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70화 (170/252)

170화. 행방

민지정 교무부장의 조사 때문에 경찰을 따라갔던 한명심 교감은 그곳에서 민지정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강명문이 GF를 알게 됐습니다.

그 말인즉슨, GF파일이 강명문의 손에 떨어지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한명심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사들에게 알릴까?’

‘아직 강명문은 그 파일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이참에 더 숨기자고 할까? 아니면 아예 삭제해달라고 해 볼까?’

‘아니야, 아마 그렇게 말하면 자기네들 일에 간섭하지 말라면서 더 협박받을 수도 있어. 차라리 이사장과 강명문 쪽으로 완전히 붙을까?’

‘붙는다 해도 내가 저지른 일들도 GF파일에 있을 텐데, 그건 어떻게 가리지?’

그런 각종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리고 한명심은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결심했다.

‘자수해서 광명 찾자!’

지금까지 저질렀던 부정한 일들은 모두 GF파일에 들어 있었다. 강명문과 함께 일하기 시작한 작년부터는 그 정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어쨌든 부정을 저지른 건 저지른 거였다.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부정은 많은 편이기는 했지만, 이사진만큼 많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 시점에서 강명문에게 모든 일들을 알리고, 이 자료를 찾아주는 대가로 감형해달라고 이야기를 해 볼 수는 있었다.

‘일단 반성을 하고 있다고 하자.’

그는 열심히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의 결말에는 한명심이 희망하는 해피엔딩이 그려졌다.

‘정말 운이 좋으면, 모든 일들을 용서해 줄지도 모른다.’

어설프게 이사진을 끌어들이면, 오히려 자신의 약점만 더 생길 것 같았다. 그들의 성격상, 이 정보를 알려 준 것을 칭찬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려 계획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한명심은 강명문에게 GF파일에 대해 알렸다.

“GF파일은 골드 팩토리라고 해서…….”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다른 정보는요?”

“아, 알고 있었어? 그럼 어흠. 지금까지의 여러 부정한 일들이 정리되어 있어. 장부 정리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이사진이 강문고 교사들을 휘어잡기 위한 목적이 더 큰 파일이야.”

강명문은 한명심의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예상대로, GF파일은 이사진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무기였다.

“그럼 거기에 교감선생님의 행적도 기록되어 있습니까?”

직설적인 질문에 한명심이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이내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그렇다네.”

“그렇군요. 그럼 그 파일에 있는 내용들도 알고 계십니까?”

한명심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를 했다. 택시를 타고 오는 길에 이미 결정을 끝낸 사항이었다.

“적어도 내가 저지른 일들이랑 내 후배 교사들이 저지른 일들은 알고 있네. 그건 자네도 알고 있는 사항들도 많을 거야.”

“급식비 횡령, 내신조작, 대회수상조작, 이런 것들 말씀이시군요.”

“으, 응, 그렇지. 그런 것들이야.”

강명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한명심에게 그가 저질렀던 부정한 일들을 꺼냈다.

“그 외에 이사진에서 했던 일들도 그 파일에 있는 겁니까?”

“그래, 결국 그 파일은 이사진에서도 다른 이사들을 컨트롤하기 위한 거거든.”

“이사들을 컨트롤 한다……?”

한명심의 말에 강명문이 의문을 가진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한명심은 목소리를 조금 더 낮췄다.

“곽형조 이사. 그분이 모든 증거를 갖고 계셔.”

그 말에 강명문도 깜짝 놀랐다.

“곽형조 이사가 말입니까?”

“맞네.”

“그럼 파일도 그 사람이 갖고 있겠군요.”

한명심이 그렇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핑계라도 대듯이 말을 이어 갔다.

“결국 우리도 곽형조 이사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인 거야. 민 부장도, 나도 다 마찬가지…….”

“하지만 결국 부정 이득을 취하신 것 아닙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강명문의 말에 한명심이 입을 꾹 닫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씨익 웃은 강명문이 차갑게 물었다.

“그래서 교감선생님.”

“응?”

“지금까지 교감선생님은 부정부패의 라인 중 나름 위쪽이신 것 같은데, GF파일에 대해 굳이 저에게 알리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게…….”

한명심은 택시에서 생각했던 변명을 한 번 더 정리한 후 천천히 말했다.

“그…… 반성을…… 하고 있네.”

“반성이요?”

황당하다는 듯 이야기는 강명문을 향해 한명심이 손을 꼼지락거렸다.

