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86화 (186/252)

186화. 아빠의 코스프레 (1)

“잘 나왔는데요?”

차 선생이 봉사활동 홍보 기사를 보면서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번 홍보 기사는 박 주임과 의논했던 내용 그대로 작성되었다.

<고등학교 선후배들, 끈끈한 애교심으로 남다른 봉사정신 발휘하다!>

기사는 효과적이었고, 댓글도 나쁘지 않았다. 대부분 강문고 학생들의 활동을 응원, 지지해 주는 글들이었다.

“이거면 됐습니다. 신 기자님이 잘 만들어 주셨네요.”

나는 신 기자가 봉사활동 끝나기 전에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선생님, 또 특종 나오면 연락 주셔야 해요?

-네, 제일 먼저 연락드릴게요.

-아싸! 강 선생님만 믿습니다!

그렇게 말하던 신 기자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 수학여행, 이사진과 교무부장 비리 있잖아요? 그거, 저도 캐고 있는데 쉽지 않아요. 오성주 의원님 만나면 도움 요청해 보셔야 할 거 같아요.

‘오성주란 말이지….’

민주의 아버지 오성주와의 면담은 내일로 예정되어 있다.

순수하게 입시 방향에 대한 상담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면담은 민주의 대입방향이 아닐 게 분명했다.

“흠….”

과거 오성주가 했었던 활동.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이후 강남서초권 교육정책에 변화가 있었나? 입시와 관련된 변화가 어떤 게 있었지?

이 사항들을 떠올려야만 민주의 아버지, 오성주와 면담할 때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쌤!”

그렇게 입시와 오성주를 연결해보려 하는데, 민주가 나를 찾아왔다.

“조회는 아직인데?”

“그게 아니라…내일 아빠 오시죠?”

민주는 오늘 아버지와 같이 면담을 하는게 조금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내일 상담 잘 부탁드린다고요, 헤헤.”

나는 가볍게 웃어 보이는 민주를 향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성주라….’

잠깐 오성주와 전화통화했던 때를 떠올렸다.

아마 그는 내일 정책 이야기를 꺼낼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쌤, 바로 조회 하시죠?”

“그래야지.”

“네! 알겠습니다!”

민주는 힘차게 대답을 하고는 부리나케 교실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잠시간 멍하니 바라본 후, 나도 조회를 하러 교실로 올라갔다.

“조회 시작한다. 자리에들 앉아!”

문을 팡팡 두드리면서 3학년 3반 교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은솔이가 칠판에 무언가를 적다가 황급히 몸 뒤로 무언가를 숨겼다.

“뭐 숨겼냐?”

“아, 아뇨, 그게….”

은솔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태웅이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박수를 쳤다.

“꺼내, 꺼내!”

태웅이의 신호에 맞춰 은솔이가 몸 뒤로 숨긴 물건을 꺼냈다.

“…이게 뭐야?”

“그… 친구들하고 같이 만든 디저트입니다!”

은솔이가 꺼낸 물건은 예쁜 포장지에 싸여진 마카롱 세트였다.

“쌤 자판기 커피 하나 안 받으신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태웅이가 중얼거렸다. 그 뒤로 다른 3반 학생들도 내 시선을 슬금슬금 피했다.

“했는데?”

“그… 그래도 직접 만든 거면 괜찮… 지 않을… 까 해서요오….”

은솔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의 날은 어제였지만, 어제는 일요일이었기에 학생들이 오늘 챙겨준 것이었다.

나는 성큼성큼 은솔이에게 다가가서 녀석의 손에 들려 있는 마카롱 상자를 잡았다.

“고맙다.”

“어?”

“진짜?”

민주와 은솔이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다른 녀석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마음만 받으마. 보자… 마카롱이 총 20개니까, 다 같이 나눠 먹자. 3학년 3반 디저트 파티다!”

물론, 이어진 내 말에 다시금 실망했지만 말이다.

“나한테 뭐 주고 싶으면, 너희 선배들처럼 대학교 합격해서 대학생 된 후에 다시 와라. 알았냐? 대학생도 아닌 너희들은 나에게 선물할 자격이 없어!”

““네에….””

