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89화 (189/252)

189화. 요물

“파, 파, 파일?”

한 교감이 불안한 눈빛을 하고서 말했다.

“그, 그거… 미미미, 미안하네. 아무래도 조, 조금 어려울, 어려울 것 같….”

“교감선생님.”

나는 더듬거리면서 변명을 이어 가려던 한 교감의 말을 끊고는 그의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못 얻을 것 같으세요? 알겠습니다.”

내 반응이 의외였는지 한 교감이 당황스러워했다.

“그, 그 파일, 갖고 싶어 하지 않았나?”

“그렇기는 한데, 딱히 필요 없어졌습니다. 그게 없어도 강문고의 부정부패를 잡을 방법은 있으니까요.”

그러자 한 교감이 다급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는 내 팔을 붙잡았다.

“그러지 말고, 어… 그렇지! 내가 잘 챙겨줄 테니까….”

“제가 그런 건 원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계실 텐데요.”

한 교감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그런 뜻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 앞으로 학교에서 꾸준히 주도권을 행사하게 해 줄 거라는 거야. 돈을 주거나 그런 게 아니야. 오해했다면 내가 미안하네!”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없는 동안….”

“안식년이라도 받으시는 겁니까?”

내 말에 한 교감이 말을 멈추고는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부정이 들키기 전에 해외로 도피라도 하시려고요?”

“그, 그걸 어떻게….”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이사진이 한 교감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생각해 봤다.

지금 시점에서 굳이 해외로 떠난다? 이사진들로서는 좋은 방향은 아니었다. 비리가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강문고의 교감이 사라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의심할 여지는 충분했으니까.

그렇다면 이 도피는 한 교감을 쓰고 버리는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미였다.

‘한 교감 정도의 직급이 움직여야 하는 사안이라면 역시나….’

몇 가지 사안이 떠올랐지만 그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하나였다.

바로 방금 전 오성주에게서도 들었던 것.

관선이사 파견이었다.

전생에서는 강문고의 비리가 밝혀지고, 이사진들이 반성을 한다면서 추가 이사를 파견했다.

바로 관선이사. 임시이사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법인의 이사에 결원이 생길 경우 이해관계인의 청구에 의해 법원이 선임하는 이사였다.

당시 이사진은 이사장 퇴진으로 인해 발생한 결원을 관선이사로 해소하고자 했다.

당연하게도, 이사진과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으로 말이다.

“알겠습니다. 교감 선생님도 쉬다 오실 때가 됐죠.”

“그, 그,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요 몇 년간 제대로 쉬지를 못했더니 허허허.”

한 교감이 멋쩍은 듯 고개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럼 저는 그사이에 학교 내의 부정부패들을 좀 찾아보겠습니다.”

“!!”

그러나 내 말을 듣자마자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괜찮겠죠, 이사장님?”

“물론이죠. 강 선생님 편한 대로 찾아보세요.”

온화하게 웃으면서 내 의견에 동조해 주는 이사장을 향해 감사인사를 했다.

“가, 강 선생. 그…GF파일은….”

“진짜 괜찮습니다. 그거 없어도 이미 많은 증거들을 확보했으니까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 교감 앞에서 굳이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이사진을 도와서 해외로 도피하고, 관선이사 파견을 건의하려고 하는 이유를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사진들로부터 약점 잡힌 일들, 이번 일 처리만 잘 해 주면 모두 없던 일로 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을 게 뻔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그는 생각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GF파일만 없으면 자신의 부정부패를 알릴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게 지금 깨졌기 때문이었다.

“즈, 증거, 증거라고?”

내 예상이 들어맞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 교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그러니까 조금 쉬다 오세요. 요즘 많이 바쁘시지 않았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한 교감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한 교감은 복잡한 눈을 하고서 이사장실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이사장 앞으로 달려갔다.

“이, 이이, 이사장님!”

“네, 교감선생님.”

이사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녹차향을 진하게 풍기는 찻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과, 과과과, 관선이사, 관선이사 말입니다.”

한 교감은 들고 있던 종이를 이사장의 책상 위에 촤륵 펼쳤다.

“여, 여여, 여기 있는, 사, 사람들은, 저, 전부 제외, 제외해 주십쇼!!”

“제외요?”

이사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했다.

“예, 예! 제가 이 사람들, 그… 좀 찾아봤는데, 무무, 문제가 심, 심각합니다!”

“흠… 하지만 방금 전까지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마 내가 오기 전에 이야기가 일부 진행된 모양이었다. 한 교감이 잠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강 선생! 자네도 이걸 꼭 보게. 이 사람들은 믿으면 안 돼!”

