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66화 (166/252)
  • 166화. 수학여행 (6)

    천제연폭포에 도착한 학생들이 기지개를 쭈욱 폈다.

    “오늘 일정은 진짜 조심해야해! 위험지역은 들어가지 말고, 일행이랑 떨어지지도 말고!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은 옆 친구랑 같이….”

    그런 학생들 앞에 홍 선생이 안전유의사항을 설명했다.

    나는 그 뒤에서 다음 일정을 위한 준비물을 챙겼다.

    “강 선생, 그런데 수업 진도는 괜찮나?”

    같이 준비물을 챙기던 한 교감이 물었다.

    “괜찮습니다. 하루이틀 정도는 자습으로 돌려도 진도 나가는 데는 문제 없습니다.”

    “그렇구만. 잘됐네. 자네가 와 줘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한 교감이 내 어깨를 퍽퍽 때리면서 기뻐했다. 하긴, 이제 입결 실적이 아니라, 학교 행정으로서의 실적을 내기 위해서는 이런 수학여행의 평가가 중요했으니까.

    게다가 서비스 평가단이 하루도 되지 않아 인터넷을 긍정적인 여론으로 떠들썩하게 달구고 있었고.

    “하하하,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학생들에게 줄 물병과 간식이 담긴 봉지들을 챙겼다.

    “그런데 쌤, 가방 너무 큰 거 아니에요?”

    홍 선생은 어제와는 달리 자기 몸의 두 배는 될 듯한 초대형 백팩을 매고 있었다. 학생들의 의문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 이거? 너희들 간식 챙기느라 그런 거야. 자자, 간식봉지 받아서 올라갈 준비하자!”

    홍 선생은 아무것도 아닌 척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나는 아침부터 활력이 넘치는 학생들에게 간식봉지를 나눠 주었다.

    “쌤도 같이 가시죠?”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꽤나 유명인사였기에 이렇게 묻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 물음에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그래야 등산, 산책도 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걸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어?”

    “아….”

    물론 입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다들 말을 잇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여간 빠져가지고. 수학여행은 노는 게 아니라 야외공부시간이야. 이 녀석들 정신무장부터 해야겠네.”

    “그건 선배님이 너무 입시 이야기를 자주 하셔서 그런 게….”

    “홍 선생님? 뭐라고 하셨어요?”

    내 말에 홍 선생이 입을 틀어막으면서 눈웃음을 날렸다. 그 모습에 나도 피식 웃으면서 학생들과 함께 천제연폭포로 향했다.

    “연습 많이 하셨습니까?”

    이동하는 길에 홍 선생에게 물었다.

    “작년에는 안 해서 걱정했는데, 연습해보니 괜찮았어요.”

    수영선수이자 시민수상구조대원 출신인 홍 선생은 수학여행 사고를 이야기한 때부터 지인들과 함께 꾸준히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위험지역이 있거나 수상한 낌새라도 발견하며 바로 신호 보내겠습니다.”

    “네, 저도 예의주시하고 있을게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는 홍 선생이었다.

    * * *

    목적지에 도착해서 산길을 따라 올라가기를 수십 분. 그러자 천제연 제1 폭포를 만날 수 있었다.

    “여기를 추천한 사람이… 경필이!”

    “네!”

    경필이는 마상무예가 취소되자 천제연폭포와 천지연폭포를 추천했다.

    친구들 체력을 키워 주기 위함과 동시에 제주도가 바다뿐 아니라 계곡, 폭포도 멋지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서였다.

    한라산은 아무도 가자고 안 할 것 같아서 추천하지 않았고 말이다.

    “천제연폭포는….”

    경필이의 설명을 들으면서 학생들이 사진을 찍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주상절리로 형성된 폭포라는 점을 기억해! 거기에 폭포기는 하지만, 여기 1폭포는 물이 떨어지지는 않아. 이 특징 기억해 둬! 이따 볼 2폭포는 또 다를 거야.”

    경필이가 친구들에게 설명을 마치고 다시 등산로를 향해 돌아섰다.

    “그럼 제2 폭포로 가자!”

    학생들은 경필이와 홍 선생을 선두로 해서 뒤를 따라갔다. 등산이 힘든 학생들은 중간중간 간식을 입에 넣으면서 걸어올라갔다.

    “여기가 2폭포!”

    “오 여기는 물이 떨어지네?”

    학생들의 말대로 천제연폭포의 제2폭포는 시원한 물줄기가 위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천제연폭포는….”

    다시금 이어진 경필이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위험해 보이는 곳들이 많아.’

    따로 안전사고를 예방할 문구나 펜스, 줄 등이 없었다. 거기에 조금만 돌아 들어가면 폭포 옆 바위까지도 다가갈 수 있어 보였다.

    둘러보니 홍 선생도 나와 비슷한 판단을 내렸는지 학생들의 움직임에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응?”

    그러다 다른 한 사람에게 시선이 꽂혔다.

