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78화 (178/252)

178화. 정책 제안 프로젝트 (2)

천우원은 민지정과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바로, 학생이 아닌 교사들에게만 집중했다는 점이었다.

민지정의 경우에는 원체 민지정의 가치관 자체가 학생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수학여행 때 그런 일들이 발생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천우원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른 이사들과 민지정이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으니 그도 그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류 선생에게 천우원과 만나도록 만들었다.

이후 류 선생과 만난 천우원은, 이번 정책 제안 프로젝트가 교사들에 의해 주도된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얻어맞았지.’

2학년 1반 학생들의 절박함에 대한 발표, 3학년 3반 학생들의 알 권리에 대한 발표.

더는 편안한 삶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의지, 더는 수동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의지.

주체성을 가지는 학생들의 모습은, 지금까지 이사들이 저질러 왔던 비리들을 앞으로는 저지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음을 암시했다.

[지금 이 자리에도 제가 말씀드리는 사실에 뜨끔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즉, 지금 이 발표는, 내 제자들이 깔아 둔 판을 더 크게 벌리기 위한 시간이었다.

그걸 모르는 천우원은 멍하니 강문고 학생들과 나에게 공격 아닌 공격을 받고 있고 말이다.

[학생들을 위하지 못하는 정책은, 앞으로 강문고에는 필요 없습니다.]

나는 눈빛을 날카롭게 세우고 교사들이 모여 앉은 자리를 응시했다. 몇몇 교사들이 내 시선을 피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부정한 일들을 벌인 자들은 철저하게 파헤치고,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2의 이태웅, 제2의 심우현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는 태웅이와 우현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녀석들이 히죽 웃었다.

[이번 아이디어는 저와 류지훈 선생님이 같이 논의한 결과입니다. 언제나 강문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류지훈 선생님과 어쩌다 보니 운 좋게 이름이 알려진 제가 우리 강문고를 위해 힘쓰겠습니다.]

류 선생은 내 말을 들으면서 얼떨결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류 선생을 응원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박수를 치며 응원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진짜 대놓고 판 벌이네요.”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다 들려요, 박 선생님.

“그래도 저게 명문이 장점 아냐? 저러고서도 살아남더라.”

“그것도 아주 좋은 평판으로 말이죠.”

지석 선배랑 차 선생님도 다 들립니다.

나는 동료 교사들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면서 크흠, 헛기침을 했다.

[류 선생님, 부연 설명 좀….]

[응? 아, 아 네. 그래서 저희는….]

이후는 우리가 합의 하에 준비한 발표 내용들이었다. 류 선생은 왜 교사 자질 평가가 필요한지, 그걸 통해 어떤 장점을 가져올 수 있는지 설명했다.

발표를 하는 내내 그가 불안한 눈동자를 하고서 나를 몇 번인가 돌아보기는 했다.

“화이팅!”

그때마다 나는 류 선생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면서 응원을 했다. 정말 절친한 사이의 선후배가 응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찰칵! 찰칵!

사진도 많이 찍혔다. 게다가 그 사진들은 곧 SNS를 가득 메울 예정이었다.

이미 앞자리에 앉은 민주가 열심히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따 나랑 류 선생님 발표할 때 사진 찍어서 SNS에 올려.

-아! 이거 마케팅이죠 쌤?

-맞아. 홍보의 일환이니까, 나중에 생기부에 올려 보자.

물론, 입시 준비를 하는 건 덤이었다.

[…이상으로,]

[강문고 일타강사팀의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류 선생의 손을 잡고 팔을 위로 번쩍 들어 올리고 내리면서 인사를 했다. 청중들로부터 뜨거운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박수소리 안에서 류 선생의 떨림이, 붙잡은 손끝으로 전해졌다.

* * *

“강 선생, 이게 무슨 소리야! 평가자가 왜….”

단상에서 내려와 한쪽 구석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류 선생이 내 옆으로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사장님,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이렇게 세 분이 평가하는데 그게 이상한가요?”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면서 말했다.

“아니, 그래도 사립학교인데 이사님들도 계셔야 하는 게….”

