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67화 (167/252)
  • 167화. 수학여행 (7)

    상황은 이랬다.

    강명문이 김영호 부장과 통화를 하는 사이 민지정 부장은 1반 학생들 중 한 명을 타겟으로 삼았다.

    ‘수상쩍기는 했지.’

    다행히 민지정이 강명문을 부르는 과정이 어색했기에, 홍유진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래서 홍유진은 그 뒤부터 신경을 최대한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다.

    물론, 강명문도 김영호와 통화를 하면서 시선은 학생들에게서 돌리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김영호의 말은 트집 잡기 혹은 시간벌이 정도로만 보였으니까.

    그래서 통화를 하다가 1반 학생 한 명이 사라진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곧장 홍 선생에게 신호를 보냈고, 강명문도 폭포 쪽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보니 바위 근처에 서 있는 학생이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달려간 강명문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홍유진이 뛰어갔다.

    나머지는 지금 벌어진 일들 그대로였다.

    홍유진은 심우현과 같이 폭포 옆의 작은 바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녀는 무리해서 인원들이 모여 있는 자리까지 이동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전지대에서 119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어딥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119가 도착했다. 한명심이 허둥지둥 119구급 요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손가락으로 홍유진과 심우현이 있는 바위를 가리켰다.

    “저쪽, 저쪽입니다!”

    한명심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119대원들이 서둘러 움직였다.

    “여기요!”

    홍유진이 외쳤다. 119대원들은 두 사람을 구조하러 가면서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구명부환?”

    잠깐 고개를 갸웃하던 119대원들은 이내 사람들 구조에 집중했다.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홍유진과 심우현은 별 탈 없이 구조될 수 있었다.

    * * *

    119가 도착하는 시점, 나는 민 부장이 있는 장소를 찾았다.

    민 부장은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를 벗어나 천지연폭포 입구 부근에서 불안한 듯 몸을 떨고 있었다.

    “안 죽었습니다.”

    내가 걱정 말라며 말했다.

    “다, 다행…… 뭐!?”

    민 부장의 반응을 본 경필이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경필이를 막으며 말했다.

    “다들 봤을 텐데, 왜 부장선생님만 숨어계셨을까요.”

    “내, 내가?”

    여전히 발뺌하는 민 부장을 향해 차갑게 물었다.

    “부장선생님이 하셨습니까?”

    “무, 무슨 소리야. 어떤 걸 말하는지 모르겠…….”

    “선생님이 우현이 빠지게 했습니까!”

    경필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민 부장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직 증거는 없었다. 민 부장이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린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필이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민 부장이 몸을 숙이고 있었던 위치, 민 부장의 반응.

    거기에, 분명 우현이가 홍 선생에 의해 구조되는 모습을 모두가 확인했는데, 민 부장만큼은 혼자 숨어 있어서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점.

    모든 정황들이 민 부장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뭐, 뭐뭐, 뭐? 아, 아냐, 나, 난, 난 아니야!”

    “교무부장 선생님.”

    나는 경필이를 잠시 뒤로 이동시켰다. 경필이는 무언가를 더 따지려다가 내 신호를 보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우현이가 나오면 다 이야기해 줄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민 부장을 씹어 먹을 듯 노려봤다.

    “천우원 이사가 시켰습니까?”

    “!!”

    “숨기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부장님 핸드폰 통화내역, 메시지 뒤지면 금방 다 나올 겁니다. 한 번 더 묻겠습니다. 천우원 이사가 시켰습니까?”

    민 부장은 손의 떨림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나, 나는, 그래. 이사님이 시킨 거야.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어!”

    “한무회 이사님 때와 똑같군요. 알겠습니다.”

    민 부장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럼 모두 이사님들에게 알리겠습니다.”

    “뭐, 뭐?”

    “이사님들이 다 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부장선생님은 그 과정에서의 장기말이었고요. 아닙니까?”

    만약 민 부장의 말이 맞다면, 이사진을 대상으로 공격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민 부장의 폭주를 이제 멈추게 할 수도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가든, 나에게는 손해 볼 게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민 부장에게 다가가 냉정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사님의 지시가 있었기에 선생님이 움직였다. 이게 맞습니까?”

    “그, 그건…….”

    민 부장은 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보였다. 나는 잠깐 표정을 풀고 우현이 쪽을 가리키면서 경필이에게 말했다.

    “가서 친구 위로해 주고 있어.”

    경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같이 있고 싶습니다!”

    “말 들어. 사고를 당한 친구를 돌봐주는 것도 선도부의 역할이야. 오 선생님한테 어제 전화 받았잖아?”

    오 선생이 어제 전화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는지 경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민 부장과 단 둘이 남게 되자마자 내가 입을 열었다.

    “가족 걱정 때문이라면 이미 물 건너갔으니까 잘 생각하십쇼.”

