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76화 (176/252)

176화. 네 차례다

제일 먼저 단상 위로 올라온 건 경필이였다.

“저 녀석은 뭐만 했다 하면 항상 첫 번째네.”

내가 중얼거리자 옆에서 홍 선생이 깔깔 웃었다.

“경필이가 이번 프로젝트 진짜 칼을 갈면서 준비했어요.”

“칼을 갈아요?”

내가 묻자 홍 선생이 미소를 지었다.

“롤모델이 두 분이나 계신데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다면서요.”

경필이는 홍 선생이 우현이를 구한 뒤로 그녀 역시 롤모델이라며 떠들고 다녔다. 그 누구보다도 정의롭고 멋진 사람이라면서 말이다.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요.”

“그러니까요. 그런데, 선배님 조언을 이번에 꽤 중요하게 생각했던데요?”

“제 조언이요?”

그게 어떤 조언일까 생각해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기대해 볼 만하겠습니다.”

나는 팔짱을 끼고서 다시금 경필이에게 집중했다.

경필이는 마이크를 잡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안녕하십니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강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강당에 모인 모두가 귀를 틀어막으면서 괴로워했다.

[저는 2학년 1반 문!경!필! 이라고 합니다!]

어째 평소보다 기합이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녀석의 행동이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동규가 단상으로 올라갔다.

[죄송합니다, 경필이가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야! 너 내려가!]

[아 왜! 내가 할 거야!]

두 학생이 티격태격하면서 싸우자 조용했던 장내 한구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푸하하하!”

서윤수 교수였다. 그 웃음소리를 시작으로 강당에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야! 할 거면 제대로 해!”

“가서 인터뷰도 했다며! 믿고 있다고!”

다른 2학년 1반 친구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경필이와 동규가 말다툼을 멈추고는 서로 마이크를 잡았다.

[크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자기가 먼저 하겠다면서 경필이가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댔다.

[저희는 최근에 경찰공무원에 합격하신 선배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경필이는 학교 정책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경찰공무원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자 여러 곳에서 왜 저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문을 보냈다.

[그때 만났던 한 선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씨익 웃으면서 경필이를 향해 웃어보였다. 내 미소를 확인했는지, 녀석 역시 양쪽 입꼬리를 한껏 들어 올렸다.

[우선, 저희가 제안드릴 정책부터 말씀드리고 인터뷰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경필이가 신호를 보내자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민정이가 PPT 화면을 띄웠다.

<우리에게는 ‘미래’라는 절박함이 필요하다>

[저희가 준비한 정책은, 학생들의 절박함을 키워 줄 수 있는 ‘미래 로드맵 정책’입니다.]

* * *

정책제안 프로젝트가 열리기 며칠 전, 경필은 동규, 민정, 우현과 함께 노량진으로 향했다.

“진짜 가도 되는 거야?”

노량진역에 내려서 걸어가던 동규가 물었다.

“응, 강명문 선생님께서 괜찮다고 하셨어.”

경필은 수학여행을 다녀오자마자 강명문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진정 좀 되면 노량진에 있는 학원부터 가 봐.

-경찰시험 준비하시는 선배님들 인터뷰 말씀이시군요!

-그래. 노량진역 가면 이상한 노래 나오는 학원 있어. 거기로 가면 된다. 그리고 준비생은 아무래도 공부하는 입장이다 보니 하기가 어려우니까, 합격생 대상으로 하고 와.

그 말대로 경필은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할 친구들을 데리고 노량진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 역에서 내린 친구들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분명 이상한 노래가 들려올 거라고….”

경필의 말을 들은 우현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어딘가로 고개를 돌리고는 육교 건너편을 가리켰다.

“저기 아냐?”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방향으로 노래 하나가 흘러나왔다.

<공무원 시험 합격은 에드윌~>

“공인중개사 합격….”

“주택관리사 합격도….”

“에드윌…?”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중얼거리던 학생들은 노래가 끝나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저긴가 그럼?”

학생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에드윌 학원으로 향했다. 노란 간판의 학원 건물 앞에 서서 뻘쭘하게 서 있자 안에서 여성 한 명이 나왔다.

