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91화 (191/252)
  • 191화. 수고하셨습니다.

    몇 시간 뒤, 류지훈은 한명심과 함께 천우원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똑똑.

    “들어와.”

    직원의 안내를 받은 두 사람이 천우원의 앞에 섰다.

    “말해 봐. 누가 꺼냈어?”

    천우원이 두 눈을 부릅뜨고는 한명심을 노려봤다.

    “너야?”

    “아, 아, 아닙니다.”

    “아니면, 너야?”

    천우원의 질문에 류지훈은 답하지 않았다.

    “왜 말이 없어!”

    “류, 류 선생. 설마 자네, 자넨가?”

    류지훈은 답변을 망설였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 * *

    천우원의 사무실에 오기 전, 강명문과 만난 류지훈은 두 가지 선택지를 받았다.

    하나는 이사진이 갖고 있는 GF파일을 빼돌릴 것인가.

    다른 하나는 퇴진한 이사진이 했다고 말하면서 그 안에서 살 길을 찾기.

    -잘 생각해 보세요. 학교에서 빨리 퇴직하고 사교육 시장으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강명문의 말은 냉철했지만,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었다. 류지훈은 그 말을 곱씹으면서 천우원을 만나러 발걸음을 돌렸다.

    * * *

    그리고 지금, 류지훈은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결정했다.

    한명심이 계속해서 류지훈을 추궁하려고 할 때,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선, 저는 아닙니다. 저는 교감선생님의 부정부패 증거 따위 애초에 갖고 있지도 않았으니까요.”

    류지훈의 말에 천우원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실제로 류지훈이 그런 증거들을 모았을 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천우원이 눈가에 준 힘을 풀었다.

    “짐작 가는 사람이라도 있나?”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만….”

    류지훈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천우원을 향해 말했다.

    “조신자, 한무회 이사님이 아닐까….”

    “!!”

    그 말에 한명심이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천우원은 예상했던 인물들 중에 있었다며 혀를 찼다.

    “나뿐만이 아니라 자네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면… 이건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는데.”

    “저도 어디까지나 추측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일을 적어도 그 사람들이 터트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류지훈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챈 천우원이 물었다.

    “어떻게 알지?”

    “우선, 이번에 퍼진 캡처본의 내용들은 모두 교감선생님의 부정부패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세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압박할 정도의 정보들만 보여 주었습니다.”

    류지훈은 핸드폰을 꺼내서 미리 저장해 두었던 엑셀 파일 캡처 사진들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다시 자료를 확인한 한명심과 천우원도 류지훈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했다.

    확실히 이번에 올라온 캡처 사진에는 자세한 정보가 없었다.

    한명심과 천우원이 화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강명문은 이렇게 상대를 압박할 정보만 꺼낼 정도로 디테일한 내용은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근거는?”

    “아무리 그가 강문고에 들어오고나서 열심히 알아봤다 해도, 시간이 제법 지난 사건들까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천우원이 일리가 있다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강은숙 이사장일 가능성은?”

    “그것도 생각해 봤습니다만… 이사장님은 교감선생님을 같은 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굳이 지금처럼 학교가 시끄러울 때 밝힐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류지훈은 숨을 한 번 삼킨 후 마지막으로 준비한 말을 꺼냈다.

    “조신자 이사와 한무회 이사. 그 두 사람이 뒤통수를 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동기는 뭐라고 보나?”

    “아마… 이사님들이 자신들을 꼬리자르기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려던 게 아니었을까요? 지금 이사님들의 오른팔인 교감선생님을 공격해서 경고하기 위한….”

    거기까지 들은 천우원이 큭큭, 웃었다.

    “좋은 추측이야. 그리고 충분히 가능성도 있겠어. 신자와 무회란 말이지….”

    천우원이 낮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좋아…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지.”

    그렇게 말한 천우원은 쥐고 있던 마우스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어디를 가시는….”

    “자네들에게는 이제 볼일 없어. 얼른 나가 봐. 난 바람 좀 쐬고 올 테니까.”

    천우원의 기세에 눌린 한명심과 류지훈이 조용히 일어섰다. 담배와 핸드폰을 들고 옥상으로 향하는 천우원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한 두 사람은 출구로 몸을 돌렸다.

    “류 선생?”

    그러나 류지훈은 천우원이 사라진 걸 확인한 직후 곧장 몸을 다시 천우원의 사무실로 돌렸다.

    “자, 자네 지금 뭐하는….”