“이미 기사로 민지정 씨와 이사진이 결탁했다는 게 세상에 드러난 마당에 이사들을 포함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방금 전, 교사 자질 평가자와 최종 평가자를 이야기할 때, 나는 류 선생과는 합의되지 않은 내용으로 발표를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류 선생이 이사진에 더 힘을 주는 건 막아야지.’

류 선생의 성격상, 지금쯤 이사진이나 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을 터였다.

때문에 이번 정책 제안에서 이사진에게 적당한 평가를 받으려 했을 것이었다. 이후에는 나에게서 떨어짐과 동시에 이사진으로부터도 멀어질 생각이었을 거고.

그렇기에 당연히, 이번 발표에서는 이사진에게 다소 유리한 정책을 준비했을 거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류 선생은 어차피 드러난 이사진의 부정이라는 내 설명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생각이 있습니다.”

“새, 생각?”

“저희만 잘 도와주시면 이사님들로부터의 공포를 깨끗이 씻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류 선생이 불안한 듯, 한편으로는 기쁜 듯한 웃음을 지었다.

“자, 가시죠. 곧 최종 발표시간입니다.”

류 선생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 * *

[결과 발표는 강문고등학교의 강은숙 이사장님께서 직접 해 주시겠습니다!]

나영이의 멘트를 신호로 이사장이 마이크가 설치된 단상 앞에 섰다.

[아, 아. 잘 들리시나요?]

““네!!!!””

학생들이 강은숙 이사장을 반기면서 크게 대답했다. 급식실 메뉴 변경, 급식실 인테리어 변경, 수학여행비 지원 등, 이미 많은 활동을 한 이사장이었다. 때문에 학생들로부터의 평판도 높이 솟아 있는 상태였다.

[호호호, 환대해 주셔서 다들 고마워요. 미래의 실세 여러분.]

이사장이 웃으면서 학생들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학생들도 와하하, 웃으면서 화답했다.

[오늘 정말 좋은 의견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마이크를 통해 스피커로 인자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특히 학생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바로,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성숙하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을 말이지요.]

그 말처럼, 이사장은 학생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강문고 학생들은 이제 정말 실세가 맞는 것 같습니다.]

내가 했던 말을 인용한 이사장이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래서 방금 강철면 교장 선생님과 한명심 교감 선생님과 함께 의논했습니다. 어떤 정책들이 현재 강문고에 필요할 것인지 말이지요.]

이사장의 말에 학생들이 긴장감 서린 눈빛을 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 녀석들의 눈빛이 아주 볼만 했다.

[그 결과, 오늘 나온 모든 정책들을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그 말에 태웅이가 눈을 꿈뻑거리면서 나에게 물었다.

“쌤, 그럼 저희가 한 것도….”

“그래. 잘 했다.”

내 말이 마치 합격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태웅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강문고 교육과정에는 긴장감이 필요합니다. 강남서초권 명문고라는 이유로, 주변에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다는 이유로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 점을 반성합니다.]

그리고 이사장은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학생들이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고, 어떤 녀석들은 덩달아 인사를 하기도 했다.

[학생 여러분들에게 투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알 권리를 챙겨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후에도 그녀는 학생들이 발표했던 정책들을 듣고, 반성했던 사실을 하나씩 꺼냈다. 그 모든 내용들에서, 이사장의 진심이 느껴졌다.

[취미활동을 권장하지 않았던 점도….]

[비주류 교과목이라는 이유로 폄하되었던 것도….]

교사들이 제안한 정책들에도 마찬가지였다.

[교사들의 자질을 면밀하게 살피지 못한 점 역시 이사장을 비롯한 학교 경영진, 운영진의 큰 잘못입니다.]

어느새 사람들은 이사장의 말에 집중했다. 왜 여태까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느냐고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로 이어진, 자질평가에 대한 계획 때문이었다.

[그래서 곧장, 교사 자질 평가를 실시하겠습니다. 먼저 1학년 학급 반장들은 이 행사가 끝나는 즉시 저와 1:1 면담을 오시면 됩니다. 한 명당 10분 내외의 상담을 통해 익명 보장, 이사장 직통 핫라인 고발 체계를 만들겠습니다. 내일은 2학년, 모레는 3학년 면담을 하겠습니다.]

