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77화 (177/252)

177화. 정책 제안 프로젝트 (1)

며칠 전, 류지훈과 만났던 천우원은 집으로 돌아와서 투명한 유리컵에 위스키를 한 잔 따랐다.

‘류지훈과 강명문….’

확실히 이번 수학여행 사태는 천우원, 주현서, 곽형조에게도 그리 좋은 사건은 아니었다. 정신이 반쯤 나가 버린 민지정의 폭로가 이사진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박성혁 차장검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 정도였다.

“신자랑 무회도 이상하단 말이지.”

거기에 유독 조용한 두 사람도 신경쓰였다.

-강명문의 실체를 옆에서 파헤치겠습니다.

그렇기에 류지훈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민지정이라는 아바타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여기에 곧 있을 정책 제안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을 통해 류지훈이 이사진에 유리한 정책을 제안하면 그걸 기반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천우원의 계획은 무너지고 있었다.

[저희 학생들은 학교의 모든 일들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저희 3학년 3반, 이태웅과 친구들팀은 제안합니다!]

[ALL(알) 권리 정책! 학생들을 위해 학교의 회계 자료, 시험 과정 등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는 정책입니다!]

용희, 은솔, 민주가 한 마디씩 말했다. 그리고 셋의 멘트가 끝나기를 기다린 태웅이 마이크를 잡고 굳건히 섰다.

[우리가 학교를 알아야 우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더는 저 같은 학생이나 우현 후배 같은 일들, 친구 민주처럼 선생님께 손찌검을 당할 뻔한 일. 이런 부정한 일들이 우리 학교에서 근절되었으면 합니다.]

친구였던 유미에게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태웅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멍청하게 살았는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런 일들을 앞으로는 막고 싶었다.

-내가 팀장 할게.

이 팀의 이름이 ‘이태웅과 친구들’인 이유.

바로 직접 그 사건을 겪은 자신이 말해야 모두에게 호소력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멋지군.”

옆에서 보고 있던 오석상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던 심지석, 윤기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천우원은 아니었다.

“모든 걸 알 권리가 필요하다고?”

사실상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학생들이.

교사나 이사장이 아니라, 새파랗게 어린,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학생들이 선전포고를 했다.

[저희는 이런 부정한 일들을 부정하겠습니다.]

교사들도, 학생들도 연신 박수갈채를 보냈다. 천우원도 형식적인 박수를 쳤다. 그리고 학생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설마 학부모들도 그러지는 않겠지.’

그러나 그 생각이 헛된 희망임을 알게 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맞습니다! 우리 아들이 이런 일을 당하는 꼴을 더는 볼 수 없습니다!”

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지른 사람은 2011학년 학부모회장인 윤지영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학부모들이 한 마디씩 덧붙였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손해 보는 일이 없어야지요!”

“내신조작이라니 말이나 됩니까!”

“친구끼리 싸울 수는 있지만 자살방조라뇨! 학교는 범죄자 양성 집단이 아닙니다!”

학부모들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정도로 태웅의 발표는 효과적이었다는 뜻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천우원의 얼굴이 한층 더 구겨졌다.

[네, 멋진 발표 감사합니다! 그럼 이렇게 1부 행사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20분 휴식 뒤에 다시 뵙겠습니다!]

나영의 목소리에 맞춰 학생들과 교사들이 기지개를 쭈욱 폈다. 학부모들도 쉬는 시간이 주어지자 흥분을 다시금 멈추고는 저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학생들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식의 칭찬들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천우원의 옆으로 캔커피가 하나 놓였다.

“잘 듣고 계십니까?”

“네놈….”

천우원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어떻습니까? 우리 제자들 레벨이 상당하죠?”

강명문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천우원의 옆에 앉았다.

“민지정 씨도 그렇고, 정말 다들 멍청한 건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뭐라…?”

“보시면 압니다. 재미있어질 겁니다.”

그렇게 말한 강명문은 말없이 음료수를 마셨다. 천우원은 옆에 놓인 캔커피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강명문에게 물었다.

“무슨 꿍꿍이지?”

“GF파일, 잘 쓰고 계십니까?”

강명문의 말에 천우원이 숨을 삼켰다.

“…그게 뭔가?”

