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61화 (161/252)

161화. 수학여행 (1)

수학여행 일정을 내가 주도하려고 했던 이유는, 그 과정에서 경필이의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 부장의 행동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이번 수학여행도 입시에 도움이 되도록 바꾼다.’

수학여행지는 교사들이 선정한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그 일정을 따라만 다녔지, 재미를 느끼면서 돌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직접 일정을 만들도록 하면 어떨까?

장난스럽게 건네는 일정이 아닌 이상, 자신이 제안한 일정이 선정되면 그 일정을 제안한 학생은 열심히 참여하게 된다. 심지어 다른 친구들이 그 일정에 흥미를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 친구들을 설득하려고도 노력한다.

‘그 모든 과정이 비교과 활동으로 기록될 수 있지.’

게다가 이번 일정의 마지막 시간에는, 설령 장난스럽게 건네는 일정이 있어도 싹 다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즉, 누구나 이 일정 정하는 데 참가만 하면 자신의 역량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지금 민 부장의 행태를 봤을 때, 무언가 꿍꿍이를 계획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가 주도한 계획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도한 계획으로 포장하는 게 안전했다.

지금도 이미지가 수직하강하고 있는 민 부장이었다.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서 만든 일정은 언론에도 알려질 게 뻔했다.

그런 일정을, 민지정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한다?

자기 무덤을 파고 싶어서 안달이 나지 않은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해야겠지.’

민주에게 손찌검을 하려 했던 때를 떠올리면, 민 부장은 그렇게 참을성이 좋은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수학여행 건도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고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 모든 일들은 홍 선생과 함께 대비해야 하고 말이다.

“참, 그리고 이번 수학여행은 무상으로 갈 수 있습니까?”

“무상으로?”

“이사님들이 4억이 넘는 돈을 지원해 주셨는데, 그걸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태연하게 말하는 나를 보면서 이사장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는 호호호, 웃었다. 반면 강철면은 살짝 고심하는 듯 보였다.

“이사님들과 의논을 해 봐야 할 것 같아. 사용처가 확실하게 정해진 상태로 받은 지원금이라 말이지.”

“어차피 책걸상 바꿔도 1억 정도면 되지 않습니까?”

내 말에 강철면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나.

“제안된 금액은 4억일세.”

“하…… 또 장난질이군요. 알겠습니다.”

전교생 책걸상을 바꾸는 데 드는 금액은 1억 남짓. 그것도 꽤 고가 제품을 사용했을 때의 금액이었다.

그런데 그 금액의 4배가 넘는 금액을 책걸상 교체비용으로 제안했다?

‘지원의 탈을 쓴 횡령.’

어떻게든 해먹으려고 잔재주나 부리는 이사진을 향해 상상 속에서 손가락 욕을 날렸다.

“그래도 1억이 남으니까, 최대한 지원해 주도록 해 볼게요.”

이사장의 말에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럼 지금 당장 공지문 드리겠습니다.”

“네, 이번에도 잘 부탁해요.”

그날 밤, 후다닥 한글파일로 수학여행 일정 관련된 공지문을 작성했다. 이메일로 전송을 누름과 동시에 학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 * *

그리고 다음 날.

“야 이거 뭐야?”

“우리가 짜라고?”

“가고 싶은 곳 막 던져도 되나?”

2학년 교실 전체는 물론이고 복도까지도 게시판에 붙은 공지문 하나로 들썩였다.

“다들 자리로 돌아가!”

길을 지나가던 민지정이 학생들에게 호통을 쳤다.

“대체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옆에서 함께 걷던 김영호도 무슨 소란이냐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두 사람은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 박혀 있는 종이를 한 장 발견했다.

“학생들이…….”

“……주도해서?”

두 교사는 학생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게시된 종이를 바라봤다. 그러다 그 종이를 냉큼 뜯어서는 성큼성큼 교무실로 향했다.

“이거 뭐야!”

“아, 교무부장 선생님 오셨어요?”

민지정이 화가 잔뜩 난 채 교무실 문을 열자 류지훈이 둘을 반겼다.

“강 선생은?”

“강명문 선생이요?”

“어디 갔지?”

화를 내기 일보 직전인 민지정을 향해 홍유진이 손가락으로 교무실 끝자락을 가리켰다.

“저기 있습니다. 교감 선생님과 단둘이 밀회 중인 것 같았습니다.”

류지훈이 가리킨 장소는 바로 교감실이었다.

“이익…….”

민지정은 류지훈의 말을 듣고 교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영호와 류지훈도 그 뒤를 따라갔다.

“교감 선생님!”

교감실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사탕을 먹던 한명심 교감이 사탕을 잘못 넘겼는지 목을 켁켁거렸다.