녀석들의 마음이 어떤지는 알고 있다. 지금처럼 입시를 봐 주고, 학교생활을 하도록 도와 준 교사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내가 이걸 받을 수는 없었다.

“대신, 이거 하나씩 들고 사진만 찍자. 보니까 칠판도 열심히 꾸몄네?”

내 말대로 녀석들은 아침에 오자마자 칠판에 각종 메시지들을 적어 놓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쌤 덕분에 학교가 즐겁다, 이런 이야기들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이 칠판을 그냥 죽이기는 좀 아깝다는 생각은 들었다.

“자, 자, 은솔이가 만든 마카롱 하나씩 들고 칠판 배경으로 하나 찍자.”

“쌤도 하나 드세요!”

“그거 잘못 퍼져서 학생한테 뭐 받았다고 소문나면 어떡하려고? 난 됐어.”

은솔이가 아쉽다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지나가던 지석 선배를 붙잡고 사진 하나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선배는 투덜대면서도 교실 뒤에서 단체 사진을 하나 찍어 주었다.

“나도 제자들한테 이런 거 받아 보고 싶다.”

그렇게 한 마디 툭 내뱉은 지석 선배가 자기 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반 제자들에게 축하를 받았는지 우와아- 하는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쌤도 저렇게 환호 좀 해 주시면….”

“너희들 아침부터 입시준비는 안 하고 이러고 있었다는 거지?”

내 말에 학생들이 숨을 헙 삼켰다.

“좋아. 너희는 오늘 보충수업으로 자습하고 가라.”

“아….”

“아…는 무슨 아! 중간고사 끝나고 좀 풀어줬던 거 같아. 토요일에는 봉사활동도 하고 말야. 그치? 오늘은 내일 있을 수행평가 준비도 하면서 대입 준비들 해!”

녀석들의 한숨 섞인 불평을 들으면서 태연하게 전달사항들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뭐.’

학생들의 책상 위에 올려진 마카롱을 보면서 은솔이의 학생부에 추가할 내용을 구상했다.

<스승의 날을 기념해 학급 친구들과 특별 수제 디저트를 만들어 교사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학급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냄.>

* * *

다음 날 방과 후, 나는 미리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던 민주와 만났다.

민주의 옆에는 기사로 몇 번 봤었던 남성이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강 선생님, 오성주입니다.”

“반갑습니다, 아버님. 강명문입니다.”

내 말에 오성주의 수행비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의원님, 이 아니라 아버님, 이라 해서 기분이 상했나?

반면 오성주는 태연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앉아도 되겠습니까?”

“네, 앉으세요.”

내가 가리킨 의자에 앉은 오성주를 보면서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했다.

“민주에게 입시준비사항들은 많이 들으셨습니까?”

“네, 요즘 입시 준비 때문에 아주 즐거워합니다. 대학 준비를 이렇게 재미있어 하는 건 처음 봅니다, 하하하!”

오성주가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간 민주의 입시준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주야, 이제 아버님하고 둘이서만 잠깐 이야기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먼저 교실로 올라가 있을래?”

민주는 알겠다고 답하고는 활짝 웃으면서 교실로 돌아갔다.

민주가 교무실을 나가는 걸 확인한 오성주가 입가에 미소를 지니고 말했다.

“강 선생님, 역시 소문대로입니다. 그런 선생님께서 저를 조금만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오성주는 준비한 질문이 있다면서 말을 꺼냈다.

“민주에게 들은 바로는 강 선생님의 교육 방침이 적극적인 학생, 자기주도성이던데,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학생이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강의를 들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학생들의 학업동기에 대해 설명했다. 동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동기가 있어야 탐구력을 보여줄 수 있다 등을 이야기했다. 오성주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적당한 추임새를 넣었다.

“그래서 제가 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민주의 학생부를 펼쳐보였다.

“민주는 경영학과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네, 맞습니다.”

“이상하군요….”

민주의 학생부를 하나하나 살피면서 체크한 내용들을 오성주에게 보여 주었다.

“어떤 의미이신지….”

“민주가 경영학과를 희망하게 된 동기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내 말에 오성주가 잠깐 답변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음…학생부 기재 내용이 부실한 것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나는 오성주를 슬쩍 바라봤다.

“민주의 경영학과 준비를 아버님이 지나치게 응원하는 것 같아서요.”

