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83화 (183/252)

183화. 5월의 입시 준비

“그… 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상담일자를 잡아서….”

[다음 주 화요일.]

오성주는 귓가에 댄 핸드폰을 쥐면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네, 화요일 몇 시가 좋으신가요?”

[방과 후, 오후 5시쯤에 괜찮습니다. 이때 어떠세요?]

강명문은 그 외에는 일정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특히 토요일은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어렵다고 했다.

아마 봉사활동일 것이다.

딸에게도 이번 토요일에 봉사활동을 간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기 때문에 얼추 예상이 되었다.

“그러면 화요일 오후 5시에 뵙겠습니다. 저녁이라도 어떠신가요? 제가 서초역 인근에 아주 잘 아는 집이….”

[네? 식당을 왜 잡으십니까? 학교로 오시면 되는데요?]

그 말에 오성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 네… 학교로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학부모와 교사로 만나고 싶다고. 학부모님과 상담하는데 학교가 아닌 외부에서 만나는 건 좀 그림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강명문은 차분하게 학교로 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그게 또 맞는 말이기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선량한 교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하는 정치인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었다.

특히나 자신은 강남서초권 정치인 중에서도 깨끗하다면 깨끗한 편인 국회의원이었다.

먼지 하나 생기면 언론이 어떻게 달려들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학교로 찾아뵙겠습니다. 민주도 같이 듣나요?”

[네, 가급적 같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에게도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일정을 확정하고 상담 진행 방식에 대해 전달받은 오성주는 감사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행비서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자네도 자녀가 있나?”

“네, 있습니다. 딸아이 하나 있는데 이제 초등 5학년입니다.”

수행비서의 말에 오성주가 물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 강명문 선생님, 어떤 것 같나?”

“훌륭하신 분 아닙니까? 제 딸도 나중에 강명문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수행비서가 웃으면서 말하자 오성주가 다리를 꼬면서 말했다.

“그치. 좋은 선생님이기는 한데, 조금 이상하기도 해.”

“어떤 점이 말씀이십니까?”

오성주는 눈을 감고 팔짱을 꼈다. 딸인 민주에게 들은 이야기들만 종합해 봤을 때는 참교사도 이런 참교사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강명문을 만나 함께 교육 정책에 대해 논의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방금 전, 강명문과의 통화를 마친 후 오성주는 그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다.

“지나치게 조심성이 많아.”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밖에서 저녁이라도 하자고 했잖은가? 물론 형평성 측면에서 거절하는 선생님들도 있겠지. 그런데, 언론에도 이야기를 꺼낸 만큼, 꽤 큰 사안이 되기도 했단 말이야.”

오성주가 미리 따라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레스토랑을 갈지 국밥을 먹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딱 선을 그었어. 설령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각자 계산하면 되는 건데 말이지. 게다가 딸한테 듣기로는 자판기 커피 하나 얻어먹지 않는다고 그러더라고.”

그는 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시대의 참교사는 맞아. 욕심나는 인재인 것도 맞아. 그런데 이렇게까지 조심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해. 그것도 아니면….”

오성주는 조심스럽게 수행비서를 바라봤다.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잠시간 고민을 하던 오성주는 다른 사안이 떠오른 듯 미간을 좁혔다.

“하, 근데 언론에는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이걸.”

언론에 대놓고 강명문 선생과 함께 교육 정책을 논의하겠다고 했기에, 그가 강문고로 향하면 이목이 집중될 게 분명했다.

그런데 강명문이 거절했다. 그로 인해 다른 교사들과의 자리도 성사되지 않을 게 눈에 훤했다.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으면서 오성주는 방금 전 강명문과의 대화를 다시 한번 되뇌었다.

* * *

“에휴.”

전화를 끊은 나를 보며 박 선생이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세요?”

“아뇨, 그냥 이럴 거 같았거든요.”

박 선생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민주에게 말했다.

“민주야, 아버지께는 정말 학부모 면담으로 뵙는 거니까 너무 기분 상하지 마시라고 꼭 말씀드려야 해. 알았지?”

“네, 쌤. 괜찮으실 거예요. 제가 담임쌤에 대해서 자주 말씀드렸으니까요, 헤헤.”

