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63화 (163/252)

163화. 수학여행 (3)

“왔어?”

[다 와 가.]

“얼른 와. 아침은 먹고 가야지.”

채영은 공항에 도착해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연찮게 후배들의 수학여행 시간과 딱 겹쳐 있었다.

그래서 채영은 혹시나 다른 선생들이 자기를 알아챌까 봐 멀찍이 있는 24시간 카페에 앉아 있었다.

괜히 얼굴을 알아보면 귀찮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다음주에 제주도로 여행 올 사람?

단톡방에 올라온 강명문의 메시지에 동석, 은장, 명천, 정석은 곧장 가겠다고 답했다.

채영은 그날 수업이 어떻게 될지 몰라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운 좋게도, 수업 몇 개가 휴강이 되어서 부담 없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나머지는 한 번쯤 결석하지 뭐.’

이게 대학교 1학년의 특권이라 생각하면서 후배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바라봤다. 시간이 되었는지 학생들과 교사들이 일제히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유독 한 사람만 자리에 서서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어, 나야. 내가 말한 거 잊지 않았지?”

‘교무부장쌤인데?’

채영은 그게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보았다. 교무부장 선생님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고, 이번 급식비와 촌지 언급 사건 때문에 시끌시끌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 지금 들어갈 거야. 혹시 모르니까 뭔가 생기면 바로 알려 줘. 확실하게 대응해야 해. ”

전화를 끊고 황급히 이동하는 민지정을 확인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나 도착!]

동석의 메시지였다. 저 멀리서 동석이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친구들도 모두 도착했다.

“정아랑 태성이는?”

“아무래도 다 빠지기 그런가 봐. 벌써 3월에만 두 번 빠졌대.”

은장의 질문에 동석이 답했다. 그러자 명천이 한숨을 쉬었다.

“아주 수업 안 들으려고 작정을 했구만…….”

반면 정석은 당연한 거 아니냐며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나도 이번에 빠지면 두 번째야! 그리고 이렇게 수업 째는 거도 1학년 때나 하지 나중에 어떻게 하겠냐?”

“천하태평이구나 정석이는.”

동석이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그거 칭찬 아니고 놀리는 거지……?”

수상한 기운을 감지한 정석이 동석을 살짝 째려봤다. 동석은 그저 헤헤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럼 가자. 비행기 몇 시였지?”

“앞으로 두 시간 뒤. 밥 먹자.”

강문고 졸업생인 다섯 친구들은 저들끼리 모여 햄버거를 먹었다.

“쌤은 언제 오신대?”

“오늘은 어렵고 내일 오신다고 했어.”

“그런데 어차피 수학여행팀에 합류하셔야 하는 거 아냐?”

“아마도?”

은장과 정석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채영은 강명문에게 전화를 했다.

“네, 쌤. 저희 이제 가려고요. 내일 오시죠? 아, 후배들이요? 마주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아까 교무부장쌤이 혼자 남아서 혹시 모르니 뭘 대응하라느니 하던데요? 누구랑 통화했는지는 모르겠고요.”

[그래? 알았어. 일단 그쪽은 신경쓰지 말고, 오늘 하루 놀고 싶은 대로 놀아. 내일 보자.]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던 강명문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참, 내가 내일 간다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다. 알았지?]

“에이, 저희가 누구한테 알리겠어요. 비밀로 하겠습니다!”

강명문과 통화를 끝낸 채영은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 일정을 이야기하면서 남은 감자튀김을 집어 먹었다.

* * *

한 교감과 민 부장, 홍 선생이 학생들을 이끌고 공항으로 들어가는 시각, 나는 채영이와 전화를 마친 참이었다.

“잘 됐어.”

둘째 날 마지막 일정에서 현재 2학년 학생들과 만났을 때 가장 인기가 많을 학생이 바로 채영이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은장이나 명천이처럼 성적이 높지 않았다. 오히려 중위권 학생들이 분포도로 따지면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석이처럼 내신이 낮은데 목표한 대학교에 합격한 학생의 합류를 기대했다.

‘그중 한 명이 채영이였는데 잘 됐지.’

지난 태웅이 사건 때 한몫했던 태성이는 학교 수업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 이번에 중위권 학생들 상담의 메인으로 채영이가 들어갈 수 있었다.

“얼추 그려졌으니까…….”

조용히 핸드폰을 들고 홍 선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홍 선생의 답문을 확인하고 출석부를 들었다.

“마음껏 날뛰어라 얘들아.”

* * *

홍유진은 강명문의 문자를 받자마자 경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다들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경필아, 이번에 하는 서비스 평가는 진짜 중요한 거야. 학교의 미래를 위해서도, 내년에 입학할 후배들을 위해서도 학교의 여러 행사들에 대한 평가들이 필요해. 그중 수학여행이 가장 중요하거든?”

그 말을 들은 경필이 눈을 빛냈다.

“쌤, 그 말씀은…….”

