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96화 (195/252)

196화. 2층에서 들어

“앉게.”

삼성동의 한 일식집. 곽형조는 김영호 3학년부장을 만나고 있었다.

“이, 이사님.”

“어허, 앉으라니까.”

잔뜩 긴장한 채 몸을 떨고 있는 김영호를 향해 곽형조가 명령하듯 말했다. 그 말에 못이긴 척, 김영호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요즘 많이 힘들지?”

“예… 예?”

생각지도 못한 부드러운 멘트에 김영호가 살짝 놀라워 했다.

“한명심도, 민지정도, 류지훈도 사라지고. 이제 남은 건 자네와 임대원 정도니까.”

나머지는 영양가 없는 놈들뿐이고.

속내를 숨기고서 곽형조는 김영호에게 말했다.

“요즘 살기 괜찮은가?”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곽형조는 김영호의 눈빛에서 여러 가지를 읽어냈다.

지금 김영호의 눈이 보여 주는 건 다른 게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언제 근무지에서 잘릴지 모르는 공포는 사람들에게 온갖 상상을 하게끔 만들어 주지.”

“….”

“그래서 자네도 많이 불안할 거야. 그렇지 않나?”

곽형조의 말에 김영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하는 것만 잘 해 주면 자네가 잘리더라도 문제없도록 만들어 주겠네.”

“!!”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김영호의 두 눈이 커졌다.

“아니, 설령 감방에 가더라도 몇 년은 먹고 살 만치의 보수금을 주겠네.”

“저, 정말이십니까?”

김영호는 믿기지 않는다면서 곽형조를 바라봤다. 곽형조가 크큭, 비열한 웃음을 날렸다.

“조만간 강명문이 특강을 하나 열더군.”

김영호도 그 특강이 어떤 건지 알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 특강에 참여하는 교사들의 정신을 뒤흔들어 봐.”

그러더니 곽형조는 인쇄해 온 종이를 보여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강명문과 오석상을 제외하면 실력이 검증된 사람은 아무도 없네.”

김영호는 이제 숨을 꼴딱 삼키면서 곽형조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을 털어. 그래서 한 명이라도 이 특강에서 망신을 받으면 돼.”

“설마….”

김영호의 눈빛을 본 곽형조가 이빨을 뿌득 갈았다.

“몇 번이고 지기만 해서는 성이 차지 않지.”

그는 지금까지 강명문에게 당하기만 했던 것이 분했다.

-한명심, 민지정 선생님이 체포되던 날, 이사장실에 강명문 선생님도 같이 있었습니다.

학교 경비실에 심어 둔 심복으로부터 얻은 정보였다.

그날 한명심과 류지훈이 정말 GF파일을 빼돌렸다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강은숙 이사장과 강명문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곽형조는 지금 강명문에게 GF파일의 일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에 그들에게 자료를 건넨 후 체포되었다면?

지금 GF파일의 행방이 묘연한 것도 어느정도 납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납득이 되는 것과 넋놓고 당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러니 그들이 선수를 치기 전에 우리가 선수를 친다.”

곽형조는 미리 준비해 둔 금액이 들어 있는 통장을 김영호에게 보여 주었다.

“제대로만 해내면 이 통장은 자네 거야.”

그가 건네는 통장을 받아든 김영호가 깜짝 놀라며 통장을 떨어뜨렸다.

“시, 십억…!?”

떨어진 통장을 보던 김영호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곽형조는 김영호의 반응을 재미있는 오락거리라도 찾은 듯 낄낄거리며 감상했다.

* * *

그리고 현재. 김영호는 시작부터 꼬였다는 생각을 했다.

‘시발, 이게 아닌데!’

처음 접근은 괜찮았다. 초임교사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응원함과 동시에 약간의 조언을 주려는 선배 교사의 모습을 취했다.

아주 적절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온 멘트에서 김영호는 문제가 터졌음을 직감했다.

‘어디에서 잘못됐지? 어디부터?’

강명문과 친한 사이인데 너무 직접적으로 비판했나? 아니면 여자 교사라고 무시했나?

사회적으로 봤을 때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많은 멘트들을 던졌던 김영호지만, 정작 당사자는 무엇이 잘못인지 알지를 못했다.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김영호는 고민을 이어 가다가 결국 임대원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민지정, 류지훈이 없는 지금, 그와 뜻을 같이 하기 적합한 사람은 임대원뿐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임 부장!”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김영호의 앞에 임대원이 걸어왔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어딘가 축 처진 모습이었다.

“… 왜 그래?”

“그러는 자네야말로 무슨 일이지?”

