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93화 (192/252)
  • 193화. 새로운 움직임

    “음~ 아주 상쾌한 아침이야.”

    아침 일찍 출근해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괜히 넓은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그러면 이제는….”

    “이제는 뭐?”

    나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출근했는지, 지석 선배가 한 손에 커피를 탄 종이컵을 들고 서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어제 그런 사단이 있었는데 느긋하게 올 수가 있겠냐.”

    지석 선배는 종이컵의 커피를 바라보면서 잠시간 말이 없었다.

    “지훈이 말인데.”

    살짝 한숨을 쉰 선배가 물었다.

    “걔도 잡혀 간 거 맞지?”

    그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러게 왜 계속 그런 걸 해가지고….”

    지석 선배는 류 선생이 이전부터 비리와 연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몇 번은 그런 불법적인 일은 그만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도 했었다.

    하지만, 류 선생의 성격상 그런 말들을 무시하고, 오히려 선배에게 불법적인 일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좀 묻혔다는 점입니다.”

    어제 한 교감과 류 선생이 검찰에게 체포된 이후 강문고의 비리 사건에 대한 기사들이 올라왔다.

    내 제보를 받은 신 기자를 시작으로 수많은 기자들이 올려 준 덕분이었다.

    게다가 한창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명문 사립고등학교 교감선생의 비리라니, 기삿거리로 사용하기에는 딱이었다.

    “잘 나가는 명문사립고등학교의 교감이 비리의 온상이다. 타이틀 좋지.”

    선배의 말대로 한 교감 이야기가 메인을 장식한 덕분에 류 선생의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기사에서 말하는 증거는 뭐야? 역시 그 파일?”

    “아뇨, 이사장님이 준비하신 증거들입니다.”

    이사장은 이전부터 강문고에 드러나는 비리들에 대한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사장의 말로는 한명심과 민지정, 김영호까지도 쓸어버릴 수 있는 수준의 증거라고 말했다.

    그 증거들이 이번 검찰 조사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기사에서 말하는 ‘확실한 증거’는 바로 그 증거들이었다.

    “그럼 그 파일은?”

    “그건 아직 터트릴 때가 아닙니다.”

    강세혁 검사의 말대로, 아직은 이걸 터트릴 때가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손을 놓고 있기도 뭐했다.

    “우선은 학생들 입시 준비부터 도와주죠.”

    내 말에 지석 선배가 이제야 들고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알았어. 이제 뭐 해야 하지?”

    “저는 우선 우현이 상담부터 해야 합니다.”

    오늘 예정된 일정으로, 심우현의 상담이 있었다.

    일전에 천지연폭포에서 사고로 이어졌던 그 학생. 홍 선생이 아니었으면 큰 일로 이어질 뻔했던 녀석.

    그 녀석이 자기도 경필이처럼 상담을 해달라고 요청을 해 왔다.

    -담임쌤이랑 하지 왜?

    -담임쌤도 강쌤한테 받으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나한테? 굳이?

    -네! 쌤한테 상담 받으면 다들 보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눈이 뜨인다고 하셨거든요! 경필이도 그랬고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우현이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 나도 반 애들 상담 좀 해 줘야겠다. 이제 곧 기말 준비도 해야 할 거고.”

    “네, 맞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앞으로 움직일 이사진들에 대한 견제도 필요했다.

    “혹시 또 지훈이처럼 문제될 동료 교사가… 몇 명이나 될까?”

    “꽤 될 겁니다.”

    내 대답에 지석 선배가 끄응, 낮게 신음했다.

    “알았어. 애들 입시 구멍 안 나게 조심하자.”

    “당연하죠. 제가 누굽니까. 강문고 입시일타 강명문입니다.”

    어깨를 한껏 펴면서 말하는 나를 보면서 지석 선배가 작게 웃었다.

    * * *

    곽형조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서 고뇌하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지?’

    분명 파일은 누군가의 손에 넘어갔다.

    그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파일은 한명심을 처벌하는 데에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파일 안에는 자신을 비롯한 여러 이사진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들이 적혀 있을 터인데도 말이다.

    ‘전부 다 고발하려는 게 아니었나?’

