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DB 확장 준비
급식실 인테리어에 대한 기사가 나가면서 강문고는 한 번 더 언론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게다가 이사진의 반성과 사비로의 지원 기사까지 올라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신 기자가 열을 내면서 나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지만.
[아니, 이게 말이나 돼요? 그 사람들이 무슨 학생들과 학교를 위한다고! 그리고 추 선배가 얼마나 추한 사람인지 알아요? 그 사람 말이죠, 작년에만 사학재단에서 받은 돈이…….]
신 기자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미래교육의 주를 이룰 것이었다.
한 가지 의문은, 신 기자의 활동과 추 기자의 활동을 편집장이 모두 컨펌을 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왜지?’
신 기자와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전생에서의 미래교육은 한 교감과 관련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때문에 미래교육의 어떤 기자와 컨택을 했는지, 편집장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는 알지 못했다.
다만 이번에 천우원 이사의 움직임을 보았을 때, 아마 이사진과 추 기자가 연결이 되어 있고, 한 교감도 이쪽 라인을 잡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할 뿐이었다.
‘아직은 정보가 부족해.’
기회가 될 때 미래교육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알아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출석부를 들었다.
3학년 3반 교실에 들어와서 교탁 앞에 섰다.
“자, 다음 주부터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 돌아온다!”
“망했다…….”
“하나도 안 즐거워요, 쌤…….”
죽기 일보직전이라면서 한숨을 쉬는 녀석들을 향해 소리쳤다.
“고작 학평 하나 가지고 이러면 중간, 기말고사랑 이후 비교과 준비, 논술 준비, 6모, 9모, 수능 준비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정신들 차리고, 이번 시험도 피 터지게 공부해라!”
내 목소리가 쩌렁쩌렁 교실에 울려 퍼졌다.
“이번 학력평가는 수능을 보기 전에 너희들의 위치를 짐작하게 하는 과정이 될 거다. 적어도 0.5등급씩은 올릴 수 있도록 하자. 오민주, 이태웅!”
“네!”
“네, 선생님.”
민주와 태웅이가 번갈아 대답했다.
“오늘부터 학교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 후 종례 직후 10분 동안 3반 학생들 집중 케어 들어간다. 너희 둘이 각각 국어와 수학을 담당해서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하나씩 풀어주고, 해설도 한다.”
“네!?”
“이렇게 갑자기요!?”
“내가 항상 갑자기 시켰지 언제는 여유 있게 시켰냐?”
그 말에 민주가 좀 여유 있게 해 주시라는 뜻인데……. 라며 중얼거렸다. 민주의 말을 무시하고는 내 할 말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런 두 녀석을 보면서 다른 학생들이 키득거렸다. 나는 나머지 학생들을 향해 교탁을 종이몽둥이로 탁탁 쳤다.
“지금 웃는 녀석들, 너희들이 긴장해야 하는 거야. 최저 없는 곳만 골라서 갈 거 아닌 이상, 수능은 필수다. 그리고 혹시나 수시 다 떨어질 수도 있으니 정시도 준비해야지?”
이어진 내 말에 웃고 있던 녀석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학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교탁을 양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최근 몇 주간, 학교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
모두가 그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몇몇은 태웅이와 은솔이를 한 번 쳐다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세상의 모든 눈이 강문고에 집중되어 있다.”
학생들에게 있어 이번 학력평가가 갖는 의미는 중요했다.
각종 사건들이 있었고, 그 사건들을 학생들이 직접 밝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녀석도 있었고, 횡령이 되고 있던 급식실을 바꿔나간 학생들도 있었다.
때문에 세간에서는 강문고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만약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내려가게 되면, 각종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리로 얼룩진 학교, 학생들 학력 수준도 저하>
<학교에 등 돌린 학생들, 공부에도 등 돌렸나>
이런 식의 기사들이 나올 게 뻔하니까.
실제로 전생에서는 비리가 터진 이후 실시된 모의고사 성적이 엉망이어서 비슷한 제목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면 기껏 만들어 둔 이미지가 망가진다.’
나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청렴, 정직의 이미지를 만들어 놓았는데, 비리 잡기에만 급급하다가 학생들의 미래를 책임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평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 녀석들에게 하는 경고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 제대로 한번 보여 주자.”
학생들은 대답 없이 눈만 꿈뻑꿈뻑했다.
“여기 있는 너희들, 강문고의 3학년 3반 학생들이 공부도 잘 하고 비리 척결에도 앞장서고 있다는 걸.”
이전 삶에서 내가 봤던 강문고 학생들 학교 내의 비리가 폭로된 시점에서, 어설픈 정의감을 가지게 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나마 그때는 학생들이 직접 움직이거나, 문제 해결에 앞장선 때가 아니었기에 그런 학생이 많지는 않았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번 생에서는 학생들이 비리를 밝히는 중심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학생들은 알게 모르게 약간의 정의감을 갖추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학교의 비리를 밝히는 정의의 사도가 된 것마냥 말이다.
“결국 너희는 학생이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이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당장 코앞의 너희를 평가하는 건 성적과 대학교 간판이야.”
항상 문제 되는 사항이기는 하지만, 학생들의 미래는 대학교 간판에 의해 많은 사항이 결정된다. 그게 대치동 바닥이면 더더욱.