임대원에게 물어본 말은, 임대원이 아니라 오석상이 대신 답했다. 오석상은 손에 들려 있던 인쇄지 뭉치를 임대원의 손에 올려 주었다.

“헙….”

“주요대학 2012학년도 수시모집요강들이고.”

오석상은 옆에 따로 챙겨 둔 인쇄지 뭉치를 챙겨 쇼핑백에 넣었다. 그리고는 그 쇼핑백도 임대원의 손에 들려 주었다.

“이건 주요대학 2013학년도 전형시행계획 모음이네. 못해도 1회독은 하도록 해. 정독하면서 각 학교별 요강의 특징이 무엇인지 공부해. 교과 성적은 전형별로 어떻게 평가를 하는지, 만약 우리 학교에 평가될 교과수업이 없다면 어떤 수업을 추가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분석하란 말이야.”

오석상의 눈은 사나운 독수리와 같은 눈매를 하고 있었다. 그 눈을 잠깐이나마 바라보던 임대원은 이내 고개를 숙이면서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자네 직함이 뭔가. 성적처리연구부장 아닌가. 그러면 각 대학교에서 희망하는 교과 수업이라던가, 평가 방법 같은 것들을 고민하고, 우리 학교에 다른 수업을 뭘 깔지 고민을 해야지. 지금처럼 그냥 애들 성적 조작해달라고 하면 받아 주고, 수행평가 수정한다 그러면 수정해주고 하면서 세월아네월아 보낼 건가?”

잔소리로 치면 강명문과도 비슷한 레벨의 오석상이었다. 그러나 강명문의 말과 달리 오석상의 말에는 무게가 담겨 있었다.

경력과 지위에서 오는 무게감. 바로 그것 때문에, 임대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오석상의 잔소리를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똑바로 하자고. 알겠나?”

“… 예. 알겠습니다.”

양손 가득 인쇄뭉치를 들고 이동하는 임대원을 보면서 김영호가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자네는 뭐 하나?”

“어? 어, 그, 그렇지. 나, 나는….”

김영호는 임대원이 오석상에게 신나게 털리는 모습을 보고는 망연자실해졌다.

이제부터라도 임대원을 꼬드겨서 곽형조로부터 제안받은 십억을 챙겨야 하는데, 그 일이 꼬여만 갔기 때문이었다.

“어? 부장 선생님 아니십니까?”

그때 김영호의 뒤에서 강명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으악! 깜짝이야!”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십니까. 못 볼 거라도 보셨어요?”

능청스럽게 말하는 강명문을 보면서 김영호는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자네 때문에….”

“그게 왜 저 때문입니까? 부장선생님이 지금까지 헛짓거리만 해서 그런 건데.”

그 말을 들은 김영호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강명문을 향해 한 발짝 걸음을 내딛었다.

“이번 특강, 어딘가에서 톱니가 잘못 맞물리기를 바라고 계시죠?”

그러나 그의 걸음은 이어진 강명문의 말에 의해 그 자리에 멈추게 되었다.

“한번 잘 구상해 보십쇼. 그리고 아마 특강 끝나면 뒷타임 비워 두셔야 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김영호의 질문에 강명문이 천천히 말했다.

“끝나면 저희한테 상의하실 일이 생길 테니까요.”

할 말을 마친 강명문은 오석상에게 준비해둔 자료들을 건넸다. 다음 날 특강에서 배포할 자료들이었다.

학생들이 활동을 관리하기에 용이한 <스마트 비교과 노트>, 공부법을 점검하기 좋은 <강문 스터디플래너>였다.

“선생님도 하나 드릴까요?”

태연하게 <스마트 비교과 노트>를 건네는 강명문의 손을 탁, 치면서 김영호가 말했다.

“필요없어!”

그리고는 교무실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시발…망할!!!!’

속으로 욕을 내뱉던 김영호는 문득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렇게만 할 수 있으면….’

그리고 그렇게 잠깐 생각에 잠겨있는 김영호의 모습을, 강명문은 방금 전과는 달리 매서운 눈빛을 하고서 바라보고 있었다.

* * *

특강 당일인 금요일, 아침부터 강당이 분주했다.

“빨리 세팅하자, 빨리!”

나는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강당에 자리를 세팅하고 있었다.

특강 시간은 오후3시부터였지만, 아침부터 일찍 진행하는 이유가 있었다.

‘신청자가 100명에 학부모 동반까지 하면 200명 가까이 되다니.’

이번 특강의 동반 신청자가 많아짐에 따라 자리 세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아침부터 경필, 동규, 민정, 우현 넷을 불러 초기 세팅을 완료할 예정이었다.

