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68화 (168/252)
  • 168화. 광란의 제주나이트 (1)

    광란의 제주나이트 주제를 확인한 2학년 학생들의 얼굴 위로 물음표가 떠다녔다.

    “이게 뭐야?”

    “몰라. 캠프파이어 같은 건가?”

    각자 의문을 갖고 있을 때 단상 위로 누군가 올라왔다.

    [아아, 다들 모였니?]

    “수학여행의 인어공주쌤이다!”

    “인어공주쌤!!!!”

    홍 선생의 등장에 학생들이 큰 소리로 환호하기 시작했다. 홍 선생은 생각지도 못한 반응과 함께 역시나 생각도 못 한 별명으로 이름이 불리자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 인어공주?]

    “휘익-! 강문고의 히어로!”

    “수호천사!”

    그 외에도 각종 별명들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홍 선생은 마이크를 든 손을 벌벌 떨면서 단상 아래에 있는 나를 바라봤다.

    ‘좀 도와주세요!’

    그녀는 어떻게든 입술을 움직여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를 확인하고 나도 단상 위로 올라갔다.

    [자, 다들 진정하고…….]

    “공교육의 희망!!!!”

    이번에는 또 다른 별명이 튀어나왔다.

    [확. 방금 그 별명 부른 거 누구야!]

    “쌤! 나중에 사진 찍어 주세요!”

    “전 두 분이랑 같이 찍을 거예요!”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후배들을 보던 졸업생들이 키득거렸다.

    “이제 쌤, 학교 편하게 못 다니시겠네요?”

    [지금도 불편해 죽겠다.]

    나는 한숨을 크게 쉰 후 마이크의 윗부분을 손바닥으로 빠르게 때렸다.

    펑펑펑펑펑펑!!!

    그 소리에 놀란 학생들이 귀를 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이제야 진정이 됐네. 조용히들 해! 오늘 이 행사는 꼭 진행해야 한다. 지금 병원에서 쉬고 있는 친구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겠지?]

    내가 말한 친구는 심우현이었다. 학생들도 모두 우현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같은 반 학생이거나 우현이의 친구라면 말할 것도 없었고, 우현이를 몰랐던 학생들도 SNS를 통해 모두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광란의 제주 나이트’!]

    광란의 제주 나이트. 그 첫 번째 시간.

    학생들이 이번 수학여행 일정을 정할 때 추천했던 장소들 중 아쉽게 선정되지 않은 장소를 소개한다.

    그리고 그 소개를 각자의 방식으로 재미나게 보여 주는 자리가 제주 나이트의 첫 번째 시간이었다.

    [준비한 내용들을 소개한 뒤에는, If Memory가 있다. 이때는 조력자가 있을 거야. 진성식당에서 만났던 선배들 기억하지?]

    ““네!!!””

    [그 녀석들, 너희들 만난다고 예정된 일정 취소하고 왔어. 수업 째고 온 녀석도 있다! 다들 너희 입시 도와준다고, 수학여행 재밌게 해준다고 온 거야!]

    당연히 졸업생들은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오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과정을 부풀렸다. 정석이는 내 말을 들으면서 암, 암, 그렇고말고! 라며 중얼거렸고, 은장이는 창피한 듯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다 동석이가 양심에 조금 찔렸는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쌤, 근데 저희 그냥 놀러 온 거…….”

    [이렇게 와 준 졸업생 선배들을 향해! 박수!]

    나는 서둘러 동석이의 질문을 마이크 소리로 뭉개 버렸다. 주변에서 우렁찬 박수갈채가 울려 퍼졌다.

    짝짝짝짝짝!

    그 소리를 수 초간 들은 나는 손을 위로 쭉 뻗었다. 신호에 맞춰 채영이가 단상 위의 조명을 조절했다. 그리고 은장이가 내 대신 사회를 맡기 위해 올라왔다.

    [먼저 광란의 제주 나이트 첫 번째 순서. 각자 제주의 다른 지역을 소개해 보세요!]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생각했었던 장소들을 소개했다. 어떤 학생은 곰돌이 인형 박물관에 가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또 어떤 녀석은 한라산에 오르지 못해 아쉽다고 발표했다.

    [제가 곰돌이 인형을 좋아해서…….]

    [제주도 하면 한라산 아니겠습니까!]

    그 이유는 다소 빈약했지만, 학생들의 반응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야! 그건 너만 좋자고 가는 거잖아!”