“이유를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 이, 이 사람들, 이거 봐! 소소, 속내가 아주 시, 시커멓잖아!”

도대체 추천 명단에 있는 사람들의 어디를 어떻게 봐야 시커멓다고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한 교감은 정말이지 처절해 보였다.

“자, 잘 듣게. 여기서 이 사람은….”

한 교감은 한 명 한 명 추천 인원에 있던 3명의 명단을 짚어보면서 그들의 특징을 알려 주었다.

“이 사람은 서울시의원의 사촌 형님이야. 여기는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데 곽형조 이사님의….”

나는 조용히 그가 설명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가만 들어보니 오성주가 나보고 조심하라고 했던 이유도 알 법했다.

‘구의원 정도는 쉽게 누를 수 있을 정도의 권력가들과 가까웠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종이에 적힌 명단을 노려봤다.

“자, 이거 보게! 나, 나는 절대, 절대 자네를 배신하거나 그런, 그런 게 아니라네. 그렇지?”

“배신이요? 배신하려고 하셨습니까?”

급한 마음에 자기 무덤을 파고 있던 한 교감은 내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교감선생님.”

한 교감에게 이사장이 다가왔다.

“이런 내용들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관선이사 파견은 추후 제가 담당해서 진행하도록 하지요.”

“그, 그럼….”

“그러니 꼭 GF파일을 찾아오세요.”

이사장은 전에 없이 사나운 눈매를 하고서 한 교감을 바라봤다.

“교감선생님이 지금까지 해 온 비리에 대한 증거들. 제가 모두 갖고 있습니다.”

“이, 이이, 이사장님, 제, 제발….”

“그러니까 이사진에게는 이 인원들 추천했다고 이야기하세요. 대신, GF파일은 찾으셔야 해요.”

생각보다 강경한 이사장의 모습에 나도 조금은 놀랐다.

‘전생에서도 이랬으면 버텼을 텐데?’

아마 전생에서는 이사장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힘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생각을 잠시 멈추고 다시 이사장과 한 교감으로 시선을 향했다.

“제, 제가, 분골쇄신하겠습니다!”

“좋아요. GF파일만 찾아오세요. 처우는 그 후에 알려드리죠.”

고개를 연신 조아리던 한 교감은 부리나케 이사장실을 뛰쳐나갔다. 한 교감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이사장에게 물었다.

“무서워서 혼났습니다.”

“강 선생님만 하겠어요? 조신자 이사나 한무회 이사한테 했던 거 보면 아직도 멀었지요.”

입을 오른손으로 가리고 호호 웃는 이사장의 앞에 위치한 소파로 자리를 이동했다.

“GF파일을 찾아오면 봐주실 겁니까?”

“하는 거 봐서요. 지금은 그럴 생각 없지만 말이죠.”

아마 이사장의 지금 성격이라면, 벌은 벌대로 받으라고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그나저나 GF파일을 찾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아마 한 교감은 찾더라도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할 겁니다.”

“왜죠?”

“다른 일이 분명 생길 겁니다.”

내 말에 이사장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포기하는 눈치를 보였다.

“강 선생님 예측이면,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봐야겠죠. 아니, 직접 하실 거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는데요?”

“절반은 정답이십니다. 이번에도 좀 날뛰어도 괜찮습니까?”

“물론이죠. 이번에도 믿을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어느새 내 앞에 놓여 있는 이사장표 녹차가 담긴 종이컵을 들었다.

“향이 좋군요.”

인자한 미소를 짓는 이사장 앞에서 나는 천천히 녹차를 음미했다.

* * *

“강, 강은숙 이사장은 그 인원들이 꽤, 마음에 든다면서 명단을 가지고 갔습니다.”

이사장실을 나온 한명심은 곧장 곽형조, 천우원, 주현서가 기다리고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거짓말을 섞어가면서 보고했다.

“좋아. 결정은?”

“아마 일, 일주일 내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계속해서 말을 더듬거리는 한명심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곽형조가 쯧, 혀 차는 소리를 냈다.

“긴장 좀 풀어. 자네 가족들 해코지한다고 해서 겁이라도 집어먹었나?”

“그, 그런, 그런 거 아닙니다!”

한명심은 열심히 멀쩡한 척 연기를 했다.

‘강 선생이 갖고 있는 증거가 뭔지 모르겠어!’

속으로 그는 강명문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증거라면 어떤 증거일까? 만약 부정을 저지른 기업으로부터 정보를 얻은 걸까? 박은환 선생의 아버지가 차장검사라더니 거길 통해서 받았을까? 아니면 강명문이 그 특유의 실력으로 누군가로부터 첩보 정보라도 얻었나?