“네가 선도부니까 말하는 거야. 친구들이랑 같이 우리 학교의 여러 일들의 장단점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봐. 친구들 몇 명이랑 팀 이뤄서 하면 더 좋고. 알았지?”

경필은 홍유진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서서는 도수경례를 했다.

“네! 맡겨 주십쇼!”

주변에 있던 학생들도 경필과 홍유진의 모습을 보면서 뭔데, 뭔데, 하며 다가왔다. 경필은 그 친구들 중 가장 믿을 만한 친구인 동규와 민정을 불렀다.

“우리 하나씩 다 체크해서 사진 찍고, 리뷰 쓰자.”

경필은 능숙하게 친구들에게 각자 어떤 사항들을 체크할지를 이야기했다. 두 친구는 경필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비행기에 탑승한 직후, 경필은 좌석 간의 앞뒤 간격을 체크했다.

“이거 너무 좁은데?”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대형 항공사의 예약을 취소하고 LCC항공사 중 하나로 예약을 변경했다.

대형 항공사에 비해 비행기 크기에서부터 차이가 나다 보니 덩치가 큰 학생들은 앉기를 불편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근데 원래 한국항공 타기로 하지 않았어?”

“그러게. 왜 바뀌었지?”

학생들이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민지정이 박수를 치며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항공기가 조금 작게 느껴질 수는 있을 텐데, 불평하지 말고 우리 잘 다녀오자. 안전벨트 잘 착용하고!”

민지정은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서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천우원, 한무회와 만난 일들을 떠올렸다.

-한 달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기대하라고 했는데, 또 이렇게 우리에게 힘을 빌릴 셈인가?

-이, 이번에는 다릅니다! 학교 내부 활동 중 수학여행은 교무부장인 제가 가장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하면 작전을 구상할 수 있는지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판을 짜도록 도와달라?

-이사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주시고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안 되면 제가 제 배를 가르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맹세를 하는 민지정을 향해 천우원이 끌끌 웃었다.

-좋아. 마지막으로 믿어 보지.

그렇게 민지정은 천우원과 마지막 거래를 했다. 김영호는 이 사실을 듣자마자 이 일이 단순히 민지정에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번에 민지정이 구상한 작전은 업체변경. 강명문이 주도한 수학여행이, 알고 보니 횡령으로 얼룩진 일정이었고, 그로 인해 수학여행 서비스 역시 엉망이었다는 식으로 몰고 갈 계획이었다.

그래서 움직였다.

원래 이번 수학여행 일정에 있었던 여러 업체들은 오늘 당일이 되어서 부랴부랴 변경되었다.

항공기는 대형항공사에서 LCC로, 전세버스와 숙박업체, 식당 등은 모두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지인들의 업체로 말이다.

‘이사님들이 내게 준 마지막 기회야.’

물론 그 과정은 모두 천우원과 한무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게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수학여행지를 따라다니며 새로 변경된 업체들이 얼마나 서비스를 못 하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수학여행 서비스 평가단이라니.

이런 건 듣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다.

‘대체 누가……?’

한명심이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한명심의 아이디어 같기도 했다. 보아하니 다른 교사들도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 보였고 말이다.

‘설마 강명문이?’

그러나 민지정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다 예상하고 이 활동을 만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사장과 강철면이 학교 이미지를 바꾼답시고 추진한 것으로 생각했다.

어쨌든, 그녀로서는 번거로운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뭔가 생기면 바로 알려 줘. 확실하게 대응해야 해.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에 김영호와 통화하면서 그녀는 특이사항이 생기면 꼭 알려달라고 일러두었다. 혹시나 이 서비스 평가단이 인터넷을 타고 퍼지면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조금씩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하는 일도 있을 거다. 그런 일들도 여행의 재미라고 생각하고 즐겨라. 알았니?”

그래도 최대한 학생들에게는 좋은 말로 현재 상황들을 설명할 생각이었다.

‘그래 봤자 교내평가단이다. 학생들이 해 봐야 얼마나 하겠어.“

민지정은 이번 평가단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학교 내에서의 활동. 그게 큰 문제로 퍼지거나 할 일은 전혀 없을 것이었다.

게다가 학생들의 치기어린 평가들이다. 그걸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차하면 내 선에서 컷 해도 되고.‘

그렇게 생각한 민지정이 선두를 향해 걸어갔다.

오대천왕인 백발마녀의 말에 학생들이 알겠다고 답했다. 승무원의 안내를 받으면서 학생들은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제주도로 이동했다.

* * *

제주도에 내린 학생들은 곧장 전세버스에 탑승하러 걸어갔다. 그에 앞서 민지정은 제일 먼저 그쪽으로 넘어가서는 전세버스 기사들을 하나하나 만났다.

“내가 말한 대로 해 줘야 해요. 알았죠?”

민지정은 기사들에게 두툼한 봉투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기사들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네, 걱정 마십쇼.”

그렇게 민지정은 기사들과 밀약을 하고서 학생들을 탑승시켰다.