    “맞아! 난 인형 관심 없어!”

    “한라산 등반은 하루 다 까먹잖아! 나중에 혼자 와서 가!”

    그런 여러 반응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홍 선생을 비롯한 2학년 교사들은 학생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웃고 즐기면서도, 채점을 했다.

    개인발표 상품인 감귤초콜릿 세트를 주기 위해서였다.

    ‘나중에는 서비스 평가단도 심사해야지.’

    이번 제주도 수학여행에서는 광란의 제주 나이트와 서비스 평가단이 있어서 교사들이 직접 심사를 해야 했다. 몇몇 교사들은 불평을 했지만, 우현이 사건이 터지자 다들 긴장을 한 모양이었다.

    ‘혹시나 나에게도 생기면 안 된다!’

    바로 자신들의 안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우현이 사건이 수습되었을 때, 2학년 담임 중 그 누구도 홍 선생이나 우현이에게 격려의 말 한 마디 안 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뒤에서 또 다른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가 전전긍긍하고만 있었다.

    그렇기에 캠프파이어를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도 있었다. 혹시나 불길이 잘못 옮겨붙으면 그것 또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정말 한결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좀 서운하기는 했어요.”

    홍 선생이 자리에서 중얼거렸다.

    “뭐가요?”

    “다른 선배님들이요. 우현이한테 힘내라고 한마디라도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원래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번 2학년은 민 부장님 라인으로 쫙 깔려 있어서 더 그럴 겁니다.”

    내 말에 홍 선생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선배님, 교무부장님 어떤 사람이에요?”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도 결국 더 윗선의 아바타에 불과합니다. 자세한 건 수학여행 다 끝나고 학교에서 말씀드릴게요.”

    나는 일부러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가면 받을 질문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때 되어서는 이사진들의 움직임부터 시작해서 알려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홍 선생에게도 그때 모든 걸 밝히면 될 것이고 말이다.

    [학생들 발표 잘 들었습니다! 30분 휴식시간 갖고, 다음 순서로 이어 가겠습니다!]

    나 대신 사회를 보고 있던 은장이가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대학교에서도 학생회에 들어갔다고 하더니, 마이크 잡는 게 확실히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다음 순서는, If Memory! 만약 수학여행에서 000이었다면? 시간입니다! 휴식 시간 동안, 반 전체가 모여서, 학급만의 ‘만약에’ 스토리를 만들어 보세요!]

    광란의 제주 나이트를 진행하기 전에, 각 학급 별로 이번 ‘If Momory’ 행사를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학급 학생들은 이 내용을 주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어 발표할 예정이었다.

    [참, 이 발표를 가장 잘 한 반에게는…….]

    은장이가 마이크를 붙잡고 손을 펴서 나를 가리켰다.

    [무려 공교육의 희망, 강명문 선생님의 특급 선물! 피자와 치킨 세트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에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더니 주어진 휴식시간 30분을 온종일 자기네들 회의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뭐, 원래 예정되어 있던 거니까.’

    이사장에게 지원을 받아서 최고득점을 한 팀에게는 피자와 치킨세트를 선물할 생각이었다. 지원자 이름은 내 이름으로 남길 생각이었고 말이다.

    내가 씨익 웃으면서 은장이에게 잘했다고 신호를 보냈다. 내 신호를 받은 은장이가 마이크를 끄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간만에 후배들 앞에서 말하니까 좋다!”

    “오래간만에 하는데도 잘 하더라?”

    “헤헤, 고마워.”

    은장이와 정석이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런 와중에 명천이는 은장이에게 목캔디를 챙겨주었다.

    “힘들지는 않아?”

    “응, 전혀!”

    명천이 뒤로 슬그머니 다가가서 녀석에게 말했다.

    “나도 하나만 줘라.”

    “으악! 깜짝이야!”

    “은장이한테 줄 때랑 나한테 줄 때랑 분위기가 너무 다른 거 아니냐?”

    내가 놀리듯 물어보자 명천이가 얼굴을 붉히면서 소리쳤다.

    “아, 쫌!”

    낄낄, 웃으면서 졸업생들에게 STAFF 명찰을 하나씩 건넸다.

    “이거 착용하고, 쉬는 시간 동안 후배들 보면서 고민하는 애들 잡아 봐. 걔들한테 설명 잘 해 주면 된다.”

    “네!”

