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95화 (194/252)
  • 195화. 나답게

    어느새 초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5월 말, 세 학생들이 신촌역 인근 카페에 모여 있었다.

    “넌 갈 거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 빨아마시던 정석에게 은장이 물었다.

    “난 이번엔 못 갈 거 같아. 미란이랑 놀러 가기로 한 게 있어서….”

    정석이 아쉽다며 등을 의자에 턱 기댔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동석은 주문한 카페라떼를 가만히 바라봤다.

    “안 마셔?”

    “어? 아니, 마셔야지.”

    약간은 얼이 빠져 있는 듯 보이는 동석에게 정석이 물었다.

    “왜? 담임이 또 뭐 시켰어?”

    “음… 그렇기는 한데….”

    동석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은장은 치즈케이크를 집어 먹으려다 말고 동석에게 말했다.

    “도와줄까?”

    “응? 어차피 너희도 같이 하게 될 거라고 하셨어.”

    그 말에 정석과 은장이 표정을 팍 굳히면서 투덜거렸다.

    “졸업한 지가 언젠데… 언제까지 부려 먹으려고….”

    “스키장 1박 2일로 가지 말자니까 괜히 가서 말이야.”

    차례대로 정석과 은장이 중얼거렸다. 동석은 둘의 푸념을 들으면서도 강명문이 했던 말을 머릿속에서 곱씹었다.

    -거기서 분석해 줘야 할 게 있다.

    어제 담임이 단톡방에서 명천이네 학교인 한목대학교로 놀러 가자고 글을 올린 뒤, 동석에게 전화가 왔었다.

    강명문은 동석에게 엑셀파일 2개를 두고 비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걸 내가 하면 안 돼.

    굉장히 중요한 파일이라고 들었는데, 그 분석 과정에서 강명문이 개입하면 안 된다는 부연설명까지 있었다.

    -쌤이 하시면 안 된다고요?

    -그래. 이번에 너희들을 데리고 가는 이유기도 해. 우리는 논술특강에 집중하고 있을 거니까, 명천이네 학교 투어 하던 너희가 해야 해.

    그래서 동석은 정석과 은장에게도 이 일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장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강명문의 이 말만 없었다면, 이미 알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명문은 그 사실을 숨기라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그걸 자신에게만 이야기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정석이는 잘못하면 유출할 수도 있으니까.’

    친구인 정석의 최대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하면서 동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방금 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 게 심히 의심스러운데.”

    “으, 응? 뭐, 뭐가?”

    “이거 봐. 말 더듬는 거. 속으로 내 욕했지?”

    정석이 장난스럽게 동석의 뒷덜미를 잡고 꿀밤을 먹이는 시늉을 했다.

    “아야야! 알았어! 미안해!”

    “됐고, 이 형님의 꿀밤 맛이나 더 먹어라!”

    “아하하하! 야, 너희들 아직도 고딩 같아!”

    세 사람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카페 내부에 울려 퍼졌다. 정석에게 헤드락과 꿀밤을 당하고 있는 와중에도 동석은 한목대에서 행해질 새로운 일들에 대해 구상하기 바빴다.

    * * *

    한명심과 류지훈이 잘리는 사건과 함께, 오 선생이 교감 직무대리를 맡은 지도 벌써 1주일이 지나갔다.

    “아, 안녕하십니까!”

    “음. 그래, 다들 입시 공부는 하고 있나?”

    오 선생이 교감 직무대리에 들어간 이후 교사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바로, 자발적 입시 공부였다.

    -정시파가 많다고 해서 방심하지 않습니다. 올해 수시 정원을 대폭 늘린 것으로 봐서, 우리 강문고도 수시 대비를 보다 철저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오 선생은 평소 입시 공부는 하지 않고, 적당히 정시로 대학 보내려던 교사들의 해이함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만약, 자신들의 안위에 취해 학생들에게 소홀할 경우, 엄벌에 처하겠습니다.

    한다면 하는 사람인 오 선생의 말이었기 때문일까. 오 선생의 발언 이후로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던 교사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다르기는 하네요.”

    박 선생이 역시는 역시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 이 변화는 오 선생이기에 가능했다.

    다른 인물이 교감 직무대리를 했다면 이 정도까지의 파급력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 선생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학생들로부터 신임도 받는 교사였다. 게다가 경력도 많았다. 강문고에서 오 선생보다 경력 많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교사가 말하는 것이기에 지금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역시, 오 선생님이 교감 직무대리로 딱이었죠.”

