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호프집 밖으로 나간 나는 류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 강 선생. 우리 정책 제안 같이 나가기로 했잖아?]
어쩐지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듯했다.
“네, 그랬지요. 아이디어 좀 있으십니까?”
[응. 한번 들어볼래?]
류 선생이 숨을 살짝 고르고는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할 땐 이번에 우리 학교에 터진 사건들, 전부 교사들의 태도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봐.]
“태도라면?”
[강 선생이나 나처럼 진정 학생들을 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뜻이지.]
그 말을 들은 나는 핸드폰 너머로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피식 웃었다.
그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예측하기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교사의 자질을 평가하고 처벌할 수 있을지, 그걸 생각해 보면 좋겠네요.”
[응 그래. 아무튼 고민 좀 해 봐. 나도 내일까지 생각 좀 해 볼게. 알았지?]
“네, 이번에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용건을 마친 류 선생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형식적인 인사기는 했지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진정 내가 류 선생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다 끝났냐?”
계산을 마치고 나온 지석 선배가 물었다.
“네, 가실까요?”
빠르게 각자의 쉼터로 돌아간 우리는 다가올 프로젝트와 사건들을 대비했다.
* * *
전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내려다보면서 류지훈이 천우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천우원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진짜인가 보네.”
“네, 열불 나지만 지금은 강명문과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천우원이 끌끌 웃으며 류지훈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그럼 이번에 교사자질 정책을 어떻게 제안할 생각인가?”
“교사자질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여러 항목들을 평가하게끔 만들 겁니다.”
“예를 들면?”
류지훈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인성, 실력, 입시결과, 가치관, 강의 평가 등. 여러 항목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거라면 강명문이 오히려 최고점을 받을 수 있지 않나?”
주현서의 질문에 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간과하고 있는 사실……?”
천우원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류지훈은 그가 다른 질문을 하기 전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알려 주었다.
“강명문, 그가 하고 있는 모든 선행들이 입시 결과로만 이어진다는 겁니다.”
““!!””
천우원과 주현서가 동시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소리인가? 자살하려는 학생도 구하고 그랬는데?”
“그게 모두, 자신의 평가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걸로 생각됩니다.”
류지훈은 지금까지 강명문의 행동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상하게 계획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명문의 모습은 이상했다.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강명문이 생각하는 대로 사건들이 일어났고, 그걸 막는 건 당연하게도 강명문이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톱니바퀴가 모두 들어맞았다.
그래서 그는 강명문에게는 비밀로 하고서 자신이 의심하고 있는 바를 이사들에게 말했다.
“아마 강명문은 자신의 평가가 좋아지도록 하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을 열심히 했을 겁니다. 초임교사에게 필요한 건 실력도 실력이지만, 학생들로부터 듣는 평가가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학생들을 자신의 이미지로 휘어잡은 강명문은, 그걸 기반으로 입시를 도울 생각일 겁니다.”
류지훈의 말을 들은 천우원이 조용히 술을 마셨다. 그 모습을 본 류지훈은 다시 입을 열었다.
“강명문의 모습은 마치 학원 선생님 같습니다. 사교육스럽게 강의를 하는데, 그게 과연 옳은 것일지, 그 과정이 정말 깨끗했는지를 옆에서 지켜볼 겁니다.”
주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티끌 하나라도 발견하면…….”
“열심히 물어뜯어야죠.”
류지훈이 입을 히죽거리며 말했다.
“알겠네. 그럼 이번에 잘 해 봐. 우리 식구가 된 걸 환영하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인사를 한 류지훈은 천우원, 주현서와 함께 가볍게 건배를 했다.
“참, 그리고 류 선생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신 류지훈이 잔을 내려놓았다.
“네, 어떤 말씀이십니까?”
“혹시나 이상한 마음 품고 있지는 않겠지?”
천우원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은 류지훈의 몸이 조금 움찔거렸다. 그러다 류지훈은 이내 표정을 가볍게 하면서 말했다.
“에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까지 제가 민지정 교무부장 선생님께 받은 혜택이 얼만데……. 그럴 일 없습니다. 저로서도 강명문은 껄끄러운 존재니까요.”