민주의 학생부에는 자신이 왜 경영학과를 목표로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았다. 작년부터 나를 비롯해 박 선생, 지석 선배 등 여러 교사들과 함께 학교 활동도 관리를 해 왔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민주는 왜 경영학과를 목표로 하는가?

간단하게 생각하면 답은 나온다.

공부를 잘하는 인문계열 학생이라면 다들 서울한국대 경영학과를 목표로 한다.

이과에서 최상위 학과라고 한다면 의예과라고 하는 것처럼, 문과에서 최상위 학과는 경영학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민주가 경영학과를 준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공정무역, 경영전략, 마케팅 등.

민주는 지금까지 여러 활동, 주제들을 통해 경영학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왔다.

그렇기에 작년부터 지금까지 학생부에 기재할 활동들도 풍부해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가지면서는 직접 사회적기업을 설립해서 사회에 도움을 주려 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경영인가?

오히려 민주의 가치관이나 관심사를 보면 정치외교학과나 사회학과를 목표로 했다고 해도 어울린다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야! 우리 시사토론 하자!

-이번에 찾아본 이슈는 빈곤정책에 대한 건데….

-작년에 보면 취업률이랑 고령화가….

이렇게 시사에 대한 관심도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민을 해 봤습니다. 왜 민주는 이런 모습들을 갖고 있는데, 그 많은 학과들 사이에서도 굳이 경영을 준비하려고 할까, 말입니다.”

오성주는 잠시간 나를 바라보더니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크흠, 그게….”

“민주 아버님.”

“네, 네.”

“딸을 로스쿨로 보내려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내 말에 놀란 오성주가 당황한 듯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앞으로 몇 년 뒤, 로스쿨로 진학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상경계열 학생들이 될 걸로 예측됩니다. 당연히 로스쿨 신입생들은 스카이 출신 학생들이 대부분일 거고 말이죠.”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2020년이 넘어가면서 대한민국의 입시에서 문과는 상경계열, 이과는 의치한수약이 강세를 형성한다.

당연하게도 의치한수약은 각 학과에 맞춘 전문직업을 갖게 된다.

그리고 대다수의 상경계열 진학 학생들은 로스쿨 진학을 하게 되었다.

법학과가 하나씩 폐지되면서 법학과 인원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취업난도 하나의 역할을 했다. 경영학을 전공해서 창업을 하거나 취업을 하기가 어렵다보니 대다수의 학생들이 전문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게 된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전문자격증이 바로 변호사자격증이었다.

“법조계는 출신 학교, 학과에 민감한 곳입니다. 따라서 출신 로스쿨 학교로 파벌이 나뉘게 될 거고요.”

“….”

“그리고 아버님은… 민주에게는 비밀로 하고, 무조건 서울한국대 경영학과로의 진학을 강요했을 겁니다.”

그러자 오성주가 한숨을 깊게 쉬었다.

“민주 아버님.”

“….”

“민주를 서울한국대 경영학과로 보내려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향후 로스쿨이 갖게 될 최대의 문제점.

그건, 최초 로스쿨 시행의 목적이 퇴색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다양한 사회경험을 갖춘 전문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법조계라는 그들만의 카르텔을 세우는 목적으로 변질되는 것.

내 앞에서 침묵을 일관하는 오성주 의원도, 그런 카르텔을 딸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오성주가 고개를 위로 들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수행비서를 향해 손짓을 했다.

오성주를 바라보던 수행비서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비웠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입니다.”

지금의 대입 전형에서 인문계열의 최고봉이었던 법학과가 설 자리는 없어졌다.

하지만, 오히려 법조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졌다.

“그러니 이런 결론을 내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는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정말 민주를 생각하신다면….”

강남서초권에서 차기 구청장으로 유력하다 불리는 오성주.

지금까지 그 어떤 촌지도 주지 않고, 부정한 일로부터도 최대한 벗어나 있던 의원.

“지금부터는 솔직해지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민주를, 딸을 위한다는 이유로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딸을 아버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 하지 마십시오.”

바로 자신의 정치적 성장, 권력 유지를 위해서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민주는 아버님을 평생 원망하고 살지도 모릅니다.”

오성주가 불안하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소리만이 교무실을 가득 채웠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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