    바로 폭포 가까이로 넘어갈 수 있어 보이는 바위 옆에 선 민 부장이었다.

    민 부장은 어딘지 불안한 얼굴을 하고서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학생들이 이 뒤에 뭐가 있나 들여다보려고 하면 득달같이 화를 냈다.

    “여기는 안 돼!”

    “헉! 네 죄송합니다!”

    학생들은 민 부장의 호통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왜 저러지?’

    그렇게 민 부장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때, 학생들이 다시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천지연폭포로 가자!”

    일정상 제3 폭포까지는 가지 못했다. 대신 빨리 천지연폭포를 보고, 다음 일정인 미로정원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불안한데….’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봤다.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 때문에 풍경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그렇게 달리는 버스 안에서 홍 선생은 자신의 초대형 백팩을 소중하게 껴안고 있었다.

    * * *

    천지연폭포는 천제연폭포와 달리 깔끔하게 정돈된 산책로를 따라가면 되었기에 등산로 같은 길이 없었다. 운동, 등산을 싫어하는 학생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천지연폭포도 경필이가 하지?”

    “네!”

    경필이가 준비해 온 종이를 펼쳤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천지연폭포는 지층이 깎여나가고 암석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 집중해야 해. 그러면서 폭포가 점점 뒤로 물러나고 있거든?”

    경필이가 친구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천지연폭포를 가리키기도 했다.

    “강 선생, 잠깐만….”

    갑자기 민 부장이 나를 불렀다. 학생들 사이에서 잠시 나와서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김 부장이 할 말이 있나 봐. 잠깐 통화하고 싶다고 하는데.”

    핸드폰을 꺼내 보니 김영호 부장에게 부재중 전화가 두 통 와 있었다. 걸어가느라 진동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학생들이 웅성웅성대는 자리를 살짝 벗어나 전화를 걸었다.

    “네, 부장선생님.”

    [아, 다름이 아니라, 2학년 국어 시험 말인데, 주관식 채점 항의가 있어.]

    2학년은 지금 전원 수학여행 중인데.

    “2학년 중에 수학여행 안 간 애가 있습니까?”

    [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학부모가 요청한 거야. 아무튼 한 번 봐 봐. 주관식 3번 문제인데 내가 어떤 내용인지 보내 줄게.]

    김 부장은 전화를 끊고는 사진 한 장을 나에게 보냈다. 학생이 작성한 주관식 답안과 문제였다. 사진을 확인하고 다시 김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거 제가 안 된다고 설명 다 해 줬습니다. 학생에게는 설명해준 내용만 따로 인쇄본으로 전달도 해줬는데…. 학부모님은 그걸 못 받으셨을까요?”

    [그 인쇄본 찾기가 좀 어려워서 그래. 말로 설명 좀 다시 해 줘.]

    나는 한숨을 쉬면서 김 부장에게 문제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는 멀리서 학생들을 보고 있는 홍 선생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 * *

    강명문이 잠깐 학생들 사이를 빠져나간 시각, 민지정은 천지연폭포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길을 탐색했다.

    ‘여기면 괜찮을 거야.’

    그리고는 경필의 설명을 듣는 2학년 1반 학생들 중 가장 뒤에 있는 학생 한 명을 발견했다.

    그 녀석은 폭포가 궁금했는지 계속 앞으로 다가가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쉽사리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가까이 가서 봐 볼래?”

    학생에게 다가간 민지정이 말했다. 그러자 학생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갈 수 있어요?”

    “그, 그럼. 저기 보니까 길이 있어.”

    “하지만, 담임쌤이 위험한 곳은 가지 말라고….”

    “ 다른 관광객들도 많이 간 것 같으니까… 아마 괘, 괜찮을 거야.”

    민지정이 가리킨 길은 사람들이 제법 드나든 흔적이 있었다. 안전주의라든가 하는 안내문이 없으니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폭포를 가까이에서 구경하려고 다닌 것이었다.

    그 길을 본 학생도 이 정도면 안전할 것 같다고 판단했는지 민지정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쌤!”

    “아니야, 뭘….”

    그리고 민지정은 학생이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는 심장 부근으로 손을 올렸다. 평소보다 더 빨라진 맥박을 느끼면서 고개를 숙였다.

    “미안… 미안….”

    민지정은 그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멀리서 그녀의 전화를 받은 등산객 차림의 남성이 살짝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를 확인한 민지정은 후다닥 학생들과 교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멀찍이 물러나 몸을 숨겼다.

    * * *

    홍유진은 천지연폭포 설명을 하고 있는 경필과 학생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멀리서 강명문의 신호를 받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현이 어디 갔어?”

    둘러보니 심우현 학생이 없었다.

    “어? 아까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지?”

    다른 학생들도 우현이 어디 갔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때 동규가 손을 들었다.

    “아까 교무부장쌤이 부르시는 거 같았어요.”

    “교무부장쌤?”

