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71화 (171/252)

171화.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최대한 안전에 유의하면서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민 부장은 사건 관할이 서울로 이관되었다. 아직 확실한 증거를 꺼내거나 하지는 못했기에 서울에서 추가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한 교감은 어제 일 이후로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듯했다. 눈을 감고 끄응, 하며 계속 생각을 거듭하고 있기에 나도 별 터치를 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어제와는 달리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비행기 안전지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빨리 핸드폰 꺼!”

“내가 비상구 옆이니까 유사시에는…….”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에 홍 선생과 내가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어제 누구와 통화하셨어요?”

“아, 박 선생님과 잠깐요. 부탁할 게 있어서.”

“……박은환 선배님이요? 그 새벽에 두 분이 왜 전화를 하셨죠?”

이야기를 주고받던 홍 선생의 얼굴이 한껏 구겨졌다.

“아 별 것 아닙니다. 다음에 있을 행사 이야기였어요.”

아무래도 검사를 만나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기는 좀 그래서 대충 둘러댔다.

그러나 홍 선생에게 그런 핑계가 통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뒤로도 홍 선생은 나에게 박 선생과 어떤 이야기를 했냐면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별거 아니라며 적당히 얼버무렸다.

‘왜 저래?’

그 이유를 모르는 나로서는 답답할 뿐이었다.

아무튼, 그런 우리들 뒤로 학생들도 시끌시끌했다.

“우현아, 진짜 괜찮아?”

“응. 그래도 좀 쉬었잖아. 이제 괜찮아. 너희랑 같이 돌아가야지.”

우현이는 며칠 더 쉬다가 오라는 한 교감과 의사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안정을 취했다면서, 곧장 김포로 향하는 비행기에 함께 오르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우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완벽 보호를 받으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보호벽의 중심에는 경필이가 있었다.

“심우현! 뭐 하나라도 불편하면 당장 말해야 해. 알았어?”

“지금 네가 가장 불편해…….”

우현이의 말에 학생들이 낄낄거렸다.

아침에는 졸업생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쌤! 돌아가면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이거. 가시면서 드세요.

졸업생들이 아침 일찍 리조트를 찾아와서는 오메기떡 한 박스를 건네주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거절했다. 하지만, 이제 고등학생이 아니라 대학생이니까 받아도 되지 않느냐며 녀석들이 고집을 부리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받아오게 되었다.

‘나중에 선생님들이랑 같이 먹어야겠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비행기는 무사히 제주도를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포공항에 도착했고, 학생들과 교사들은 저마다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시점, 나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사당역으로 움직였다.

한쪽에는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말이다.

“어휴 무거워.”

졸업생 녀석들이 줬던 떡과 함께 모든 짐을 지하철 코인락커에 맡기고 핸드폰을 들었다.

-사당역 부근 카페로 가시면 돼요. 장소는…….

비행기에서 내려서 혼자가 되자마자 박 선생과 통화를 하면서 받은 주소였다. 나는 그 주소에 적힌 카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카페 원두>

참 대충 지은 이름이다 생각하면서 카페 문을 열었다.

“아메리카노 하나요. 아이스로.”

주문을 하고 카페를 둘러보았다. 구석자리에 양복을 갖춰 입은 남성 한 명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내가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자 그가 보고 있던 서류뭉치를 내려놓았다.

“강명문 선생님?”

“네. 강세혁 검사님 맞으십니까.”

깔끔하게 머리를 내리고 검은색 정장을 입은 강세혁 검사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강세혁입니다.”

그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살짝 흔들었다. 테이블 위를 보니 서류뭉치의 제목이 살짝 보였다.

‘내신조작이라…….’

아마 강문고에 있었던 내신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중인 것 같았다.

“저를 만나고 싶다 하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몇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만…….”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테이블에 세팅되는 걸 시작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GF파일에 대한 부분.

나는 한명심 교감과 민지정 교무부장에게 들었던 GF파일의 존재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 도중 강세혁 검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GF파일이 가지고 있는 증거물로서의 효력을 고민하는 듯했다.