그 말에 내 주변의 동료 교사들을 제외한 다른 인원들이 몸을 움츠렸다.

[또한, 이번에 민지정 (전) 교무부장의 사건처럼 교사가 강문고 이사진과 부정하게 결탁한 경우도 문제 삼겠습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천우원이 긴장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강문고는 앞으로 더 변화할 겁니다. 작년에 입시에서의 변화가 있었다면, 올해는 입시와 바른 학교를 테마로 잡아 변화하겠습니다.]

이사장은 선거유세라도 하듯이 청중들을 향해 진중한 눈빛을 날렸다.

[그 과정에서 썩은 뿌리가 있다면 도려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한 명의 이사를 내보냈습니다.]

“저 미친….”

천우원이 자리에서 작게 신음했다. 그러나 강당 내부가 너무 조용해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모두 똑똑히 듣게 되었다.

“미친? 야 그거 누구냐?”

“몰라. 할아버지 목소리던데?”

“내 뒤에서 난 거 같았는데? 민주 엄마는 들었어요?”

“아뇨, 저도 잘….”

청중들이 웅성거렸다. 천우원은 그들의 반응에 당황했는지 고개를 다시 숙이고는 눈만 이쪽을 향해 부릅떴다.

[방금 미친, 이라고 하신 분처럼, 우리는 미친 일들을 할 생각입니다. 부정부패에 찌든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미쳐야 하지 않을까요?]

이사장은 작은 소동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을 위트 있게 넘기면서 청중들의 반응을 이끌어 냈다.

[미쳐야 우리가 삽니다. 이사장도 미쳐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의견과 질타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던 이사장이 꾸벅 인사를 했다.

짝짝짝.

정중한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당에 퍼지는 박수소리를 듣던 이사장이 깜빡했다면서 손뼉을 쳤다.

[참, 오늘 여기 와 주신 여러분들을 위해 우선 한 가지를 오픈하고자 합니다.]

그게 뭐지? 하면서 다들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이사장이 민주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민주가 준비해둔 PPT 파일을 열었다.

<강문고 책걸상 교체 작업>

[이번 급식비리 사건 이후 강문고 학생들 지원금으로 5억이 들어왔습니다. 그중 일부는 수학여행에서 사용했고, 일부는 교실 책걸상 교체에 사용될 겁니다.]

학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강문고의 책걸상은 삐그덕거림은 물론이고 애매하게 깨진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항상 학생들이 불만을 제기했었다.

[게다가 의자는, 다름 아닌 등을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백드롭 의자입니다.]

이사장이 화면을 넘기자 백드롭 의자 사진이 나타났다. 사무용이 아니라, 학교용으로 만들어진 작은 버전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환호성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이사장은 천천히 사진을 넘겼다.

[최초 제안된 예산서에는 책걸상 교체에 4억이 들어간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여러 업체에 전화도 해 보면서 계산을 해 보니 1억이 조금 안 되더군요.]

그 말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수상하다는 눈빛을 했다.

[네. 또 누군가가 장난질을 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누구였을까요?]

이사장이 장난기 서린 눈빛을 하며 나를 살짝 돌아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한 말을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아직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드시 이 장난질의 범인을 찾아서 응징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준비한 PPT 화면의 마지막을 보여 주었다.

[강문고의 비리근절을 위해 학생 여러분과 학부모님들, 그리고 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사장의 말을 끝으로 바른학교 정책 제안 프로젝트가 종료되었다.

종료가 되는 시점에, 천우원은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이사장이 범인을 모른다고 말할 때, 벌써 강당 문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그래서 나는 행사가 끝나자마자 이사장에게서 미리 받아 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사님.”

[네, 네놈이 감히….]

천우원의 목소리가 한껏 떨려왔다.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데….”

마치 리볼버를 쥔 서부영화 주인공처럼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고는 말했다.

“룰렛 돌리실래요, 아니면 미팅하실래요?”

총구가 그의 미간을 조준이라도 한 듯 천우원이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장소와 시간은?]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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