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73화 (173/252)
  • 173화. 진심입니다

    “정했어?”

    “아니, 아직. 넌?”

    “나도. 넌?”

    “나도야. 어렵네 이거.”

    민주, 은솔, 용희, 태웅은 야간 자율학습을 위해 독서실에 남았다가, 학교 1층 복도 계단에 앉아 있었다.

    강문고 바른 학교 만들기 정책 제안 프로젝트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추천 주제를 받기는 했는데…….”

    “여전히 감이 안 온다. 그치?”

    민주는 강명문에게 받은 주제를 골똘히 생각했다. 학교를 경영자의 입장에서 알아본다.

    그럼 그게 누구의 입장을 알아봐야 하는 걸까.

    교장? 교감? 아니면 이사장?

    아무리 생각해도 경영자의 입장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매점 인테리어 공사나 메뉴 변경은 이미 했는데…….”

    답답하기는 은솔도 마찬가지였다. 강명문은 급식과 매점을 중점으로 고민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받은 추천 주제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매점 운영이 학교 경영에 도움이 되는가?

    -의식주 중 식을 책임지는 급식 개선의 효과는?

    -매점에서는 모든 걸 판매해야 할까?

    은솔에게는 수수께끼나 다름없는 말들이었다.

    “나도 미치겠어.”

    용희에게는 강명문이 별도의 종이를 전해 주었다.

    -학교 건축물과 학생 만족도의 상관관계는?

    -학교에 부족한 건물을 찾아보고 필요성 분석

    그러나 용희로서는 학교 건축물이 학생이 갖는 만족도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부족한 건물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다른 학교에는 있는데 강문고에는 없는 건물을 떠올려도 필요성을 뭐라 해야 할지 몰랐다.

    “와…… 큰일났네. 이거 어떡하냐?”

    태웅은 별도로 추천 주제 종이를 받지 않았기에 친구들이 받은 주제들을 토대로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았다.

    “선배들한테 물어볼까?”

    “야 됐어. 매번 물어보기만 하면 어떡해? 그리고 쌤이 그러셨잖아. 직접 하는게 좋다고.”

    용희의 말에 민주가 그건 안 된다며 말했다.

    “그건 알지만…….”

    “응? 선배들?”

    은솔은 용희의 입을 손으로 막고서 골똘히 생각했다.

    “……알았다.”

    “응?”

    태웅이 고개를 들고 은솔을 바라봤다.

    “봉사활동처럼 하면 되는 거야.”

    은솔의 말에 세 학생들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잠시간 고민했다. 그러다가 이내 의미를 알아챈 듯 손뼉을 쳤다.

    “맞네!”

    “봉사활동처럼 해 보자!”

    “그러면 되겠다!”

    민주와 용희, 태웅이 번갈아 가며 한 마디씩 던졌다. 학생들은 해피플레이스 봉사활동 때를 떠올리면서 정책 제안 프로젝트 준비 순서들을 정리해 갔다.

    * * *

    다음 날, 은솔이가 나에게 달려왔다.

    “쌤, 부탁이 있어요!”

    “뭔데?”

    “저희, 인터뷰하게 해 주세요!”

    “누구를?”

    뒤에서 은솔이를 따라오던 민주가 당연한 거 아니냐면서 나에게 말했다.

    “당연히 쌤이죠!”

    그 말에 나는 올 게 왔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설마설마 했더라니만.’

    “해 주실 거죠?”

    “에이! 솔직히 해 줘야죠!”

    두 눈을 빛내며 수첩을 들이대는 녀석들.

    나는 녀석들에게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해 줄게.”

    “진짜죠?”

    “근데 지금은 말고.”

    내 말에 둘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해요?”

    “쌤 약속 있어.”

    “근무 중에 무슨 약속이요!”

    “선생님이랑 있지 누구겠냐.”

    나는 얇은 자켓을 챙겨입으며 일어났다.

    “쌤,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하고 올 테니까 인터뷰는 내일 하자, 오케이?”

    그렇게 말하곤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류 선생…….’

    일단은 류 선생과 이야기 나누는 게 먼저다.

    * * *

    류 선생과 매점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고 한 손에는 각자 캔 음료를 하나씩 들었다.

    “야야, 저기 봐.”

    “대박. 우리 학교 비쥬얼 투탑이 같이 있어.”

    “얼른 사진 찍어!”

    “아 교실에 폰 두고 왔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면 정말 사이좋은 선후배처럼 보이는 모양인지,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류 선생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한 손을 들어 학생들에게 인사를 했다.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말고 종 치면 들어가라!”