“민지정 씨가 다 말했습니다. 거기에 모든 게 들어 있다고.”

강명문은 태연하게 음료가 남은 캔을 흔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잘 쓰고 계신가 궁금했습니다.”

“…나는 정말 뭔지 모르겠는데.”

“알겠습니다, 그럼.”

강명문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음료수를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고는 크으! 라며 괜히 소리를 냈다. 그러자 주변에서 수다를 떨던 학부모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명문에게로 집중됐다.

“강 선생님!”

“태웅이 어머니, 괜찮으십니까?”

“네, 아들 표정이 요즘 정말 좋아요. 이게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그때 제가 너무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식사라도 한 번….”

“죄송하지만, 제가 자판기 커피 하나 받지 않는 사람이라서요, 하하하. 나중에 태웅이 합격으로 보답해 주십시오.”

어쩐지 반대의 말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강명문이라면 충분히 그런 말이 가능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태웅의 입시를 막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태웅의 부모들이었으니까.

“네, 그럼요. 요즘은 열심히 응원해 주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2부도 즐겨 주세요.”

강명문은 얼마간 학부모들의 질의응답을 받아주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천우원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주먹을 꽉 쥐었다.

* * *

정책 제안 프로젝트 2부도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먼저 박 선생, 지석 선배, 오 선생 팀의 발표였다.

[우리 강문고에는 취미활동을 권장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한 건 박 선생이었다.

[취미활동이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그들의 정신건강은 가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습니다. 작년 합격생인 최동석 학생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박 선생은 프라모델 조립부에서 동석이가 얼마나 눈빛을 빛내면서 활동했는지, 그게 왜 입시에 도움이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따라서 저희는 1인 1기(一人一技)) 정책을 제안합니다.]

오 선생이 엑스칼리버를 단상 옆에 텅! 소리가 나게 세우면서 말했다.

[취미활동이 주는 장점으로는….]

세 교사가 이야기하는 취미생활의 장점은 스트레스 해소, 협동심, 배려심 향상이었다.

‘좋은데?’

나는 세 사람의 발표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1인 1기 활동처럼 음악이나 체육 또는 각종 예술활동 같은 걸 했던 학생들은 향후 입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배려, 나눔, 협력, 갈등관리 사례를 소개하는 자기소개서 문항에 활용할 수도 있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져서 팀 프로젝트를 준비하기에도 좋았다.

때문에 이들의 제안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저도 복싱과 킥복싱, 검도, 택견, 합기도를 취미로 하고 있는데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고, 정신수양에도 이만한 게 없습니다.]

오 선생이 자기 취미활동을 이야기하자 그걸 들은 학생들이 소곤거렸다.

“합치면 몇 단이냐 그럼…?”

“단이 중요하냐. 복싱, 킥복싱 다 하신다잖아.”

“개기지 말자 진짜로….”

어째 다른 의미로 정신수양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세 분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인어공주와 선생들팀! 올라와 주세요!]

소개를 받은 홍 선생, 차 선생, 윤 선생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유독 머뭇거리던 홍 선생의 등을 윤 선생이 떠밀었다.

[아, 아, 안녕하세요! 홍유진입니다!]

홍 선생의 등장에 2학년 학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인어공주쌤!!!!”

“나오실 거라 믿고 있었다고요!!!”

학생들을 향해 어색하게 웃으면서 홍 선생이 PPT화면을 넘겼다.

[저희가 생각한 정책은 이겁니다.]

홍 선생, 차 선생, 윤 선생이 서 있는 뒤편으로 밝은 화면 하나와 함께 역사, 물리, 미술, 음악 등의 사진들이 나타났다.

“음?”

내 뒤에서 한 교감이 저게 뭔지 수 초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나타난 화면의 문장을 읽은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낀 듯 몸을 움찔거렸다.

<비주류 교과목 살리기 정책>

[우리 강문고는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주류 교과목의 취급이 좋지 않았습니다.]

첫 시작은 윤 선생부터였다. 아무래도 아직은 초임에 불과한 홍 선생과 차 선생이 그런 강한 멘트를 날리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제가 가르치는 물리 교과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놈의 시키들이 물리는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 맨날 지구과학으로 돌리려고 꼼수나 부리고 말이죠.]