    “뭘 그리 쑥덕대고들 있나?”

    엑스칼리버를 손에 쥔 채 성큼성큼 걸어오던 오 선생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들도 입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

    “네, 당연하죠!”

    홍 선생이 가슴을 쫙 펴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좋아좋아. 박 선생은?”

    “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목대도 가야하고, 특강도 첫 번째 타자인데, 열심히 해야죠.”

    박 선생은 최근 여러모로 자극을 받았는지, 입시공부에 열심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지석 선배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네.”

    선배가 중얼거리는 걸 보며 오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은 강문고에서 빠질 수 없는 인원들이 될 거야. 그러니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주게.”

    오 선생은 나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나도 그 웃음에 화답하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일 특강인 건 잊지 않았죠?”

    나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교사들을 향해 말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볼게요. 강 선생님처럼은 하기 어렵겠지만….”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지.”

    오 선생이 박 선생의 말을 중단하며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선에서 최선의 정보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면 되네. 강 선생과 비교할 필요는 없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입시 정보와 분석력이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미래에서 회귀했기에 내가 가진 입시 지식과 정보는 남들의 상상 그 이상이나 다름없었다.

    복수만 아니었으면 사교육으로 흘러가서 떼돈을 벌었을 수도 있는 지식들이었다.

    “걱정되는 건 있어요. 제가 경력이 부족해서 그걸로 태클을 걸기라도 하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보여 주셔야 하는 건 확신이니까요.”

    그 말에 박 선생의 얼굴이 다소 펴졌다.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겠죠?”

    “물론입니다. 박 선생님은 박 선생님만의 장점으로 강의를 해 주시면 됩니다.”

    박 선생이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제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볼게요.”

    박 선생의 말을 시작으로 다른 참가자들도 저마다 파이팅 넘치는 말을 한마디씩 했다. 그걸 들으면서 나는 솔직한 마음을 그들에게 말했다.

    “기대됩니다.”

    진심으로, 이번 특강은 기대가 되었다.

    * * *

    박은환은 홍유진과 함께 교무실을 나서면서 한숨을 쉬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부담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이 직접 이번 특강의 메인 강사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첫 번째 연사로 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담은 되었다.

    ‘잘못된 정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물어보면 어떡하지?’

    아직 교사로서의 경력이 부족한 그녀로서는 그게 가장 무서웠다.

    몇 명의 합격 사례만으로 ‘이게 정답이다!’ 했다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만나면 어떻게 할까? 싶은 것이었다.

    ‘강 선생님은 당당하게, 내 장점으로 강의를 하면 된다고 하기는 했지만….’

    “선배님, 괜찮으세요?”

    생각을 이어가는데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홍유진이 걱정이 된다며 물었다.

    “아, 네, 네. 괜찮아요.”

    “사실 저도 엄청 긴장되기는 해요. 이렇게 한 꼭지 맡아서 하는 것도 처음이고….”

    홍유진의 말에 박은환이 고개를 돌렸다. 홍유진의 눈동자가 조금 떨려왔다.

    “그래서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고, 자료도 많이 만들어뒀어요. 그런데도, 잘 모르겠어요. 밤샘해서 준비하는데도 부족한 것 같고….”

    박은환도 최근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공부했기에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어쩐지 동병상련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박은환이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박 선생, 홍 선생, 요즘 열심히 하네?”

    두 교사의 앞으로 중년의 남성이 다가왔다.

    3학년 부장교사인 김영호였다.

    “아,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박은환과 홍유진이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자 김영호가 손을 휘저었다.

    “그렇게까지 격식 안 차려도 괜찮아. 우리가 뭐 하루이틀 본 사인가?”

    ‘그렇게 친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사이도 아닌데요.’

    그런 속내를 숨기고서 박은환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

    “용건이라도….”

    “내일 있을 특강, 거기에 박 선생이 첫 번째 연사던데.”

    김영호의 말에 박은환의 몸이 흠칫 떨려왔다.

    “… 맞습니다.”

    “홍 선생은 네 번째던데.”

    “네! 그렇습니다!”

    특강에서의 순서를 확인한 김영호가 턱을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거, 제대로 준비되는 거 맞나?”