“그 말, 믿어 보겠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류지훈은 천우원, 주현서와 같이 몇 잔의 술을 더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던 류지훈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하, 돌겠네.’
강명문의 말대로 자칫 잘못하면 이사진의 손아귀에 잡혀 살아갈 수는 없었다. 일이 자칫 잘못되면 민지정처럼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미래의 노후까지 설계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강명문과 붙어만 있자니, 그 녀석이 말하는 5년을 버티는 게 쉬울까, 도 걱정이었다.
‘그러면…….’
생각을 마친 류지훈은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한글파일을 열었다.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이 감도는 새벽 밤을 가득 메웠다.
* * *
며칠 뒤, 어린이날이 지난 금요일, <바른 학교 만들기 정책발표 프로젝트>가 열렸다.
“준비들 많이 했냐?”
나는 우리 반인 3학년 3반 학생들을 만나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다고 밝혔던 녀석들에게 물었다.
민주와 은솔이, 태웅이는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네!””
하긴, 녀석들은 이사장이랑 나를 인터뷰해 가면서까지 학교에 도움을 주고자 했던 녀석들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홍 선생까지 인터뷰를 했었다.
그 내용들을 토대로 정책을 고민했으니 저렇게 당당할 수 있겠지.
“다른 녀석들은?”
“저희도 어느 정도는…….”
셋을 제외한 다른 학생들도 나름대로 나를 인터뷰하면서 나름의 방법들을 찾아보려 노력했다.
그 결과, 각자 나쁘지 않은 정책들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좋아. 자료들도 다 제출했지?”
““네!!””
참가를 준비 중인 학생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힘찬 대답을 들으면서 싱긋 웃은 나는 종례를 바로 마쳤다.
“이만 끝! 시간 늦지 않게 강당으로 와라.”
이제 프로젝트가 진행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30여 분. 그 시간 동안, 학생들은 분주하게 움직여서 프로젝트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에, 나는 특별한 손님들을 초대했다.
“강 선생!!!”
“어서 오십시오, 교수님.”
한목대 의과대학장인 서윤수 교수가 강당 입구에서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전날이 어린이날이어서 금요일인 오늘까지 연차를 사용했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아, 그래서 내가 은숙이랑 밥이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한사코 거절하지 뭔가.”
“이사장님답네요.”
껄껄 웃던 서윤수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번 신입생 중에 강문고 학생 있잖나?”
“명천이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녀석, 모교 비리 척결에 도움을 준 녀석이라고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됐어.”
“명천이가요?”
내가 의외라며 묻자 서윤수가 또 한 번 호탕하게 웃었다.
“껄껄! 그럼! 아주 좋은 학생 보내 줘서 고맙네!”
“감사합니다. 명천이가 좋은 평가를 받아서 기분이 좋네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대치동 학생으로 자랐던 명천이가, 지금은 그런 이미지라니. 나로서도 깜짝 놀랄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데, 우리 학교 교수들이 강문고에 관심이 많아.”
“네?”
“명천이처럼 의예과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공부만 잘 했지, 자기 주변에는 관심이 없거든. 그런데 명천이는 주변에 관심이 많지 않은가.”
그게 대체 어떤 내용으로 이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윤수의 말로 말미암아 볼 때 기분 좋은 일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좋은 평가 감사드립니다.”
“됐어. 아무튼, 그래서 강문고 선생님들에게도 관심이 참 많은데, 혹시 우리 학교에서 열리는 강원도 전체 논술 특강 강사로 참여할 생각 없나?”
갑작스런 제안에 나는 눈을 꿈뻑거렸다.
“제가요?”
“그래, 강 선생이. 뭣하면 지난번에 왔었던 그 선생님들 모두 모시고 와도 돼.”
“음…….”
서윤수가 제안하는 논술특강은 꽤나 솔깃한 이야기였다.
한목대뿐 아니라 지역 대학교 전체와 연계하는 특강이다. 게다가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교사들도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건 큰 특혜였다.
“근데 몇 가지 조건이 있기는 해.”
“조건이 어떤 겁니까?”
“그게 말이지…….”
서윤수가 정말 면목이 없다면서 고개를 살짝 숙여 미안함을 표시했다.
“지역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경쟁해야 할 수도 있네.”