“살살 열게. 놀랐잖은가.”

“이 종이 보셨습니까?”

민지정은 들고 있던 수학여행 일정을 학생들이 주도해서 정한다는 안내문을 펼쳤다. 한명심이 종이를 살짝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고 있지. 방금 그거 때문에 강 선생과도 미팅했네.”

“어떻게 된 겁니까 이게?”

“어떻게 되기는. 학생들이 일정 정하도록 해서 우리 강문고가 여타 다른 학교들과는 달리 학생 주도의 학교, 학생을 위하는 학교임을 보여 주고자 하는 거지.”

그러더니 한명심은 두 사람을 보며 껄껄 웃었다.

“이거야말로 한국고는 이룰 수 없고, 우리는 해낼 수 있는 성취 아니겠나, 하하하!”

이사진과의 대화를 모르는 한명심은 민지정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지 못했다. 민지정 역시 자신이 이사진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면밀하게 알리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민지정은 한명심의 바보 같은 행태를 보면서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나는 교감으로서 하나의 성과를 내고, 이게 이사님들 귀에도 들어갈 거야!”

“그……러면…….”

“교감이라는 위치에 있으니 입결 이외에 학교 운영에도 힘써야……응? 무슨 일 있나?”

한명심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다가 민지정을 보며 물었다.

“아, 그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 그러나, 불안하게. 뭐 걸리는 거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봐.”

민지정은 한명심의 태도를 보면서 고민했다.

‘지금 시점에서 한명심을 믿을 수는 없어.’

그는 이사진에 의해 발이 묶여 있기는 했지만, 박쥐 같은 사람.

언제든 자기만 살기 위해 그들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2학년 교사들 중에도 믿을 사람이 없어.’

2학년 담임교사들 중 자신이나 김영호처럼 부정부패에 익숙한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이 이사진과 친밀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교감선생님, 교무부장이 수학여행에 같이 가도 괜찮습니까?”

“자네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서 그런가?”

학교 행정일이라면 다른 후배 교사들에게 시켜도 된다. 게다가 2박3일 일정이기에 잠깐의 공백 정도는 다녀와서 메우면 된다.

“괜찮습니다. 저도 명색이 교무부장인데, 학생들의 가장 좋은 추억인 수학여행을 잘 살펴봐 줘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요즘 시끄럽기는 했으니 그런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좋겠지. 자네만 괜찮으면 다녀오게. 교장선생님과 이사장님께는 내가 말씀드리지.”

한명심은 민지정이 함께 가면 안심이라면서 민지정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가 직접 가서 뭐라도 해야 해.’

만약 이번 수학여행을 방치해서 강명문과 강은숙 이사장의 힘이 커질 경우 자신이 받게 될 문제. 즉, 천우원으로부터 받게 될 대가가 가장 무서웠다.

그래서 민지정은 본인이 직접 현장에 따라가서 강명문의 실적에 흠집을 낼 생각이었다.

“괜찮겠어 정말?”

교감실을 나와 김영호가 물었다.

“괜찮아. 이번 수학여행, 제대로 망쳐야 해.”

“어떻게 하려고? 영화처럼 일부러 버스 전복사고 내거나 그럴 건 아닐 테고.”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그렇게 해? 그것보다 더 깔끔하고 완벽하게 보내 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민지정이 교활하게 웃으면서 김영호를 바라봤다. 김영호는 민지정의 입에서 나오는 전략을 들은 후 소름이 돋는다며 팔을 쓸어내렸다.

“그거면 지금까지 쌓은 이미지가 다 날아가겠군!”

“그래. 학생들과 일정을 함께 정한다 해도, 결국 그 일정을 함께할 업체 선정, 컨택은 교사의 몫이야. 그러니 일만 제대로 터지면…….”

상상만으로도 즐겁다며, 이제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거라며 기대에 찬 눈빛을 한 민지정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청렴결백 이미지로 알려진 교사가 알고 보니 진흙탕을 뒤집어쓴 교사인 걸로 알릴 수 있어.”

민지정의 웃음에 김영호도 그에 화답하며 낄낄, 웃었다. 류지훈도 실실 웃으면서 민 부장님 꼭 성공하실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손에서 최근에 구매한 스마트폰 액정 화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 * *

수학여행지 추천은 1주일도 되지 않아 빠르게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평소 제주도에 가면 꼭 해 보고 싶었다면서 여러 활동들을 이야기했다.

“스킨스쿠버요!”

“말도 타 보고 싶어요!”

“뭔 소리! 소인국 가서 사진 안 찍을 거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성산일출봉도 가요!”

“거긴 너나 가라…….”

일부는 반대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학생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받으면서 수학여행 일정도 가닥을 잡아갔다.