학생들이 각 학급에 맞춰 준비된 전세버스에 올라탔다. 그 모습을 보며 민지정은 다시금 버스 기사들을 돌아봤다.

기사들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민지정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러나 그 확신은 버스에 탑승하고 10분도 되지 않아 불안으로 바뀌었다.

“이제 제일 먼저 소인국 정원으로 갈 건데…….”

일정을 이야기하던 홍유진은 열심히 사진을 찍는 경필을 발견했다.

“경필아 뭐 하니?”

“아 쌤, 이 버스 너무 더러운 거 같습니다.”

경필의 말에 다른 학생들이 바닥을 비롯해 버스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맞아요 쌤. 여기도 먹다 버린 과자들이 있어요.”

“제 쪽에는 껌이 달라붙어 있는데요?”

그렇게 말하던 학생들이 각자 핸드폰을 꺼내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경필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동규에게 전송하면서 말했다.

“동규야, 전세버스 업체 평가에 넣어 줘.”

“오케이. 별점은 2점?”

“2점은 무슨. 간식 하나도 없으니까 1점 더 깎아.”

버스에 다른 건 없는지 뒤적이던 민정이 투덜거렸다. 그리고는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작성했다.

“뭐 적니?”

“까먹기 전에 빨리 올리려고요!”

학생들은 버스 내부의 청결 문제를 두고 심각하다면서 학교 홈페이지와 SNS에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다른 반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기사님 너무 난폭운전하시는 거 아니야?”

2반, 3반, 4반, 5반 등. 모든 학급에서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러더니 버스 이곳저곳을 촬영하고, 업체의 로고 사진을 찍더니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기사들은 그런 학생들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민지정이 찔러 준 봉투의 무게를 즐겁게 느끼면서 말이다.

“네, 네 대표님.”

그러던 기사들은 업체의 대표에게 전화를 받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예, 예 알겠습니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기사들이 핸들을 양손으로 부여잡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핸들은 천천히, 속도는 최저속도를 준수해서, 커브링은 부드럽게 운전했다.

“오 뭐야.”

“방금 우리 떠드는 소리 들으셨나?”

학생들이 뒤에서 소곤거렸다. 다른 학급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민지정이 탑승한 버스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민지정이 기사에게 다가가서 물었지만, 기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이것 보세요!”

여전히 기사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서 앉으라는 안내만 했다.

“위험하니까 안전벨트 하시고 앉으세요.”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민지정에게 김영호의 문자가 도착했다.

[홈페이지랑 SNS 봐봐 빨리!]

민지정은 급하게 강문고등학교 SNS에 접속했다. 거기에는 이미 수많은 학생들의 전세버스 업체 비판 글이 올라와 있었다.

<수학여행 서비스 평가단 참여!

이번 전세버스 엉망이네요. 이 업체 다시는 계약하면 안 될 듯? 버스 흔들리는거 보여요?>

<수학여행 서비스 평가단 참여!

내부 청소를 한 달은 안 하신 거 같아요.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숨이 막히네요.>

<수학여행 서비스 평가단 참여!

아니 왜 항공기가 바뀌었죠? 저 같은 덩치들은 앉지도 말라는 뜻 같아요. 여기 사진첨부합니다. 저 같은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다음부터는 대형항공사로 해줬으면 좋겠네요.>

이런 식의 글들이 벌써 수십 개가 올라와 있었다. 심지어 평가단 시작은 전세버스부터라고 공지했음에도 항공기에 대한 평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학생들이 이런 글 한 두 개 올리면서 학교 행사에 참여할 수는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민지정의 얼굴이 본격적으로 구겨진 건 그런 글들에 하나씩 달리는 답글을 확인하고 나서부터였다.

<강문고 수학여행 전세버스투어 담당이었던 업체 가치투어 대표 주성민입니다. 학생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한 말씀 올립니다. 저희 업체는 원래 어젯밤까지 강문고 수학여행 담당 업체로 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일방적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다음에는 저희를 꼭 선정해 주시면 그 어떤 업체도 따라오지 못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 미친 새끼가…….”

민지정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인솔하고 있는 다른 학급 교사들도 학생들이 전에 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서 난감해하고 있었다.

오직 단 한 명, 2학년 1반 홍유진 선생만이 학생들의 활동을 더 부추기고 있었다.

“경필아 여기도 문제 있다. 아저씨 안전 운전 하시는 거 확인했어? 손잡이는? 여기 음료수 넣는 구멍은 왜 고장났대니? 전세버스에 쓰레기통 하나도 없는 건 좀 문제 아니야?”

경필은 홍유진의 말을 들으면서 일사불란하게 사진을 찍었고, 동규는 그 사진을 받으면서 글을 작성했다. 민정은 수학여행 서비스 업체들의 문제들이 심각하다며, 이게 ‘수학(修學)’이 되겠느냐는 글을 올렸다.

그 모든 과정을 홍유진은 강명문에게 보고했다. 수업을 마치고 홍유진의 메시지를 확인한 강명문이 현장의 아비규환을 상상하면서 씨익 웃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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