    “!!”

    “지금 이런 사단을 낸 선생님을 이사진에서 가만 놔둘 것 같습니까? 무사히 넘어갈 수도 없습니다. 지금 학생들이 SNS에 올리는 거 보이시죠?”

    내 말대로 학생들은 우현이가 무사히 구조되고 나서 열심히 SNS에 글을 올렸다. 서비스평가단으로의 글도 있었고, 현 상황을 알리기 위한 일반 포스팅도 있었다.

    “그리고 기자들이 저 포스팅들을 가만 놔둘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민 부장의 몸이 한층 더 떨려왔다.

    “그런 시점에서 이사진이 부장선생님을 다시 받아들여 준다? 애초에 한무회 이사 사건 때부터 그럴 일 없었을 겁니다. 선생님 혼자 다시 받아 줬다 착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제야 민 부장은 무릎을 땅에 쿵 소리 나게 박고는 나를 올려다봤다.

    “내, 내가, 내가, 뭐, 뭘 어떻게, 하면 될까?”

    “이사진이 지금까지 벌였던 부정행위들에 대한 자료. 어디 있습니까?”

    앞으로 다가올 사학비리폭로 사건. 그게 본격적으로 터지기 전에 확보해야 하는 자료.

    바로 이사진의 부정행위의 증거가 모두 담긴 자료였다.

    “호, 혹시 GF파일 말하는 건가?”

    “그걸 GF파일이라고 하는군요.”

    일명 GF 파일.

    민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골드팩토리(Gold Factory).

    돈을 생성하는 공장이라면서 만들어둔 파일이었기에 이런 이름인 모양이었다.

    “그거 어디 있습니까?”

    “나, 나는 몰라. 그냥 처, 천우원 이사님한테 있다고만…….”

    “우현이를 빠지게 유도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그것도 몰라. 나, 난 이사님이 알려 준 번호로 연락한 것 말고는…….”

    “알겠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을 통제하고 있던 경찰에게 말했다.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학생을 밀었습니다!”

    “뭐!? 가, 강 선생, 이야기가 다르…….”

    “무슨 이야기요?”

    내가 천연덕스럽게 묻자 민 부장의 얼굴이 있는 대로 구겨졌다. 우는 듯하면서 분노에 휩싸인,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뒤섞인 그런 표정이었다.

    “아, 혹시 이거 때문에라도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마십쇼.”

    당황한 민 부장을 향해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의 대화가 녹음되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었다.

    민 부장의 입술이 파들파들 떨려왔다.

    “제가 뭔가를 해 준다고 약속한 적은 없습니다. 그냥 부장선생님의 현재 입장을 알려 준 것뿐이죠.”

    “이, 이, 이…….”

    “준비 철저히 하셔야 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민 부장은 경찰들의 손에 붙잡혔다.

    “갑시다!”

    경찰의 손에 이끌려 나가면서 민 부장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야 이 개새끼야!”

    “조용히 하세요!”

    경찰들의 제지를 받으면서도 민 부장은 계속해서 욕을 날렸다. 나는 귓구멍을 손가락으로 파면서 주머니에서 진동을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쌤, 잡았습니다!]

    정석이의 전화였다.

    천지연 폭포를 구경하고 있을 졸업생들에게는 혹시 폭포 주변에 수상한 사람은 없는지 찾아보라고 일러두었다.

    정석이, 명천이, 채영이가 폭포 위쪽을, 동석이와 은장이가 폭포 아래쪽을 맡았다.

    그리고 정석이가 위쪽으로 도망가려는 등산객 한 명을 붙잡은 것이었다.

    [채영이가 빠르게 신고해서 경찰이 금방 왔어요! 방금 경찰에 넘겼습니다!]

    “잘 했다. 너희가 할 건 다 했어. 고맙다!”

    정석이와 전화를 끊은 후 나는 2학년 1반 학생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와 우현이에게 물었다.

    “괜찮냐?”

    “네, 네……. 감사합니다.”

    “담임쌤한테 감사해해라. 홍 선생님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이번 사고 대응에 있어 최고의 공로자, 홍 선생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 옆에서 구조대원이 물었다.

    “맞습니다. 그나저나 이분은 누구십니까? 게다가 저 휴대용 구명부환은 어디서 났어요?”

    “아 그게…….”

    홍 선생은 자신이 시민수상구조대원 출신이고 수영선수였다는 점을 알렸다. 그리고 구명부환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수학여행이라는 게 항상 안전사고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갖고 왔는데, 바다가 아니라 계곡에서 쓰게 될 줄은 몰랐네요, 하하…….”

    그 말을 들은 구조대원들이 작게 웃었다. 홍 선생이 농담을 던진 걸로 생각한 것이었다.

    어쨌든 우현이도 구했고, 경필이도 무모하게 달려들지 않았다. 별 탈 없이 수학여행에서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쌤, 이거 보세요.”

