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60화 (160/252)
  • 160화. 어설픈 코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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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의 학습법 비밀 노트 박람회 개최!>

    일시:

    2011년 4월 11일~6월 20일까지 자신만의 비밀노트 준비

    6월 20일~22일까지 준비한 비밀노트 제출

    대상: 강문고 전 학년 학생

    제출 방법

    : 비밀 노트를 학급 담임선생님에게 제출

    수상: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학생 30명 선발해 총 장학금 1천만 원 지급

    추가 특전: 강문고 입시 일타 강명문의 대입컨설팅 기회 제공(1시간 상당) / 수시 시즌 입시 특강 최우선 신청 자격 부여(인문논술, 수리논술, 자소서 특강, 면접 특강 중 택 2)

    문의: 강은숙 이사장, 국어교사 강명문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열심히 공부하려 노력한 흔적만 보여 줄 수 있다면 누구나 참가 가능! 내신 9등급도 참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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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된 종이를 들고 있던 민지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또 강명문이다.

    지난번 정책제안 프로젝트도 그렇고, 학습법 박람회도 강명문이 주도했다.

    사실 그 과정에서 강은숙 이사장과 한명심 교감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모든 일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강명문이었다.

    즉, 이제는 명실상부한 실세가 된 것이었다.

    “……어쩌지.”

    다른 것보다도 민지정은 지금처럼 강명문이 힘을 키우게 되는 사실을 이사진이 자신의 탓으로 돌릴까 봐 겁났다.

    단순히 질책만 받는 수준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학교에서 잘릴 수도 있다…….’

    그런 공포감이 심어지고 있을 때 민지정의 핸드폰이 부르르 울렸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쥔 민지정이 전화를 건 상대에게 예의를 차렸다.

    “예, 예, 이사님.”

    [민지정, 학교에서 자네랑 김영호는 뭐 하고 사나?]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우원 역시 이 박람회 정보에 대해 듣게 되었을 터였다.

    적당한 답을 찾고 있는데 천우원이 핸드폰 너머로 이야기했다.

    [강명문의 힘을 대놓고 키우고 있지 않나?]

    “죄, 죄송합니다!”

    [내가 그런 사과 듣자고 전화한 줄 아나? 대책을 세워야 할 거 아냐.]

    천우원의 말에 민지정은 핸드폰을 쥔 손을 벌벌 떨었다.

    “조,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저희가 좀 더 세밀하게…….”

    [지금 우리는 몸을 숨기고 있는 거야. 이번 지원금 활동도 봤지?]

    “네, 네 물론입니다! 봤습니다, 이사님!”

    민지정은 이사진이 최근 학교에 4억을 지원한 일을 떠올렸다. 강은숙 이사장의 지원금 1억까지 하면 총 5억의 지원금. 장학금과 책걸상, 커튼 교체에 사용될 예정인 금액이었다.

    [우리도 나름대로 이미지 구축하면서 입지를 다져야 해.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강은숙이 힘이 커지는 것도 안 돼. 하지만, 지금 보면 우리 지정이랑 영호는 은숙이 편인 것 같단 말이지.]

    평소라면 직함으로 불렀을 천우원이었지만, 오늘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단단히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그게 무슨…….”

    [강명문에게 힘 실어 주고 은숙이에게도 힘 실어 주고. 이게 은숙이 편이지 뭔가?]

    민지정은 보이지도 않는 상대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허리를 굽힌 채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결단코 이사장이 아닌, 이사님들을 믿고 따릅니다!”

    [그러면 똑바로 해야 할 거 아닌가. 강명문 대신 일을 하던가, 평판을 깎을 일을 꾸미든가, 이사장에게 직접 가서 뭔가를 제의하든가 하라고. 한 달 안에 성과 못 내면…….]

    천우원은 잠시 말을 끊었다. 이어질 말을 기다리면서 민지정이 침을 꼴딱 삼켰다.

    [기대하도록 하게. 알았나?]

    그 말을 끝으로 천우원은 전화를 툭 끊었다. 민지정은 끊어진 전화를 확인하고 김영호에게 전화를 했다.

    “나야. 지금 어디야?”

    민지정은 방금 전까지의 일을 김영호에게 전달했다. 김영호도 사태가 심각해짐을 느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생각이 있어. 잠깐 카페로 나와.”

    전화를 끊고 김영호와 약속한 카페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앞으로 자신의 정년과 아들의 미래를 생각했다.

    ‘기대하라고……?’

