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79화 (179/252)
  • 179화. 똑바로 좀 합시다.

    정책 제안 프로젝트가 끝나고 민주는 은솔, 용희, 태웅과 분식집에서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와 진짜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네.”

    “그래도 우리 이태웅 팀장님, 잘 하던데?”

    “그래? 다행이다.”

    은솔, 용희, 태웅이 한마디씩 하면서 프로젝트 후기를 이야기했다.

    “민주는 어땠어?”

    “….”

    “민주야?”

    은솔의 질문에 민주가 생각하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 있어?”

    “응? 아, 아냐. 그냥 담임쌤 말씀이 생각나서.”

    프로젝트가 시작하기 며칠 전, 학생들은 강명문과 인터뷰를 했었다. 옆에는 강은숙 이사장도 함께였던 그 인터뷰였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야.

    -네?

    그 말에 학생들 모두가 눈을 꿈뻑거렸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맞았다.

    지금까지는 주인이 아니라 손님처럼 행동했을 뿐이었다.

    ‘그 시점에서 가장 분노했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야.’

    하지만, 민주 자신도 그렇고 다른 학생들은 태웅이의 사건에 대해서는 분노했지만, 정작 내신 조작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았다.

    그건,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이미, 성적은 어쩔 수 없다, 라는 마음이 심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지금 민주가 생각한 결론이었다.

    “진짜 제대로 해 보자.”

    “어떤 걸?”

    “뭐긴 뭐야. 이사장님과의 직통 핫라인, 우리들의 알 권리 챙기기. 그치?”

    용희가 묻자 은솔이 민주 대신 대답했다. 민주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그러고 보니 민주 넌 몇 시에 이사장님 뵙기로 했어?”

    태웅이 떡볶이를 집어 먹으면서 물었다. 민주가 시계를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10분 뒤. 지금 가면 딱 맞겠다. 얼른 가자.”

    “잠깐만! 이모님, 이거 포장되나요?”

    용희가 남은 튀김을 포장했다. 그 길로 네 학생들이 분식집을 나와 다시금 학교 교문으로 향했다.

    마음을 굳건히 다진, 불과 한두 달 전과는 달라진 정신을 갖추고 말이다.

    * * *

    “오늘 밤 8시, 이사장님실 앞에서 만나시죠.”

    나는 천우원에게 시간과 장소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핸드폰 너머로 작게 육두문자가 들려왔다.

    [씨ㅂ….]

    “응하시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방금 전 행사에서 저희가 이사님 이름 까발릴 수 있었는데도 안 하지 않았습니까?”

    천우원을 향한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하지만, 지금 직접적인 타격을 가할 생각은 없었다.

    -그 사람들이 선공을 날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강세혁 검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대놓고 그들을 저격한다는 건, 자칫 잘못하면 패착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과거 내가 그들에게 당했던 일들. 그것들 모두가 어설픈 공격으로 인해 카운터를 맞았기 때문에 발생했던 일들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천우원의 관자놀이가 아니라, 두 팔이나 다리에 한 발씩 총을 발사할 생각이었다.

    ‘마음이 급해지면 무언가 허점을 보인다.’

    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밥만 먹고 가도록 하지.]

    “8시입니다. 늦지 마십쇼.”

    전화를 끊고 강당을 정리 중인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3학년 선배들을 배려한다면서 정리는 2학년 학생회 학생들과 2학년 1반 학생들이 정리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경필이와 동규, 민정이, 우현이도 있었다.

    ‘좋은 그림이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강당 내부를 훑어보고 있을 때, 내 뒤로 누군가가 달려왔다.

    “헉, 헉… 강 선생님!”

    신 기자가 SNS에 올라온 사진을 확인하고 곧장 달려온 것이었다.

    “아니, 헉, 왜, 헉, 전화를… 헉, 하루종일 하세요!”

    “아, 그게, 뭐 그렇습니다.”

    방금 전 내가 천우원과 통화하고 있을 때 신 기자도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신 기자는 잠시간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가슴을 쭉 펴고 수첩과 펜, 녹음기를 꺼냈다.

    “이번에는 또 어떤 특종인, 후우… 가요?”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는 신 기자를 보면서 준비한 용지를 보여 주었다.

    미리 준비해 둔 언론보도용 보도문이었다.

    “이건….”

    “오늘 있었던 정책 제안 프로젝트에서 나온 주요 이야기들입니다. 여기 이사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부분 강조해 주시고요.”

    신 기자는 여느 때처럼 눈을 빛내면서 나를 향해 녹음기의 마이크를 가까이 댔다.

    “선생님 인터뷰도 해도 되죠?”

    “안 됩니다.”

