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82화 (182/252)
  • 182화. 안 됩니다.

    학교 일정을 마치고 삼성동에 위치한 일식집으로 향했다.

    “일찍들 오셨네요?”

    그 자리에는 조신자, 한무회 이사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반대편에 앉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두 분이 저를 만나고 싶다 하셨다고요.”

    오늘 이 자리는 이사장이 마련한 자리였다.

    -강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하더군요.

    지금 시점에서는 조신자와 한무회의 목적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이 두 사람 덕분에 천우원을 공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굳이? 겨우 작은 복수 하나만을 생각해서?

    그럴 리가 없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나는 곧 이사진에서 퇴진할 거야.”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말씀입니까?”

    내 물음에 한무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을 보면서 내가 말했다.

    “더는 이 더러운 취급을 참지 못하겠다, 이런 건가요?”

    “….”

    한무회는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안면근육을 꿈틀거렸다.

    “목적이 뭡니까?”

    나는 조신자와 한무회를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 대답하기를 미루듯 눈치를 살짝 봤다. 그러다 결국 한무회보다 어린 조신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반성을 하고 있어.”

    “반성…?”

    조신자는 고개를 갸웃하는 나를 보면서 빈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이번에 자네를 보면서 많은 반성을 했어. 우리가 정말 잘못 살아왔구나, 그래서 이런 일들을 겪는구나.”

    두 사람은 지금까지의 일을 후회한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제안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들이 강문고 휘어잡을 수 있게 도와줄 테니까, 자네도 우리를 도와주는 게 어떨까 싶어서.”

    역시, 그런 이야기였구만.

    나는 그들의 의중을 잠깐 생각해 본 후 말했다.

    “조건부라면 괜찮습니다.”

    “조건부?”

    그게 무엇인지 묻는 한무회에게 안주로 나온 회를 한 점 덜어주었다.

    “저와 협력하기 전에, 먼저 두 분이 남아 있는 이사진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 주시면 됩니다. 제가 그걸 보고 함께하실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나에게 접근한 이유는 뻔했다.

    지금 주가가 올라가는 나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과거 비리를 청산하기 위함이었다.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실체를 알고서 곧장 발을 뺐습니다! 그 증거로 강은숙 이사장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의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불과했다.

    그런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 굳이 그들의 요청대로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지금 우리를 못 믿겠다는 건가?”

    “그럼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고도 쉽게 믿으라는 겁니까?”

    내 반박에 조신자와 한무회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까지 나한테 했던 잘못들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런 꼴을 보여 놓고는 이제 와서 자기들 원하는 대로 해 줘라?

    “저는 두 분을 믿지 못합니다. 적어도, 두 분이 정말 곽형조, 천우원, 주현서 이사님들과 등을 돌리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셔야죠.”

    “… 알았어. 하지만 시간이 좀 필요해.”

    “걱정 마십시오. 올해 입시가 끝나려면 아직도 7개월은 넘게 남았습니다.”

    나는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술잔을 그대로 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이 둘은 지금 당장 움직이지는 못한다. 강세혁 검사에게 자료를 넘겨준 것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짧은 일탈에 불과할 것이었다.

    때문에 진정으로 내가 그들을 믿을 수 있는 시기가 되려면, 앞으로 몇 달은 걸릴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때까지도 조심해야 한다.’

    행여나 잘못하면 나를 모함하고, 그걸 역으로 공격할 여지도 있으니까 말이다.

    * * *

    해피플레이스 봉사활동을 진행하기 전, 오래간만에 박재우 주임이 학교로 찾아왔다.

    “강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갑작스러운 방문에 봉사활동 계획을 정리하고 있던 은솔이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주임님, 안녕하세요!”

    “안녕? 이번 봉사도 잘 부탁해.”

    “그럼요!”

    그렇게 말하는 박재우 주임은 나를 보면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강 선생님, 이번 봉사활동, 하나만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올 것이 왔구나. 박 주임은 내 생각을 읽은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종이를 꺼냈다.

    “저희 상부에서 강문고와의 협조를 예의주시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번 주 봉사에서는 학생들의 모습을 영상으로도 남기고, 해피플레이스 홍보에도 사용하고자 합니다만….”

    “네, 좋네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나는 숫자를 세듯이 손가락을 올렸다.

    “먼저, 중간에 학생들 인터뷰를 하는데, 서울한국대 사회적기업 동아리의 김은장 학생과 3학년 3반 오민주 학생을 동시 인터뷰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두 번째로, 은솔이와 같이 무료급식봉사에 참여해 줄 이모님들을 구해 주십시오. 영양사 선생님을 모셔 와도 좋겠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은솔이가 영양과 급식 활동 경영에 대한 걸 공부하게끔 해주세요.”