“안녕! 너희가 강문고 학생들이니?”

“네, 네 맞습니다.”

“이사장님께 이야기 들었어. 들어올래?”

학생들은 학원 내부의 빈 강의실로 안내를 받았다. 자신을 유현지라고 소개한 여성이 음료수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경찰공무원 합격생 인터뷰 하고 싶다며.”

“네!”

“좋아. 잠깐 기다려.”

유현지는 잠깐 강의실을 나가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남학생 한 명과 함께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조성준이라고 합니다.”

조성준은 자신을 이 학원에서 공부 중인 수강생이라고 밝히고 학생들의 질문을 받았다.

몇 개의 질문이 오고가다가 경필이 물었다.

“선배님, 그럼 경찰에 대한 사명감도 있으실 것 같아요!”

경필은 신이 나서 조성준에게 물었다. 그러자 조성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듯 말했다.

“아니, 사실 그런 건 없어요.”

그 말에 경필을 비롯한 다른 학생들이 살짝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들으면서 생각을 고쳤다.

“경찰, 소방. 모두 사명감을 갖추고 해야 하는 게 맞아요. 그게 없으면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요.”

조성준은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군대 다녀와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주었다. 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점, 공부도 제대로 안 하고 살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생겼다는 점.

“그때 생긴 게 어떤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학생들은 대답하지 않고 조성준의 답변을 기다렸다.

“저도 면접을 보기 전까지는 제가 경찰에 대한 사명감이 있다거나, 정의감이 있다거나, 그런 줄 알았어요.”

하지만 길고도 긴 수험생활은 수험생의 그런 마음을 갉아먹기에 충분했다. 사명감? 그것보다는 우선 합격하는 게 중요했다.

“절박함 때문에 그랬어요.”

조성준은 군대를 다녀왔을 때 부모님의 건강악화를 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실제 면접에서도 그렇게 말했어요.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뭐냐? 라는 질문에 저는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그게 절박함으로 이어졌다고 답변했어요. 그때 면접실 분위기가 꽤 괜찮았는데, 나쁘지 않은 답변이었다고 생각해요.”

경필, 민정, 동규, 우현은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서 방금 전까지 있었던 조성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금 여러분도 대학입시 때문에 바쁘지 않나요? 만약 저처럼 고등학생 때 공부를 소홀히 했다면, 지금부터 한번 동기를 찾아보세요. 저처럼 두려움, 절박함으로 찾아도 좋아요.

학생들이 걸어가는 뒤편에서 에드윌 학원의 로고송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처음 노량진역에 도착했을 때처럼 그 노래를 중얼거리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 *

[저희는 강남서초권 학교를 다니고 있기에 어떻게 보면 건방지게 공부를 하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경필이는 사교육을 다니고 싶으면 쉽게 다닐 수 있는 이 동네 학생들을 지적했다.

[우현이가 수학여행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우리는 공부가 부족했기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동규는 전문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절박함과 위기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게는 대학부터, 멀리는 직업 이후 노후 준비까지. 저희는 안락한 배경 속에서 공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민정이도 한 마디를 던지면서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열정이 부족한지를 자책했다.

[그래서 저희 2학년 1반 미래의 슈퍼히어로 팀은 ‘미래 로드맵 정책’을 통해 학생 스스로가 변화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제안드립니다.]

우현이도 자신이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위기의식이라든가 안전불감증 같은 거에 조금 더 예민했다면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여러 비리와 함께 수학여행 사고까지 나온 우리 강문고에 필요한 정책. 그건 선생님들이나 행정선생님들을 향한 징계나 처벌 따위가 아닙니다.]

말을 잠시 멈춘 경필이가 친구들을 한 번 쓱 돌아보면서 신호를 보냈다.