    “에이, 여기까지 왔는데요? 제가 보도문만 받고 갈 거면 오지도 않았어요!”

    “부르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오신 건데요?”

    옥신각신하는 우리를 향해 지석 선배가 잠시 끼어들었다.

    “커흠, 잠시만.”

    선배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억지로 박 선생, 홍 선생, 오 선생, 윤 선생, 차 선생, 류 선생이 있는 자리로 끌고 갔다.

    “어쩔 셈이에요?”

    “선배님, 제가 도와드릴 게 있으면….”

    “판 커진 건 알지?”

    속사포로 쏟아지는 그들의 말에 내가 잠깐 귀를 막았다가 풀었다.

    “당분간은 열심히 수업해 주시고, 학생들 입시 준비 도와주시고, 대회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내 태연한 대답이 의외였는지 오 선생이 물었다.

    “그냥 평소처럼 하라는 건가?”

    “맞습니다.”

    오늘 이 프로젝트 시간은 어디까지나 강문고 내부에 있는 썩은 부위를 도려내기 위한 준비 작업에 불과했다.

    제안된 정책들을 들으면서 뜨끔했던 사람들은 모두 부정교사들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본인들도 솎아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런 공포와 두려움이 그들의 머리 위에 짙게 깔려 있었다.

    그 증거로 나는 강당을 나가고 있는 교사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망할… 지금 이사장 말대로면….”

    “쉿! 조용히 해. 죽기 싫으면 닥치고 있자고.”

    그런 말들이 들려올 정도였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제 발 저리는 도둑들은 저런 사람들입니다. 전혀 상관없는 선생님들은 평소처럼 수업해 주시고, 학생들 상담해 주시면 됩니다.”

    내 말에 홍 선생이 휴,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 선생은 재미있는 프로젝트였다면서 내 등을 팡팡 두드렸다.

    “잘 했어! 아까 김영호랑 임대원이 표정 봤나? 가관이더만! 크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날리는 오 선생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했다.

    “강 선생, 오늘 시간 내기는 좀 어려우려나?”

    서윤수 교수도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서 교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마 10시 넘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좀 늦기는 하지만 괜찮군. 강남역으로 갈까? 젊음의 거리를 느껴 보고 싶은데.”

    서 교수의 농담에 모여 있는 교사들이 모두 키득거렸다. 그들은 오래간만에 만난 회포를 풀었다. 서 교수에게는 오 선생과 류 선생을 소개했다. 신 기자도 선생님들 인터뷰하라고 밀어놓고는 박 선생에게 말했다.

    “검사님께 연락 받았습니다.”

    “오늘 바로 열 거예요?”

    “일부는요. 하지만 아직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는 박 선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세요.”

    “전쟁터 나가는 것도 아닌데요 뭘. 걱정 마십쇼.”

    나는 박 선생을 비롯한 교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이사장실 앞에서 천우원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천우원은 강명문의 전화를 받고 곧장 한명심을 만났다.

    “자네 미쳤나?”

    “무, 무엇이….”

    한명심의 모르쇠에 천우회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딴 식으로 할 거냔 말이야!!!!!”

    “히익!”

    조용한 공터를 두려움에 가득한 비명소리가 가득 채웠다.

    “이봐 한 교감.”

    “네, 네네 네, 이사님.”

    “자네, 라인 갈아탔나?”

    천우원의 말에 한명심이 꼴딱 침을 삼켰다. 여기에서 답변 한번 잘못 했다가는 그냥은 못 넘어간다.

    “그, 그,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나?”

    이번 정책 제안 프로젝트에서 한명심은 책걸상 교체 사건에 대해 들었고, 제안된 정책의 활용방식도 논의했다.

    그러나 그 결과들은 모두 천우원이나 주현서, 곽형조와 같은 강문고의 이사진들에게 불리하기 짝이 없었다.

    “자네 목숨줄을 내가 쥐고 있는 걸 잊었나?”

    한명심은 천우원의 말에 큰절을 올리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죄, 죄송합니다!”

    “GF파일에 자네의 온갖 부정부패가 들어 있어. 알고 있나?”

    그렇게 말하면서 천우원이 노트북에서 파일을 하나씩 열었다.

    “어디 보자. 신초 기업 대표와 교구재 빼돌리고 얻은 돈이 총 3억 즈음.”

    “!!”

    “장인어른 성함이 김자성 맞나? 행정실에 명패만 붙어 있고 나오지도 않던데. 유령 직원으로 받아온 금액이 지금까지 총 10억 즈음.”

    “이, 이사님!!”