“그 자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기록되어 있는지는 모르시는 거군요.”

“네,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 이사진을 통해서 어떻게 구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사진은 서로 다른 편 아닙니까? 쉽게 해 줄 리가…….”

“생각해 둔 계획이 있습니다.”

내 말에 강세혁 검사가 알겠다며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저한테 그런 증거가 있다, 정도로만 말씀을 주려고 하신 건 아닐 텐데…….”

강 검사는 내 얼굴을 살피면서 그렇게 물었다.

“사실 제가 가장 묻고 싶은 건 GF파일의 사용 방법입니다.”

“사용방법이요?”

“만약 GF파일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어설프게 곧장 이사진을 신고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 말에 강 검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 선생님 정도면 역풍 맞을 일이 없지 않습니까?”

“역풍은 저에게 직접 부는 게 아닙니다. 제 주변을 지나쳐서 들어올 겁니다.”

아마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되면 이사진은 지금까지 나와 친하게 지냈던 모든 이들의 치부를 드러낼 게 분명했다.

한 교감과 민 부장, 류 선생은 기본이고 지금 내 편으로 들어와 있는 여러 선생님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마 없는 일도 만들어 내려고 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 게 뻔합니다.”

“그렇게 되면 GF파일을 공개하면서 수사하는 의미가 전혀 없겠군요.”

강 검사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이걸 사용해야 할지를 물으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신분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시기 어려우신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문고에서 사건이 터지면 제일 먼저 강 검사님이 움직이실 것 같아서 미리 알려드리려고 했습니다.”

박 선생의 아버지인 박성혁 차장검사는 중앙지검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평검사로 강세혁 검사를 골랐다. 아마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가장 믿을 만한 검사.’

믿을 만하다는 뜻은 나름의 사명감도 갖추고 있고, 실력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나는 박성혁 차장검사의 안목을 믿었다.

“검사님께서 먼저 알고 계셔야 나중에 움직이시기 편하실 것 같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저로서는 편하지만은 않군요.”

사건 전에 이렇게 사건을 터트리겠다고 밝히는 사람을 만났다면, 강 검사로서도 좋은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계약이 오고 갈 경우의 문제였다.

아니, 이것도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 뭐.

“지나가다가 기인이 이야기하고 갔다, 정도로만 생각해 주십시오.”

“뭐…… 알겠습니다. 그러면 GF파일은 확보하시더라도 바로 터트리지 마시고 아껴 두십시오.”

그의 말에 내가 왜 그렇냐며 물었다. 그러자 강 검사가 다 마신 커피잔을 아쉽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말씀처럼 이사진들이 역공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히려 GF로 선공을 날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뇨. 그 사람들이 선공을 날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강 검사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잠깐 생각을 해 본 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었다.

“알겠습니다. 이해했습니다.”

싸움에서는 선빵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선빵을 잘못 날렸다가 되려 카운터를 맞고 고꾸라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나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폭로전. 폭로전은 서로의 치부를 밑도 끝도 없이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내가 몰랐던 다른 교사의 잘못된 행적이 오픈될 수도 있고, 여론전에서 밀릴 수도 있다.

그 모든 과정들을 생각했을 때, 괜히 잘못해서 우리 팀이 공격을 받게 되어서 힘을 잃으면 그게 더 큰 위험으로 다가갈 수도 있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그때 되면 다시 뵙겠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도 궁금한 게 좀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강 검사가 나에게 도움을 준 만큼 나도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줄 생각이었다.

“강 선생님, 검사인 제가 이런 걸 여쭤보는 게 정말…… 좀 그렇기는 하지만…….”

그가 손깍지를 펴고 테이블 위로 몸을 기댔다.

“혹시 무당 같은 걸 하십니까?”

“무당이요?”

“아니면 신기 있다는 말을 듣지는…….”

내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잊어 주십시오.”

“무슨 연유인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실 선생님에 대해 조사를 좀 해 봤습니다.”