“지금까지는 그게…… 내가 생각해도 참 쪽팔릴 일들을 많이 했어. 한순간의 돈에 눈이 멀어서 말이야. 하, 하지만 이제는 달라! 믿어 주게!”

감정에 호소하는 한명심을 보면서 강명문이 코웃음을 날렸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제가 모두 덮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자네 이사장님과 친하지 않은가. 박 선생과도 친하고. 그러니까 어떻게 이야기를 좀 잘 해서…….”

강명문은 그렇게 말하는 한명심을 보면서 생각했다.

‘학생들과 달리 이 인간은 변함이 없다.’

친구의 사고 때문에 변화한 2학년 학생들과 비교를 했을 때, 한명심은 학생들보다 더 나은 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본인이 희망하는 바를 생각하는 것처럼 눈을 똘망똘망 빛내는 중년의 아저씨를 보면서 강명문이 말했다.

“그걸 결정하는 건 제가 아닙니다. 검사님들이 결정할 거고, 이사장님이 결정하실 겁니다.”

“가, 강 선생!”

“그리고 저는 교감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믿지도 못하겠습니다. 우선 알려 주신 내용들은 제가 잘 쓰겠습니다.”

그의 말은 차가웠고, 서늘해서 귓가에 서리가 끼는 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로 섬뜩한 기운을 풍겼다. 그러나 한명심은 그걸 느낄 새도 없이 리조트 안으로 들어가는 강명문의 팔을 붙잡고만 있었다.

“나, 나 좀 살려 주게. 해외에서 공부하는 우리 딸이 있어! 이제 겨우 중학생이야! 그리고 우리 딸이 자네 팬이야!”

이제는 하다하다 안 되니까 감정에 호소하는 한명심이었다.

“그, 내가 자네가 있는 학교의 교감이잖아. 그걸 우리 딸이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해! 처음으로 내가 자랑스럽다고 해주기도 했어!”

얼마 전, 국제전화로 딸과 통화를 할 때, 한명심은 혼자 소주를 홀짝거리다가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빠, 강명문 선생님네 학교 맞지?

딸이 먼저 자신의 근무지 이야기를 해 준 적은 처음이었다.

-그럼! 아빠가 강문고 교감이잖아!

-그럼 강명문 선생님 직접 보고 그러겠다! 어때? 기사랑 영상으로 볼 때는 키도 크고 잘 생기셨던데! 완전 내 이상형이잖아!

그리고 한참을 강명문의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다. 딸과의 국제전화가 이렇게 길게 이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강명문이 이태웅을 구한 사건 이후로 한명심의 딸은 해외에서도 강명문이 유명하다면서 이야기꽃을 피운 것이었다.

-내가 오늘은 강 선생이랑 회의를 했는데…….

-우와, 아빠가 강명문 선생님이랑 회의한다고 하니까 신기해.

-그러니? 허허허. 내가 교감이잖아. 강 선생보다는 한참 위지.

-그거야 그렇지. 그래서 오늘은 무슨 회의를 했어?

한명심은 유학을 간 이후 소원해졌던 딸과 다시금 친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강문고 교감이라고 친구들에게 자랑도 많이 했어!

-오, 친구들도 우리 학교를 알고 있니?

-당연하지! SNS에서 난리잖아. 우리 아빠가 거기 교감선생님이라고, 강명문 선생님하고도 친하다고 그랬더니 막 아빠도 급식비리 이런 거 다 파헤치고 그러신 거 아니냐면서, 히어로라고 그랬어!

-으, 응, 그랬구나.

-아빠도 선생님 도와서 비리 척결하고 있지?

-다, 당연하지. 나도 강 선생이랑 같이 그런 일들 없는지 조사하고 있어.

-역시! 아빠가 자랑스러워!

심지어는 이런 이야기들도 하면서 한명심은 딸에게 거짓으로 자신의 업적을 포장하고 있기도 했다.

“저기, 강 선생. 그러니까 나, 강문고 교감직은 유지해야 해. 제발 어떻게 안 되겠나?”

그러니 지금 한명심은 다급했다.

만약 학교에서 저지른 부정한 일들로 인해 교사에서 잘리게 되면, 딸로부터 어떤 멸시를 받게 될지 무서웠다.

때문에 이렇게 자수를 해서 최대한 자신의 자리도 지키고, 지금부터라도 강명문과 강은숙 이사장을 도울 예정이었다.

뼈를 갈아서라도 말이다.

“내가 정말 반성 많이 했어! 올해는 조용히 있었고, 오히려 자네를 도와주지 않았나 응? 학급 배정도…….”

