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90화 (190/252)

190화. 챙겨야 합니다.

“그거 봤어?”

“나도 봤어. 뭐 이상한 내용이던데.”

점심시간의 강문고.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벤치에 모여서 무언가를 쑥덕거리고 있었다.

“근데 그거 진짜 누가 한 거야?”

“내용 보면 모르냐? 우리 학교 쌤 중 하나겠지.”

“와… 하다하다 이런 것들까지 했었어?”

어이가 없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남학생을 보면서 여학생이 으스대듯 말했다.

“거 봐. 내가 말했지? 분명 더 있을 거라 했잖아.”

“에휴, 그래. 네가 이겼다 이겼어. 자, 콜라.”

“아싸!”

딴에는 자기들끼리 내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반면, 옆에 서서 그걸 구경하던 다른 남학생은 긴장감 서린 얼굴을 했다.

“그런데… 이거 진짜 괜찮을까?”

“왜?”

콜라의 뚜껑을 열던 여학생이 물었다.

“아니, 이거 잘못 알려지면 우리 학교 진짜 공중분해되는 거 아냐? 대학교 못 가는 거 아니냐고.”

“아… 맞네.”

자리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손으로 턱을 괴었다.

“진짜 그렇게 되면….”

“전학을 가야 하나?”

“한국고로?”

다른 남학생과 여학생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때,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까짓거 재수나 한 번 하지 뭐!”

“오, 문경필. 너 재수할 거야?”

“아니, 어차피 우린 내년이잖아? 지금 생각할 건 아니지만, 내년에도 만약 이런 일들 때문에 대학 못 가면 재수하면 된다고.”

경필의 말에 다른 학생들이 오오~ 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뭐야, 왜?”

“아니, 너 요즘 좀 달라 보인다? 열공하더니 재수 생각도 하고.”

한 손에 콜라를 든 여학생의 말에 경필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민정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네. 내가 요즘 열공하다 보니까 안 보이던 세계도 보이고 그런다.”

“그래, 너처럼 정의감 넘치는 녀석이면 학교에 부정부패가 가득하니까 떠나는 게 아니라 고치려 하겠지.”

정말 그럴 것 같다면서 학생들이 낄낄거렸다.

“아, 그래도 난 너희랑 같이 다니고 싶어. 얼마나 좋아!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끈끈한 우정을 키우고, 학업도 충실히 했다!”

그 말에 민정이 웃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드라마틱하기는 하네.”

학생들이 한 번 더 웃었다. 그러다가 경필은 친구들이 말하고 있던 파일을 떠올렸다.

<강문고 골드파일>

이런 이름의 파일이 오늘 점심 직전부터 돌아다녔다. 정확히 말하면 그 파일 내용의 일부를 캡처한 사진이었다.

최초 유포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 SNS에 캡처한 사진을 업로드했고, 그 사진들이 지금 학교에 돌고 있었다.

해당 SNS계정은 현재 계정이 비활성화되었다.

재미있는 건, 그 캡처사진들이 꽤나 신빈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령 직원이 알고 보니 장인어른>

모두 실제 강문고에 있었던 사건들이었다.

교구재를 납품했던 기업의 이름이 S기업이라는 점.

행정실에 명패만 세워 두기만 했던 유령직원의 존재.

얼마 전 강당 인테리어를 한다며 불렀던 H업체.

그 외에도 여러 문제들이 캡처된 사진에 적혀 있었다.

심지어 제법 구체적인 금액이 적혀 있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럴 때 우리가 정신 똑바로 차리자.”

경필은 SNS에 올라왔던 골드파일 캡처사진을 대화 주제로 꺼내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3학년 선배들도 열심히 하시잖아. 우리도 잘 지켜보자.”

그 말에 민정이에게 콜라를 건넸던 동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래도 우리 학교에 좋은 쌤들도 많잖아?”

“맞아, 공교육의 희망이나 우리 담임인 인어공주쌤.”

“난 영어쌤도 좋더라! 입시 챙겨주시려고 생기부도 세세하게 적어 주시겠다고 하시던데?”

“침묵의 권왕도 그런 이미지라 그렇지 실력은 탑이시지.”

학생들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학교에 있는 교사들의 장점들을 이야기했다.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경필은 한 가지를 다짐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해낸다!’

지난 수학여행 때의 사건. 경필은 공부가 부족했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그리고 오늘 SNS에 잠깐 올라왔다 사라진 캡처 사진들을 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사건은 3학년이 아니라 2학년이 확인해야 한다.

