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69화 (169/252)

169화. 광란의 제주나이트 (2)

사실 이번 수학여행 일정에서 담임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안전에 유의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친구들 잘 챙겨! 낙오자 있으면 안 된다!

-혹시나 뒤에서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고립되지 않게 조심하렴.

그런 이야기들을 나를 포함해 홍 선생, 한 교감도 해왔다. 다른 반 담임교사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운영 매뉴얼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이 정도 사항은 가볍게라도 안내를 해 왔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을 학생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단순히 노는 시간으로만 생각했던 수학여행.

그렇기에 학생들은 이 장소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개념을 갖지 못했다.

[저희는 그런 잘못을 해소하고자 이 스토리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병원에서 쉬고 있을 우현이가 돌아오면, 꼭 미안하다는 말을 해 주고 싶습니다.]

경필이의 이야기를 듣던 2학년 1반의 나머지 학생들이 모두 맞장구를 쳤다.

“사과하자 꼭.”

“응. 내 뒤에 있었는데도 못 봤으니까, 내가 먼저 할 거야.”

그런 친구들의 중얼거림을 들으면서 경필이가 마지막 멘트를 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저희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담임선생님, 오늘 우현이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대로 배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경필이는 마이크를 잡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상으로 발표 마치겠습니다!]

발표가 끝난 강당에 고요한 적막만이 흘렀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2학년 1반 학생들만큼 이번 사고를 심각하게 느낀 사람이 있었을까.

홍 선생이면 모를까, 이런 사건이 벌어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학생들, 다른 교사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중, 우현이와 같은 반인 2학년 1반 친구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잘 도와줬네.”

게다가 여기에는 명천이의 조언도 섞여 있었다.

-수학여행지에서 부족했던 거?

-네. 저희가 미리 수영연습을 해뒀거나 바위에 못 올라가게 막았거나…….

-너희가 강명문 쌤이나 미술쌤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걸 하겠냐?

-하긴 그건 그렇죠.

-그냥 공부가 부족했던 거야.

-네?

-나도 그랬어.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고, 공부는 무조건 책만 펴고 해야 한다고도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동석이랑 이야기해 보면 알아. 저 녀석은 책으로만 공부한 게 아니야.

-그럼요?

-그냥 다양하게 경험한 거야. 너희도 수학여행에서 공부 말고 다른 걸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중간에 동석이 칭찬까지 포함한 명천이의 조언을 들은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고민했다.

그 결과, 2학년 1반 학생들의 ‘만약에’ 스토리가 나올 수 있었다.

‘자식이, 그런 이야기도 할 줄 알고.’

명천이의 변화를 확인한 건 또 별도의 재미기도 했고 말이다.

짝짝짝-

적막을 깬 건 다른 학급의 박수 소리였다. 학생들은 2학년 1반의 발표에 감명받았는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홍 선생이 경필이와 2학년 1반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배워야 한다?”

[네!]

“배우겠습니다!”

학생들의 외침을 들으면서 홍 선생이 밝게 미소를 지었다. 홍 선생의 미소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나 보였다.

* * *

2학년 1반 발표 이후 희망 순서에 맞춰서 발표가 이어졌다. 어떤 학급은 수학여행에서 ‘담임선생님이 나였다면’ 이라는 주제로 하기도 했다. ‘색다른 만남이 있었다면’ 이라며 지역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났다면 어땠을까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다양한 If의 스토리를 만든 학생들의 발표는 약 두 시간쯤 지나자 마무리가 되었다.

[그럼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낸 학생, 학급을 뽑겠습니다!]

단상 위로 올라온 은장이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학생들이 입으로 효과음을 냈다.

[2학년 3반, 올레길 산책코스를 추천한 신나영 학생!]

“꺄악! 저요? 진짜요!?”

올레길 산책코스를 걸으면서 복잡한 심경을 잊고 친구들과 힐링했으면 한다는 의미를 담은 추천 코스였다. 나영이는 그 과정을 담백하게, 그리고 일상에 지친 학생들과 유채꽃을 비유해서 재미나게 설명했었다.

[수상에는 2학년 3반 담임선생님이신 김유천 선생님께서 해 주시겠습니다!]

