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62화 (162/252)
  • 162화. 수학여행 (2)

    대응책은 핸드폰 메모장에 적혀 있었다. 혹시나 유출될지 몰라 인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지금 세 교사는 내 핸드폰 화면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2학년 교사들 중 믿을 수 있는 분은 홍 선생님뿐입니다. 그러니 처음 우리가 컨택한 업체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꼭 기록을 해두세요. 그리고 영수증, 신청과정에서의 통화 내용들도 모두 녹음, 기록해 두시고요.”

    “아, 알겠습니다, 선배님.”

    홍 선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졸업생들이 오는 건 비밀로 할 거니까 캠프파이어 정도로만 넣어 주세요.”

    “그런데 졸업생도 온다고 해야 민 부장님이 못 움직이는 거 아니에요?”

    박 선생의 물음도 타당했다. 그러나, 이번의 민 부장은 그런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류 선생이 녹음해 줘서 다행이야’

    류 선생은 오늘 민 부장과 김 부장, 그리고 한 교감과 함께 급하게 회의를 했다. 회의라기에는 그냥 민 부장이 한 교감에게 떼를 쓴 거나 다름없었지만.

    어쨌든, 류 선생을 그쪽과 친밀하게 붙어 있도록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서프라이즈 파티 정도는 해야 학생들도, 교사들도 깜짝 놀라지 않겠어요?”

    그리고 천천히 핸드폰 화면의 스크롤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이상한 업체들이든 뭐든, 수학여행에 참가한 학생들에게는 이걸 쓰게 해 주세요. 그리고 이걸로 상품과 상장을 수여할 겁니다.”

    화면을 확인한 박 선생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이러면 마음대로 못 움직이겠네요.”

    <강문고 수학여행 서비스 평가단: 방문한 식당, 전세버스기사 아저씨의 매너, 숙소 컨디션 등 수학여행의 모든 것들에 대해 별점 리뷰 작성! 작성시 참가상 수여, 소수 선발로 소정의 상품과 상장 수여>

    화면을 확인한 홍 선생이 그 내용만 따로 한글파일에 타이핑을 했다. 나는 이 일의 비밀을 꼭 지켜달라고 강조했다.

    “출발 당일, 김포공항에 도착해서부터 시작이니까, 학생들 다 모이면 그때부터 해 주세요.”

    “네. 그때 학생들에게 알릴게요.”

    “다른 2학년 선생님들에게도 알려 주세요. 단, 이것도 당일에 알려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는 교감 선생님이랑 같이 하시게 될 거예요.”

    세 교사들은 이 사항들에 대한 비밀을 꼭 지키겠다고 말했다. 박 선생과 차 선생에게는 수학여행 2박 3일 동안 홈페이지와 트위티 등 인터넷 상황들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특이사항이 있을 시 나와 함께 신 기자에게도 연락하라고도 일러두었다.

    “그럼 이제는…….”

    교사들과 회의를 마치고 곧장 이사장실을 찾아갔다.

    “우리 공교육의 희…….”

    “제발요, 이사장님. 그건 그만.”

    내가 손사래를 치자 이사장이 호호,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은 어떤 일 때문인가요?”

    “교감 선생님이랑 같이 말씀을 나눴으면 합니다.”

    “좋아요. 지금 바로 호출하도록 할게요.”

    이사장의 연락을 받은 한 교감은 십여분 뒤에 이사장실로 들어왔다.

    “강 선생! 이번 수학여행, 학생들에게 일정을 짜게 한 게 또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어 으하하하! 그나저나 아까 이야기 나눴는데 또 뭔가가 생겼나?”

    한 교감은 진심으로 기뻐 보였다.

    “이번에 학교 이미지 쇄신도 있고, 우리가 학생들을 위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면 좋을 것 같아서 기획해 봤는데, 나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럼 그럼! 그 덕분에 지금 내 이미지, 아니 학교 이미지도 상승하고 있거든! 정말 다행이야! 역시 강 선생이야!”

    신나게 웃는 한 교감을 보면서 확신했다.

    입결에 의한 실적이 아니라 학교 행정에서의 실적으로 방향을 돌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교감선생님, 그래서 제가 한 가지 더 제안 드릴 게 있습니다”

    “그래, 어떤 건가?”

    나는 지금 한 교감의 마인드를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핸드폰에 적어 둔 메모장를 열었다.

    화면을 확인한 한 교감이 밝게 웃었다. 이사장도 그 내용을 확인하더니 정말 좋다면서 동의를 했다.

    “아주 좋아! 학생들에게 직접 피드백을 받겠다는 거구만!”

    “맞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추천한 일정을 다닐 때는 최대한 친구들에게 좋은 기억을 주려고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수학여행 업체들의 실체가 좋지 않다면, 그것도 밝혀내서 변화를 줄 수 있고요.