그게, 지금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선배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근데 이거 소문만 무성한 걸수도 있으니까 신중하자. 알았지?”

그 와중에도 경필은 일전에 강명문이 말했던 경고를 잊지 않았다.

너무 나서지 말자.

때문에 이렇게 완급조절을 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이 모두 효과적이었던 모양이었다. 학생들은 어느새 전학 이야기는 사라지고, 어떻게 하면 강문고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지 토론하기 시작했다.

과거 강명문이 겪었던 때와는 다른 양상이, 지금 강문고에 불고 있었다.

* * *

한명심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복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 걸음이 때로는 급하게도 보였고, 때로는 지탱하고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불안하게 떨려오기도 했다.

‘대체 누가… 누가 뿌린 거지?’

SNS에 올라온 이상한 사진들에는 과거 자신이 저지른 부정부패의 흔적들이 적혀 있었다.

사진으로 본 내용들은 조악하게 적혀 있었기에 GF파일 원본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자신의 부정부패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일부러 터트렸다는 뜻이 되었다.

“류지훈 선생이? 아니야. 나와 한배를 타고 있는데… 강 선생? 아니야, 그가 오기 전의 사건들도 있었어. GF가 없으면 알 수 없을 내용들인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한명심은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걸음을 멈췄다.

“… 설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한명심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우웅- 하고 울렸다.

“처처, 천우원 이사님.”

[… 미쳤나?]

핸드폰 너머의 상대로부터 험악한 소리가 튀어나았다.

[이 씹어먹어도 모자랄….]

소리를 지르던 상대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최대한 침착한 척 말했다.

[…당장 튀어와. 류지훈도 같이.]

“네, 네, 알겠, 알겠습니다, 이사님.”

천우원과의 전화를 끊은 한명심은 곧장 류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명심의 전화를 받은 류지훈도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빠르게 알겠다고 답했다.

천우원이 기다리고 있는 사무실로 달려가면서 한명심은 생각했다.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지금의 위기상황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지 말이다.

* * *

한명심이 천우원의 사무실로 달려가기 몇 시간 전.

강명문은 박은환과 함께 교무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이거 혹시 교감….”

“쉿! 조용히 해!”

부정을 저질러 왔던 교사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발… 나도 이때 한몫 챙기려 했었는데, 큰일날 뻔했잖아.”

“나도 그래. 이러다 다른 일도 퍼지면….”

중얼거리는 교사들 사이에서 임대원 부장은 이빨을 뿌득 갈았다.

“제기랄… 젠장…!”

“뭐 불편한 데라도 있나?”

“!!”

임대원은 갑자기 나타난 오석상 때문에 생각을 멈추었다.

“아, 아닙니다.”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는데. 자네, 혹시….”

오석상이 임대원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면서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내용들을 알고 있는 건가?”

그 말을 들은 임대원은 물론이고 주변의 교사들이 흠칫 놀라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이 자료가 거짓 정보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네.”

임대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자네들 반응을 보니 그게 아닌 모양이구만.”

그는 엑스칼리버를 휙 들고는 양쪽 어깨에 짊어졌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오석상에게 그 누구도 반박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석상은 강명문과 박은환이 있는 자리까지 와서야 어깨에 올린 엑스칼리버를 내려놓았다.

“이렇게 내부가 썩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는구먼.”

한심하다며 혀를 차던 오석상이 강명문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어떻나?”

“저희야 뭐….”

강명문이 박은환을 향해 싱긋 웃었다. 박은환도 그에 화답하여 웃으면서 오석상에게 말했다.

“캥길 게 하나도 없어서 평소와 다를 게 없어요.”

“과연!! 내가 사람 제대로 봤다니까!! 크하하하!!”

오석상의 웃음소리가 교무실 내부에 울려퍼졌다.

“그러지 말고 잠깐 나가실까요?”

강명문이 몸을 일으켰다. 교정을 걷는 그를 두 교사가 뒤따라갔다.

“고생했습니다, 박 선생님.”

강명문이 박은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박은환이 손을 천천히 내저었다.

“뭐 대단한 것도 아닌 걸요. 그런데 이거 정확한 증거는 아니지 않아요?”

박은환은 강명문에게 전달 받았던 파일을 떠올렸다.

연천대생인 최동석 학생이 만든 엑셀 파일이었다.

