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94화 (193/252)

194화. 놀러갈 사람?

강은숙 이사장은 강명문에게 전달했던 GF파일 원본을 떠올렸다.

간단하게 생각해도, 곽형조 이사가 갖고 있는 파일과는 달랐다.

그들이 갖고 있는 파일은 온갖 부정부패의 흔적들이 담겨 있는 파일이었다.

반면 할아버지의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원본 GF파일은….

똑똑.

“들어오세요.”

생각을 이어 가던 강은숙 이사장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남성과 마주했다.

“무슨 일이시죠?”

남성의 손에는 인근 카페에서 판매하는 마카롱 세트가 들려 있었다.

“이거 좋아한다고 들었네.”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잘 먹을게요.”

언젠가 서윤수 교수와 함께 먹었던 마카롱 세트였다. 이사장은 마카롱 봉지를 하나 뜯고 입에 쏙 넣었다. 남성도 그 맛이 궁금했는지 하나를 들고 한입 베어 물었다.

“설탕 덩어린가?”

남자의 반응에 이사장이 빙긋 웃었다.

“원래 그런 디저트니까요. 그나저나 정말 무슨 일이시죠?”

이사장의 말에 남자가 들고 있던 마카롱을 내려놓았다.

“원본 파일. 잘 갖고 있지?”

“…그게 뭐죠?”

시치미를 떼는 이사장에게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은숙아.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남자가 얼굴 표정을 조금씩 바꾸었다. 또렷한 눈매를 한 남자는 들고 온 서류가방에서 종이뭉치를 하나 꺼냈다.

“강진 어르신의 의지를 잇기 위해 내가 준비해 둔 게 있다.”

강은숙 이사장을 바라보던 남자의 얼굴이 지금껏 괴로운 일들을 참고 있었다는 듯 크게 주름이 잡혔다 펴졌다.

“이건….”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던 이사장을 향해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믿어야 한다.”

이사장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 * *

“뭐? <스마트한 비교과 관리의 모든 것>?”

특강 소식을 들은 지석 선배가 교무실에서 인쇄된 종이를 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비교과 관리에 뭐 더 할 게 있나? 지금도 대회 준비 도와주고 있고, 수행평가도 바꿨고….”

“아주 중요한 게 있습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지석 선배에게 말했다.

“비교과를 우리가 열심히 챙겨줘도 학생들이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지 못하면 말짱도루묵입니다.”

“그렇지. 본인들이 기억하고, 본인들이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니까.”

내 말을 들은 오 선생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역시 강 선생이야. 요즘 사건사고가 많아서 이런 걸 놓칠 수도 있는데, 정확하게 캐치했군 그래.”

“뭐, 박 선생님이 먼저 의견 주신 덕분입니다.”

이번에 박 선생이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시간이 길 뻔했다.

그 점에서 박 선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제 덕분에 이거 생각하셨으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말씀하시죠.”

“이 특강, 제가 메인으로 올라가고 싶어요.”

박 선생의 말에 다른 교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네가?”

“선배님이요!?”

“박 선생님이면….”

“괜찮겠어?”

차례대로 오 선생, 홍 선생, 차 선생, 윤 선생이었다. 반면, 지석 선배는 그것도 좋은 생각이라면서 맞장구를 쳤다.

“난 박 선생 말에 동의해. 이번에는 명문이 말고 우리도 활약 좀 해 보자고.”

“인어공주쌤도 입시적인 활약 좀 해야죠?”

선배의 말에 차 선생이 홍 선생을 놀리며 말했다. 홍 선생은 차 선생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퍽! 때리고는 상냥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저도 선배님만 잘 따라다녔던 거라 고민이기는 했어요.”

조만간 있을 한목대 논술특강. 그곳에서 여기 있는 강문고 교사들은 나름의 실력을 증명해야 했다.

때문에 지금 홍 선생의 고민처럼, 본인의 실력을 키우지 못하면 이 거품이 언젠가 꺼진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박 선생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먼저 움직여 보려고 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럼 이번 특강을 선생님들 실력을 향상시키는 계기로 삼아야겠군요.”

내 말에 차 선생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선생님. 지난번 정책 제안 이후로 몸이 근질거렸습니다!”

그들의 실력 향상은 지금 강문고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일이었고, 학교의 수준을 올려두는 일에도 필수였다.

나 혼자서 전교생을 다 상담해주고 챙겨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이번에는 나도 힘 좀 써 볼게.”

윤 선생이 팔을 걷어붙이는 시늉을 하며 씨익 웃었다.

“작년에 동석이를 내가 옆에서 지켜봤지 않나? 내가 학생들에게 동석이 사례만큼은 상세히 알려 줄 수 있어.”