    류 선생의 말을 들은 학생들이 밝게 웃으면서 네! 하고 대답했다.

    학생들이 조금씩 자리를 피하자 내가 말을 꺼냈다.

    “부끄럽지도 않으신가 보네요.”

    “응? 아, 아하하, 그게 말이지……. 이, 이게 내 장점이잖아? 언제든 이미지가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류 선생의 이상한 호언장담을 깡그리 무시하고는 궁금한 걸 물었다.

    “류 선생님, 이사진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강 선생이 민 부장님 보내 버려서 살벌하지. 김영호 부장선생님도 불안해하셔.”

    아무래도 민지정과 같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류 선생에게 말했다.

    “정책, 생각해 보셨죠?”

    “응? 그, 그래. 생각해 봤지 응.”

    나는 그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저랑 팀으로 같이 나가는 게 어떻습니까?”

    “티, 팀으로!?”

    이번 정책제안프로젝트는 개인이나 팀, 어느 쪽으로 참가하든 상관없었다.

    그래서 나는 류 선생과 팀을 이뤄서 정책제안 프로젝트에 참가할 생각이었다.

    “왜요? 싫으세요?”

    “아니, 그, 너무 갑작스러워서……. 생각할 시간을 좀 주지 않을래?”

    류 선생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당황해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씨익 웃었다.

    “그럼 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아, 아니 강 선생! 잠깐만!”

    “왜요? 저랑 같이 하시는 게 부담스러우십니까?”

    그 말에 류 선생이 좌우를 슬쩍 살피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게 아니라, 나랑 자네가 같이 뭔가를 하고 있으면 나도 이사진에 찍혀!”

    “왜 찍히죠? 선생님이 일부러 저에게 접근했다고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내가 태연하게 말하자 류 선생이 두 눈을 꿈뻑거렸다.

    “내, 내가?”

    “네. 류.지.훈. 선배님께서요.”

    처음 이야기하는 선배라는 단어에 류 선생이 기분이 좋았는지 입을 씰룩거렸다. 그러다 이내 표정을 고쳐 잡았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럼 저는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내 미소를 본 류 선생이 몸에 소름이 돋았는지 팔을 쓸어내렸다.

    “그, 그래. 그러자고. 응.”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류 선생은 한숨을 푹 쉬고는 남은 음료를 원샷했다.

    “후……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이사진은 아마 선생님을 민지정의 대타로 세우려 할 겁니다.”

    적당히 탐욕도 있고, 불법에 익숙해 보이는 교사. 게다가 외적으로는 인망도 있다고 알려져 있는 류지훈 선생.

    그렇기에 이사진이 강문고에 심어 둘 아바타로는 제격이었다.

    “대타로 움직이시면서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액션을 취해 보겠다, 라는 식으로 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한 듯 류 선생이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오케이 알았어. 적극적으로 해 볼…….”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셨습니까?”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그, 그럼! 그 사람들의 아바타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라! 그런 의미잖아?”

    “후…….”

    내 깊은 한숨을 본 류 선생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잘 들으세요.”

    “……그럴게.”

    “먼저, 적극적으로 움직이라는 건 단순히 아바타 역할만을 하시라는 게 아닙니다. 과잉충성을 보여 주시라는 겁니다.”

    그 말 역시 이해를 못 한 류 선생이 물었다.

    “어떻게?”

    “이사님들을 위해 강명문과 접촉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면밀하게 파악해 보겠다, 그의 약점은 없는지 알아보겠다. 이런 식입니다.”

    이사진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나에게 공격을 받아왔고, 본인들의 공격에 카운터를 맞기도 했다.

    그들이 나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건 나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 부족이었다.

    그렇기에 류 선생에게는 나와 가깝게 지내는 게 하나의 전략이라는 사실을 이사들에게 알리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이사진이 류 선생님을 신임하게 될 겁니다.”

    “그거야 그렇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

    나는 류 선생에게 GF파일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렸다.

    그래, 모르면 그럴 수 있지.

    그래서 나는 류 선생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이건 비밀입니다만…….”

    GF파일의 존재에 대해 들은 류 선생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럼 내가 사이트 운영한 것도!?”

    “그건 없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이사진이 갖고 있는 내용은 돈과 관련된 내용들이니까요.”

    즉, 개인이 뭘 어떻게 하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사들에게 보여진 류 선생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해 돈을 추구한 교사 정도로만 보였으니까.

    하지만, 류 선생이 지금까지 저지른 불법행위는 민지정에게 받은 개인과외 건으로만 수천만 원. 여기에 기타 대회 수상 조작에 내신 시험지 유출 등까지 합치면 1억은 가뿐히 넘을 수준이었다.