    파일을 획득한 사람의 의도를 알지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게다가 한명심과 류지훈은 체포되었으니 그 파일이 검찰에게만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미치겠군.”

    곽형조는 이빨을 뿌득 갈았다.

    관선이사 파견 작전도 실패했고, 민지정의 대타로 생각했던 류지훈과 끝까지 이용하려고 했던 한명심은 검찰에 체포됐다.

    게다가 GF파일은 검찰에 넘어간 것으로 보였다.

    그럼 이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만약 검찰에게 넘어간 GF파일이 정말 일부뿐이라면?

    딱, 한명심과 류지훈을 잡아넣을 정도의 증거뿐인, 반쪽짜리 파일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제3의 인물 중 누군가가 그 파일의 나머지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천우원….”

    게다가 지금 그로서는 천우원이 파일을 유실했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믿고 있던 심복이었다.

    언제나 충성을 해 왔던 자신의 책사 같은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발생했다. 그로서는 단순히 잃어버렸다, 라고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정말 나에게 칼을 들이미는 거냐.”

    다른 것도 아니고, 모두의 부정부패가 담긴 GF파일이었다.

    물론, 자신에게도 파일은 있다. 그러나 천우원에게 그 파일을 줬던 이유는, 그만큼 신뢰를 했고, 그 파일을 무기로 삼아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천우원은 파일을 잃어버렸다.

    천우원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은 것일까. 이미 많은 부정이 저질러진 시점에서 새로운 타개책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랬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을 압박하기 위한 것일까.

    그런 여러 추측이 곽형조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게다가 강명문… 그 자식이 이 사건에서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어.”

    한명심과 류지훈이 그 사단을 벌이는 동안 강명문은 뭘 하고 있었지?

    곽형조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설마…?”

    곽형조는 머릿속에 떠오른 가정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만약 그 가정이 사실이라면, 지금부터 그가 해야 할 일은 많지 않았다.

    * * *

    곽형조가 천우원의 행동을 분석하고 있을 때, 천우원은 두 여성을 만나고 있었다.

    “…그래서, 나보고 형님을 배신해라?”

    천우원은 앞에 앉아 있는 조신자와 한무회를 향해 물었다.

    그들은 양재역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잘 생각해 봐요. 파일 잃어버렸다면서?”

    “….”

    침묵하는 천우원을 향해 한무회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파일을 갖고 있는 사람은 곽형조 오빠 한 명뿐이죠. 그리고 검찰 정도일 거고.”

    그 말에 천우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렇게 어이없게 파일을 날려버린 오빠를 과연 더 믿어 줄까? 전 그럴 것 같지 않은데요.”

    “한무회 너….”

    옆에서 듣고만 있던 조신자가 입에 댄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오빠가 약점 잡히는 거, 시간 문제예요.”

    조신자의 말에 천우원이 숨을 삼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잖아요. 오빠 성격에 그 파일에 있는 내용, 그걸로만 남겨놨을 리가 없잖아요.”

    “맞아. 어딘가에라도 뭘 남겨놨겠죠. 그렇지 않아요?”

    천우원은 자신이 몰래 빼돌렸던 자료들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 자료들이라면 충분히 곽형조에게도 대응할 수 있었다.

    곽형조가 비리에 가담한 교사들과 이자신 모두의 자료를 GF파일에 담았다면, 천우원은 별도로 이사진들만의 비리를 정리해 두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곽형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나도… 분명 약점 잡힐 게 있을 거다.”

    곽형조 역시 그처럼 상대의 약점을 최대한 깊게 파고드는 성격이었다. 그런 곽형조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지금 천우원은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이건 잘못하면 개싸움이야.’

    얻는 것 하나 없는 개싸움.

    지금 시점에서 천우원이 곽형조와 서로의 비리를 두고 겨루면 그 꼴이 날 게 뻔했다.

    “어쨌든 우리는 분명히 말했어요. 계속 침몰하는 배를 잡을지, 새 배에 올라탈지.”

    천우원이 컵에 남아 있지도 않은 음료를 괜히 털어넣었다.

    “선택은 오빠가 하는 거예요.”