민주도 잠시간 감정을 추스른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는 교무실로 갈 테니까, 동아리 활동 마저 해라. 걱정 마. 상담 때 아버님과 말씀 많이 나눌 거니까.”

“네! 감사합니다!”

힘차게 대답한 민주가 교실로 돌아갔다.

“제정신이에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박 선생이 태연한 척하면서 강한 어조로 물었다.

“우리만으로는 그 파일 얻기 어려운 거 아시잖아요. 여론이 우리 편이고 정치인이 먼저 움직일 때 도움을 받는 게 좋지 않겠어요?”

박 선생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강남서초권 사학재단 비리는 단순히 교사들만의 힘으로 부딪히기에는 사이즈가 너무 컸다.

때문에 지금처럼 우리들을 향한 여론이 긍정적일 때, 적당히 그들을 이용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그게 자충수가 될 수도 있었다.

“정치적인 모습을 보이는 순간, 여론이 돌아설 겁니다.”

“어째서요?”

“알고 봤더니 저건 다 이미지 메이킹이었다, 정치계에 입문하려고 쇼를 한 거다, 이런 식의 공격입니다.”

그리고 그 공격은 한두 번, 내가 실수라도 하는 순간 일파만파 커질 것이다.

곽형조와 천우원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들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사람들, 생각보다 여론전에 능하다.’

만약, 내가 그들의 수법을 알지 못했다면, 급식비리나 수학여행 사건에 대응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박 선생에게는 내 경험을 제외한 나머지를 근거로 설명을 했다.

“확실히… 그 사람들이면 그러고도 남겠네요.”

박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역시, 엄청 계획적이세요.”

“감사합니….”

“진짜 미래라도 보시나?”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내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하하하, 제가 그랬지 않았습니까. 저 미래를 알고 있다니까요?”

“하… 됐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고, 봉사활동 준비나 하세요.”

역시, 오히려 이럴 땐 당당하게 나가는 게 의심을 덜 받는다.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토요일에 있을 봉사활동을 준비했다. 박 주임에게 연락을 하고, 신 기자에게도 연락했다.

해피플레이스 봉사의 홍보 활동. 그게 제대로만 된다면, 한층 더 이사진의 행동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 * *

“아니, 선생님,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봉사활동 당일, 강문고 학생들과 서울한국대, 연천대 학생들이 봉사를 하러 갔을 때, 신 기자가 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오성주 의원님 제안을 커트칠 수가 있어요!? 차기 구청장이라는 소리도 듣는 분이란 말이에요!!”

“정치에는 관심 없습니다. 저는 제자들 입시 준비해 주기에도 바빠요.”

특히, 오늘 봉사활동은 2학년 중에서도 많은 인원들이 참여했다. 여기에는 청소동아리를 하고 있는 경필이를 비롯해 동규, 민정, 우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녀석들에게도 비슷한 국어 수행 평가를 내주었으니 그거 때문에 참여한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저희도 선배님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최근 있었던 사태들은 졸업한 선배들을 향한 동경으로 작용한 모양이었다.

거기에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3학년 선배들까지.

2학년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한 사건들이었다.

“선배님들! 저희가 잡겠습니다!”

경필이가 힘차게 외치자 동석이가 살짝 당황해했다. 그러다 이내 미소를 지으면서 무거운 목재들을 들었다.

“고마워요, 후배님.”

“선배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아니면 제가 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네, 네. 편하게 해도 돼요, 아니 돼.”

“감사합니다, 형님!”

“그건 너무 조폭 같은데….”

“죄송합니다! 동석이 형!”

어째 동석이는 점점 더 곤란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태웅아, 이제 괜찮아?”

“아, 누나. 감사합니다.”

태웅이는 은장이를 향해 인사를 하면서 밝게 웃었다.

“언니, 그럼 이번에 SNS로 카피 뭐라고 쓰실 거예요?”

“스후라이프라고, 서울한국대 사이트가 있거든? 거기부터 홍보를 할 거야. 문구는….”

은장이, 태웅이, 민주는 벌써 셋이 어울려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여기! 트러스 이쪽으로 옮겨!”

“야! 안전모 써야지!”

