세요.”
내 말을 시작으로 차 선생이 강당 위의 발표대 앞으로 가서 마이크를 집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번 특강 사회를 맡은 역사 교사, 차석기입니다! 반갑습니다!]
차 선생의 말에 학생들이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역사쌤!!!!!”
“석기시대쌤!!!”
[방금 석기시대 누구야!]
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별명이 학생들 사이에서 울려 퍼지자 차 선생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하지만 기분 나빠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 상황을 즐겁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였다.
[크흠, 죄송합니다. 제가 제 별명에 조금 민감하다 보니….]
차 선생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 좌중 사이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잘 하는데?’
생각보다 차 선생은 무대체질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튼, 오늘 목차는 앞에서 나눠드린 자료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참고해 주세요!]
차 선생의 말처럼 강당으로 들어오는 학생, 학부모들에게 미리 준비했던 자료들을 나눠 주었다.
2학년 학생회 녀석들과 경필이, 동규, 민정이, 우현이가 맡은 일이기도 했다.
녀석들은 강당 제일 뒤에서 손을 흔들면서 모든 자료를 나눠 주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녀석들 학생부 내용이 풍부해지겠다고 생각하는데, 차 선생이 마이크에 대고 크게 외쳤다.
[그럼 이제부터!! 강문고 ‘스마트한 비교과 관리의 모든 것!’ 특강을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연사인 박 선생이 차 선생의 신호에 맞춰 단상 위로 걸어 올라왔다. 그리고 차 선생과 교대를 하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강문고 영어교사 박은환입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박수소리가 한 번 더 강당을 가득 채웠다.
[감사합니다. 제가 준비한 내용은 우선 이겁니다.]
<수많은 동아리활동 지도 경험자가 알려 주는 효과적인 동아리활동 관리법!>
박 선생이 준비한 PPT화면이 강당에 설치된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다소 고루해 보일 수 있는 제목이었다. 학생들은 눈빛이 다소 죽어 버렸지만, 박 선생은 오히려 그걸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를 들었다.
[우선, 이 자리를 빌려서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학생들은 박 선생이 어떤 질문을 하나 집중했다.
[여기에서 내가 덕후인 걸 숨기고 있는 사람?]
그러자 좌중이 난리가 났다.
“쌤!!! 여기 성준이요!!! 얘 맨날 게임, 애니 수집해요!!!”
“아니 내가 왜! 쌤, 저 말고 소희가 그래요 소희가!!!”
“야!!! 나 일코한다 했잖아!!!”
그런 소리들이 좌석을 채운 학생들 사이에서 들려왔다. 자기 자식들 이름이 불렸는지 몇몇 학부모들은 얼굴이 다소 빨개지기까지 했다.
[자, 자, 여러분들 사이에서 덕후가 숨어 있다는 건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박 선생은 PPT화면을 넘겼다. 그 화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모두 덕후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도 덕후입니다.]
박 선생의 말에 학생들이 소곤댔다.
“야, 근데 영어쌤 덕후인 건 다들 알지 않냐?”
“그러게. 저번에는 히어로 영화 피규어 샀다고 자랑하셨잖아.”
“영어쌤 덕후인거 모르는 사람이 있어?”
[자, 조용, 조용!]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었는지 박 선생이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겁니다. 우리는 모두 덕후다. 그러니, 동아리 활동에서 덕심을 숨기지 말자.]
박 선생은 동아리활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숨기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그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설정이나 세계관을 자신의 희망 진로나 전공과 연결해 보면 된다.
영화를 좋아한다? 그럼 좋아하는 영화의 내용에서 희망 진로, 학과 지식을 공부할 수 있는지 보면 된다.
아이돌을 좋아한다? 그럼 엔터테인먼트 관련으로 내가 뻗어나갈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공부하면 된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만난 학생들은 그런 마음을 숨기고 살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방금 살짝 들었는데, 성준이!!!]
그 말에 방금 전까지 떠들썩하게 친구들과 덕후니 어쩌니 하던 성준이가 손을 들었다.
“네 쌤!”
[넌 애니메이션 좋아하잖아? 그리고 가고자 하는 학과는 전기전자공학부고. 그렇지?]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지, 박 선생은 성준이에 대해 꽤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러면 건담이 로봇공학적으로 올바른 설계를 갖고 있는지, 현실에서는 어떤 로봇용 반도체가 개발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괜찮아. 아니면 너, 저번에 ‘어떤 과학의 일렉트릭포’ 좋아한다 했잖아? 거기서 주인공이 사용하는 전자레일건이 물리학적으로 가능한지 분석해 볼 수도 있겠지?]
“야! 성준이 장난 아니네!”
친구들의 놀림에 성준이가 소리를 질렀다.
“나 덕후 아니라고!”