    “어… 영양사 선생님이 바로 구해질지는 모르겠지만, 해 보겠습니다.”

    “또 하나, 건축학과에 진학하려고 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내 말에 박 주임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때 그, 반장님과 같이 다녔던 학생 말씀이시군요! 분명 이름이 용…현이였나요?”

    “용희입니다. 한용희.”

    박 주임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맞습니다, 한용희 학생!”

    “네. 용희에게는 반장님을 보조하는 일일 현장 학생 반장을 시켜 주실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박 주임이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입시에 도움이 되는 거죠?”

    “물론입니다. 그리고 작업반장님이 지난번 용희가 활동하는 걸 보면서 엄청 좋아하셨거든요. 분명 이번에도 좋아하실 겁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걸 촬영해달라, 중간중간 인터뷰를 해달라와 같은 요청을 했다.

    박 주임은 내 요청이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요청사항을 메모했다.

    “최대한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규모가 클 것 같으니 2학년이나 다른 선생님들 모셔와도 괜찮습니다.”

    박 주임은 이번 봉사활동에 정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꼭 좀 부탁드린다며 내 손을 붙잡았다.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아, 네…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어색하게 손을 떨치자 박 주임이 들고 있던 종이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혹시 필요하실지 몰라 남겨드립니다. 저희와 이번에 협력해서 영상을 남기고 홍보할 단체입니다.”

    그 종이에는 협력업체로 <미래교육>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신 기자가 오려나, 생각하면서 그 종이를 말없이 받아들었다.

    “쌤! 그럼 저 토요일에 판 크게 벌여도 괜찮아요?”

    박 주임이 교실을 나가자 은솔이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물었다.

    “얼마나 크게 벌이려고?”

    “에이, 오시는 분들도 많으면 배식 기준 인원을 확! 늘려야죠! 기회만 되면 반찬 수도 늘리고 싶고, 설문조사도 돌리고 싶은데….”

    “이번에는 그걸로 해 봐라, 은솔아.”

    나는 이전부터 은솔이와 계획 중이었던 도시락을 이야기했다.

    “박재우 주임님이 이모님들 모시고 오실 거니까, 같이 준비하면 괜찮을 거야. 대신, 이 도시락은 예산도 많이 들어갈 거다. 그거 감안해서 준비하고, 이걸 만드는 이유는 두 가지야. 맞춰 봐.”

    내 질문에 은솔이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손뼉을 쳤다.

    “밥때를 놓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는 맞췄네. 나머지 하나는?”

    은솔이는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쌤, 하나는 진짜 모르겠어요. 어떤 거예요?”

    “지원하려는 학과와 연결을 해 봐야지.”

    그 말에 은솔이가 이제 얼추 알겠다면서 말했다.

    “만약 제가 식당을 차리거나 신메뉴를 개발한다면 어떤 걸 개발해서 경영할 것인가! 이거 맞죠!”

    밝게 웃으면서 묻는 은솔이에게 맞다면서 박수를 쳤다.

    “좋아좋아. 잘 했어. 그러니까 이번 수라상 도시락 잘 만들어 보자. 아, 완벽할 필요는 없다. 너무 힘빼다가 기말고사 준비 못 하면 안 돼.”

    마지막 말에 은솔이가 잠깐 뜨끔한 듯 몸을 움찔거렸다.

    “기말고사 점수 더 올려서 이번 1학기 총 성적 1등급 후반까지 만들어야 하는 거 잊지 않았지?”

    “네…. 열공하겠습니다….”

    마치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민주와 태웅이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럼 오늘부터 지옥특훈 들어가자!”

    “지옥까지는 좀 그렇고, 기말 대비 수학 과외는 해야 할 것 같아.”

    민주와 태웅이가 번갈아가며 이야기하자 은솔이의 두 눈동자에 눈물이 서리는 듯했다.

    “쌔앰….”

    “이렇게 친구들이 도와준다고 하는데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안 그러면 연희대 지원 못한다. 알았어? 민주, 태웅이. 세팅.”

    ““넵!!””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교실 밖으로 이동했다.

    그와 동시에 은솔이의 짧은 비명과 함께 민주와 태웅이가 책상을 끌고 와서 앉는 소리가 들렸다.