    한 교감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맺혔다. 그 미소를 받으면서 부연 설명을 했다.

    ”즉, 일정이 아무리 좋아도, 직접 가 본 다음에는 평이 바뀔 수도 있다, 라는 점을 강조해 주시면서 설명해 주시면 됩니다.”

    한 교감은 내 어깨를 붙잡더니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정말 고마워. 강 선생 덕분에 우리 강문고가 또 한 번 변하고 있어!”

    “아, 아하하하, 감사합니다. 어깨 좀 그만…….”

    나는 한 교감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지면서 그의 손길을 거부했다. 그런 나를 향해 이사장이 물었다.

    “제가 도와줄 건 없을까요?”

    “만약 피드백이 너무 좋지 않은 경우에는 현장에서 업체를 바꿔야 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비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사장이 걱정 말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한 교감에게는 수학여행 첫날, 공항에서부터 홍 선생과 함께 서비스 평가단 소식을 전 학생, 교사들에게 알리도록 전달했다.

    “그때까지는 꼭 비밀 지켜 주셔야 합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한 교감을 바라봤다. 그러자 찔리는 게 있는지, 흠칫 놀라고는 말했다.

    “거, 걱정 말게. 작년 입시 시즌처럼은 안 될 거니까. 쓸데 없는 짓 안 할 걸세.”

    작년에는 자소서 시즌에 이상한 시나리오나 가지고 와서 난리를 치고, 동석이를 학교 선전에 사용하고 그랬으니.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이사장과 한 교감과의 미팅을 마치고 캘린더를 확인했다.

    2학년 학생들의 수학여행은 2주 뒤. 그리고 당장 다음 주에는 중간고사가 있었다.

    ‘성적들 잘 나오는지도 확인을 해 봐야 하지만…….’

    성적표는 중간고사 직후가 아닌, 수학여행 이후에나 나올 예정이라 일정에 무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 이어질 바른학교 만들기 정책발표도 준비해야 했다.

    급식비리, 내신조작, 태웅이 사건 이후로 정말 많은 일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정신없을 일정이기도 했지만,

    “뭐, 입시에 기반해서 준비하면 다 보석 같은 시간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교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며칠 전 개설된 단톡방에 글을 하나 올렸다.

    [다다음주에 제주도로 여행 올 사람?]

    * * *

    중간고사가 후다닥 지나가는 사이, 제주도 일정도 확정이 되었다. 홍 선생은 확정된 일정을 인쇄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괜찮은데요?”

    학생들의 니즈를 반영한 일정표와 함께 교사들의 니즈도 반영한 일정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너무 놀기만 하기보다는 역사 공부도 하라고 ‘제주 평화공원’도 추가되어 있었다.

    “차 선생님이 적극 추천하셨어요. 이 녀석들이 놀 생각만 가득하다면서.”

    밝게 웃는 홍 선생을 보면서 수학여행 일정도 나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올 녀석들 섭외도 끝났고.’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눈 결과, 은장이와 동석이, 정석이, 명천이가 확정적으로 합류할 예정이었다.

    당연하게도, 녀석들에게는 후배들을 만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수학여행을 가는 김에 얼굴이나 보자, 라는 정도로 이야기를 해두었다.

    “그나저나 선배님도 오세요?”

    “저는 뭐, 안 가겠지만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일단 대기하고는 있으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비상상황이 생기면, 당일 비행기표라도 끊고 가야 한다.

    그래서 이사장에게 이야기는 해 둔 상황이었다.

    -급하게 가야 할 일이 생기면 그날 수업은 자습으로 돌리고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이사장은 당연히 흔쾌히 오케이를 했다. 민 부장의 계획에 대해 귀띔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또 이상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 돼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민 부장을 잡을 수는 없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도 없었기에 그냥 해 본 말이에요! 라고 하면 끝날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현장에서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아마 교감선생님은 그런 판단을 할 여유가 없을 겁니다. 홍 선생님만 믿습니다.”

    홍 선생이 다소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믿음직해 보이는 표정이었기에 안심하고 교실로 올라갔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라 그런지, 학생들의 얼굴은 똥 씹은 표정이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시험은 끝났지만, 이제 뭐 해야 하는지 알지?”

    “세특 준비요?”

    민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수행평가 준비해야 한다.”

    “아 맞다.”

    “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는 녀석들을 향해 교탁을 종이몽둥이로 탁탁 내리쳤다.

    “지난번 해피플레이스 봉사활동으로 써도 된다. 시험공부했던 이야기도 괜찮고, 급식실 사건을 이야기해도 좋아. 너희들 자유롭게! 준비해 봐라.”

    학생들은 지난번 해피플레이스 봉사활동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녀석들은 해피플레이스 활동 이야기를 꺼내자 다시금 눈을 빛냈다.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5월쯤 한 번 더 갈 거다. 그러니 먼저 수행평가부터 잘 써 봐라.”

