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92화 (252/252)

192화. 이거도 드릴게요.

류 선생과 한 교감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편하게 소파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이제 두 분의 처우 결정이 남았습니다만.”

나는 이사장을 보면서 물었다.

“결정은 하셨습니까?”

“당연히 했지요.”

이사장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두 사람의 앞에 섰다.

“내신 조작, 대회 수상 조작, 교구재 횡령, 인테리어비 횡령, 불법과외 알선, 불법과외 진행, 익명의 학원 강의….”

그러나 이사장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전혀 온화한 주제가 아니었다. 이사장은 지금까지 한 교감과 류 선생이 저지른 일들을 하나씩 꺼냈다.

모두 GF파일에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강문고 여학생들을 보면서 파렴치한 상상을 하는 인터넷 활동까지.”

“!!”

이사장은 GF파일에 없는, 류 선생의 커뮤니티 활동도 꺼냈다. 이사장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내가 알려 줬기 때문이었지만, 그녀는 굳이 그걸 입에 담지는 않았다.

“제가 당신들을 용서해 줄 필요가 없다는 거. 다들 이해하시죠?”

이사장의 온화한 미소는, 당장이라도 먹잇감을 씹어먹을 듯한 입가심으로 보였다.

“죄, 죄죄죄, 죄,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한 교감이 바닥에 소리가 나도록 쿵! 무릎을 꿇었다. 그가 무릎을 꿇는 동시에 한 교감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툭, 떨어졌다.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오는지 핸드폰이 우웅- 울리고 있었다.

한 교감의 옆으로 다가가 핸드폰을 주웠다. 발신인은 ‘천우원 이사님’ 이었다.

“처, 처처, 천 이사님?”

“받을 생각일랑 마십시오.”

나는 한 교감의 핸드폰을 한쪽으로 치워두고는 이사장을 다시 바라봤다. 이사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한 교감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도 그 사람들을 찾을 용기가 생기나요?”

“아, 아니,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사장님! 제가, 제제,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가 정말, 제가 어떻게든…!”

“어떻게든 뭘 하시겠다는 거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는 한 교감을 향해 이사장이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교감선생님께서 하신 일련의 모든 일들. 그걸로 인해 피해를 본 학교와 학생들. 그걸 보고도 못 본 체하라는 말인가요?”

“그, 그그, 그건, 그건 아닙니다!”

“그럼 됐네요. 책임을 지세요.”

이사장의 강경한 말에 한 교감이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제가, 제가 퇴직하게 되면…저희 가족과… 제 딸도….”

이제는 하다하다 안 되니 감정에 호소하는 한 교감을 보면서 이사장을 혀를 찼다.

“지금까지 해먹은 돈 많은데 그걸로 버텨 보세요. 그리고… 류지훈 선생님.”

이제는 류 선생에게로 화살이 돌려졌다.

“….”

“침묵한다는 건 이 모든 일에 긍정하고, 벌도 받겠다는 뜻이죠?”

이사장의 물음에 류 선생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그렇게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가 싶던 류 선생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나를 가리켰다.

“하지만! 제가 있어야, 강 선생님을 지킬 수 있습니다.”

“무슨 의미죠?”

나도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류 선생은 나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천천히 내리면서 말했다.

“제가 저 파일을 갖고 있어야 남아 있는 이사진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오히려 반문하는 이사장에게 류 선생은 하던 말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었다.

“저 파일이 류지훈 선생님에게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걸로 곽형조 이사나 천우원 이사가 오냐, 말을 들어주마, 이럴 것 같나요?”

“그… 그건….”

류 선생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되도 않는 허세는 그만 부리시죠.”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류 선생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차피 제대로 된 심판은 다른 분들이 하실 겁니다.”

“누, 누가?”

나는 류 선생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한 교감을 바라봤다.

“차라리 교감선생님처럼 진정성 있는 척 사과라도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안 그래요, 류 선생님?”

내 말을 들은 류 선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교감선생님.”

“가, 가, 강 선생, 나, 나 좀 제발… 사, 살려 주게.”