[지금까지 안일하게 살아왔던 우리 학생들이, 두려움과 위기의식이라는 학습 및 활동 동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정이가 경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PPT화면을 변경했다. 그러자 에드윌 학원 합격생 인터뷰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만약 저처럼 고등학생 때 공부를 소홀히 했다면, 지금부터 한번 공부를 해야 할 동기를 찾아보세요. 저처럼 두려움, 절박함으로 찾아도 좋아요. 그러면 그 절박함이 여러분을 새로운 미래로 이끌어 줄 거예요.>

[저희는 그래서 학교에 제안합니다. 학생들에게 편안한 공부 기회를 주기보다는, 이 세상의 풍파를 미리 알려 주어서 성장할 수 있는, 절박함이라는 동기를 심어 줄 수 있는 정책이 생기기를 말입니다.]

그리고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감사합니다.]

경필이의 인사를 신호로 동규, 민정, 우현 세 학생이 모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훌륭해!! 브라보!!”

서 교수가 껄껄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교사들 몇 명은 학생들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교사 잘못이 아니라 학생 잘못으로 이야기한 사실 자체에만 기뻐하기도 했다.

‘한심하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뒤쪽을 돌아봤다. 그러자 이번 행사에 참여한 학부모들이 보였다. 그들은 경필이네 팀이 발표한 내용을 들으면서 얼굴이 시뻘개져 있었다.

이 동네 학생들을 안일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학부모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마, 방금 경필이의 발표는 꽤 많은 학부모들로부터 인상적인 피드백을 받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다음은 3학년 2반의….]

발표가 몇 번 더 이어졌다. 참가 학생들은 저마다 학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여러 이야기들을 꺼냈다. 친구들과의 협동심을 키울 수 있는 예술활동이 많았으면 좋겠다, 학교가 너무 공부만 강조한다, 급식비나 교복 같은 것들의 부담을 최소화했으면 좋겠다 등, 여러 의견들이 나왔다.

이사장은 그 모든 제안들을 들으면서 열심히 메모지에 필기를 했다.

[네, 그럼 마지막으로 3학년 3반 이태웅과 친구들 팀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이상한 이름을 들은 청중들이 깔깔 웃었다. 태웅이가 얼굴이 벌겋게 변한 채로 단상 위에 올라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태웅입니다.]

평생 공부만 했지, 이런 자리에 올라와 본 적은 없었던 태웅이가 손발을 벌벌 떨었다.

[저희가! 어, 준비한 정책은 이겁니다!]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용희가 빠르게 PPT화면을 넘겼다.

그 내용을 보면서 태웅이가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바로 알 권리 정책입니다.]

이번에 나를 비롯해 이사장, 홍 선생을 인터뷰하면서 녀석들은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게 너무 없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데 이게 손님이지 주인이냐?

-그럼 학교 잘못이야 우리 잘못이야?

-우리가 잘못한 거 아냐? 그럼 뭘 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이었다.

사전에 녀석들에게 던져 준 과제들이 있었다.

민주에게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학교를 바라보라고 했고, 은솔이에게는 매점, 의식주를 고민해보라고 했다. 용희에게는 건축물과 학생의 만족도를 생각해 보라고 일렀다.

그리고 그 결과, 녀석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답변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이번에 발생했던 여러 사건들은, 저희 학생들에게 비밀로 진행이 되어 왔던 일들입니다.]

태웅이가 숨을 삼키면서 말했다. 사건을 겪은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청중들 모두가 태웅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만약, 학교의 예산 사용처라든가, 시험진행에서의 투명성, 매점이나 급식비 사용처 공개, 교실 책걸상이나 에어컨 등의 시설 유지비 등을 저희가 모두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렇게 말한 태웅이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걸 알고 있었다면, 급식 비리를 막을 수 있었을 거고, 시험지 유출이나 내신 조작 사태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태웅이가 손짓을 하자 용희, 민주, 은솔이가 단상 위로 모두 올라왔다. 그리고는 함께 마이크를 잡고서 묵직한 한 마디를 날렸다.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을 겪은 강문고 학생들이 강당에 자리한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녀석들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강당 뒤편에서 천우원이 인상을 구기는 모습을 슬쩍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천우원, 이제는 네 차례다.’

이제 천우원에게 총구가 향할 차례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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