그런 고민들을 계속해서 해나갔다.

그러나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현 상황에서 누가 더 위험한 상대인가에 대한 고민만 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알지도 못하는 증거를 갖고 있는 강명문이 이사진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하다!’

곽형조, 천우원이 갖고 있는 자료는 어디까지나 GF파일뿐이었다.

그렇다면 언젠가 기회를 틈타서 GF파일을 찾아내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삭제만으로는 답이 될 수 없었다.

사본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따라서 동귀어진이라도 하려면, 이 파일을 별도로 챙겨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한명심은 남은 평생을 앞에서 끌끌 웃고 있는 이사진들에게 휘둘리고 살 게 뻔했다.

“한명심이, 오늘처럼만 해. 성과가 잘 나오면 제대로 챙겨줄 테니까.”

“네,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답을 하면서 고개를 숙인 한명심은 여전히 짱구를 열심히 굴리고만 있었다.

* * *

며칠 뒤, 학교 강당에서는 졸업생 선배들의 진로진학행사가 열렸다.

작년 역전 케이스의 주인공들. 동석이, 정석이, 명천이가 주인공인 행사였다.

당연하게도 녀석들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무엇보다도 내신, 모의고사 성적이 모두 애매한 중상위권 학생들로부터의 인기가 엄청났다.

“선배님, 제가 내신이 3등급 조금 안 되는데….”

“의대 말고 보건계열로 가려고 하는데,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까요?”

“논술 지금부터 해도 안 늦어요?”

그런 질문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고, 졸업생 녀석들도 쉽게 대답을 해 주었다.

“고생들 했다!”

행사가 끝나고 녀석들을 만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셋 다 고생했어. 뭐라도 먹으러 가자.”

“오, 진짜 고기에 소주!?”

“그래. 고급 삼겹살 가게야. 이미 다른 친구들이 자리 잡아 뒀댄다.”

행사가 끝나기 직전, 은장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학교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있는 고깃집에 예약을 해 두었다는 연락이었다.

오늘 행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은장이와 태성이, 정아, 채영이도 같이 오기로 했었다.

“그러니까 먼저들 가 있어. 나는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고 갈게.”

“네, 쌤! 빨리 오세요! 참, 그리고 이거요!”

동석이가 꾸벅 인사를 하고 작은 물건을 건넨 후 친구들을 데리고 강당 밖으로 나갔다.

“박 선생님도 같이 가시죠?”

“네, 제자들이 이렇게 컸다고 같이 술자리도 하니까 새롭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지난번에는 숙소에서 마셨으니까 밖에서 마시는 맛이 조금 덜하기는 했으니까요.”

녀석들의 졸업여행 때를 떠올리면서 싱긋 웃었다. 박 선생이 스키장 때 생각난다면서 조용히 웃었다.

그렇게 잠시간 과거 추억 이야기에 젖어 있다가 박 선생이 조심스레 물었다.

“강 선생님.”

“네.”

“괜찮으신 거죠?”

박 선생이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위험할 수도 있어요. 역공 당할 수도 있고요. 그 사람들, 생각보다 권력이 막강해서 쉽게 뚫을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내가 부수려고 하는 상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되었다면서 이야기를 했다. 아마 아버지로부터 정보를 얻었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차장검사여도 정치인이나 그 관계자를 쉽게 건드릴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박 선생은 순수하게 나를 걱정해준 것이었다.

“이제 와서 그만 두기도 뭣 하지 않습니까. 끝장을 봐야죠.”

“그럼 저도 적극적으로 도울게요.”

박 선생이 결심이라도 한 듯 어깨를 한껏 세웠다.

“뭐든 말씀하세요.”

“…정말입니까?”

“어… 너무 무리한 거는 말고요. 꼭 이렇게 말하면 말도 안 되는 거 부탁할 것 같거든요.”

나는 박 선생을 향해 웃어 보이면서 딱 한 가지를 부탁했다.

“그럼 이것만 좀 부탁드립니다.”

내가 부탁한 건 하나의 파일에 대한 것이었다.

“이게 뭔데요?”

박 선생이 내 손에 들린 USB를 보면서 궁금해했다. 나는 방금 전 이걸 건네고 사라진 녀석을 떠올리면서 가볍게 웃었다.

“동석이가 만든 건데, 이게 참 요물입니다.”

USB 안에서 꿈틀대고 있는 엑셀 파일 하나를 생각하면서 입꼬리를 한껏 끌어 올렸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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