    천우원의 차가운 목소리를 떠올렸다. 기대가 무엇을 뜻하는지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빨리, 뭐든 만들어야 해.’

    카페로 걸어가는 민지정의 발길이 급해졌다.

    * * *

    학력평가 멘토링은 생각 이상으로 호평을 받았다.

    “오답노트? 나는 이렇게 쓰는데…….”

    “개념 정리할 때는 따로 요약본을 만들어 둬.”

    민주와 태웅이가 자신의 학습법을 아낌없이 친구들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월요일, 박람회 공지사항이 올라오자마자 학부모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무조건 수상을 해야만 하냐, 다른 조건은 없냐, 상담은 몇 분이나 이루어지냐, 고1이나 고2는 고3 때 특전신청도 가능하냐 등.

    그리고 나에게 직접 와서 물어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쌤 저는 공부법 모르는데…….”

    그렇게 말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 달 정도 시간 있으니 그때까지 구상해. 잘 모르겠으면 멘토링도 받자.”

    그래서 3학년 3반 학력평가 멘토링 시간에 학습법에 대한 걸 알려 주게 되었고, 그 덕분에 생각 이상의 호평을 받았던 것이다.

    공부하는 방향을 전혀 몰랐던 녀석들은 둘의 공부법을 참고해서 학습로드맵을 구상했다. 일정 수준에서 벽에 가로막힌 녀석들은 한계의 벽을 뛰어넘을 방법을 둘의 공부법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 결과, 은솔이의 모의고사 성적이 한층 뛰어올랐다.

    “수학 2등급?”

    다른 교과목 성적도 올랐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4월 학력평가에서 수학이 2등급으로 오른 것이다.

    “엄청 올랐네? 원래 5등급이었잖아.”

    방학 때 열공한 덕분도 있었겠지만, 혼자 연습 삼아 풀었을 때는 3등급이 한계였다. 그랬던 은솔이가 2등급으로 오른 건, 학력평가 막판에 민주, 태웅이의 멘토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웅이가 공식 안 까먹게 정리하는 법 알려 줬거든요, 헤헤.”

    그 덕분에 사소한 계산 실수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게 은솔이의 모의고사 성적을 한층 끌어올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고생했다. 민주랑 태웅이는 어땠냐?”

    “저희는 뭐…….”

    씨익 웃는 태웅이의 옆에서 민주가 가채점을 한 종이를 펼쳤다.

    “미친놈들…….”

    내가 아니라 용희가 중얼거렸다.

    예상 등급은 당연하게도 올 1등급.

    거기에 태웅이는 예상 표준점수와 백분위도 최상위 수준이었다.

    민주는 1등급이기는 했지만, 영어는 턱걸이에 걸쳐 있었다.

    역시, 민주가 서울한국대를 가려면 정시와 수시를 모두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른 학교들 최저는 맞추고도 남겠네.”

    이번 4월 학력평가, 3학년 3반은 전체적으로 성적이 올랐다. 학생들이 내 말에 자극을 받은 것도 있었고, 멘토링이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당분간 모의고사 성적으로 태클 거는 사람들은 없겠군.’

    속으로 피곤할 일 하나 덜었다고 생각하면서 학생들을 돌아봤다. 그러자 녀석들이 자리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내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왜? 물어볼 거 있냐?”

    “아, 아뇨. 그냥, 선배들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좀 알 것 같아서요.”

    “선배들?”

    민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쌤이랑 있으면 되게 신기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고…….”

    “공부만 보는 게 아니라 인생 전체를 바꿔 주신다고도 했고요.”

    민주와 태웅이가 은장이에게 들었다면서 짧게 이야기를 했다.

    “저도 동석 선배한테 들었는데, 쌤이랑 있으면 학교 다니는 게 재밌다고 했어요.”

    “진짜 재밌어?”

    용희가 묻자 은솔이 환하게 웃었다.

    “응! 쌤 아니었으면 급식실 인테리어나 해피플레이스 봉사 같은 거 했겠어? 너희랑도 잘 모르고 지냈을걸?”

    그런 은솔을 보면서 용희가 부럽다는 듯 말했다.

    “왜 나는 이과여 가지고…….”

    “자, 자. 그런 소리들 할 시간 있으면 봉사활동 보고서 후딱 마무리하고, 중간고사 준비나 해. 모의고사 성적이 전부는 아니야. 태웅이 빼고는 전부 내신 상승 필수다!”

    아직 입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마음들이 풀어져 있다니!