“어차피 모든 결정은 법정에서 하시게 될 겁니다. 저는 이사장님께 말씀만 드릴 뿐입니다.”

여전히 차갑게 말하는 강명문은 한명심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한명심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제발! 어떻게 안 되겠나?”

“후……. 이러지 마십시오. 다른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보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강명문은 한명심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한명심에게 다가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정 그러시면, 이렇게 해 주십시오.”

“그, 그래. 어떻게 할까?”

“GF파일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알아 와 주시고, 그 파일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 오세요. 그러면 제가 이사장님께는 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 말에 한명심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알겠네!”

* * *

‘하, 미치겠네.’

한 교감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GF파일의 행방에 대해 생각했다.

민 부장은 분명 천우원 이사에게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방금 한 교감은 곽형조 이사에게 그 파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걸 누가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갖고 있을까.

그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본격적인 조사를 들어가기는 어려울 터였다.

‘어떻게든 입수를 해야 하는데…….’

아마 이사장도 이 파일의 존재는 정확하게 알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일단 한 교감을 이용해서 GF파일에 대해 더 알아낼 생각이기는 했지만.

‘과연 잘 하려나.’

용서해 줄 생각은 없지만, 이용할 대로 이용할 생각은 있었다.

지금 누구보다도 GF파일에 가깝게 있는 사람은 한 교감이니 말이다.

“으으음……. 그래도 걱정된단 말이지…….”

“무슨 고민 있으세요?”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는지 홍 선생이 리조트 바깥으로 나왔다.

“아, 고민할 게 좀 있어서요.”

“2학년 학생들 상담 때문에요?”

“뭐, 그것도 있습니다만.”

나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홍 선생에게 물었다.

“홍 선생님, 만약 선생님이 비밀스러운 자료를 갖고 있는데, 그걸 다른 사람한테 들키고 싶지는 않아 해요. 그런데 그 자료가 있어야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잡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 자료를 쓰기는 해야 하는데, 감추기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비밀자료요?”

“예시이기는 한데……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홍 선생이 손을 턱에 올리면서 낮게 신음했다. 그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라면 가장 친한 사람이나 믿을 수 있는 분에게 줄 거 같아요.”

“들키면 안 되는 데도요?”

“그래서 가장 믿음직한 사람에게 맡기는 거죠. 너랑은 무덤까지 함께하겠다! 뭐 이런 사람들 있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이 자료를 나 대신 사용하게 만들고, 그걸 대가로 무언가를 주고…….”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순간,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자료는 곽형조에게 있었다.

그러나 곽형조는 GF파일을 실제로 꺼내거나 사용하지는 않는다.

대신 천우원에게 GF파일을 맡기고, 천우원이 행동하게끔 지시를 내린다.

그 행동의 대가로 돈이나 명예, 또는 권력 등을 약속해 주거나, 이미 지급을 하고 있다.

가설을 마친 나는 홍 선생을 향해 씨익 웃었다.

“감사합니다. 생각이 정리가 되네요.”

“정말요? 다행이에요 선배님! 그럼 수학여행 끝나면 저랑 밥…….”

“먼저 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급히 전화가 필요해서요. 선생님도 피곤하실 텐데 얼른 쉬세요.”

홍 선생의 말을 끊고 방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박 선생님, 접니다.”

[누가 이런 새벽에 전화하라고 했어요?]

“방금 전화해도 된다고 하셔 놓고는……. 아무튼, 뭔가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습니다.”

박 선생에게 방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설명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박 선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민해야 하는 건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GF파일이 곽형조에게 있다고 했을 때, 어디에 있을 것인가.

또 다른 하나는, GF파일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나.

“마지막으로, 우리가 파일을 확보했을 때 어떤 시점에서 터트려야 하나, 입니다.”

[네, 알겠어요. 그런데 저한테 이걸 지금 알려 주시는 이유가 있어요?]

내가 이사장이 아니라 박 선생에게 바로 전화를 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박 선생의 아버지. 중앙지검 박성혁 차장검사.

“아버님과 통화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차장검사처럼 높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아버님께서 다른 검사님 한 분을 찾으셨을 겁니다.”

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법은 법조인에게.

그리고 법정에서 증거물로 활용이 될 수 있는 GF파일. 그걸 어떤 식으로, 언제 활용할지에 대한 부분은, 우리 쪽 담당검사와 상의를 할 생각이었다.

“강문고 전담 검사님과 통화를 한번 하고 싶다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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