성준이의 반응을 키득거리며 바라보던 박 선생이 다시금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이런 가이드를 해 줄 수 있는 것도 제가 덕후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요즘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이제 청중의 시선은 다시 박 선생에게로 향했다.
[성준이처럼 많은 학생들이 덕심을 숨기고 살거든요. 왜 그럴까요?]
갑자기 이어진 박 선생의 말에 학생들이 침묵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박 선생은 학생들을 한 번 더 훑어보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떤 분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들키면 어떡하지? 부모님이 싫어하시면 어떡하지? 나를 안 좋게 생각하고, 놀리기만 하면 어떡하지? 같은 거죠.]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숨기지 말자.
당당하게 밝혀서, 그걸 내 역량으로 만들자.
그 마음가짐은 입시를 준비하는 첫걸음이 되기도 했다.
“좋네.”
내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중얼거리자 다음 타자인 지석 선배가 말했다.
“그러게. 긴장은 혼자 다 하는 것 같더니만.”
“선배님 진짜 짱 멋져요….”
그리고 그 옆에 앉은 홍 선생이 뭔가 동경한다는 눈빛으로 박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러지.
[작년에 합격했던 학생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숨기지 않았죠. 어떤 학생은 로봇을 좋아했고, 어떤 학생은 방송과 인문학을 좋아했어요. 또 다른 학생은 문학을 좋아했죠.]
박 선생은 숨을 짧게 들이키고는 학부모들이 앉은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저는 동아리활동을 하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자신의 덕심을 숨기지 말자.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당당하게 밝히자.]
화면이 바뀌면서 실제 그렇게 준비했던 학생들의 학생부 사례가 나타났다. 나와 함께 작년에 작성했던 내용들이었다.
동석이와 은장이, 마지막으로 준기의 학생부 내용이었다.
물론, 학생부 자체를 오픈하지는 않고, 기존에 있던 내용을 각색한 버전이기는 했다.
[그렇게 해야만 공부도 잘 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맞춰 비교과도 챙길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많이들 숨기곤 했다.
특히, 그걸로 인해 누군가로부터 놀림을 받거나, 반대 의견을 듣게 되면 더더욱 그랬다.
작년에 동석이와 은장이, 태성이도 마찬가지였다. 태성이의 경우에는 면접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웹사이트의 방향성을 연애와 연관지어 이야기하면서 점수를 얻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좋아하는 분야를 숨길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그걸 당당하게 밝히고 활동을 하면, 친구들이나 부모님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그게 부족했다.
[언제까지 숨덕하고 살 건가! 언제까지 일코만 하고 있을 건가!]
박 선생의 말에 평소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던 학생들이었는지 흠칫 놀라는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이제는 바깥 세상으로 나올 때가 됐습니다. 그 첫 활동을, 자신이 속한 동아리에서 해 보세요. 그게 여러분의 입시 준비에 있어 첫걸음이 되어 줄 거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자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저 오늘부터 숨덕 그만할게요 쌤!!!!”
그렇게 외치는 녀석도 있을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잘하시던데요?”
단상을 내려와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는 박 선생을 향해 말했다.
“후… 어땠어요?”
“네. 평소라면 숨기고 살 덕심을 오픈해라. 학생들에게는 정말 필요한 부분이고, 박 선생님이기 때문에 어필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내가 같은 내용으로 발표를 했다면, 호소력이 덜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성 덕후인 박 선생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덕심을 숨기고 있던 학생들에게 어필이 된 것이었다.
“다행이에요. 첫 주자로 나쁘지 않았죠?”
“그럼요, 선배님! 최고였어요!”
홍 선생이 양손으로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올렸다. 그걸 본 박 선생이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시작이 좋으니까 우리도 긴장 좀 해야겠는걸?”
윤 선생과 지석 선배가 단상 위로 올라가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남은 특강 내용도 걱정할 것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 늦지 않게 왔겠지?’
그리고 특별 초대한 사람을 떠올리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 * *
박은환의 특강이 막 끝났을 무렵, 김영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래. 지금이 아니면… 시발 그걸 따질 때야! 잘못하면 너나 나나….”
강당 바깥에서 목소리를 낮춰 통화를 하던 그는 이내 한숨을 쉬었다.
“잘 들어. 오늘이 아니면 기회는 없어. 알아들어? 이번에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야 한다고. 빨리 섭외해서 데리고 와. 빨리!”
다급하게 말을 이어 가던 김영호는 용건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김영호가 중얼거렸다.
“이번만… 제대로 하면…!”
십억이 든 통장이 내 손에 들어온다. 그 생각에 가득 찬 김영호는 비열한 웃음을 띤 채 다시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김영호 선생, 아주 돈이 눈앞에 아른거리지?”
강세혁 검사가 건물 구석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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