    “너희들 이제 긴장감을 좀 갖는 게 좋을 거다. 입시라는 건 말이지, 하루하루 시간을 허투루 사용하면 안 되는, 사실상 최종보스 같은 거야. 하루 10분, 아니 1분도 아껴 가면서 준비해야…….”

    “또 애들한테 설교하고 있어?”

    그때 교실문을 열고 류 선생이 들어왔다. 귀를 막을 준비를 하고 있던 은솔이가 류 선생을 맞이했다.

    “쌤, 안녕하세요!”

    “안녕 은솔아. 잠깐 담임쌤 좀 빌려가도 될까?”

    류 선생은 은솔이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나에게 다가와서는 팔짱을 꼈다.

    “잠깐 나와 봐.”

    “네? 아니, 잠깐만요. 아직 간다고 하지도…….”

    나는 류 선생의 완력에 이끌려 교실 바깥으로 나가게 되었다. 학생들은 끌려나가는 나를 보며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밖으로 나온 나는 류 선생을 노려봤다.

    “무슨 일 있습니까?”

    “민 부장님이 전해달라고 하셨어. 수학여행 때문에.”

    중간고사가 끝나고 2주 뒷면 2학년이 수학여행을 간다. 류 선생은 그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강 선생이 수학여행 일정 준비해 보라고 하더라.”

    “학생들 들으면 안 되니까 내려가서 이야기하시죠.”

    1층으로 내려온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공터로 나갔다. 공터에 도착해서 류 선생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했다.

    류 선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민 부장이 그날 류 선생을 불러서 나에게 수학여행 일정을 준비하도록 전달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사진은 지금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고, 이번 지원비도 모두 학생, 학교를 위해 사용하려 한다고도 말했다.

    “나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어.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게 있었다면…….”

    “눈동자가 불안해 보이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류 선생이 어떻게 알았냐며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관심법도 아니고…… 미래라도 보여?”

    “그냥 그럴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잘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뭘 이런 걸 가지고. 앞으로도 뭐 생기면 자주 알려 줄게! 그러니까, 나 꼭 지켜줘. 알았지?”

    허리를 살짝 숙이고 나에게 부탁을 하는 류 선생을 보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사실 수학여행 일정에 관여하는 건 이미 릴레이 상담 이후 내건 조건 중 하나였기에 민 부장이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굳이 류 선생을 거쳐서 마치 나에게 보고하듯이 한다?

    ‘코스프레가 어설프네.’

    속으로 피식 웃으면서 류 선생에게 말했다.

    “류 선생님은 중간고사 끝나면 정책제안 프로젝트에 집중해 주세요.”

    “정책제안? 그걸 내가 왜?”

    그렇게 묻는 류 선생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조용히 그의 눈을 응시했다. 내 눈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는지 류 선생이 고개를 숙였다.

    “아, 알았어. 할게, 하면 되잖아.”

    “감사합니다, 하하하.”

    누가 들으면 내가 협박이라도 한 줄 알겠네.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준비 좀 해 볼까.”

    류 선생과 헤어진 나는 다시 학교 건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선…….”

    향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우리 공교육의 희망!”

    “왔나! 우리 강문고의 아이콘!”

    여전히 내 얼토당토않은 별명을 부르면서 나를 놀리는 이사장과 교장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사장님, 교장선생님. 수학여행 건으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내 말에 이사장이 자리에 앉은 채 몸을 살짝 기울였다.

    “네, 말씀하세요.”

    “이번 수학여행 일정, 제가 주도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민 부장과 김 부장이랑 같이 합의했던 내용 말하는 거죠?”

    고개를 끄덕이며 이사장의 말이 맞다고 맞장구를 쳐줬다.

    “장소는 학기 초 설문조사로 인해 제주도로 정해졌습니다. 대신 세부 일정은 아직 미정입니다.”

    나는 곧장 수학여행 일정 준비에 핵심이 될 인물들을 여기에 합류시킬 생각이었다.

    “그래서 세부 일정은 제가 추천하는 인원들과 함께 준비하고자 합니다.”

    “그게 누구인가?”

    이사장 대신 강 교장이 물었다.

    이번 수학여행의 핵심은 경필이가 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즉각 대응하는 것.

    그러나 류 선생에게 들은 민 부장의 태도는, 올해 수학여행이 하나의 국면을 더 가지고 올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수학여행에서 깽판 치려고? 그건 안 되지.’

    어설프게 나를 위하는 척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민 부장을 생각하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추천 인원들은 2학년 학생 전교생입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 사항을 학교 전 게시판 및 SNS, 언론에 적극! 홍보했으면 합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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