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스카이라면 어떨까요?
전생에 사학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강문고에는 크나큰 변화가 일어났었다.
이번 생에서처럼 학생들이 주도권을 쥔다거나, 학부모들 중 일부가 분노를 하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강남서초 명문고, 재학생 대거 이탈>
<대학은 가야 하니까요. 강문고에서 한국고로 전학 간 고등학생 솔직 인터뷰>
바로 재학생들 다수가 한국고를 비롯한 인근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 일이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대학 입시 때문이었다.
물론 명문고등학교라면 학생들이 학교와 교사들을 믿고 전학을 가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정상적으로 수업이 진행이 되었다면 말이다.
-저 멍청한 교사들이 잘리기 전까지는 모든 수업을 거부하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했던 말이 아니라 당시 한명심 교감과 민지정 교무부장이 했던 말이었다.
그 덕분에 제대로 된 수업이 이루어지기까지 한 달 이상은 걸렸다. 당연히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그 사태에 불안감을 느꼈다.
-수업을 안 하니까 친구들도 공부 안 하고….
-자습을 하기는 하는데, 그 시간에 다른 학교에 있었으면 정규 수업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전학 갔던 학생들 대다수가 이런 마인드였었다.
때문에 이번 용희 어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있어 의외의 모습은 아니었다.
“건축이 싫다고 하셨죠?”
“네.”
“하지만 스카이라면 어떨까요?”
“…스카이 싫어하는 학부모가 있나요?”
따지듯 묻는 용희 어머니를 보면서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어머님이 걱정하시는 바가 어떤 건지는 알고 있습니다.”
용희 어머니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내 말을 기다렸다.
“대학 때문이시죠? 제가 용희 고구려대 보내겠습니다.”
아무리 사건사고가 터지고, 학생들이 움직여도, 쉽게 바뀌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그 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 즉 대다수의 학부모들이었다.
-학교에 내신비리가 있었다고? 우리 애는 학년이 달라서 피해를 보지 않았으니 괜찮아.
-횡령 문제가 있었어? 횡령이 있으면 어때, 대학만 잘 가면 되지.
-학교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수업이 제대로 안 돼? 그런 전학 가야지.
태웅이나 우현이처럼 직접 그 사건을 겪은 학생들이 아닌 이상, 그런 일들이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이었다.
이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일. 바로, 대학입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학생들은 친구들이 위험했었다는 사실, 친구라 생각했던 녀석이 성적 조작한 사실 등을 보면서 분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걸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본 학부모들은 그 일들이 그저 다른 사람들 일처럼만 여길 뿐이었다.
때문에 용희 어머니도 용희가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는 일을, 입시에 도움 되지 않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럼 봉사활동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입시적으로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용희에게는 이렇다 할 매력적인 활동이 별로 없습니다.”
나는 용희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2학년 때까지는 건축에 대한 관심을 드문드문 보여 줄 수밖에 없었다는 점, 내신 성적은 상향 곡선이라 긍정적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3학년 때 채워야 하는 비교과 영역들까지 전부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 봉사활동이 용희에게는 고교 생활 중 가장 인상 깊은 활동으로 만들어질 겁니다. 면접, 자기소개서 모두 이 활동이 중점이 될 거고요.”
“1차도 합격하지 못하면 말짱 꽝 아닌가요?”
“용희가 지원할 전형은 학교장추천 전형으로 일괄 면접입니다.”
언젠가 용희에게도 설명했던 내용들을 용희 어머니에게도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용희 어머니가 눈가를 살짝 떨었다.
“저, 정말인가요?”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는 용희 어머니에게 노트북을 꺼내 한글 파일 하나를 열었다.
<2012학년도 고구려대 수시모집요강>
스크롤을 내리다 학교장추천 전형 설명 파트에서 화면을 멈췄다. 용희 어머니는 내용을 확인하더니 입술을 살짝 떨었다.
“용희는 말도 잘하고, 전공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습니다. 반드시 면접이 있는 전형을 준비해야 하는데, 3학년 때 비교과를 채우지 못하면 면접 때 활용할 소재가 제한됩니다.”
“….”
“그러니 이 봉사활동은 용희에게 입시 준비에 있어 최고의 무기가 될 겁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그만두라니, 그건 전쟁터에 총을 들고 가려다가 버리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용희 어머니는 인상을 쓰면서 고민했다.