“시멘트 자루는 담벼락 아래에! 대야 가져와서 저을 준비 해! 힘드니까 3명 릴레이로!”

한쪽에서는 용희가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난번에도 함께 했던 현장반장이 흐뭇한 얼굴로 지켜봤다.

“오늘 우리 셰프님이시래요. 다들 박수!”

은솔이는 예비 급식실로 설치해둔 천막 아래에서 이모님들의 환영을 받고 있었다.

“강문고 3학년 3반 배은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짧게 인사를 나눈 은솔이는 수라상 도시락 메뉴를 꺼내서 이모님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녀석들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학생들이 오늘 봉사활동에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물건을 나르거나, 조립하거나 하는 건 물론이었다. 일이 끝났다고 바로 쉬는 학생도 없었다. 다른 친구들 도와줄 일은 없는지 스스로 직접 뛰어다녔고, 용희에게 지시를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제자들을 보면서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었다.

“보세요. 저렇게 열심히 입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정치에 힘쓰겠습니까?”

“입시…요?”

녀석들은 오늘 봉사활동 내용들이 봉사활동 특기사항으로 적힐 것이었다. 민주, 은솔이, 용희, 태웅이는 동아리 특기사항으로 적힐 거였고.

“그리고 오늘 활동들이 자기소개서에 쓰일 수도 있고, 면접 질문의 답변 소재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정시 준비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요. 태웅이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확실히 태웅이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태웅이 사건을 직접 취재, 인터뷰까지 했던 신 기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래서 저는 정치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쪽 전문가분들이 알아서 하시겠죠.”

“에휴, 알았어요. 그럼 오늘은 박 주임님이랑 말씀 나눠서 홍보 기사 작성할게요.”

신 기자가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박 주임에게 달려갔다.

‘박 주임과 이야기 나눈 방향대로 잘 나오기만 하면 된다.’

박 주임에게 설명했던 사항들 중 민주, 은솔이, 용희 셋을 보여 주는 방식만 잘 나타나면, 녀석들의 입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동아리 활동 내에서의 봉사활동이기에 학교 수행평가 주제와도 연결시키기 좋았다.

“쌤, 오늘 미팅 있으세요?”

그때, 대학 동기들과 벽화 작업을 의논 중이던 동석이가 다가와서 물었다.

“미팅?”

“네. 저쪽에서 어떤 분이 쌤 찾으세요.”

동석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중년의 여성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강명문 선생님?”

중년의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다가오는 여성을 보면서 5월 중 해야 할 일정을 떠올렸다.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하면 중요할 수 있는 사항.

“아! 안녕하세요, 용희 어머님 맞으시죠?”

-용희 부모님이 강 선생 좀 만나자고 할 수도 있어.

윤 선생이 며칠 전,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래서 용희 부모님이 나를 찾아올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와서 죄송하지만, 우리 아들 상담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앉으세요.”

내가 권한 의자에 앉은 용희 어머니가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우리 아들, 지금 당장 봉사활동에서 빼 주셔야겠어요.”

나는 단호하게 요청하는 용희 어머니를 향해 똑같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뭐라고요?”

용희 어머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는 용희를 제 후배로 만들 겁니다.”

“후배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눈동자를 굴리는 용희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고구려대. 보내고 싶지 않으세요?”

“!!”

용희 어머니는 아들이 건축분야에서 일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공무원이 되었으면 한다면서 아들의 꿈을 접도록 강요해 왔었다.

‘하지만 스카이라면 어떨까?’

그리고 내 예상대로 용희 어머니의 표정은 처음과 달리 기대감을 띠고 있었다.

“앞으로 7개월. 용희를 고구려대 예비 신입생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2012학년도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사항들.

1학기 초반에는 강문고에서 발생할 여러 사건들을 막는 게 주된 일이었다면, 5월 중순이 된 지금은 학부모에게 집중해야 했다.

“그러니 올해만큼은 아들이 하고 싶은 활동, 입시적으로 하게끔 응원해 주세요.”

그리고 1학기 초반의 여러 사건과는 한 발짝 떨어져 있는 학부모들과의 상담이 필요했다.

용희 어머니와의 상담이 그 첫 단추였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