김유천 선생은 영어를 담당하고 있는 선생으로 민 부장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민 부장이 잡혀갔을 때부터 생각이 많아보였지만, 지금은 학생들 앞이어서 그런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축하한다.”

초콜릿세트를 받은 나영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총 10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이어서 If Memory 수상 학급을 선정하겠습니다!]

이번에도 학생들이 입으로 북 소리를 냈다.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은장이가 말을 할 듯 말 듯 하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수학여행의 의미를 가장 잘 살린 2학년 1반!]

““우와아아!!!!””

경필이, 동규, 민정이 등 2학년 1반 학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 환호성도 잠시, 학생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수상한 학급 대표인 문경필 학생은…… 왜 그러나요?]

은장이가 경필이를 비롯한 2학년 1반 학생들을 보면서 말을 멈췄다. 경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우현이가 아직 병원에 있는데…… 저희들끼리 좋아서 이러고나 있고…….”

“방금 전까지 공부하겠다고 해 놓고는…… 부끄럽습니다.”

경필이와 동규가 연이어서 말하자 다른 학생들도 그렇다면서 한숨들을 푹 쉬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녀석들 앞으로 다가갔다.

“어차피 오늘 너희들한테 큰 기대는 안 했다.”

“선배님!?”

내 말에 홍 선생이 깜짝 놀랐다. 무언가 말하려는 홍 선생을 손으로 제지하고는 말을 이었다.

“말 한 마디 한다고 당장 고쳐지면 사람들이 다들 쉽게 변하고 그러겠지. 안 그러냐?”

“네…….”

경필이의 맥빠지는 대답을 들은 나는 자만하지 말라며 종이몽둥이로 녀석들을 가리켰다.

“너희들은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다. 아직 성인이 되려면 2년 남짓 남았어. 변화하기 위한 시간은 충분하다.”

사람은 고쳐 쓰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사람이 10년을 넘게 익힌 습관, 가치관을 바꾸는 데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나는, 청소년들에 한해서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하물며 이제 대학생이 된 너희 선배들도 저렇게 바뀌는 데 1년이 걸렸다.”

동석이처럼 원래 특이했던 녀석을 제외하면, 다른 학생들은 모두 1년간 입시를 준비하면서 성격도, 가치관도 많이 변해 왔다.

“그래서 오늘 당장 바뀔 거라고는 기대 안 했다. 하지만, 오늘 이 마음 그대로 2년간 유지하면, 안 바뀔 것도 없어.”

내가 말하는 건 꾸준함이었다.

입시에 있어서 중요한 것 역시 꾸준함이다.

수시를 준비하건, 정시를 준비하건, 대입에 성공하는 학생들은 꾸준함을 필수 요건으로 갖추고 있다.

“그러니 오늘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마라. 치킨, 피자 세트 받는다고 하면 싫어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수하게 좋아하고, 우현이에게도 부상 받았다고 연락 보내.”

경필이가 멍하니 나를 보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

“선생님, 저희도 선배님들처럼 될 수 있을까요?”

[우리처럼?]

은장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네. 후배들을 생각하고, 진로목표도 확실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데다, 목표를 위한 공부도 꾸준히 이어 갈 수 있는 사람이요.”

경필이의 후진 없는 칭찬에 졸업생 세 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야 명천아! 너보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댄다! 으하하하!”

“시끄러! 그러는 이정석 너도 꾸준히 공부한다고 그러는데?”

“아하하하하! 다른 친구들이면 모를까 나도 그 정도는 아니야!”

정석이, 명천이, 채영이가 한 마디씩 던졌다. 동석이는 혹여나 후배가 민망해할까 봐 친구들에게 그만 웃으라고 타박을 줬다. 은장이는 마이크를 잡은 채 경필이를 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 고, 고마워.]

“저희는 진심입니다. 다른 친구들도 다들 선배님들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급식비리가 터졌을 때 정석이, 동석이, 명천이의 활약. 우현이 사고가 났을 때 졸업생들이 연계해서 범인을 잡은 점. 그리고 이렇게 수학여행 행사에 참여해서 후배들을 돕는 모습.

이 모든 것들이, 지금 2학년 학생들에게는 존경스럽다, 라는 걸로 보인 모양이었다.

“될 수 있지.”

“정말입니까!?”

경필이가 기대감에 가득 찬 채 나에게 물었다.

