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수학여행 (4)
학생들이 한창 전세버스에서 서비스 평가단을 작성하고 있을 때, 이사장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렸다.
“정말이지, 강 선생님의 선견지명은 이길 수가 없네요.”
강명문은 어젯밤, 이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업체가 바뀔 겁니다.
그리고 그는 변경된 업체가 아닌, 원래 업체의 대표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것도 학생들이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있는 시간에 말이다.
-강문고등학교 이사장이에요. 이번 일,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손해는 저희가 모두 보상해드리고, 위로금까지도 확실하게 챙겨드릴게요.
-……정말이십니까?
당일 갑자기 취소 연락을 받은 가치투어의 대표인 주성민은 반신반의한 채 물었다. 이사장은 그렇다고 말하면서 문자로 전달받은 계좌를 개인비서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수 분 후, 주성민의 태도가 달라졌다.
-입금 확인했습니다. 어떤 걸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이사장은 서비스 평가단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을 끝내기 직전, 그녀는 가치투어 대표에게 말했다.
-이번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게 되어 죄송하다, 내년에 다시 저희를 불러 주시면 최상의 서비스를 해드리겠다, 라고 적어 주세요.
-그렇게만 올리면 되겠습니까?
-학생들이 올리는 불만사항이 다 다를 거니까 그 내용에 맞는 답변을 해 주면 더 좋고요. 대신, 업체가 바뀌어서 화가 난다거나, 그런 표현은 하지 말아 주세요. 그저, 우리가 했으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 학생들과 만나고 싶었는데 내년에는 꼭 만났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해 주세요.
그녀의 말에 주성민이 답했다.
-알겠습니다. 위로금도 두둑하게 주셔서 직원들 불만도 잠재우기 충분하고, 내년 업체 선정까지도 약속해 주셨으니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요.
-잘 부탁드릴게요 호호호.
그리고 현재. 이사장은 강명문의 말대로 수학여행 업체변경 문제들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당일 변경. 사전에 공지를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일정을 계획한 담당자를 엿먹이기 위한 조치.
그걸 주도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강명문은 귀띔을 해 주었었다.
“정말…… 학생들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이사장은 책상 위에 올려진 펜을 잡고 빈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내가 더 화나지 않게 했으면 하는데…….”
펜촉이 부러질 듯 종이를 부욱부욱 그은 이사장은 결심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마침, 강명문이 이사장실에 들어왔다.
“이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
“마침 잘 왔어요. 강 선생님, 3일간 수업 많은가요?”
강명문은 이사장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하며 손가락으로 수업 횟수를 세었다. 고2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갔기에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아뇨,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이사장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싱긋 웃으면서 부연설명을 했다.
“있더라도 자습 돌리면 됩니다.”
모든 걸 간파하고 있다는 듯 웃는 강명문을 보면서 이사장이 날카로운 눈매를 한 채 말했다.
“그러면 지금 바로 짐을 싸 주세요.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비행기로 제주도에 가 주세요.”
“네. 현장이 어떻게 되는지 감시하면 될까요?”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하십시오.”
“민지정 교무부장의 태도를 살펴 주세요. 그리고 수상한 움직임이라도 발견하면 저한테 바로 알려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참,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자리를 떠나려는 강명문을 이사장이 멈춰 세웠다.
“학생들에게 전해 주세요. 이번 업체 변경은 이사장도 몰랐던 일이라 정말 미안하다. 그래서 이번 수학여행은 모든 비용을 무상으로 지원함은 물론이고, 예정된 식당들은 싹 다 이사장이 잘 아는 미슐랭 맛집들로 안내하겠다고요.”
그 말에는 역시 강명문도 놀란 모양이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강명문이 궁금한 사항을 물었다.
“이사장님, 그 미슐랭 가게, 졸업생들도 보내도 됩니까? 그 친구들 대학생 됐다고 맨날 밥 안 먹고 안주만 먹어서…….”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질문에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이사장이 피식 웃더니, 이내 호호호, 웃었다.
“그야 당연하죠. 강 선생님도 같이 다녀오세요.”
“감사합니다. 녀석들도 좋아할 겁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강명문은 곧장 이사장실을 나갔다. 이사장은 방금 이야기했던 사항들을 지키기 위해 제주도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 사장. 이번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 갔거든. 그래서 기존 식당들 싹 다 취소하고 미슐랭 맛집들로 가려고. 내가 일정이랑 지금 잡혀 있는 식당들 보내 줄 테니까 동선 맞춰서 적당히 바꿔 줘. 인원은…….”
* * *
“그래서…….”
“이렇게 갑자기 간다고?”
박 선생과 오 선생이 나를 보면서 황당한 웃음을 날렸다. 그도 그럴 게, 교무실로 빠르게 내려온 내가 짐을 싸고 있었으니까.