    싱긋 웃는 나를 보는 학생들의 얼굴이 다시금 구겨졌다. 왜, 좋은 이야기만 해 주는데.

    “그럼 오늘은 여기서 끝! 다음주에는 후배들 없으니까 학교가 좀 조용할 거다. 중간고사 끝났다고 긴장 늦추지 말고, 열공합시다!”

    ““네에…….””

    학생들의 맥빠진 답변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이 자식들, 수학 여행기간 끝나면 확실하게 굴려 줘야 되겠다고 말이다.

    * * *

    다음 주 월요일, 2학년 학생들의 수학여행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아침 일찍부터 김포공항에 모여 있었다.

    “반 별로 모여!”

    학급 교사들의 인솔로 학생들이 반 별로 그룹을 이루었다. 각 반들의 출석을 확인하고 교사들이 일정들을 알려 주었다.

    “너희들이 추천한 일정들을 위주로 정리한 거야.”

    홍유진이 일정표를 나눠 주었다. 이미 학교 홈페이지에서 확인했기에 학생들은 이 일정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추천한 곳도 있어!”

    “당연히 소인국은 가 줘야지, 안 그래?”

    “야, 주상절리는 사진으로 보면 되지 이걸 굳이 가서 봐야 하냐?”

    “직접가서 보면 웅장하다고 했어! 내가 안내할 거니까 기대나 하고 있어라.”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학생들이 저들끼리 웅성거렸다.

    “경필아, 마상무예는 너 말고는 추천인이 없어서 제외했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다수결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관이니까요!”

    경필의 밝은 목소리에 홍유진이 조금 안심했다.

    그때 한명심 교감과 민지정 교무부장이 학생들과 교사들 앞에 섰다.

    “자, 자, 조용조용!”

    민지정이 떠들썩한 좌중을 한 번 훑어보며 말했다. 주변이 조용해진 걸 확인한 한명심이 커흠, 헛기침을 했다.

    “오늘 수학여행은 아주 소중한 여행이 될 겁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학생 여러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언론에서도 우리 강문고 2학년 학생들이 직접 구상한 수학여행에 주목하고 있어요!”

    일정이 정해진 직후, 신미나 기자가 와서 한명심을 인터뷰했다. 강명문의 부탁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번에 언론에 이름이 올라가면서 한명심의 평판이 올라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한명심은 이번 수학여행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잠깐 살펴본 학생들이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속으로 생각했다.

    ‘밤새 멘트를 준비하기를 잘 했어!’

    혼자 만족한 한명심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더라도 우리가 맛집인 줄 알고 갔던 곳이 맛이 없을 수도 있고, 좋은 여행사라고 생각해서 계약한 여행사가 불친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인쇄한 종이가 담긴 쇼핑백을 앞으로 꺼냈다.

    “각 학급 담임선생님들께서는 이 종이를 학생들에게 나눠 주세요.”

    한명심의 말에 교사들이 쇼핑백에서 학생 수만큼 인쇄물을 챙겨갔다.

    “서비스 평가단……?”

    민지정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어서 학생들은 물론이고 홍유진을 제외한 담임교사들이 눈을 멀뚱멀뚱 뜨고서 인쇄지를 바라봤다. 한명심은 그 반응에 만족해하면서 밝게 말했다.

    “자유롭게 평가하세요. 학생 여러분의 평가로 당일 현장에서 업체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냉정하게, 블로그나 인터넷 평가단처럼 해 주세요. 개인 홈페이지나 SNS에 올려도 됩니다.”

    참가상은 프렌차이즈 빵집 상품권 1만 원권이었다.

    그리고 가장 활발히 활동한 사람들을 일부 선정해서 문화상품권 10만 원권과 함께, 제주 가족여행 상품권을 제공해 준다고 적혀 있었다.

    “교, 교감 선생님, 이거 진짜 주시는 거예요?”

    한 학생의 질문에 한명심이 어깨를 한껏 펴며 말했다.

    “그럼! 이사님들의 지원금 알지? 그걸로 주는 거야!”

    그리고는 민지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치, 좋은 아이디어지? 라며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민지정은 그런 한명심의 얼굴을 보면서 겨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다들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기를 바랍니다. 이제 출발!”

    한명심의 말을 신호로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서비스 시작은 공항에서 내린 후 탑승하는 전세버스부터였다.

    “야, 그럼 버스 청결상태나 이런 거도 보면 되나?”

    “안전운전하시는지도 보고.”

    “안에 간식은 있는지도 봐야지!”

    “맛집이라고 했는데 아니기만 해 봐 진짜.”

    학생들은 저마다의 평가요소들을 이야기하면서 낄낄거렸다.

    그 뒤에서 민지정은 인쇄지를 꾸깃 구기고는 양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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