윤 선생이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지목을 받은 학생들이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가르치는 미술은….]

[역사 공부는 인문, 자연 모두에게 필요한….]

홍 선생과 차 선생도 비주류 교과목 공부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 이야기들은 비주류 교과목을 등한시했던 모든 교사들, 학생들, 학부모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만약 여러 교과목의 소중함을 알았다면, 이번 수학여행에서의 사고도 없었을 겁니다.]

홍 선생이 마무리 멘트를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는 말했다.

[저희 반 학생들이 반성했던 것처럼, 수학여행을 단순히 노는 곳이 아니라, 야외공부시간으로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 말에 사람들이 의문의 눈빛을 보냈다.

[비주류 교과든 야외 수업이든, 우리는 모두 그 시간을 자습이나 노는 시간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홍 선생의 말에 사람들은 깔깔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윤 선생은 청중의 반응을 살폈고, 차 선생도 마무리를 할 준비를 했다.

[이번 수학여행 때는 역사기행 일정이 취소되었지만 내년에는 반드시 다녀오겠습니다.]

[앞으로는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교과목들을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강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차 선생과 윤 선생의 멘트를 끝으로 세 사람의 발표도 마무리가 되었다.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 류 선생에게 말했다.

“준비되셨습니까.”

“그, 그럼. 잘 해 보자.”

류 선생이 준비한 USB를 노트북에 꽂았다. 그와 동시에 나영이의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그럼 다음으로, 강문고 일타강사팀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나는 류 선생과 함께 단상 위로 올라가서 꾸벅 인사를 했다. 아무도 우리 둘이 일타강사라는 점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들, 학부모들로부터는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가 준비한 정책은 바로 이겁니다.]

<교사 자질 평가>

[저희는 교사들의 자질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물론, 뛰어난 역량을 보여 주시는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그러면서 류 선생은 우리가 이 정책을 생각한 이유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도 분명 있습니다. 입시에만 치중했던 선생님은 물론이고 민지정 교무부장 선생님처럼 학생들의 성적비리에 연루된 교사들도 있을 겁니다.]

류 선생은 자신은 아무 잘못 없다는 듯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저희는 교사 자질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교사는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류 선생이 PPT화면을 다음으로 넘겼다.

그리고 마이크를 내가 이어받았다.

[이쯤에서 궁금하실 겁니다. 그럼 교사 자질은 누가 평가하는가.]

앞에 앉아 있는 여러 교사들이 침을 꼴딱 삼켰다. 류 선생은 답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바로, 학생들이 평가하게 됩니다.]

내 말에 류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고개를 삐걱삐걱 돌린 그가 나를 향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 반응을 모른 척하면서 PPT 화면을 넘겼다.

<학생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교사 자질 평가 시스템 도입!>

화면을 본 교사들이 웅성거렸다. 학생들은 자기들이 본 게 맞나 생각하면서 눈을 비비기도 했다.

[교사 자질 평가. 그건 바로, 학생들이 하는 겁니다.]

그 누구도 아닌, 교사에 대한 평가. 그건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뒷설명을 추가하고 천우원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를 확인하고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자질이 떨어진다 판단되는 교사는 이사장님과 교장, 교감선생님의 평가를 받아 처분이 결정되었으면 합니다.]

역시나 류 선생은 한 번 더 나를 돌아보았다. 그가 입모양만으로 ‘그게 무슨 소리야 강 선생!’ 이라고 중얼거렸다.

[중앙지검의 검사님께 받은 정보가 있습니다. 강문고의 비리 사건들의 심부에 누군가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천우원이 흠칫했다.

[실제로, 민지정 교무부장 사건만 해도 그들 사이에서 무언가 있다는 건 기사를 통해서도 파악하셨을 겁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그건 그렇지’라는 반응들이 흘러나왔다.

신 기자의 기사를 사람들이 모두 확인했으니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방금 3학년 학생들의 발표처럼, 학교는 학생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학생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강당에 모인 사람들을 쭉 훑어보았다.

“강…!”

“설마…!”

“너 이 자식…!”

나에게만 보이는 그들의 입모양.

이제야 불량 교사들이 자신의 처지를 깨닫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이제 강문고의 실세는 학생들이 될 겁니다.]

자, 이제 단두대가 코앞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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