“아니 나도 이거 신청하기는 했는데….”

“우리가 아침부터 이걸 해야 해…?”

“학생회는 뭐 하고 있데?”

차례대로 동규, 민정, 우현이가 중얼거렸다.

“거기! 잡답은 금물이다! 빨리 의자 세팅하고, 수업 들으러 가자!”

내 지휘에 맞춰 녀석들이 하나씩 움직였다. 녀석들은 불만을 조금 품고 있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는 군말 없이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덕분에 아침 조회 시간 직전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고생들 했다. 이따 특강 때도 와서 들어. 졸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넌 진짜 대단하다….”

경필이의 힘찬 대답을 들은 민정이가 신기하다며 경필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번 행사, 동영상으로 꼭 남겨두자.”

지난번 최진원 원장이 설명회를 망친 후 보충 설명회를 했을 때도 영상으로 남긴 바가 있었다. 나는 그걸 생각해서 학생들에게 영상촬영 준비도 해두라고 일렀다.

“학생회 애들도 데리고 와서 하면 좋고. 상담 마칠 때까지 다 찍어둬.”

한 가지 목적이 더 있었지만, 일단 그 이유는 비밀로 하고.

내 말을 들은 경필이가 도수경례를 하고는 친구들과 함께 강당을 나갔다.

‘전체 특강이라.’

이번 <스마트한 비교과 관리의 모든 것!> 특강은 강문고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었다.

바로, 강문고 교사들이 입시적인 관점에서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특강을 여는 최초의 활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물론 정책제안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정책을 제안한 바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나 공부에 대한 것에 불과했다.

작년에 했던 특강들도 전체 특강이라기보다는 자기소개서나 면접을 준비하는 고3 학생들 대상의 한정적인 특강이었고 말이다.

따라서 이번처럼 아예 작정하고 입시를 주제로 삼은 전체 학년 대상 특강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행사였고, 또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고가 발생하기에 적합하기도 했다.

“준비는 많이 하셨습니까?”

나처럼 아침 일찍부터 강당을 보러 온 박 선생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물었다.

“네, 어떻게든 될 것 같아요. 일찍 오셨네요?”

“선생님들이 활약하실 자리인데 당연히 미리미리 세팅해둬야죠.”

박 선생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두고 보세요. 달라진 모습 보여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나를 향해 호언장담을 한 박 선생이 먼저 교실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잠자코 바라보다가 강당 내부를 쭉 훑어보았다.

‘녀석들한테 시켜야겠다.’

머릿속에 떠오른 학생들의 명단을 정리하면서 나도 발걸음을 옮겼다.

* * *

교사들의 전체 특강이 있는 금요일, 오후2시 30분.

수업이 끝나자마자 민주는 노트와 펜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빨리 가자!”

“아, 응. 잠깐만.”

태웅은 민주에게 붙잡힌 채 필기도구를 챙겼다. 옆에서 은솔은 필기도구와 함께 수업시간이라 꺼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

“난 영상 찍어야지.”

은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교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곧 시작한대. 얼른 가자.”

특강에 같이 가려고 3학년 3반을 찾아온 용희였다. 3반 학생 셋은 용희와 함께 특강이 진행될 강당으로 향했다.

“아, 잠깐만.”

열심히 강당으로 걸어가던 중 민주는 핸드폰을 열었다.

“네, 쌤! 저희 지금 강당 가고 있어요!”

그리고 민주는 몇 번 고개를 끄덕이다가, 고개를 갸웃하다가를 반복했다.

“네? 왜요?”

무언가 이야기를 더 들은 민주가 고개를 다시금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뭐야? 왜?”

전화를 끊은 민주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친구들에게 말했다.

“담임쌤인데….”

“쌤이 왜?”

은솔의 물음에 민주가 답변을 살짝 고민하다가 말했다.

“오늘 특강, 강당 2층에서 들으라고 하시는데?”

“2층에서?”

은솔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마, 특강 끝나면 상담 때문에 북적북적해질 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위에서 안전요원 같은 활동 좀 하라고 하셨어.”

민주는 최대한 강명문의 말을 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들의 눈치가 백단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뻥치지 말고.”

“제대로 말해.”

“뭔데?”

용희, 은솔, 태웅이 차례로 되물었다. 민주는 한숨을 푹 쉬더니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를 확인한 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특강 끝나고 상담 진행될 때 잘못하면 그게 있을 수 있대.”

“뭔데?”

“프락치.”

단어의 뜻을 모르는 용희는 그게 뭐야? 라며 중얼거렸다.

반면 그 뜻을 알고 있는 태웅과 은솔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주를 바라볼 뿐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