그 안에는 정확한 금액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이사장이 나름대로 모아 왔던 증거들이 대략적인 글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자료를 엑셀파일 자체를 올리기보다는, 캡처사진 정도로만 해서 인터넷에 퍼트렸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오히려 그것만이기 때문에 충분한 겁니다.”

“혹시나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할 가능성은요?”

박은환의 말에 오석상이 강명문 대신 대답했다.

“실체도 없는 거, 잡을 수도 없을 거야. 게다가 명예훼손? 오히려 저게 진짜 부정부패이기에 마음대로 명예훼손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

“그렇죠. 만약 명예훼손이라고 고발하는 순간, 언론이 달려들 거고, 그때 제대로 조사가 들어가서 진짜 부정부패 증거자료였다는 게 밝혀지면….”

“지금보다 더 위험해지겠군요.”

강명문은 강세혁 검사와 이야기했던 사항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먼저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이쪽에서 먼저 자료를 대놓고 풀어 버리면, 그때야말로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인터넷 찌라시처럼 던져두면, 누군가는 그 미끼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분명 그쪽에서는 액션을 취할 터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보여질 때가 바로 강명문이 움직일 때였다.

“하긴, 설령 고발당하더라도 제가 했다고 하면 되니까요.”

갑작스런 박은환의 말에 오석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까짓거 명예훼손죄 받고 교사 그만 두면 되니까요.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 소리일랑 하지도 말게.”

오석상이 부릅뜬 눈으로 박은환을 바라봤다.

“정말로 학생들을 생각한다면, 이 학교, 강문고를 어떻게든 살리겠다고만 생각하게.”

“저도 오 선생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오석상에 이어서 강명문도 입을 열었다.

“지금 시점에서 이제 많은 선생님들이 고민하실 겁니다. 학교를 위해 내 모든 걸 희생하겠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강명문은 전생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때 모든 걸 내놓고 싸우겠다고 했던 소수의 교사들은 모두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무턱대고 공격만 했기 때문에 상대의 공격을 모두 받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적당히 몸을 사리는 것도 지금 시점에서는 필요한 전략이었다.

“그러니 치고 빠지고를 반복해야 합니다. 때로는 내 몸과 지위도 지키고, 때로는 상대에게 스트레이트 펀치도 날려야죠.”

강명문의 말에 오석상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고마워요. 그럼 저도 여기 반드시 남아서 학생들 가르치겠다는 각오로 맞서 볼게요.”

“그거야 그거. 좋아, 좋아!”

오석상이 껄껄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강명문은 핸드폰을 들었다.

“아, 네. 지금요? 그러시죠.”

전화를 끊은 강명문이 발걸음을 돌렸다.

“어디 가세요?”

“이번 사건의 조력자가 되어 줄 사람 좀 만나려고 합니다.”

강명문은 씨익 웃으면서 전화의 주인공을 찾아갔다.

“류 선생님.”

“어, 어, 어. 왔어?”

강명문이 도착한 공터에는 류지훈이 서 있었다.

“강 선생. 혹시 그거….”

“저는 아닙니다.”

고개를 좌우로 젓는 강명문을 확인한 류지훈이 들고 있던 손을 스륵 내렸다.

“그, 그치. 자네일 리가 없지! 응, 그치!”

“네. 그런데 그거… 좀 위험해 보입니다.”

그 말에 류지훈은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동자로 강명문을 바라봤다.

“왜, 왜?”

“그렇게 디테일한 내용까지 알고 있는 건 둘 중 한 명밖에 없습니다.”

류지훈의 목에서 침이 꼴딱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곽형조, 천우원.”

“!!”

그 말에 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 충분히… 그럴듯해…. 어떻게든 교감선생님을 압박하고… 나까지 엮어서….”

주먹을 꽉 쥐고 분노에 찬 얼굴로 낮은 신음소리를 내뱉던 류지훈은 냉철하게 생각했다.

그럼 지금 시점에서 나는 뭘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사진들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류 선생님.”

“응?”

고민을 하는 류지훈에게 강명문이 물었다.

“제안 하나 드리겠습니다.”

강명문은 류지훈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귓속말을 들은 류지훈이 입을 벌렸다.

“그, 그그, 그걸?”

“네. 그걸 챙겨야 합니다.”

긴장감이 서린 눈빛의 류지훈을 향해 강명문이 진지하게 말했다.

“이사진이 갖고 있는 파일. 그게 있어야 이사진과 대등한 입장이 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강명문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류지훈이 무겁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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