“네. 그래서 두 분께서 혹시 학교에 무슨 일 안 생기는지 체크 좀 부탁드립니다. 참, 학교 SNS도 자주 확인해 보시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미리 열어 둔 핸드폰을 꺼내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내가 보여 준 학교 SNS를 확인한 두 사람이 깜짝 놀랐다.
“엄청 열심히 참여하네요?”
박 선생은 학생들의 참여율에 놀라워했다.
“이런 것도 있었나?”
오 선생은 이 활동을 이번에 처음 알아서 그 사실부터 깜짝 놀라했다.
“이번 수학여행 때 새로 만든 놀이입니다. 학생들이 최대한 수학여행을 통해서 배워 갈 수 있게 해 주고 싶었거든요.”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나를 보면서 박 선생이 눈을 흘겼다.
“처음부터 다 노리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대충은 그렇죠. 일부러 학생들이랑 선생님들에게도 숨겼으니.”
“교활하구만. 그래도 그런 게 화끈하게 보여서 좋아! 크하하하!”
댓글들도 확인하던 오 선생이 기존 업체인 가치투어 대표의 글까지 확인하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선도부 경필이에게 전화를 해야겠어. 선도부로서 수학여행 계약한 업체들의 서비스들 이상한 곳 있으면 확실하게 평가해서 내년 행사에 문제없게끔 하라고 말이야.”
선도부의 역할을 조금 벗어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오 선생이 전화를 한 번 해 주는 건 좋은 일이었다.
경필이가 자신의 정의감을 마음껏 뽐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경필이가 주목받을 수 있고, 항상 친구들과 같이 있게 되겠지.’
경필이가 혼자 있거나 친구들과 단둘이 만나거나 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늘어난다.
그 위험성을 생각하면서 오 선생에게 부탁드린다며 인사를 했다.
“박 선생님, 이상한 일 생기면 연락 주세요.”
“후…… 알았어요.”
“참, 곧 신미나 기자님한테도 연락이 올 겁니다. 제가 제주도에 가는 동안 뭐 있으면 박 선생님에게 연락하면 된다고 했거든요.”
그 말에 박 선생이 눈에 불을 켜고 나를 노려봤다.
“기자님 상대까지 하라고요?”
“어…… 네. 이거도 빚으로 달아 두세요.”
갑자기 화를 내는 박 선생을 보며 괜히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뭐야, 라고 중얼거리고는 가방을 들었다.
“그럼 제주도 좀 다녀오겠습니다.”
* * *
전세버스 업체 기사들은 소인국 정원에 학생들을 내려 주고는 다 같이 모여서 줄담배를 피웠다.
“시발…….”
“자네한테는 뭐라고 했나?”
“뒷돈일랑 싹 다 잊고 똑바로 일하라고 그러더라.”
기사들은 여기까지 오는 내내 업체 대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뒷돈 다시 돌려주고 서비스 제대로 해!
전세버스 업체인 한길여행 대표 방주호는 강문고 SNS를 확인한 건 아니었다. 그는 포털사이트 뉴스를 확인한 것이었다.
<강문고 수학여행 버스담당업체의 무책임한 행보>
<당일에 갑자기 바뀐 수학여행 업체. 이것도 비리의 연속인가?>
따위의 제목을 한 미래교육 기사가 올라왔고, 댓글도 수백 개가 달렸다.
-저런 업체는 싹 다 망해야해.
-당일에 바꿔? 뭐 지 자식이 운영하는 가게로 했냐?
-할거면 제대로 하던가. 저렇게 개판으로 하면 평가가 좋을 리가 있어?
-저 업체 나 안다. 한X여X이다.
-업체 공개 가냐.
-저기 우리 학교랑 할 땐 괜찮았는데, 변했나보네.
그런 댓글들을 보면서 한길여행 대표인 방주호는 전화기를 들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똑바로들 운전해! 우리가 이번에 개판 치면 내년, 내후년은 평판 싹 다 갈려 나가!
방주호 대표는 이미 민지정을 통해 뒷돈을 챙겼었다. 때문에 심하지 않은 선에서 학생들에게 서비스의 문제를 보여 주기만 할 셈이었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이 와서 하는 걸 보니, 회사 입장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었다.
SNS나 기사로만 끝났으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6월 수학여행 계약한 00고등학교인데요…….
-5월 행사 잡아둔 00동호회인데…….
-6월 수학여행 00중학교인데 계약 취소하려고요.
기존에 계약했던 고객들이 싹 다 취소 전화를 하기 시작한 것.
방주호의 입장에서는 어설프게 받은 뒷돈 때문에 기존 고객들을 놓치면, 향후 몇 년간은 신뢰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자신이 받은 뒷돈이 계약 손님들의 취소분을 모두 제하고도 남을 정도는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회사가 망한다!’