    한명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류지훈은 천우원의 사무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방금 천우원은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사무실에는 적막이 흐를 뿐이었다.

    “후우….”

    한 번 심호흡을 한 류지훈은 서둘러 천우원의 책상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방금 전까지 천우원이 확인하고 있던 컴퓨터 화면을 확인했다.

    “이, 이봐 류 선생!”

    “쉿! 교감선생님, 같이 죽고 싶습니까?”

    류지훈의 말에 한명심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우리가 백날 저분들을 위해 용써 봤자, GF파일인지 나발인지가 저들한테만 있으면 우리는 영원히 꼭두각시란 말입니다. 모르시겠어요?”

    “그, 그거야… 그렇지만….”

    우물쭈물하는 한명심을 향해 류지훈이 손가락을 입술 위로 올렸다.

    “정 불안하시면 먼저 도망가십쇼. 이 파일은 저만 쓰겠습니다.”

    류지훈은 컴퓨터를 몇 번 조작하더니 금새 GF파일이 있을 법한 폴더를 찾았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한명심은 그 모습을 잠시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이것저것 파일 제목을 확인하던 류지훈은 준비해 온 외장하드를 품에서 꺼냈다.

    “그건….”

    “혹시 몰라 용량 큰 걸로 가지고 왔습니다. 교감선생님은 망이나 봐 주세요.”

    “아, 아아, 알았네!”

    류지훈의 명령을 받은 한명심이 몸을 바삐 움직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류지훈은 외장하드를 천우원의 컴퓨터에 꽂고 의심되는 폴더를 모조리 외장하드에 때려 넣었다.

    복사 후 붙여넣기가 아니라, 잘라내기 후 붙여넣기로 말이다.

    “빨리 좀 되라…!”

    정작 파일을 옮기는 당사자는 자신이 복사를 했는지, 잘라내기를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수십 초 후, 자료 복사가 완료되었다.

    “류, 류류, 류 선생!”

    한명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자 류지훈이 급하게 외장하드를 뽑고 다시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소파와 테이블 사이에 떨어뜨리고는 앞에 놓인 손님용 소파를 열심히 뒤지는 척을 했다.

    “… 나간 거 아니었나?”

    어느새 문 앞에 선 천우원이 류지훈과 한명심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아, 죄송합니다. 아까 핸드폰을 보여드린 다음에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안 나서….”

    뒷머리를 긁적이던 류지훈은 한숨을 쉬면서 소파 주변을 계속해서 뒤졌다.

    “아! 찾았습니다. 이게 이렇게 숨어 있었네.”

    류지훈은 어설픈 연기를 하면서 천우원을 향해 살짝 웃었다.

    “그럼 정말 가 보겠습니다.”

    다시금 인사를 하고 나가려던 두 사람에게 천우원이 제동을 걸었다.

    “잠깐.”

    두 사람의 발이 돌이라도 된 것처럼 바닥에 딱 들러붙었다.

    “방금 신자와 무회와도 연락을 했는데.”

    천우원이 비릿한 웃음을 날리면서 걸어왔다.

    “신자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어. 그리고 무회는 조금은 있었지만, 굳이 터트릴 이유가 없다고 했지. 서로 개싸움밖에 더 하겠느냐고 하면서 말이야.”

    꿀꺽.

    류지훈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범인은 따로 있을 거다. 그래 어쩌면….”

    둘을 둘러보던 천우원이 말했다.

    “자네들이 작당을 하고….”

    “기, 기, 김영호 부장!”

    갑작스런 한명심의 말에 류지훈과 천우원의 시선이 돌려졌다.

    “김영호?”

    “그, 그렇습니다! 민지정 부장이 퇴진하게 되면서 그, 힘이 많이 약해,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사님들과 더 가까워진 저를 끌어내리기 위해….”

    “그가 이런 비리를 알고 있는 이유는?”

    “그… 몇 가지 같이 했던 건들도 있습니다.”

    그 말에 천우원의 눈가가 가늘게 떠졌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던 천우원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하긴, 그 녀석도 무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겠군.”

    “그,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굳이 저, 저를 향한 거라면… 동기도 설명이 됩니다.”

    한명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천우원이 자리로 돌아갔다.

    “알았어. 이만들 나가 봐. 한명심, 너는 더 자료 유출되기 전에 조심하고.”

    “네, 네! 알겠습니다!”

    다시금 고개를 꾸벅 숙인 두 사람은 천우원의 사무실 문을 닫고, 건물을 나간 후 택시를 타기 전까지 최대한 침착하게 걷고자 힘썼다.