    종이가 촤라락 펼쳐지는 소리와 함께 은솔이를 향한 민주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시험 끝나고 공부 하나도 안 했지? 지금 그러면 내신을….”

    민주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교실 밖으로 나가자 한 여성이 흥미롭다는 듯 교실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잘도 배웠네.”

    오늘 일정을 마치고 마무리하고 있던 박 선생이었다.

    “뭘 배워요?”

    “잔소리요. 다 강 선생님한테 배운 거잖아요.”

    “박 선생님 아니고요? 저는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작년의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아예 컨셉 잡고 하지 않는 이상….”

    박 선생과 시답잖은 농을 주고 받은 뒤 그녀에게 묻고 싶은 걸 이야기했다.

    “학교 분위기 괜찮죠?”

    “네, 그러게요. 정책 제안 덕분에 선생님들 특징도 얼추 보이니까 대응하기도 좋고요.”

    지금 나와 결을 같이 하는 교사들을 제외하고 다른 교사들은 모두 패닉 상태였다. 어떻게든 학생들의 눈에 들어오려고 노력했고, 최대한 각자의 잘못이 드러나지 않게끔 힘쓰고 있었다.

    그런 교사들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박 선생이 쓰게 웃었다.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이것도 빙산의 일각입니다. 제대로 터지면 홍수처럼 들이닥칠 겁니다.”

    내 말에 박 선생은 어이가 없다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강 선생님은 어디까지 알고 계세요?”

    “그냥 민지정 씨와 천우원 이사에게 들은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 반응을 보면 진짜배기는 따로 있는 것 같거든요.”

    어디까지나 GF파일을 입수했을 때 꺼낼 수 있는 내용들이겠지만 말이다.

    “그 진짜배기를 찾아내야겠네요.”

    “맞습니다.”

    “도와드릴까요?”

    “이미 박 검사님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데, 더 폐를 끼칠 수는….”

    “다리 정도 연결하는 건 괜찮아요.”

    박 선생이 고개를 똑바로 들고 나를 쳐다봤다.

    “세부 내용들, 알아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습니다.”

    “자리 만들어 줄게요.”

    그렇게 말을 마친 박 선생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두었는지 기사를 하나 보여 주었다.

    <강남서초구 오성주 의원! 사학비리 근절과 전면전쟁을 선포하다!>

    나도 이 기사를 봤기에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었다.

    “이 기사는 왜요?”

    “여기 있는 오성주 의원이 우리 아버지 후배라서 잘만 말씀 나누시면 도움 받을 수 있으 거예요.”

    그녀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민주 아버지시기도 하죠.”

    내가 말하자 박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책 논의 자리에 곧 초대되실 거예요. 오성주 의원이 직접 연락한다고 그랬데요.”

    이미 기사에도 그 내용이 언급되어 있었기 때문에 얼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일정은 언제라고 합니까?”

    “토요일일 것 같다고 하던데요?”

    토요일이면 해피플레이스 봉사가 있는 날이다.

    “일단 연락이 오면 조율을 해 봐야겠군요.”

    “또 이상한 소리나 하면서 거절하는 거 아니에요? 이거 꼭 해 주셔야 해요. 이거만 잘 성사되면 수사에도 편할 거고….”

    “에이, 박 선생님은 저에 대한 믿음이 너무 부족하십니다.”

    그때 민주가 교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쌤, 잠깐 괜찮으세요?”

    “왜?”

    “그게… 저희 아빠랑 통화 한번 하실 수 있어요?”

    민주가 좀 어려운 부탁이라도 하는 것처럼 쭈뼛거렸다. 나는 민주에게 당연히 가능하다고 답하고는 민주의 핸드폰을 들었다.

    “네, 강명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저 민주 아빠 오성주입니다, 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울려 퍼졌다. 박 선생과 민주도 그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우리 지역 교육 정책을 선생님과 논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괜찮으십니까?]

    “죄송합니다. 안 됩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나를 보면서 박 선생이 입을 떡 벌렸다.

    [아, 그, 그럼 언제 괜찮으십니까?]

    “아뇨, 정책 제안을 논의하고 싶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 그게 무슨….]

    이번에는 민주도 당황해하면서 손을 마구 휘저었다.

    “그러니까, 정식으로 상담 신청하시면 됩니다.”

    나는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주면서 민주와 박 선생을 향해 웃어 보였다.

    “저는 오로지 학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의 입장에서 만나겠습니다.”

    정치적으로 나를 이용하시겠다?

    이번 오성주와의 만남은 그 사항에 대한 나의 기조를 확실시 만드는 기점이 될 것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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