“2학년 때부터 내신, 수능 공부 빡세게 하고, 자기주도학습 훈련하고, 필요한 비교과 활동 만들어서 학생부에 한가득 채우고, 진로목표 설정한 다음에 활동마다 느낀 점 정리해 두고, 입시 시즌에는 하루 14시간 특강 받고, 졸업한 이후에는 후배들을 위해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다면 말이야.”

속사포처럼 쏟아낸 내 말에 학생들이 입을 떡 벌렸다. 이미 나와 상담을 했던 경필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경필이의 이마를 종이몽둥이로 탁 때렸다.

“똑바로 정신 차리고 입시 준비하라는 뜻이야. 너희도 입시 준비하면 변할 수 있다.”

결국 그 입시실적이 나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속내는 숨기기로 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경필이와 2학년 1반 다른 학생들이 신념을 가득 담아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졸업생들이 중얼거렸다.

“아…… 얘들도 큰일 났네.”

“꼭 그렇게 지옥으로 뛰어들어야 했냐.”

“시간의 마왕이랑 공부 안 해 봤나 봐.”

정석이, 명천이, 채영이를 향해 몸을 돌려 녀석들 이마도 종이몽둥이로 타다닥 때렸다.

“아야!”

“후배님들이 저렇게 굳건히 다짐을 하는데 산통 깨지 말고 격려나 해 줘라.”

내 말에 졸업생들이 피식 웃으면서 후배들에게 격려의 말을 한 마디씩 해 주었다.

‘이거면 올해 2학년도 판이 깔렸네.’

오늘 이 행사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나온 이유는 2학년 학생들에게 나와 내 제자들의 모습을 확실하게 각인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아직 2학년들은 내 국어 수업만 들었지 입시컨설팅을 받은 적은 없었다.

때문에 입시 준비 방향이 미흡한 학생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이번 ‘광란의 제주나이트’활동을 통해서 나를 광고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내가 녀석들을 상담해 줄 명분이 생기니까.

“선배님, 무슨 생각하세요?”

자리에 앉아 조용히 크크큭, 웃고 있던 나를 보며 홍 선생이 물었다.

“아, 그냥 저 녀석들이 기특해서요.”

입시를 준비하면서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올해 3학년도, 2학년도 마찬가지다.

“2학년 애들도 상담 좀 해 줘야 될 것 같아서 말이죠.”

내 말에 홍 선생이 환하게 웃으면서 꼭 1반 학생들 상담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씨익 웃기만 했다.

* * *

광란의 제주나이트는 수상까지 모두 마친 후, 학생들의 장기자랑을 보면서 마무리되었다.

학생들의 무대도 무대였는데, 그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무대는 졸업생인 채영이의 특별 무대였다.

“언니! 너무 멋져요!”

“누나! 손 잡아 줘요!”

채영이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췄었다며, 가수 연아의 체인인지 체인스인지 하는 노래의 춤을 췄다.

“저런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네.”

“쌤은 입시 말고는 관심 없으시잖아요.”

“맞아. 여자친구도 없죠 쌤?”

동석이와 정석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녀석들의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고 앞에 있는 맥주캔을 땄다.

“너희는 언제 돌아가냐?”

“저희 하루 더 있다 갈 거예요.”

“그럼 이틀 뒤네. 고생들 많았다. 채영이도. 무대 멋지더라.”

채영이의 무대는 정말 멋있었다. 쉽게 말하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공연은 2학년 학생들이 졸업생들에게 또 한 번 푹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중위권 학생들에게 말이다.

아무래도 채영이와 비슷한 성적 대의 학생들이 좋아했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채영이도 부탁 좀 하자.”

“네! 그럼요!”

채영이의 대답과 함께 나는 홍 선생, 졸업생들과 함께 리조트 야외 테이블에서 가볍게 맥주를 마셨다.

* * *

시간이 흘러 졸업생들도 본인들의 숙소로 돌아갔을 때, 한 교감이 택시를 타고 리조트 앞에 도착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교감 선생님. 조사는 어떠셨어요?”

내 물음에 한 교감이 끄응, 신음소리를 내더니 심각한 사안이라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강 선생, 잠깐 괜찮나?”

“무슨 일이시죠?”

그리고 이어진 한 교감의 말에,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GF파일, 내가 알고 있는 게 좀 있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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