읍소하는 한 교감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자기 편할 때는 부정부패 저지르고, 실적 올리려고 저랑 같이 뭔가 해먹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니까 좋으셨을 겁니다.”

“그, 그런 게, 그게 아니라….”

“이제 두 분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그만 퇴장해 주시죠.”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류 선생도 무릎을 쿵! 바닥에 찍었다.

“…죄송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강명문 선생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살려 주십쇼!!”

어지간히 급했는지 류 선생도 무릎을 꿇고서 손을 싹싹 비볐다. 나에게 경어를 하기까지 하는 류 선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대한민국입니다. 죽지는 않아요.”

그리고 내 말이 끝나는 동시에 이사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사회에서는 죽을 수 있겠지만요.”

문을 연 사람들 중,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 강세혁 검사입니다.”

검찰청 신분증을 보여 준 강세혁 검사가 나를 바라봤다.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강세혁 검사는 그런 나를 향해 살짝 눈길만 주고는 본인이 할 일을 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자료들이 사실이라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이에 한명심, 류지훈 두 사람을 용의자로 체포하겠습니다.”

강세혁 검사의 지시를 받은 수사관들, 동행한 경찰들이 다가왔다.

한명심 교감과 류지훈 선생은 동공이 풀린 채 멍하니 검찰을 따라 이동했다.

“크게 한 건 또 하셨군요.”

강세혁 검사가 자리를 이동하기 전에 나에게 말을 걸었다.

“파일은 확보하셨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내 말에 강세혁 검사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한 마디 조언을 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방향대로만 준비하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자료 말인데….”

“확보되면 제출하겠습니다. 증거가 필요하실 테니까요.”

강세혁 검사가 알겠다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강 선생님.”

“네.”

“…아닙니다, 조심하십시오.”

무언가 말하려던 그의 얼굴을 보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검찰이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금 적막이 감돌았다. 이사장은 방금 전까지 한 교감과 류 선생이 무릎을 꿇고 있던 자리를 잠시간 지켜봤다.

“몇 명이나… 더 쳐내야 할까요.”

이사장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의 고민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비리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족족, 이렇게 교사들을 모두 쳐내야 할까.

물론,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렇게 되었을 경우, 학교 행정이 마비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아무리 대체자를 뽑고 해도, 지금의 강문고에 맞춰서 제대로 움직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사장은 그걸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교감직무대리를 할 사람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게 누구죠?”

나는 이사장을 향해 생각하고 있던 인물의 이름을 꺼냈다.

“오석상 선생님입니다.”

“하지만 지금 오 선생님은 교무부장 자리도 공석이라 직무대리를 맡고 계신데… 괜찮을까요?”

이사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오 선생이 두 역할을 직무대리로 맡는다는 건, 그에게 많은 부담을 준다는 의미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오 선생 정도의 경력자가 아니면 맡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분을 제외하면 믿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건은 빨리 공표를 하셔야 합니다.”

“네, 알고 있어요. 이사진이 아무나 직무대리를 맡길까 봐 그런 거죠?”

이사장의 말에 긍정의 표시로 살짝 웃어 보였다.

“좋아요. 오석상 선생님과는 제가 이야기를 나눠 보죠.”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을 탁탁 털고 열쇠를 들었다. 그리고는 서랍장에 넣어둔 외장하드를 다시 꺼냈다.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강 선생님, 잠깐만요.”

밖으로 나가려는 나에게 이사장이 작은 USB를 하나 건넸다.

“이거도 같이 드릴게요.”

“이게 뭡니까?”

이사장은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GF파일 원본이에요.”

USB를 받아드는 내 손이 무겁게 느껴졌다.

이사진에서 마음껏 가공한 자료인 GF파일은 류 선생이 가지고 온 외장하드에 있다.

그리고 최초에 만들어진 GF파일은 이 USB안에 있다.

이사장이 지금 시점에서 이걸 나에게 건네는 이유를 파악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고마워요. 강 선생님 덕분에 나도….”

더 말을 이어 가려던 이사장이 잠시간 침묵했다.