“그럼 여기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지역을 중점으로 동선 고려해서 잡아 보죠.”

내 옆에는 홍 선생과 차 선생이 앉아서 학생들에게 받은 일정 추천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박 선생이 학생들 이야기를 하나씩 받아 주면서 적고 있었고 말이다.

“시장은 왜?”

“쌤! 제주도 갔는데 회는 먹어야죠! 그리고 쌤들만 허락하시면 소주도…….”

당연히 헛소리를 하는 학생들에게는 내 종이몽둥이가 날아갔다.

퍼엉!

“아야!”

“회까지는 오케이. 술 마시는 거 걸리는 순간 작살날 줄 알아라.”

2학년 학생은 얻어맞은 머리를 부여잡고 교무실 바깥으로 향했다.

“강 선생님, 정리 다 끝났습니다.”

차 선생이 용지들과 함께 학생들의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여행지들을 정리했다.

(1) 소인국테마파크

(2) 주상절리 직관

(3) 협재해변

(4) 천지연폭포

……

“그리고 약간 이상한 추천이 하나…….”

(기타) 제주마상무예의 기원 더마파크 공연 감상!

“2학년 1반 문경필이 추천한 건가요?”

“잠시만요……. 어? 맞습니다. 경필이가 무예에 관심이 많기는 한가 보네요.”

경필이의 사건을 교사들에게 알려왔다 보니 차 선생도 경필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경찰, 군인 쪽 관심도 많고 무술도 좋아해요. 그것도 약간 의협심? 그거 때문에 그런 걸 겁니다.”

“무슨 무협지에서 생활할 것도 아니고 하하하. 재밌는 학생이네요.”

나와 농담을 주고받은 차 선생이 다시금 학생들의 추천 일정을 정리한 파일을 확인했다.

“이 일정들 중에서 동선 맞춰서 정하고, 홍 선생님이 정리하고 계시는 먹고 싶은 음식들 정해서 가면 되겠네요.”

“그리고 제가 방금 추가로 받은 내용들도 넣어 주세요.”

박 선생이 다가와서 차 선생에게 인쇄된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거기에는 방금 전까지 학생들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듣고 정리한 추천 맛집들이 적혀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전체 리스트업 해 보죠. 그리고 홍 선생님, 준비는 잘 되고 계시죠?”

내 말에 홍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답했다.

“물론이죠, 선배님!”

홍 선생은 지난번 경필이 사건사고 예고 이후, 집에 먼지가 쌓여 가던 구조 관련 책들을 다시 꺼냈고, 관련 강의들을 다시 수강했다. 지인들 통해서 잠실 인근 체육관에서 수영, 잠수 연습을 했고, 주말에는 바닷가에도 다녀왔다.

나는 홍 선생의 준비성에 솔직하게 감탄하면서 모여 있는 교사들을 돌아봤다.

“선생님들, 수학여행 일정 중 둘째날은 대학교 OT처럼 해 볼까 합니다.”

그 말에 박 선생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맥주 파티라도 하려고요?”

“학생들한테 그래도 되나요?”

“당연히 안 하죠. 그게 아니라, 수학여행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선배와 만나는 시간을 줘서 성인이 된 자신들의 모습을 그려 보게끔 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일정에 추가되지 않은 본인들 일정을 어필할 시간도 만들 수 있었다.

“그럼 졸업생들은…….”

“동석이, 은장이, 태성이 같은 애들이 주를 이루겠죠.”

5월에 진행될 예정이었던 진로진학설명회와는 별개로, 나는 이번 수학여행에 작년 졸업생들과의 만남 시간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5월 행사는 고3들 대상이었으니까.

‘DB확보를 하려면 고1, 고2도 챙겨야지.’

그래서 고2 수학여행 때 하나의 행사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몸을 살짝 웅크린 채 세 교사들에게 속삭였다.

“일단 졸업생들 오는 건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왜요?”

홍 선생의 물음에 나는 따로 답하지 않고 핸드폰을 열었다. 그리고 녹음파일 하나를 재생했다.

[학생들과 일정을 함께 정한다 해도, 결국 그 일정을 함께할 업체 선정, 컨택은 교사의 몫이야.]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분히 있던 박 선생도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민 부장님 아니에요!?”

“맞습니다.”

나는 녹음된 음성파일을 멈추고 세 교사에게 말했다.

“아마 본 일정 들어가기 전에 이거 대비하시기에도 정신없으실 것 같거든요.”

‘깽판에는 깽판으로 대응해야지.’

놀라서 입만 벌리고 있는 교사들을 보면서 양쪽 입꼬리를 한껏 치켜올렸다.

그리고 준비한 대응책을 보여 주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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