    동규가 핸드폰을 들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 강문고 SNS페이지였다. 거기에는 우현이를 구하기 위해 구명부환을 던지고 있는 홍 선생의 사진이 올라가 있었다. 어떤 글에는 아예 동영상이 올라와 있기도 했다.

    “홍 선생님 스타 되시겠네요.”

    “네? 제가요?”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홍 선생만이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 * *

    리조트로 이동한 우리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른 학급도 마찬가지였다. 수학여행에서 사고가 났기에 이후 일정을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강 선생, 잘 좀 부탁하네!

    한 교감은 민 부장이 끌려간 경찰서로 향했다. 아무래도 수학여행 총책임자이다 보니 이번 일을 수습해야 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홍 선생과 함께 리조트 밖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커피를 마시는 홍 선생에게 강문고 SNS를 보여 주었다.

    -야! 우리 담임쌤이 방금 친구 구했다!

    -미친 대박. 담임쌤 수영선수출신이래!

    -근데 왜 미술 가르치셔?

    -난들 아냐.

    -담임쌤 진심 존멋. 오늘부터 롤모델로 삼는다.

    “으아아악! 이게 뭐예요!”

    홍 선생의 얼굴이 붉어졌다. 커피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한쪽 얼굴을 가린 홍 선생이 중얼거렸다.

    “게, 게다가 이 기사는 무슨…….”

    <강문고 홍유진 교사!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다!>

    <제주 119대원도 혀를 내두른 실력파 시민수상구조대 선생님의 대활약!>

    그런 기사들이 속속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전부 신미나 기자의 기사였다.

    리조트로 이동하기 전에 신 기자로부터 인터뷰 전화를 받아서 내가 알려 준 상황들도 적혀 있었다.

    -강 선생님! 저한테 제일 먼저 알리셨어야죠!

    -어차피 SNS 보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야 그렇긴 한데……. 아무튼 어떤 상황이었어요?

    물론, 나는 신 기자에게 학생들은 모르는 정보를 풀어 주었다.

    -교, 교무부장과 이사가……?

    -네. 특종이죠?

    그 말에 신 기자의 콧바람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감사해요, 선생님!

    전화를 끊자마자 신 기자는 열심히 자판을 두드린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 선생의 활약을 그린 기사와 함께 이런 기사들도 올라왔으니 말이다.

    <강문고 교무부장의 자백! 교무부장과 이사진 일부의 계획 범죄!>

    당연히 이사장도 이번 사태에 대해 칼을 갈았다.

    -싹 다 알리세요. 우리는 서울에서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얼마 후 박 선생으로부터도 전화를 받았다.

    -조만간 학교로 검찰이 또 올 거예요.

    -강문고가 중앙지검에게 인기가 많네요.

    -우현이는 괜찮아요?

    -네, 홍 선생님이 제때 구했습니다.

    박 선생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 선생님 예언대로 됐네요.

    -상황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아무튼 남은 일정도 잘 보내세요. 오시면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니까.

    -그때 분명 하나만 물어보시겠다고…….

    -시끄러워요. 끊어요.

    뭐, 그런 이야기들을 하기도 했다.

    중간중간 지석 선배나 오 선생으로부터도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류 선생에게도 GF파일을 묻는 걸 잊지 않았다.

    -그게 뭐야?

    당연하게도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럼 결국 민 부장에게 들은 게 전부인데…….’

    어쨌든, 지금 시점에서 알 수 있는 건 GF파일을 쥐고 있는 사람은 천우원 이사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일단 소득이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쌤! 괜찮으세요?”

    고개를 든 내 정면에서 졸업생 녀석들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오후 일정은 우현이 사건 때문에 중단되었지만, 저녁 일정은 취소하지 않기로 했다.

    바로, 졸업생들과 함께하는 ‘광란의 제주나이트’가 열릴 예정이었으니까.

    “그래, 괜찮다.”

    “진짜 다행이다…….”

    “미술쌤이 그런 능력자인 줄은 처음 알았어요!”

    “완전 멋있더라니까요!”

    “그 학생은 괜찮아요?”

    “쌤 저도 수영 가르쳐 주세요!”

    동석이, 은장이, 정석이, 명천이, 채영이. 다섯 명이 한마디씩 했다.

    “괜찮아, 이 녀석들아. 아무튼, 이거들 받아.”

    나는 졸업생들에게 미리 준비해 둔 종이들을 건네주었다.

    “미리들 들어가서 준비하고 있어. 위치는 저기야.”

    “주제는 이걸로 맞추면 되나요?”

    동석이가 종이의 위쪽을 보면서 물었다.

    나는 앞에 서 있는 졸업생들을 향해 씩 웃었다.

    “맞아. 이 주제가 너희 후배들에게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줄 거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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