“아무튼,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사장실을 나서면서 문 앞에 섰다. 잠깐 이사장을 향해 몸을 돌리면서, 때가 되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필요 이상으로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사장의 인자한 미소를 받으면서 조용히 이사장실 문을 닫았다. 교무실로 이동하는 내 구두 소리를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삼으면서 경쾌하게 움직였다.

* * *

“어디, 어디 갔지?”

천우원은 한명심과 류지훈이 지나간 후 컴퓨터 파일을 하나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그러나 파일이 없어져 있었다.

그가 없는 사이, 류지훈이 외장하드로 파일을 잘라내기 후 붙여넣기를 해서 파일이 없어진 것이었다.

심지어 천우원은 컴퓨터에 능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일 복구법도 알지 못했다.

“그 새끼들이 설마….”

천우원은 이빨을 뿌득 갈면서 방금 전 왔다 간 한명심과 류지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두 사람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몰래 파일을 지운 것일까?

아니, 지운 것뿐이라면 괜찮았다.

만약 지우는 것뿐 아니라 그 파일을 가지고 갔다면?

그렇게 되면 문제가 커진다.

“이 미친놈들….”

그래서 천우원은 다급하게 한명심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한명심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때, 한참 강은숙 이사장과 강명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손을 싹싹 비비고 있었으니까.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왜 안 받는 거야!”

“무슨 일이지?”

소리를 지르는 천우원의 앞으로 곽형조가 다가왔다. 천우원은 곽형조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무슨 일이냐니까?”

곽형조의 눈은 금방이라도 천우원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를 풍겼다. 천우원은 그 기세에 눌려 몸을 살짝 움츠렸다.

“그… 그게….”

결국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한 천우원은 조심스럽게 한명심과 류지훈과 미팅을 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

여전히 말하기를 망설이는 천우원을 뒤로 하고 곽형조가 천우원의 컴퓨터로 향했다.

“….”

모니터 화면을 확인한 곽형조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어디 갔지?”

“…잘 모르겠….”

그 말과 동시에 천우원의 왼뺨에서 짝! 소리가 났다.

곽형조의 손찌검을 직격으로 맞은 천우원이 그대로 자리를 나뒹굴었다.

“파일. 어디 갔지?”

“두, 두 사람이 다녀간 직후, 어, 없어졌습니다.”

짝!

“어디로 갔냐니까?”

“저, 정말,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사님, 저는 정말….”

짝! 짝!

연이은 손찌검에 천우원의 늙은 볼이 퉁퉁 부어올랐다.

“나를 배신이라도 할 건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이사님을 배신하겠습니까.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저, 한명심과 류지훈이 다녀간 이후에 사라진….”

“그럼 그 두 사람이 범인이다?”

다시 한 번 천우원의 옆으로 이동하던 곽형조의 핸드폰이 울렸다.

“후… 그래. 말해 봐. 흠. 그래서?”

차분한 척 말을 이어 가던 곽형조는 이내 핸드폰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뭐…라고?”

곽형조가 천우원에게 빨리 인터넷을 확인해보라고 했다. 천우원은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면서 열심히 마우스를 놀렸다.

“이 미친….”

천우원의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곽형조가 그 옆으로 다가가서 화면을 확인했다.

<강문고 교감 사학비리 결정적 증거 포착!>

<인터넷 찌라시가 알고보니 공익제보?>

<찌라시도 의심한 중앙지검의 재빠른 수사가 빛을 발하다!>

그 이외에도 여러 기사들이 특종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사를 바라보던 곽형조의 눈가에 핏줄이 잔뜩 서렸다.

“파일 유포한 새끼 당장 찾아!!!!!”

정작 파일을 보유하고 있지만, 유포하지는 않은 강명문은 방에서 육포에 맥주를 마시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을 뿐이었다.

“무식한 도전이라도 볼까?”

그렇게 말한 강명문은 오랜만에 아주 깨끗한 웃음을 보였다.

상대의 도덕성을 조롱하거나, 자신의 여유를 드러내는 웃음과는 다른,

과거로 돌아오고 몇 번 짓지 않은 정말 순수한 웃음이었다.

“물론 이미 다 본 거지만.”

목구멍을 넘어가는 맥주가 달게 느껴졌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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