    동석이의 시원시원한 대답과 함께 졸업생들이 강당을 돌았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갔다.

    [다들 자리에 모였나요?]

    ““네!!””

    시간이 다 되어 인원을 체크했다. 확실히 빠진 인원은 없어 보였다. 은장이가 다른 교사들의 신호를 확인했는지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그럼 If Memory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신청을 준 학급이 있었는데요!]

    은장이가 명단에 적힌 학생이 누구인지 안다면서 손가락으로 2학년 1반을 가리켰다.

    [2학년 1반 문경필 학생이 속한 인어공주팀! 첫 번째로 발표하겠습니다!]

    팀명을 들은 홍 선생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 하는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인어공주팀의 발표자 문경필입니다.]

    경필이가 마이크를 잡고 발표를 시작했다.

    [저희 반은 오늘 정말 무서운 일을 겪었습니다.]

    강당을 가득 채운 경필이의 목소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특히, 2학년 1반 학생들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희는 심우현이라는 친구가 사라진 줄도 몰랐고, 천지연폭포에 대해 설명하고 있던 저 역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없으셨으면, 아마 한참 뒤에나 우현이를 발견했을 겁니다.]

    경필은 자신이 겪은 일들, 그리고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덤덤하게 꺼냈다.

    [그래서 저희는, 만약 이번 수학여행에서, 우리가 조금만 더, 수학여행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게 말한 경필이는 나를 바라봤다.

    [강명문 선생님께 들은 말씀이 있습니다.]

    경필이가 잠시 숨을 멈추고 천천히 말했다.

    [수학여행은 노는 게 아니라 야외공부하는 시간이다.]

    그 말에 학생들 사이에서 옅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누구도 큰 소리로 웃지 못했다.

    그 정도로, 지금 2학년 1반이 꺼낸 주제는 이번 수학여행에서 가장 무거운 주제였으니까.

    [저희 반은 그걸 놓친 겁니다. 수학여행은 단순히 노는 시간이라고만 여겼죠. 그래서 저희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수학여행을 공부하는 활동이라 생각했다면? 단체 생활에 필요한 사회성과 인성을 기르기 위한 여행이라 생각했다면? 선생님들의 안전사고 유의사항을 한 번 더 확인해 봤다면?]

    경필이가 목소리를 살짝 떨었다.

    [그랬다면, 우현이가 물에 빠지지 않았을 겁니다. 우현이가 사라지기 전에, 저희 중 누군가가 우현이를 발견했을 테니까요. 설령 빠졌다 해도,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저 녀석, 그걸 신경쓰고 있었나.

    하긴, 경필이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우현이가 바위에 서 있는 걸 보자마자 저도 달려갔습니다.]

    평소 경필이의 성격답다면서 학생들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달리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잘못하다가 못 구하면 어떡하지? 내가 이렇게 가도 되는 건가? 오히려 내가 위험해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요.]

    경필이는 자신이 우현이를 향해 달려가다가 발걸음을 늦춘 사실, 그리고 그때 들었던 생각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핸드폰을 들고 신고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었다고 합니다. 어딘가 구명조끼라도 있지는 않나 찾아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2학년 1반 학생들은 부끄럽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같은 반 친구가 물에 빠졌다.

    친구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 짧은 몇 초의 순간, 정신을 차리고 움직인 학생은 겨우 경필이 정도였다.

    그나마도 마음속에서 고민이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저희는 오늘 수학여행 둘째 날의 마지막인 광란의 제주 나이트 시간에, 담임선생님인 홍유진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경필이의 신호에 맞춰 2학년 1반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다시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이번에 반성 많이 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공부하면서 다닐게요!”

    학생들의 외침을 들은 홍 선생이 손을 좌우로 마구 휘저었다.

    “얘, 얘들아! 너희들 왜 그래, 갑자기 이러면…….”

    “좋은 자세야. 좋아좋아.”

    반면 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 선배님!”

    “팀명부터 인어공주팀이지 않습니까.”

    홍 선생은 부끄러워하면서도 학생들에게 고맙다며 화답했다. 경필이가 마이크를 다시금 굳건히 잡았다.

    [2학년 1반의 If Memory! 만약 수학여행에서 <우리가 공부하는 자세였다면>을 생각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결의에 찬 경필이의 목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나는 그 목소리에 확신했다.

    ‘달라졌다.’

    녀석의 운명은 또 한 번 바뀌었다고.

    비로소 녀석에게 입시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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