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72화 (172/252)
  • 172화. 아바타

    그 말에 자리를 둘러싼 모든 교사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아 씨 장난치냐고.”

    침묵을 깬 건 금방이라도 욕을 할 것처럼 인상을 팍! 쓴 지석 선배였다.

    “지금 그게 할 말이에요?”

    “SF영화도 아니고 그게 무슨 소리야. 미래에서 오기라도 했어?”

    박 선생과 윤 선생도 어이가 없다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네, 저 미래에서 회귀한…….”

    “진짜 미래에서 오셨습니까?”

    차 선생이 한 번 더 물었다.

    “그렇습니다.”

    “아이고야…….”

    “와……. 됐어요. 선생님한테 기대한 우리가 바보지.”

    내 대답을 들은 차 선생은 한숨을, 박 선생은 고개를 휙 돌렸다.

    오 선생 역시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며 엑스칼리버로 내 책상을 탁탁 두드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농담이 지나치지 않나.”

    이런 반응일 거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못난 사람 쳐다보듯이 째려보는 사람들도 있을 줄은 몰랐다.

    “박 선생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눈빛은 좀…….”

    “헛소리만 할 거면 그만 말하세요.”

    박 선생의 멘트를 신호로 홍 선생을 제외한 모든 교사들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남은 일정도 잘 처리해 보자며 파이팅을 외치고는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도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 앉았다.

    “선배님, 저는 믿어요, 진짜로요!”

    “하하……. 네, 감사합니다.”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홍 선생을 보면서, 믿어 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라는 내 예상이 틀렸다는 생각을 잠깐이나마 할 수 있었다.

    * * *

    학교에 복귀한 뒤 나와 홍 선생은 기자들의 연락을 쳐내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강 선생님! 그 이후로는 뭐 없어요?]

    “네, 없습니다.”

    신 기자는 계속해서 뭐라도 하나 얻어내려고 그렇게 물었다. 우현이에 대한 기사라든가 나와 홍 선생에 대한 기사는 이미 다른 언론사에서도 많이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앞으로 뭔가 있을 예정입니다.”

    [진짜죠!? 저 선생님만 믿을게요!]

    내 말을 들은 신 기자가 거듭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알겠다고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여전히 바쁘시네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번 수학여행도 강 선생님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참…….”

    그리고 지금 나는 지금 교무실이 아니라 이사장실에 앉아 있었다. 이사장이 긴히 할 말이 있다면서 불렀기 때문이었다.

    “우현이 구한 건 제가 아니라 홍유진 선생님입니다. 제가 한 건 없습니다.”

    “아뇨, 강 선생님이 그 일을 미리 예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이사장이 나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미래에서 온 강명문 선생님.”

    “이사장님은 믿으십니까?”

    그러자 이사장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말했다.

    “그게 아니면 달리 설명이 되지 않아요. 신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위 공무원인 누군가와 친하거나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하지만, 저는 그런 예언 따위가 아니라 지금의 선생님을 믿어요.”

    언제 어디에서 왔든지간에 이사장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강문고 학생들을 생각하는지, 학교를 생각하는지였다.

    “지금까지 강 선생님이 보여 주신 모든 실적들, 업적들. 그건 학교와 학생을 생각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에요.”

    사실 그 실적들이 있어야 내가 살아남는 거기는 했지만, 그런 속내는 가슴 한켠에 숨겨두었다.

    “그래서 저는 강 선생님을 믿어요.”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민지정 교무부장은 해임했어요. 어제 교장선생님 포함한 이사진 회의도 마쳤고요.”

    불과 하루이틀 만에 모든 일이 정리되었다. 민지정은 그래도 이사진의 편에 선 사람이었지만, 이사진은 일말의 고민 없이 가지치기하듯 쳐낸 것이다.

    “지금 민지정 부장…… 아니, 민지정 씨는 어디 계십니까?”

    “조사 받으러 갔을 거예요.”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민지정은 곧장 조사를 받는 모양이었다. 정식 영장도 곧 청구될 예정이라 언제 붙잡혀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 민지정도 그렇고, 조신자와 한무회 이사 사건들도 그렇고, 강문고에서 이상한 일들이 한두 개 발생하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남은 이사들도 분명 문제가 있을 텐데 일이 터지지는 않고…….”