“자치단체장 추천으로 뽑힐 학생들과 관련된 문제겠군요.”
서윤수가 말하는 내용이라면 그 이유는 뻔했다. 바로 강원도 지역 대학교들의 광역자치단체장 추천 전형.
그 지역 고등학교 졸업자여야만 지원이 가능한 전형으로, 지역 인재 육성 및 지역 발전을 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형이었다.
미래에는 지역인재전형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세부 명칭들도 조금씩 변경되기는 하지만, 아무튼.
“허어, 또 맞췄네 그려.”
서윤수가 신기하다면서 중얼거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분들이 어떤 걸 염려하시는지는 알고 있으니까요.”
지역 고등학교 교사들이 우려하는 건, 지역 학생들과 도심지 학생들의 학력격차 문제였다. 과거 입시코디를 하면서도 여러 이야기들을 들어왔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괜찮은 선생님이 없어요.
그 이유는 대부분 도시와 지방 간 교사들의 실력 격차, 능력 있는 교사 수급 문제 때문이었다. 현실적인 문제이기는 했으나, 사실 이건 해결되지 않는 숙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소수의 지방 교사들은 그 문제와 관련해서 되려 서울의 강남서초권 교사나 학원계 강사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지금 서 교수가 말하는 지점도 이와 비슷해 보였다.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나?”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제 평소 생각대로 움직이면 될 겁니다.”
서 교수가 내 말에 안심이 된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좋네. 그럼 난 강 선생만 믿을게.”
그를 보면서 싱긋 웃고는 함께 강당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경필이가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녀석은 이번에 친구들과 같이 팀으로 발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기대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멀리 다시금 행사를 준비하러 달려가는 경필이를 보면서 서 교수가 물었다.
“파이팅 넘치는 학생이구만. 쟤도 강 선생 반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쟤가 수학여행에서…….”
“아하! 강문고의 인어공주! 그리고 공교육의 히어로도 같이! 그 별명들 사건을 직접 겪었구만, 크하하하!!”
말도 안 되는 별명들을 꺼내던 서 교수가 자기 멋대로 마구 웃어 댔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나는 학생들을 도와주러 움직였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응? 강 선생, 잠깐만! 에이 삐진 거야? 잠깐만!”
서 교수의 말을 무시하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 위에서 류 선생이 2차에 진행할 발표를 위해 인쇄해 둔 종이를 읽고 있었다.
“아, 강 선생!”
“이사님들과 말씀은 잘 나누셨습니까.”
내 말에 그가 어색한 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강 선생 말대로 자네가 사교육스럽게 움직이는 게 문제라고 이야기했어.”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야? 나를 믿어도?”
나는 류 선생의 질문에 이상한 질문이라면서 답했다.
“선생님께서 이제 변하고 계신데 제가 못 믿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학생들을 위해서 움직이고 계신 것도 분명하게 보이고요.”
그러자 류 선생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 그렇네. 알겠어. 그럼 강 선생만 믿을게.”
“잘 부탁드립니다.”
류 선생과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면서 나는 준비했던 용지를 꺼냈다.
<교사 자질 평가 정책 제안>
그리고 그 아래에는 류 선생과 협의하지 않은 내용이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글씨로 적혀 있었다.
“선생님, 뭐라고 적으신 거예요?”
“아, 그냥 메모한 겁니다.”
옆에서 내 종이를 바라본 박 선생이 물었지만, 그녀는 내 글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정말 괴발개발 적힌 글씨였기 때문이었다.
‘자질 평가단이라.’
엉망으로 적힌 메모를 손가락으로 쓱 그으면서 입술을 씰룩거렸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그리고 곧 프로젝트 시작 시간이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2학년 학생회장! 신나영입니다!]
일전에 제주 올레길 산책코스로 광란의 제주 나이트 때 상품을 받은 학생인 나영이였다.
나영이의 신호에 맞춰 강당에 모인 학생들, 교사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저 인간도 왔네?’
강당에 들어온 사람들을 확인하던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오늘 재밌겠어.’
천우원의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나영이의 멘트에 집중했다.
얼마간 행사를 설명하던 나영이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그럼 바른 학교 만들기 정책발표 프로젝트! 시작하겠습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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