동석이가 갖고 있던 비교과 관리 능력. 본인이 의식하지 않았지만, 습관처럼 하고 있었던 부분. 윤 선생은 그런 역량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한다며 윤 선생에게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선생님, 한목대 논술 특강, 진짜 시간 어려우십니까?”

이번 사건으로 한목대 논술 특강에 참여하기로 했었던 류 선생이 빠지게 되었다. 수학 전문 교사가 빠짐으로 인해 강문고에서 참여하는 교사들은 모두 인문계열 선생님이 되어 버렸다.

이는 다른 학교들로부터 다소 빈약한 라인업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 점을 빌미로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도 높았다.

“음… 그때 일정이 좀 빡빡하기는 한데….”

윤 선생이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한번 조정 좀 해 볼게.”

“시간 다 맞춰서 오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과 논술은 오후 시간부터니까요.”

한목대 논술특강 일정은 오전에 인문사회계열, 오후에 상경자연계열이었다. 그래서 윤 선생은 오후 시작 시간에만 맞춰서 와 주면 되었다.

“그럼 조정하기 더 편하지! 어떻게든 해 볼게.”

“감사합니다.”

윤 선생은 곧장 스케쥴 조정을 하려는지 자리로 돌아가서 마우스를 조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번 특강 인쇄지를 바라봤다.

<스마트한 비교과 관리의 모든 것>

이번 특강에서는 학생들이 지금까지 챙겨 온 활동들을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지 알려 줄 예정이었다.

여기에 방송부 담당도 해 보고, 프라모델 동아리 담당도 해 본 영어 교사 박은환 선생이 메인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다른 교사들도 각자 한 파트씩 맡아서 설명을 해 주기로 결정했다.

나는 제일 마지막 파트를 맡았다.

“사실상 명문이가 제일 메인 아냐?”

“그러…게요.”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이 특강 순서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때쯤이면 1시간은 가볍게 넘어서 애들 다 지친 시점입니다. 꾸벅꾸벅 졸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내가 억울하다면서 말하자 다른 교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쉬는 시간 없이 달리면 그럴 것 같기는 합니다만….”

“아무리 봐도 핵심은 선배님이신 것 같은 기분이….”

차 선생과 홍 선생도 무언가 이상하다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의견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열심히 키보드를 놀렸다.