    그렇게 말하던 이사장이 나를 보며 불쑥 물었다.

    “수학여행에서, 다른 일 있었죠?”

    나는 이사장을 만나 GF파일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사실을 생각했다. 아직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는데, 이사장은 분명 무언가 더 있었을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미래 예측이라면 오히려 이사장님이 더 잘 보시는 것 같습니다.”

    “호호호, 아니에요.”

    “이사장님, GF파일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내 말을 들은 이사장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었다.

    “당연히 알죠.”

    그런데 그 반응이, 어째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비리의 온상이 적힌 GF파일이면 분노를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이사장의 얼굴에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단순한 의문만 담겨 있었다.

    “그거 할아버지에 대한 자료들이 들어 있는 파일인데요?”

    “강진 어르신이요?”

    나 역시 의외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강진 할아버지의 생전의 노력들, 그에 따른 성과들이나 협력자들 명단 같은 게 들어 있는 파일인데……. 10년 전인가, 종이로 놔두기만 해서는 언제 유실될지 몰라서 파일로 만들었거든요.”

    “그럼 그 파일이 지금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곽형조 이사에게 있을 거예요. 학교 운영에 필요하다 그래서 예전에 건네줬죠.”

    그렇다면 민지정과 한 교감이 말한 GF파일이 동일한 파일일까? 나는 거기에서부터 의문을 가졌다.

    “이사장님, 제가 들은 GF파일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GF파일에 대해 이사장에게 설명했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이사장은 역시나 이상하다면서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면 그 GF파일에 섞여 있나?”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왜 같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더 이상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 보였다.

    “어쨌든 그 파일의 행방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는 그 파일 안에 이사진과의 전쟁을 끝낼 자료가 들어 있을 거라 봅니다.”

    이사장도 내 의견에 동의한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나도 더 알아볼게요.”

    이사장과 대화를 마치고 이사장실을 나오려는데 이사장이 물었다.

    “선생님, 우리 학교는 혁신이 필요해요.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그 혁신의 중심에 선생님이 계세요. 그러니…….”

    이사장은 나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저 역시 잘 부탁드립니다.”

    그 미소에 화답하면서 이사장실을 나왔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라…….’

    그 말에 내포된 의미가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는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다 정리되면 휴가라도 다녀와야지.’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힘써야 할 게 있었다.

    * * *

    “아싸!!!!!”

    “됐다!!!!!”

    내가 건넨 종이를 받아들고 은솔이와 민주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다들 앉아! 이제 중간고사 성적 하나 받아 놓고는 설레발이냐.”

    내 말에 은솔이와 민주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못마땅한 듯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선생님, 2학년은 분위기 괜찮습니까?”

    태웅이의 질문이었다.

    “인어공주쌤이 계셔서 괜찮을 것 같기는 하지만…….”

    “인어공주 아니야. 원더우먼이야.”

    “수호천사 아니었어?”

    홍 선생의 별명은 아직도 확실하게 정해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수학여행 당시에는 식겁했지만, 지금은 괜찮아. 게다가 범인이었던 민지정 선생님도 해임되었고.”

    “그거 말인데요 쌤, 이제 교무부장쌤은 누가 하세요?”

    민주가 궁금하다며 물었다.

    민지정 (전)교무부장은 아예 교사에서 해임되었다. 그렇기에 현재 강문고에는 교무부장이 없었다.

    “오석상 선생님이 직무대리 맡으셨다.”

    “네!?”

    “침묵의 권왕!?”

    “오대천왕 정도는 되어야 교무부장 하나 봐…….”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앞으로 오석상 선생님이 교무부장 직무대리 하시니까 필요하면 오 선생님 찾아. 알겠냐?”

    학생들이 맥빠진 목소리로 네에…… 하고 대답했다.

    “그건 그거고, 너희들 시험 끝났으니까…….”

    “세특 챙겨야 합니다!”

    은솔이가 내 말을 끊으며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나는 은솔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5월에는 수행평가도 있고, 정책 발표 프로젝트도 있을 거다.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녀석들은 반드시 5월을 잘 챙겨야 해.”