그래서 그는 부랴부랴 버스 기사들에게 전화해서 뒷돈을 싹 다 돌려주고 제대로 일하라 전한 것이었다.
물론, 자신도 며칠 전에 받은 돈을 다시 돌려주었다.
바로 방금 전에 말이다.
“네, 한길여행 방주호입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민지정의 연락이었다. 방주호는 담배 한 개비를 손에 들고는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움직였다.
“왜 그러시죠?”
[우리가 계약한 게 있을 텐데요? 똑바로 일 안 합니까?]
“지금 그쪽 사정 때문에 움직이려다가 회사가 망하게 생겼어요. 벌써부터 예약 취소하겠다는 손님들 전화로 정신 없단 말입니다! 아니면 이 손님들 5년치 만큼의 돈이라도 주실 겁니까?”
방주호의 말에 민지정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저희는 지금부터라도 서비스 제대로 제공할 겁니다. 지난번에 받은 돈은 모두 계좌로 입금했으니 확인해 보세요. 1원 단위도 싹 다 맞춰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기사들한테도 용돈 주셨죠? 그거도 다 드릴 거니까 받아 갈 준비나 하십쇼. 아무리 이사님들 부탁이어도, 이건 못 하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잠깐…….]
방주호는 민지정의 말을 무시하고 핸드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지금이라도 발을 빼서 다행이라는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민지정은 방주호 대표와의 전화를 마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 민지정에게로 버스 기사들이 다가왔다.
“선생님, 이건 돌려드리겠습니다.”
버스 기사들은 출발 직전에 민지정으로부터 받은 봉투를 모두 건넸다. 그리고 다들 담당 버스로 돌아가 청소를 했다.
“이게…… 왜…….”
기사들의 행동을 보면서 민지정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아직이다. 아직 식당이 있어. 식당만 제대로 가면…….’
소인국 정원을 모두 둘러본 학생들을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눈에 띄게 달라진 버스의 모습에 학생들이 깜짝 놀란 건 덤이었다.
“그새 바뀌었는데?”
그래서 학생들은 바뀐 전세버스의 모습들을 SNS에 올렸다. 그러자 이제는 여러 네티즌들이 강문고 SNS에 접속해서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뼈 맞더니 이제서야?
-꼭 욕을 처먹어야 정신을 차려요.
-처음부터 잘 하자. 응?
그런 댓글들이 평가단 게시글마다 수십개가 달렸다.
민지정은 글과 댓글들을 확인하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식당에서마저 SNS에 잘못 올라가면 안 되니까 경고 정도는…….’
그렇게 생각한 민지정은 어제 늦은 밤에 변경한 식당에 전화를 했다. 여기 역시 천우원 이사와 한무회 이사의 인맥을 통해 알게 된 식당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강문고등학교 민지정 교무부장입니다. 네, 어제 전화드렸었던……. 네 맞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학생들이 평가단이라는 놀이를 하고 있어서 퀄리티가 너무 안 좋으면 안 될 것 같기는 해서요. 차라리 당장은 괜찮아도 나중에 배탈이라도 나거나 하게끔…….”
[우리 방금 예약 변경되었다 그랬는데? 못 들으셨어요?]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소리에 민지정의 말이 중단되었다.
“무, 무슨 말씀…….”
[아까 아침에 전화 와서 업체 다시 바뀌었다면서 취소 전화 왔다고요. 손해배상은 다 해 주셔서 괜찮기는 한데, 다음부터는 이런 일로 연락하지 마세요. 그리고 뭐 식중독이라도 걸리게 하라고? 가게 망하게 할 일 있어요?]
툭 전화가 끊어졌다. 민지정은 핸드폰을 손에 든 채로 정지화면처럼 앉아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버스 기사의 외침을 신호로 학생들이 우루루 내렸다. 그 소란에 민지정도 정신을 차리고 가게를 확인했다.
<제주 진성식당 - 2010 미슐랭 가이드 선정 가게>
“대박!!! 미슐랭 식당이잖아!!!!”
어느새 도착한 2학년 1반 민정과 동규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 학생들의 앞으로 진성식당의 주인인 진성수가 식당 문을 열고 나왔다.
“강문고 강은숙 이사장님의 요청으로 이번 수학여행 맛집 기행을 책임질 진성수입니다. 들어들 오세요!”
“이사장님이?”
“어라, 자네도 와 있었어!?”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들, 그리고 한명심까지도 식당이 어디인지 확인함과 동시에 어떤 인물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딱 한 명, 민지정만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식당 정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오셨어요?”
진성수의 뒤에 서 있는 강명문이 세상 밝은 얼굴로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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