    반쯤 남은 커피를 뒤로 하고 한무회가 일어섰다.

    “결정하면 알려 줘요. 은숙이한테 연락할 테니까.”

    조신자도 그 뒤를 따라갔다.

    천우원은 카페를 나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테이블 위에 남겨진 커피잔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 * *

    우현이 상담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선생님 말씀만 믿겠습니다.”

    우현이 어머니의 협조적인 태도 덕분이었다.

    수학여행 때의 사건으로 인해 우현이 어머니는 강문고의 인어공주, 홍 선생을 신뢰했다.

    아무래도 자기 아들을 구해 준 선생님이지 않은가.

    거기에 내 평소 이미지도 한몫했다.

    “아닙니다. 우현이 너, 지리교육과 가고 싶으면 내가 했던 말들 잘 기억해야 한다.”

    우현이는 한국지리와 세계지리를 좋아했다. 그래서 지리교육과를 생각하고 있었다.

    수학여행 때도 지리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런 위험한 조사를 했다고 고백했다.

    “네!”

    “수행평가, 동아리 모두 지리 분석을 큰 틀로 잡아야 해. 게다가 한국지리에 맞춰서 한다면, 강문고라고하는 강남서초권의 지리부터 분석해 봐. 당연히 학교의 지리도 알아봐야겠지? 기후학도 관심 정도는 가져 보면 좋고, 서울시 지도를 우현이 네 시선으로 해석해 보는 시간도 가지면서….”

    나는 상담 때 이야기했었던 우현이의 교내 활동 방향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면서 자리를 떠나는 우현이와 우현이 어머니를 향해 나도 인사를 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홍 선생이 나에게 고맙다면서 차가운 오렌지쥬스병을 건넸다.

    “아닙니다. 우현이도 한 번쯤은 상담해 주려고 했던 녀석이니까요.”

    “이제는 진짜 괜찮을 거예요. 우현이 표정 좋아진 거 보셨어요?”

    홍 선생의 말대로 우현이는 상담을 받은 후 눈에 띄게 밝아진 얼굴로 변했다.

    “제 상담이 좋은 덕택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너스레를 떨고 있는데 박 선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강 선생님, 잠깐 괜찮아요?”

    박 선생의 질문에 나는 당연히 괜찮다고 답했다.

    “아, 홍 선생님도 같이 들어줄래요?”

    “저도요?”

    무슨 이야기인지 의아해하며 몸을 돌린 홍 선생은 이어지는 박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

    “5월 말이 다가와서 이제 입시적으로도 추가 준비가 필요해요. 맞죠, 강 선생님?”

    “네, 맞습니다. 5월 지나기 전에 비교과활동들을 자체적으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죠. 2주 뒤에는 착한 사마리아인 대회도 열릴 예정이고요.”

    홍 선생은 입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 말하는 이 이야기들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한테 입시 준비하라고 조언 좀 해 주고 싶어요.”

    박 선생은 최근 상담했던 자기 학급 학생들이 입시 준비를 하고 싶지만 체계적으로 하지 못해 속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여러 고민을 해 왔다며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후… 그래도 가능하면 선생님들 손은 빌리지 않으려 했는데….”

    “괜찮습니다. 어쨌든 학생들에게 잔소리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군요.”

    “잔소리가 아니라, 조.언. 이에요.”

    내 말에 박 선생이 투덜거렸다.

    “좋습니다. 그러면 특강을 하나 열까요?”

    “특강이요?”

    홍 선생이 물었다.

    “네. 특강 제목은 <스마트한 비교과 관리의 모든 것> 정도면 되겠습니다.”

    5월이 지나가는 시점. 지금 자신들이 했던 비교과 활동들을 한 번 돌아보는 일은 중요했다.

    이는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정시와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필요했다.

    ‘잘만 하면 실적도 쌓고, 이미지도 더 올리고.’

    그리고 나한테도 도움이 되는 특강이었다.

    “재밌겠네요.”

    며칠 만에 입시 준비를 한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한껏 치켜 올라갔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박 선생과 홍 선생은 소름이라도 돋았는지 팔뚝을 쓸어내렸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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