    내 말에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침을 꼴딱 삼켰다.

    “특히, 정책 제안. 올해 강문고는 세간의 주목을 있는 대로 받아왔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주도적으로 움직였는지를 보여 줘야 한다.”

    강문고가 올해 각종 비리로 얼룩진 모습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 비리들을 밝힌 사람들이 학교를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신 기자의 도움 덕분에 그런 변화의 노력이 더 강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학교를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끔 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게 자기주도성이고, 발전가능성이야. 그리고 애교심을 보여 줄 수도 있지.”

    “애교심이 중요한가요?”

    이번에는 태웅이의 질문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애교심이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학생들을 한 번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우리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학교에 애정을 가질 것인가.”

    많은 학생들이 반수나 재수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학교로 진학해서의 이유도 있고, 다니다 보니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희망하는 학과와 다른 학과로 진학해서 그렇기도 했다.

    “입학사정관제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야. 이탈율을 줄이기 위함이다.”

    추후 입학사정관제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바뀌면서 대학들은 학종 전형을 확대했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학종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애교심이 높다는 것이었다.

    “학교, 학과에 원래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학생이 입학하는 것과 적당히 점수 맞춰서 입학한 학생. 어느 쪽이 더 애교심이 있을지는 뻔하지 않냐?”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반 녀석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니 수시 교과 전형이나 수능 준비하는 녀석들도 각자 가고 싶은 학교, 학과 정도는 세팅하는 게 좋아. 알겠지?”

    ““네!!!!””

    기분 좋은 대답을 들으면서 종이뭉치를 꺼냈다.

    “이게 뭐예요?”

    민주가 종이를 받아들고는 물었다.

    “바른 학교 만들기 정책 제안 프로젝트의 맞춤형 추천주제들이다.”

    경영학과를 생각하는 민주에게는 학교를 경영하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도록 추천 주제를 정리했다.

    외식경영학을 준비하는 은솔이에게는 급식실과 매점을 중점으로 생각해 보도록 추천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학생들 개인별 맞춤형 추천 주제들을 종이로 인쇄해왔고, 그걸 각자에게 나눠 주었다.

    “어디까지나 추천 주제들이라는 거 잊지 말고. 잘 준비해서 경쟁력 챙겨 보자.”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학생들 모두가 종이를 받아든 채 놀란 토끼눈을 했다.

    ““감사합니다!””

    “참, 교과나 수능으로 준비하는 녀석들은 딱히 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싶으면 해도 되죠?”

    “당연하지.”

    태웅이의 질문에 밝게 웃으면서 답했다. 녀석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는 듯해 보였다.

    “기대하고 있으마. 이만 종례 끝!”

    민주의 신호에 맞춰 학생들의 인사를 받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됐어.’

    올해 내가 할 일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활동이었다.

    학생들이 직접 움직여서 해결하는 것과 교사들만 열심히 뛰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학생들의 주도성은, 향후 사학비리 폭로전이 되었을 때 중요한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프로젝트도 도와야지.’

    그래서 굳이 추천 주제들까지 만들어 주고 그랬던 것이었다.

    ‘남은 건…….’

    현재 이사진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민지정이 빠져나간 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가.

    간단하게 생각하면 김영호 부장이겠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다. 민지정과 긴밀한 관계인 김영호를 이사진이 믿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박쥐 같은 인간인 한 교감을 믿을 리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사진은 다른 교사와 컨택하려 할 것이다.

    천우원 이사가 GF파일을 가지고 강문고를 쥐락펴락할 수 있도록 돕는 아바타. 그 아바타로 활동했던 민지정에게는 몇 가지 결핍이 있었다.

    실적, 인성, 이미지.

    때문에 이번에는 그 3개를 모두 갖춘 교사를 찾을 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정책 제안 프로젝트의 발표 중 2차 발표 시간에 나올 교사를 찾았다.

    [웬일이야, 강 선생!]

    “선생님, 내일 시간 되십니까?”

    부정을 저지른 교사 중 실적도 좋으며, 외부에는 인성, 이미지도 좋다고 알려져 있는 선생.

    그 주인공인 류지훈 선생이 핸드폰 너머에서 가식적인 웃음을 날렸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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