    그 말을 들은 홍유진이 폭포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폭포와 가까운 바위 위에 남학생 한 명이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야! 심우현!”

    그리고 그 모습을 경필을 비롯한 2학년 1반 학생들 모두가 목격했다.

    “저기는 왜 갔어, 위험하게!”

    “야!! 거기서 내려와!”

    다른 친구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우현이 고개를 돌려 친구들이 있는 방향을 돌아봤다.

    이제 이동하려나 싶어 우현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나 여기! 금방 갈게!”

    그리고 이동하려는 찰나, 우현의 발 아래로 작은 생수병이 굴러 내려왔다.

    지나가던 등산객이 떨어뜨린 것이었다.

    “어?”

    생수병에는 아직 물이 가득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굴러 내려가는 물병에서 물이 한가득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물이 바위를 적셨다. 그걸 본 우현이 당황하면서 물을 피하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심우현! 조심해!”

    경필의 외침과 동시에 우현의 오른발이, 둥근 페트병을 밟았다.

    경필은 곧장 들고 있던 종이와 펜, 가방을 모두 내팽개치고 폭포 옆 바위를 향해 달려갔다.

    “아.”

    우현의 몸이 공중을 날았고, 그대로 폭포가 떨어져 고여 있는 물 위로 추락했다.

    풍덩!

    우현이 서 있던 바위가 높은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머리가 다치지는 않았다.

    문제는 수심.

    천지연폭포의 수심은 족히 20m는 되었다.

    게다가 우현은 수영을 잘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물에 빠지자마자 당황해서 제대로 대처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 사람 살, 푸허!”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친구를 본 경필은 달려가면서 웃옷을 벗었다. 직접 뛰어들어서 친구를 구할 생각이었다.

    ‘예전부터 수영은 자신 있었어!’

    경필은 어릴 때부터 몇 년간 배웠던 수영실력이 있었기에 그걸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경필은 직접 친구를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진짜, 내가, 괜찮을까?’

    불현듯 불안한 마음과 함께 달리기 속도가 느려졌다. 전문 수업을 받은지 꽤 오래되었다. 사람을 안고 수영을 해 본 적은? 이론이라도 숙지한 적은?

    그런 적 없었다.

    그러면 진짜 괜찮을까?

    잘못하면 나까지 일이 생기는 건….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생각을 한 경필은 다시금 정신을 붙잡고는 고개를 좌우로 마구 저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우현이가 위험하다!’

    그렇게 정신무장을 하고서 우현이 발을 헛디딘 자리까지 다 왔을 때쯤, 경필이 소리쳤다.

    “기다려! 곧 구해 줄….”

    “119에 신고나 해!!!”

    그 외침과 함께 물 위로 주황색의 둥근 튜브가 떨어졌다. 그리고 경필보다 먼저 바위에 도착해 있던 사람을 발견했다.

    “쌤?”

    경필의 담임인 홍유진이었다. 홍유진은 경필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빠르게 겉옷과 바지를 벗었다.

    그러자 미리 착용하고 있던 선수용 수영복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방금 전, 홍유진은 바위 위의 우현을 발견하자마자 곧장 우현의 위치로 달렸다. 그리고 초대형 백팩에서 로프와 연결된 휴대용 구명부환을 꺼냈다.

    얼마 뒤, 홍유진이 바위에 도착할 때쯤 우현이 발을 헛디뎠다. 그걸 본 홍유진은, 우현이 빠질 것이라 예상되는 지점으로 빠르게 구명부환을 투척했다.

    첨벙!

    구명부환은 정확하게 우현이 빠진 자리에 떨어졌다.

    딱 그 시점에 맞춰 경필이 도착한 것이었다.

    “푸헉! 푸하!”

    우현이 가까스로 구명부환의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홍유진이 경필에게 소리쳤다.

    “112도!”

    그리고는 곧장 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깔끔하게 다이빙을 한 홍유진은 구명부환을 잡고 있는 우현에게 헤엄쳐서 다가갔다.

    “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입으로 숨만 쉬어! 대답도 하지 마!”

    홍유진의 말에 우현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우현의 양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홍유진은 그런 우현을 향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간다!”

    로프를 잡고 이동하는 홍유진의 리드를 받으며 우현은 구명부환을 꽉 붙잡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폭포 한쪽에 위치한 작은 바위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경필은 신고를 마친 핸드폰을 붙잡고, 바위 위로 올라가는 홍유진과 우현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신고했어?”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남성에 의해 정신을 차렸다.

    “아, 네!”

    “그럼 옷 입어라.”

    경필의 어깨에 손을 올린 강명문이 눈을 부릅뜨고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노려봤다.

    ‘이딴 식으로 나왔다 이거지?’

    그가 바라보는 시선 끝에서 딱 한 명, 사건 현장과는 동떨어진 자리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강명문은 경필에게 말했다.

    “나랑 범인 잡으러 가자.”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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