“그래도 고구려대면 다른 학생들도 모두 최상위권 아닌가요? 아무리 면접을 잘 봐도 동점자가 발생하면 성적으로 자를 텐데….”
“아뇨. 이번 고구려대 학교장추천 전형은 동점자 모두 선발입니다.”
내 반박에 용희 어머니가 입을 벌리고는 다물지 못했다. 그러다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했다.
“선생님, 저는 아들이 건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건축공무원은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전에 용희와 상담을 할 때 부모님을 설득하는 무기로 ‘건축 공무원’을 꺼내라고 했었다. 용희도 그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용희는 그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시 이쪽으로 오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용희 어머니에게 손짓을 했다. 용희 어머니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아….”
내가 가리킨 방향에는 일일 현장 반장을 체험하고 있는 용희가 있었다. 용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친구들, 후배들, 선배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건 이쪽으로!”
“뜯은 장판은 따로 정리해 두세요!”
“판넬 올라가기 전에 사다리 튼튼한지 확인하고, 2학년 후배들은 졸업 선배님들 장비 챙겨드려!”
그 어느 때보다도 신이 나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용희를 보면서 용희 어머니가 헛웃음을 지었다.
“지 아빠를 그대로 닮았네.”
용희의 아버지는 건축설계사로 활동하면서 아들에게 많은 현장들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니 용희가 건축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용희 어머니도 아들의 꿈을 응원했었다. 그러나 용희 아버지의 사업이 조금씩 무너지면서 용희 어머니의 생각도 바뀌었다.
-건축하다가 네 아빠처럼 말아먹을 일 있어!?
그게 3학년 올라와서 용희가 건축학과 가겠다고 했다가 어머니에게 들은 한 마디였다.
-쌤 진짜 미칠 거 같아요.
-어머니 때문에?
-네. 아버지는 진짜 좋아하시거든요? 아들 하는 일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겠다고 하시는데….
용희는 나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었고, 오늘은 그걸 해소하는 자리였다.
용희 어머니는 건축봉사 현장을 찾아와서, 이렇게 위험한 일에 아들을 보낼 수는 없다, 라는 논리를 펼치려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건축은 너무 위험….”
예상대로 용희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꺼냈다.
“위험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일은 없습니다. 사무직은 앉아서 일하니까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내 말에 용희 어머니가 입을 꾹 다물었다.
“용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나고 있습니다. 녀석이 공부할 때도 저런 표정을 지었던가요?”
“… 그건 아니었죠.”
용희 어머니로서도 지금 상황이 신기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즐거워 보이는 아들을 본 적이 있었을까.
“저렇게 즐거워하는 건 오래간만에 보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던 용희 어머니를 향해 결정타를 날렸다.
“게다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면서 입시 준비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고구려대입니다.”
지금까지 용희가 보여 주었던 다수의 활동들. 그리고 여러 사건들 이후에 본인이 탐구했다면서 들고 왔던 결과물들을 보면, 정말 건축에 미쳐 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쌤, 태웅이 사건 이후로 생각 좀 해 봤어요.
-뭘?
-사실 옥상이 동아리활동 같은 거 때문에 자주 오픈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다 사고 날 수도 있는 거고요. 극단적… 이지 않더라도 모종의 사고 때문에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수학여행 사건이 있고 나서 며칠 뒤였다.
용희는 태웅이 사건 이후로 계속해서 고민했다면서 간단한 설계도를 보여주었다.
-학교 건물 외벽에 센서를 설치해서 여기에 사람이 떨어지면 센서가 감지하고, 바닥에 그물이나 쿠션 같은 게 펼쳐지는 걸 생각했어요.
-아예 그물을 벽에다 설치하는 건?
-그러면 외관을 해치잖아요. 그래서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보여 줄 수 없어요. 어쨌든, 당장은 어렵겠지만, 나중에는 꼭 이런 시스템을 건축물에 적용해 보고 싶어요.
작년 동석이처럼 자신의 희망 분야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까지 이어왔다.
이 녀석은 반드시 면접이 있는 전형을 준비해야 한다.
전원 면접을 보는 고구려대 학교장추천 전형. 나는 녀석이 이 전형에서 반드시 합격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게다가 건축공무원처럼 이쪽 분야도 공무원을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용희도 그쪽을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요.”