    “그, 그치? 다행이다, 휴.”

    “다행이 아닙니다. 그 GF파일, 류 선생님이 먼저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 말에 류 선생이 침을 꼴딱 삼켰다.

    “이사들이 그걸 무기로 류 선생님의 목을 죄고 부려먹기만 할 겁니다.”

    민지정은 지금까지 이사진이 하라는 대로만 움직였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민지정이 저질렀던 부정행위들에 대한 대가였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우리의 말을 잘 들으면 시끄럽지 않게 해 주겠다.>

    그런 생각을 두고 움직였기 때문에 민지정은 그들의 아바타로 활동했던 것이었다.

    ‘가장 주된 이유는 아들 때문이기는 했지만 말이지.’

    반면 류 선생에게는 지금 강남서초 명문고등학교인 강문고의 일타 수학 교사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 타이틀만 갖고 있으면 어디에 가서든 꿀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때문에 남은 인생을 위해서라도 그는 지금의 이미지를 버리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류 선생님은 더 이상 강문고 수학 일타 교사가 될 수 없을 겁니다.”

    “왜, 왜?”

    “이사들의 말만 듣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었다가는 민지정 씨처럼 자기발전 없는 교사로밖에 남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류 선생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한 5년 더 경력 쌓으시고 사교육계로 가시려면 이사들에게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

    류 선생이 깜짝 놀라면서 나를 돌아봤다.

    “어, 어떻게……?”

    “류 선생님 생각이야 뻔하죠 뭐. 지금도 학원들에서 러브콜 오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류 선생은, 미래에 학원을 차리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학교에서 잘린 후, 사교육계에 진출하려고 여기저기 발을 디밀어본다.

    그러나 번번이 쫓겨났다.

    -그런 사이트 운영자를 했던 사람이 우리 학원에 온다고 소문나면 누가 오겠어요?

    그런 이유 때문에 학원장들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그래서 결국 개인 학원을 차리게 되었는데, 그 뒤에는 망했다는 소식만 들었고, 이후 행보는 듣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이번 생에서도 류 선생이 사교육으로 진출할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었다.

    “사건사고가 많은 강문고지만, 그곳에서 수학분야에서만큼은 에이스인 사람. 그곳의 비리를 척결하고 있는 강명문과 함께 다니는 선생 중 한 명으로 인성도 검증된 사람. 학원에서 홍보하기 정말 최적의 그림이지 않습니까.”

    류 선생이 나를 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다 알고 있네.”

    “예측하기 어렵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걸 기억하세요.”

    나는 류 선생을 향해 최대한 따뜻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는 류 선생님이 지난 과거를 모두 씻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향후 계획도 모두 잘 되셨으면 한다고 생각합니다.”

    류 선생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맺혔다.

    “이번 GF파일이 오픈되면 류 선생님의 미래는 민지정과 다를 게 없을 겁니다.”

    “다를 게 없다면…….”

    “몇 번의 검은 거래 때문에 평생을 꼭두각시로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긴장한 채 이야기를 듣고 있던 류 선생이 헙, 숨을 삼켰다.

    “사실 1억 정도는 이사들이 저지른 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자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사들이기 때문에 넋 놓고 있으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거구나.”

    류 선생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습니다. 그래야 나중에는 GF파일의 일부라도 선생님이 활용하겠다면서 빼올 수 있겠죠.”

    “조, 좋아. 그럼 이번 정책 제안? 그 행사에서 내 적극성을 일부 보여 주라는 말이지?”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설명을 보탰다.

    “그리고 실제 제안하는 정책도, 강문고를 생각하는 제안으로 해 주셔야 합니다.”

    “이사진이 원하는 제안이 아니고?”

    그가 의문을 품은 채 물었다.

    “그야…….”

    그때, 류 선생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네, 류지훈입니…….”

    그는 전화를 잠깐 받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바라보다가 운동장을 바라보다가를 반복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내일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류 선생에게 물었다.

    “천우원이나 주현서로부터 온 겁니까?”

    류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영호 부장에게는 알리지 말라는 이야기도 했고요?”

    그러자 류 선생이 그건 어떻게 알았냐면서 나를 돌아봤다.

    “대충 그려졌습니다. 내일 미팅이신 것 같은데, 잘하셔야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며 깜빡했다며 다시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저는 선생님께서 성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입니다.”

    “어, 어…… 고, 고마워.”

    얼떨떨해하는 류 선생을 뒤로하고 교무실로 들어갔다. 애써 웃음을 참으면서 그날 퇴근 시간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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