    한명심은 고개를 더욱 숙이면서 큰 소리로 사죄했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딸 유학 보낸다고 썼던 대필 원서 문제도 있고, 그 동네 선생들에게 보낸 촌지도 천만 단위는 가뿐히 넘는데….”

    천우원은 한명심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서늘하게 말했다.

    “그 돈, 다 우리가 해 준 거나 다름없지 않나?”

    “그, 그그그, 그렇습니다! 저, 전부! 이사님들께서 마련해 주신 겁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그렇게 말하던 천우원이 핸드폰을 들었다.

    “어, 그래. 나야. 한명심 교감에게 지원하던 거 싹 다 끊어.”

    “!!”

    “그래. 고발 준비해. 온갖 부정부패에 찌든 명문 사립고 교감이라고 말이야. 참, 그리고 딸은…. 그렇지, 지금 다니는 학교 퇴학으로….”

    거기까지 말이 이어지자 한명심이 천우원의 오른 다리를 붙잡았다.

    “이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강명문이나 강은숙 이사장 편에 서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섰다는 걸 인정하는 건가?”

    “네, 네! 잠깐 못된 생각을 품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딸만은….”

    천우원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면서 한명심을 노려봤다.

    “지금 자네가 생각해야 하는 건 딸이 아니야.”

    “그… 그럼…?”

    “곧 감방에 갈 자네지.”

    한명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지금 나이에 이 정도 횡령이면 꽤나 많은 형량이 나오겠지. 아마 퇴소할 시점이면 딸도 아빠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그 말에 한명심이 연신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방법이….”

    “당분간 얼굴을 비추지 말게.”

    “그, 그 말씀은….”

    “아직도 더 이야기해야겠나?”

    천우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한명심이 붙잡고 있는 오른 다리를 휙휙 털었다.

    그리고, 천우원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한 한명심이 고개를 위아래로 마구 조아렸다.

    “네! 제가 그러면 해외로 잠시 나가 있겠습니다!”

    한명심의 말에 천우원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딸에게 줄 돈을 당분간 못 벌 텐데?”

    “따, 딸도 이해해 줄 겁니다! 제가 살아야, 그래야… 가족이 사니까요!”

    한명심은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한명심을 향해 천우원은 쯧, 혀를 차고는 말했다.

    “똑바로 해.”

    “네, 네네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는 한명심을 뒤로 하고 천우원이 노트북을 접었다. 그리고는 거친 발걸음으로 이동했다.

    ‘강명문….’

    분노를 억누른 채 걸어가는 천우원의 구두소리가 복도를 섬뜩하게 채워나갔다.

    * * *

    “오셨습니까?”

    이사장실 앞에서 천우원을 기다리던 나는 이제야 오셨냐며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뭐 하는 짓인가?”

    “흐아암…. 뭐가요?”

    귀찮다는 듯 머리를 긁적인 나는 천우원을 향해 말했다.

    “이제 제발 조용히 하고 삽시다. 우리도 더는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누가 시끄럽게 했다는 거지? 자네만 아니었으면 작년에도, 올해도 조용히 지나갔을 건데.”

    천우원이 나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거 참…. 지금 이렇게 말씀하실 때가 아닐 텐데.”

    내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하자 천우원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때 이사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들어오세요.”

    이사장의 뒤에서 1학년 5반 학급의 반장 학생이 꾸벅 인사를 하면서 들어갔다. 이사장과 10분 면담을 마친 것이었다.

    나와 천우원은 이사장의 안내를 받으면서 이사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사님, 이제는 입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자리에 앉은 나는 천우원에게 제안했다.

    “그러니 제발 조용히 사십쇼. 학교에서 저지른 불법들, 다 눈 감아 드리겠습니다.”

    “이 새끼가….”

    그러나 내 말이 천우원에게는 건방진 소리로 들린 모양이었다.

    “네놈 따위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난 강은숙이를 만나러 온 거야.”

    그 말에 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풉!”

    “웃어?”

    “…푸하하하!”

    내 웃음소리에 기분이 나빠졌는지 천우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천우원이 무언가 말하려는 걸 들고 있던 종이몽둥이로 막았다.

    나는 양 입꼬리를 슬쩍 올리면서 천우원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거 밝혀져도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핸드폰을 꺼내 천우원의 앞에 내밀었다. 화면을 확인한 천우원의 몸이 순식간에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다.

    “이, 이걸, 이걸, 네가….”

    “조신자, 한무회.”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천우원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두 분한테 들은 게 좀 있거든요.”

    룰렛이 돌아갈지, 미팅으로 끝날지.

    어차피 천우원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그러니 우리, 똑바로 좀 합시다.”

    그에게 남은 건 내가 준비한, 일방통행 룰렛뿐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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