“다 됐습니다.”

~~~~~~~

5월 입시 특강!!

<스마트한 비교과 관리의 모든 것!>

연사: 강문고 입시연구소(임시) 연구원들

특강 순서

(1) 수많은 동아리활동 지도 경험자가 알려주는 효과적인 동아리활동 관리법! -박은환-

(2) 대회라고 똑같은 대회가 아니다! 작년 연천대 합격생은 무엇이 달랐는가?-윤기준, 심지석-

(3) 활동을 했다고 끝내지 말자! 학생부는 학생의 역사다! -오석상, 차석기-

(4) 예술 교과목 활동으로 나만의 인성 어필! 저, 대학교도 재밌게 다닐 수 있어요!-홍유진-

(5) 1~4까지의 비교과 관리 내용들을 입시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강명문-

(각 20분씩 특강 진행)

일시: 5월27일 금요일 오후3시~5시

신청방법: 학급 담임선생님께 신청.

(고1~고3 모두 가능!)

인원: 선착순 100명 한정.

※ 특강 끝나면 개별 상담을 진행할 계획이라 인원은 학생 100명으로 한정합니다. 학생들, 학부모님들의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상담은 학부모님 동반일 경우 학생과 꼭 같이 들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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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 만들어진 홍보문을 보면서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장 인쇄 버튼을 눌렀다.

“어떻습니까?”

“교과 내용은 빼도 괜찮을까?”

지석 선배의 의문에 답한 건 내가 아니라 오 선생이었다.

“내신 잘 챙겨야 한다는 건 특강까지 열어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거야. 그러니 우리 제자들도 잘 알고 있겠지.”

“그렇죠. 그래도 아쉬우시면 제 파트 이야기할 때 한 번 언급해 주겠습니다.”

오 선생과 내 말에 지석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1주일도 안 남아서 좀 빠듯하기는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것, 맞습니까?”

박 선생과 차 선생이 차례로 이야기를 했다.

“맞습니다. 빠듯해도 지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선생님들을 믿습니다.”

이번 특강을 통해 강문고의 다른 교사들이 어느 정도로 입시에 대해 알고 있는지가 밝혀질 것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다른 교사들은 얼마나 입시에 관심이 없는지에 대해서도 밝혀질 것이었다.

“그러니 이번 특강‘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도’를 강조했다. 그들은 나의 입시 준비 방식이 익숙해지기라도 했는지, 한숨만 살짝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특강 준비를 하면서 우리는 각자 바쁜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각자가 준비한 PPT자료를 첨삭해 주기도 했고,

때로는 발표 연습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오 선생은 교감 직무대리까지 맡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생님, 오늘도 바쁘시네요.”

“잠도 못 자고 있지 뭐, 껄껄. 그래도 내가 움직일 수밖에 없잖은가.”

그렇게 말하면서 오 선생은 구석에 조용히 몸을 숨기고 있는 김영호를 바라봤다.

“저 빌어먹을 새끼한테 이 학교를 맡길 수는 없으니 말이지.”

오 선생의 말을 들었는지 김영호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이사장님은 별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까?”

“자네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야.”

이사장은 한명심과 류지훈이 체포된 다음 날, 곧장 두 사람을 해임처리했다.

그 소식은 온 학교에 퍼졌고, 두 사람과 같은, 또는 비슷한 라인을 타고 있던 교사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완벽한 증거가 있다고 하던데?

-시발… 어떡할 거냐고 이거!

-쥐 죽은 듯 다니자. 이사장 심기 건드리지 말고.

주변의 교사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는 결국, 어딘가에 숨어있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리고 그런 교사들이 누구누구인지, 오 선생이 하나하나 추적하고 있었다.

“그거라도 잠시 멈추시면 조금 나으실 텐데….”

지석 선배가 오 선생이 걱정된다면서 중얼거렸다. 그러자 오 선생은 옆에 세워둔 엑스칼리버를 들고 지석 선배에게 다가갔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지금 학교가 이 사단이 났는데!”

“우왓!”

갑자기 자신의 얼굴 지근거리로 다가온 오 선생을 보자 지석 선배가 화들짝 놀랐다.

“까, 깜짝 놀랐습니다!”

“미안하네. 아무튼,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내일 있을 특강 준비나 잘 해 보자고.”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컴퓨터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당장 다음주에 한목대 가야 하잖아? 어떻게 갈 거야?”

윤 선생이 물었다.

“저번처럼 렌트해서 가요? 아니면 각자 대중교통?”

박 선생은 지난 스키장 방문 겸 한목대에 들렀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렌트도 좋은데….”

“그러지 말고, 제가 승합차 하나 대절해 줄 테니 그걸로 가시죠.”

내 말을 중단하고 의견을 낸 사람은 다름아닌 이사장이었다.

“이, 이사장님!”

“반가워요, 인어공주 선생님.”

이사장의 등장에 다른 교사들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사장은 그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한목대 다음주에 가기로 했죠? 그때 저도 갈 거거든요.”

“이사장님도요?”

“네. 운전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기사를 따로 불렀으니까요.”

박 선생이 의문을 품고 묻자 이사장이 웃으면서 답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사실상 강문고 이사장이 지원해주는 돈으로 논술특강을 다녀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제 되지는 않겠습니까?”

혹시나 책잡힐 상황이 생길지 몰라 내가 물었다.

“괜찮아요. 한목대에서 차비 지원도 해 줬거든요.”

이사장은 서윤수 교수와 며칠 전에 통화를 했다면서 교통비, 출장비를 지원해준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더 놀라운 건, 그 금액이 모두 서 교수의 사비였다는 사실이었다.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윤수가 버는 돈이 어마무시하거든요.”

하긴, 한목대 의과대학장에 의사인 사람의 돈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지.

“저희야 지원해 주시면 감사하죠. 잘 타겠습니다.”

이사장을 향해 감사인사를 하자 다른 교사들도 한 마디씩 던졌다. 그 말들을 모두 들은 이사장이 호호, 웃으면서 말했다.

“대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이사장은 자신이 제시한 조건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내용을 들은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딱 한 명, 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연락해 보죠.”

나는 인자한 웃음을 띠고 있는 이사장을 향해 씨익 웃으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단톡방을 열어서 톡을 올렸다.

[6월 4일, 5일. 1박2일로 놀러갈 사람?]

그러자 곧바로 답이 왔다.

[어디요?]

[대학교.]

[아....]

[아앗...]

[아아아...]

아? 이 녀석들이.

나는 녀석들의 마음을 확 돌려주기로 했다.

[명천이가 다니는 한목대학교인데 안 가?]

그러자,

우-웅

[명천이네 학교요? 진짜?]

[뭐야! 저 갈래요!]

[아니 잠깐! 난 동의 안 했어!]

[우리 명천이~ 과에서 인싸인지 아싸인지 확인 좀 해보자!]

[아싸!!!]

[나 아싸 아니야! 쌤!!! 잠깐만요!!!!!!!!]

처음과는 다른 반응과 함께 명천이의 다급한 항의가 들어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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