    갑작스런 김영호의 말에 박은환의 눈동자가 커졌다.

    “무슨 말씀이시죠?”

    “아니, 어째 자네들 강 선생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아마 제대로 못 하면 망신살만 뻗칠 것 같던데.”

    그렇게 말하면서 김영호가 박은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작년에 퓨쳐컨설팅 설명회 기억하지?”

    최진원 원장이 망신을 당하고 마무리되었던 그 설명회. 김영호는 그 설명회를 박은환에게 예시로 들었다.

    “그 설명회도 강 선생이 최진원 원장님 뒤통수치려고 계획한 거야.”

    “부장 선생님.”

    김영호는 박은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니 이번 특강도 비슷할 거야. 게다가 이번에 여교사를 두 명이나 괜히 끼웠겠나? 분명 두 사람은 병풍 역할이나 시키고, 강의 망치면 모욕이나 주려고 그런 거지. 강 선생이 이번 특강을 여는 것도 설명회 때처럼 자기 혼자만 튀게 보이려고….”

    “부장 선생님!!!!”

    이번에는 박은환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쯤 되자 더는 무시할 수 없었는지, 김영호도 하던 말을 멈추었다.

    “만약 그렇게만 보고 계셨다면 잘못 보셨습니다.”

    “뭐, 뭐라고?”

    박은환은 두 눈에 살기를 담은 것처럼 이글이글 불타는 눈동자로 김영호를 바라봤다.

    “강 선생님이 돋보이게 하려는 행사라고요? 여교사를 끼운 게, 우리를 병풍처럼 세우고 모욕이나 주려고 그런 거라고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지만, 차분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다른 선생님들보다 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니까요.”

    박은환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강명문처럼 운이 좋거나 입시 분석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애초에 입시와 관련해서 알고 있는 정보량 자체가 달랐다. 그렇기에 그 정보량을 따라잡으려면 1, 2년 가지고는 될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윤 선생님처럼 동석이 대회 수상 같은 실적이 있지도 않습니다. 홍 선생님처럼 학생을 구한 타이틀이 있어서 유명하지도 않습니다.”

    김영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왔다. 박은환은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렇기에 이번 특강은 저희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무대가 될 겁니다. 각자가 갖고 있는 장점을 토대로 강의를 할 거니까요.”

    박은환은 방금 전 강명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다운 강의를 하자.’

    나는 강 선생님과는 다르니까.

    김영호와 대화를 하면서, 그녀의 마음에 강의 방식이 정해졌다.

    “아니면, 부장 선생님은 여전히 강 선생님만 견제하실 건가요?”

    그녀의 돌직구에 김영호의 얼굴이 한껏 구겨졌다.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민지정 ‘전’ 교무부장이나 한명심 ‘전’ 교감도 순식간에 해임되었습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건지, 오히려 부장 선생님이 잘 아시지 않나요?”

    박은환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서 김영호를 노려봤다. 김영호가 뒷걸음질을 하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 두 사람과 같이 지냈음에도 부장 선생님과 임대원 부장 선생님은 문제없이 잘 근무를 하고 계시죠. 그럼 누굴 더 신경 써야 하는 건지는 명백하지 않습니까?”

    김영호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갔다.

    “미, 미안하네. 아무튼, 나는 혹시 몰라서 주의하라고, 그래, 주의하라고 한 거야. 아, 아니지, 조심하라고! 조심하라고 조언해 주려고….”

    “부장 선생님.”

    방금 전과는 달리 평온한 목소리로 박은환이 말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으, 응.”

    “하지만, 저희 앞가림은 저희가 해요. 저희를 걱정하실 여유가 있으면 본인 걱정이나 하시죠. 중앙지검에서 들이닥치기 전에.”

    박은환의 말을 듣던 김영호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 온몸을 파르르 떨며 못이라도 박힌 듯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멀뚱멀뚱 서 있는 김영호를 뒤로 하고 박은환은 훽 그 자리를 지나갔다.

    “대박….”

    홍유진은 그렇게 걸어가는 박은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홍 선생님, 안 가세요?”

    몸을 돌린 박은환이 홍유진에게 말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홍유진이 허겁지겁 박은환을 뒤따라갔다.

    “아, 아뇨! 지금 가요!”

    그리고 그날 이후로 홍유진은 자신의 롤모델을 결정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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