    그리고 택시에 몸을 실은 즉시, 온 몸에 긴장이 풀렸다.

    “류 선생….”

    “이따… 같이 확인하시죠.”

    품 안에 담긴 외장하드를 오른손으로 매만지면서 류지훈은 잠시나마 눈을 감았다.

    * * *

    “정말 이렇게 했어도 괜찮은 걸까요?”

    이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이사장의 말을 들으면서 앞에 놓인 종이컵을 들었다.

    “네. 괜찮습니다. 류 선생님이라면 분명 제가 생각한 대로 움직일 겁니다.”

    류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던진 두 가지의 선택지. 류 선생은 그 선택지를 듣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류 선생이라면 절대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을 것이었다.

    ‘두 제안을 모두 실행할 거다.’

    류 선생이 갖고 있는 탐욕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예측이었다.

    그는 입시 실적이 좋다는 사실을 무기로 삼아 여러 불법적인 일들을 해 왔었다. 개인 과외부터 시작해서 암암리에 작은 학원 강의도 해왔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듯 살아온 그가 지금은 나에게 약점이 잡혀서 어깨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이사들에게까지 묶이게 되었다.

    지금 류 선생은 어떻게든 하나의 족쇄라도 풀고 싶어 할 게 분명했다.

    ‘아마 파일을 얻으면 그걸로 나랑 딜을 걸 거고.’

    자기가 열심히 도와주고 있으니 정상참작을 해달라, 이따위 이야기 말이다.

    “류 선생님이 파일을 정말 획득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성공입니다. 이번 일은 사실상 연막 안에 작은 함정을 설치해둔 거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함정이 일파만파 퍼진 덕분에 지금까지 진행될 수 있었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이사장은 편하게 앉아 있는 나를 보면서 물었다.

    “이번에 교감선생님 비리들 일부 오픈했었는데.”

    “네.”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여서 놀랐어요.”

    그야, 당연히 다 알고 있는 비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마음은 숨기고서 이사장에게 말했다.

    “민지정 씨 사건 때부터 얼추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비리를 저지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계속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다 보니 별 감흥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내 말이 나름대로 타당하다 생각되었는지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

    다시금 녹차를 입에 가져가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이사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류 선생과 한 교감이 들어왔다.

    “가, 강 선생.”

    류 선생이 숨을 헐떡이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두꺼운 외장하드를 꺼냈다.

    “받아왔어.”

    그가 나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그를 보며 웃으면서 답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바로 오신 겁니까?”

    “헉… 헉… 당연하지. 들킬까봐 조마조마… 했다고, 헉….”

    숨을 헐떡이는 류 선생을 향해 손을 슥 내밀었다. 그러자 류 선생이 들고 있던 외장하드를 뒤로 살짝 뺐다.

    “하나만 약속해 줘.”

    “무엇을 말입니까?”

    “나… 나에 대한 내용은….”

    류 선생이 뭐라 더 말을 하기 전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 진짜지?”

    “네. 류 선생님이 사교육계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어야 저로서도 좋으니까요.”

    그렇게 말을 마친 나는 준비해둔 노트북에 외장하드를 연결했다.

    그리고는 류 선생이 알려준 폴더를 열심히 뒤적였다.

    “이건….”

    여러 파일들 중 엑셀 파일 하나가, 나를 비롯해 이사장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렇게나 많이….”

    화면을 확인하는 이사장이 열려 있는 엑셀파일을 보면서 분노했다.

    <세현 미디어 시청각 기자재>

    <급식 식자재 납품>

    <2003년 졸업생 김세민 3학년 1, 2학기 조작>

    <2005년 졸업생 최현지 정시 면접 조작>

    지금까지 이사진들이 저질렀던 수많은 비리들.

    그 목록들이 수십, 아니 수백 개가 정확한 액수와 함께 메모되어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그 파일을 확인한 후 외장하드를 뽑았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둔 이동식 서랍에 넣고 철컥, 열쇠로 잠가버렸다.

    “강…!”

    “이건 제가 잘 쓰겠습니다.”

    류 선생이 입술을 덜덜 떨면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 그 파일 내놔!”

    소리를 지르는 류 선생을 무시하면서 나는 서랍 열쇠를 내 주머니에 쏙 넣었다.

    “죄송하지만, 이제 이 파일은 제 겁니다.”

    이제 이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었다.

    “정말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남은 건, 이들의 파멸뿐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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