그는 나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사를 해 봤다고 했다. 혹시나 교육청과 커넥션이 있지는 않은지, 지금까지의 사건을 모두 직접 일으킨 건 아닌지 등이었다.

그러니까, 예컨대 퓨쳐컨설팅 설명회 사건을 내가 일부러 퓨쳐컨설팅을 쫓아내기 위해 그런 연극 자리를 만든 건 아닌가, 그런 식의 의문이었다.

당연하게도 나에 대해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방금처럼 무당, 신기를 묻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후…… 그런 게 아니라면, 강 선생님은 정말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이 좋다는 설명밖에는 안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강 검사에게 내가 미래에서 왔다는 이야기, 회귀했다는 이야기를 해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도 적당히 그의 푸념에 맞춰 주면서 남은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켰다.

“말씀 끝나셨으면 이제 일어나 보겠습니다.”

“네. 다음에 뵙지요.”

우리는 가볍게 악수를 다시 나누었다. 카페 정문을 나오면서 박 선생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이번에도 강 선생님 예언대로 됐네요.

-아무튼 남은 일정도 잘 보내세요. 오시면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니까.

이제는 우리 인원들에게는 일부라도 오픈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GF파일에 대해서도 알려야 하고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교사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를 고민하며 코인락커에서 짐을 되찾았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교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 * *

서울로 돌아와서 첫 출근일, 나는 지석 선배, 박 선생을 비롯해 여러 교사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들 사이에서 태연하게 졸업생들이 준 오메기떡 박스를 꺼냈다.

“일단 이것부터 드시면서…….”

“빨리 말해 봐요.”

박 선생의 질문에 내 손이 잠깐 멈추었다.

나는 주변에 서 있는 교사들을 둘러봤다.

심지석, 박은환, 윤기준, 오석상, 홍유진, 차석기.

총 여섯 명의 인원이 내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나는 수학여행지에서 있었던 일, 민 부장의 이야기, 한 교감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말했다. 거기에는 당연하게도 GF파일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 말을 들은 교사들이 모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이 파일에 대해 알고 있는 박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그 파일 확보가 최우선이겠군.”

오 선생이 엑스칼리버를 바닥에 세운 채 말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 파일이 아마 천우원 이사한테 있을 것 같아서,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내 말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끄응, 신음소리를 낼 뿐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입시 준비를 하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입시준비를 하면서?”

지석 선배가 물었다.

“조만간 정책제안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때 무언가 움직임이 있을 겁니다.”

“인문계열 준비하는 학생들이면 분명 비교과활동으로 활용하기도 좋겠지.”

오 선생의 말에 윤 선생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런데 6월 감사 때 밝힐 순 없는 건가?”

“어설프게 감사로 이사진을 잡으려 하면 되려 역공 맞을 확률이 크겠죠. 지금까지도 안 잡혔잖아요?”

박 선생의 대답을 들은 차 선생이 말했다.

“저희 반에도 수시 준비하는 녀석들이 좀 있습니다. 그 녀석들에게 그 프로젝트, 반드시 참가하라고 해야겠습니다.”

“저도요! 경필이는 꼭 참여시켜야죠!”

홍 선생의 말에 내가 인원을 더 추가했다.

“가능하면 동규, 민정이, 우현이도요.”

“네!”

이유는 묻지 않는 그녀의 대답에 살짝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다들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여 주었다.

“그럼 이제 오늘의 본론을 물어볼 차례네요.”

“네? 지금도 충분히 본론…….”

박 선생의 말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려다가 나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강 선생님.”

“네……?”

“왜 모든 사건들이 강 선생님 예측대로 움직이는 거죠?”

그녀의 질문을 들은 다른 교사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까지 모든 일들은 내 예측대로 진행이 되었으니 이런 반응이 당연했다.

‘진실을 이야기해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차피 한 번쯤은 이 말을 해두기는 해야만 했다.

“저는…… 미래를 알고 있습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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