나는 용희 어머니에게 용희와 나눈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전했다. 건축공무원 이야기, 수학여행 이후의 설계도면 등.
그 이야기를 들은 용희 어머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우리 아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습니다.”
“남편이랑 며칠간 이야기 많이 하는 것 같았는데, 그거 때문에….”
그리고는 시선을 용희에게도 다시 돌렸다. 용희는 여전히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중간중간에는 현장반장이 용희에게 추가적인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그에 맞춰 용희는 빠르게 움직였고, 봉사활동도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고구려대 건축….”
입술을 조용히 움직이던 용희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고구려대면 좋은데… 건축으로만 가능하고….”
고구려대라는 스카이 명함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축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건축은 보내기 싫다. 그 딜레마에서 고민하던 용희 어머니가 말했다.
“이 봉사활동을 해야 고구려대 입시에 유리해진다는 거죠?”
“맞습니다.”
“알겠어요. 선생님만 믿을게요.”
용희 어머니의 확답을 받은 나는 걱정 말라고 답했다.
“용희 응원 많이 해 주세요. 정말 실력도 있고 열심히 하는 녀석입니다.”
아들 칭찬에 절로 자랑스러웠는지 용희 어머니의 어깨가 한껏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이 봉사활동은 강문고 학생이기 때문에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테니까요.”
“왜죠?”
“문제가 있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가 될 겁니다.”
이번 봉사활동에서 내가 박 주임에게 요청했던 홍보 컨셉 및 인터뷰. 그건, 모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것도 친구들끼리가 아니라, 후배는 물론이고 졸업한 선배들도 함께 말이다.
“그 모든 과정들은 학생들에게 애교심을 키워줄 거고, 강문고 출신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겁니다. 입학사정관제에서는 애교심이 중요한 평가요소니까요.”
은장이가 속한 서울한국대 사회적기업 동아리의 참여, 동석이가 속한 연천대 공학동아리의 참여. 모두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이들의 유대를 보여줄 수 있는 활동이었다.
당연하게도 학생부에 이 내용이 들어가고, 자기소개서에서 어필이 되면, 면접에서 반드시 물어볼 사례가 될 것이었다.
“그런 사례들이 있고 없고가, 학생이 얼마나 지원한 대학교에도 애정을 가지고 다닐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민주, 은솔이, 용희는 애교심의 측면에서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어? 엄마?”
잠깐 숨을 돌리러 온 용희가 어머니를 보며 깜짝 놀랐다. 녀석은 봉사활동 현장에 어머니가 올 줄 몰랐는지 몸을 쭈뼛거렸다.
“아들.”
“어, 어.”
“건축, 하고 싶어?”
어머니의 말에 용희가 대답을 망설였다. 나는 녀석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였다.
“응. 하고 싶어!”
용희의 힘찬 대답에 용희 어머니가 말했다.
“고구려대 건축학과. 거기 아니면 안 돼. 다른 학교는 건축으로 쓰지 마.”
“중문대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는지 용희 어머니가 잠시 입을 뻐끔거렸다.
“…중문대도 갈 수 있나요?”
“당연합니다.”
내 대답을 들은 용희 어머니가 숨을 삼켰다. 그리고는 전에 없던 미소를 지었다.
“그럼 고구려대랑 중문대. 그 밑에는 안 돼.”
“…진짜 준비해도 돼?”
“응. 진짜 해도 돼. 대신 고구려대, 중문대만. 그 밑에 학교 갈 거면 건축으로 가지 마.”
용희가 주먹을 꽉 쥐고 나이스!를 연신 외쳤다.
“쌤!!!! 감사합니다!!!”
“나한테 왜 감사해?”
“그냥요! 전부 다요!”
나는 한층 들떠 있던 용희의 어깨를 잡으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대로 해 보자. 고구려대 합격해서, 어머니께도 보여드려.”
용희 어머니 설득은 끝났다. 그럼 이제 남은 건 결과였다.
“당당하게, 내가 건축 분야에서만큼은 어느 누구보다도 잘한다는 걸 보여드리는 거야.”
이제 용희와 용희 어머니가 동시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웃는 두 사람을 보면서 생각했다.
2012학년도 입시가 조금씩 윤곽을 갖춰 가고 있다고 말이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