“그러니 이번 모의고사 확실하게 준비하자. 특히 올해는 수능이 작년보다 쉽게 나올 거야.”
“작년에 너무 어려웠어서요?”
민주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런 것도 있지.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야. 중위권 학생들은 등급 받기가 쉽겠지만, 상위권은 한두 문제 덜 맞춰서 표준점수 목표치 못 맞추거나, 등급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언어는 1등급 컷이 더 올라갈 거야.”
2011학년도 수능에 비해 2012학년도 수능은 난이도 조절에 힘쓰기는 하지만, 그 역시 완벽하지는 않았다. 중위권 학생들이 점수 대비 높은 등급을 받을 수는 있었지만, 상위권 학생들이 목표로 하는 1등급 컷은 더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잘 준비해 보자. 문제 풀다 궁금한 거 있거나 하면 민주, 태웅이한테 물어보고.”
그렇게 올해 4월 학력평가의 목표가 설정되었다.
전체 학생의 등급 향상.
그게 강문고의 이미지와 내 평판을 한층 더 끌어올릴 것이다.
* * *
“수학 특강?”
그날 학교 수업이 끝나고 류 선생에게 연락을 했다. 류 선생은 내 전화를 받은 즉시 내 자리로 달려왔다.
“네. 인문계 학생들 중에 수학을 어려워하는 녀석들이 많습니다. 민주나 태웅이처럼 원체 잘 하는 학생 아니면 힘들거든요. 그리고 3반뿐 아니라 학교 전체 학생들 수준이 올라가는 게 가장 좋습니다.”
내 말에 류 선생이 알겠다고 답했다.
“또 준비할 거 있어?”
“아뇨, 이번 특강만 잘 해 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기말고사 끝나고 시작입니다.”
그리고 나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후 류 선생에게 물었다.
“요즘 그쪽은 어떻습니까?”
“아 그거 말인데……. 민 부장이 좀 이상해.”
아마 이사진에서의 움직임과 관련해서 말하는 것 같았다.
“이사진을 도우면서도 뭔가 불안해하는 것 같달까……. 애매한 모양새야.”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예의주시해 주세요.”
류 선생은 자기만 믿으라며 호언장담하고는 사라졌다.
“요즘 지훈이 장난 아닌데?”
지석 선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선배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선배네 반은 어떤지 물었다.
“우리 반도 모의고사 열심히 준비하라고 일러뒀어. 면학 분위기가 제대로 잡혀야 할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뭔가 나올 겁니다.”
“또 뭘 준비했어요?”
박 선생도 반 학생들에게 이번 학력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나는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을 향해 종이 한 장을 보여주었다.
<나만의 학습법 비밀 노트 박람회>
“이게 뭔데?”
“다음 주 월요일부터 약 두 달간, 수능이나 내신 공부를 하는 자기만의 학습법을 정리해서 제출하면, 거기에서 수상자를 결정하는 대회 같은 박람회를 열 겁니다.”
이번 일은 은솔이와 용희가 혹시나 내신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여는 행사였다.
“이거랑 면학 분위기랑 무슨 연관성이 있나요? 어차피 공부할 애들만 할 거 같은데.”
“아래를 자세히 보시면 됩니다.”
내가 종이의 최하단을 가리키자 지석 선배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상이 있어……?”
“네. 이 학습법 박람회에서 수상하는 학생들에게는 총 장학금 1천만 원이 지급됩니다.”
이 장학금은 이사진에서 지원한 비용 안에서 지급될 예정이었다.
“이렇게 많이 지원해도 되는 거야? 게다가 학교 프로그램 안에서?”
“이번에는 이사진에서 지원해 주니까 괜찮을 겁니다.”
이번 박람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학생들의 내신이 오르지 않아도, 공부에 있어 나름대로의 노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례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또 하나는 학습법 탐구를 준비하면서 학생들이 자기주도학습법을 익힐 수 있다는 점.
“그러니 이 행사가 열린다는 걸 알리고, 학교 특강이나 멘토링 준비를 하면서 비밀 노트 양식을 채우도록 하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분위기는 많이 달라질 겁니다.”
“확실히 그럴 것 같기는 한데…… 애들이 돈 하나 가지고 움직일까?”
지석 선배가 다소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에 내가 씨익 웃으면서 종이를 뒤집었다.
그러자 뒷면에 추가 특전이 적혀 있었다.
<추가 특전: 강문고 입시 일타 강명문의 대입컨설팅 기회 제공(1시간 상당) / 수시 시즌 입시 특강 최우선 신청 자격 부여(인문논술, 수리논술, 자소서 특강, 면접 특강 중 택 2)>
그걸 확인한 박 선생이 잠시간 멍하니 종이를 바라봤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나를 보며 황당한 얼굴을 했다.
“이게…… 특전이에요?”
박 선생이 어이가 없다면서 웃었다. 지석 선배도 헛웃음을 날렸다.
지난 3월, 나는 민 부장과 김 부장의 횡포 아닌 횡포로, 행정일을 떠맡았었다. 그때 릴레이 입시컨설팅을 성공리에 마친 적이 있었다. 거기에 추첨 이벤트로 추가 상담도 해 주었었고.
그날 이후, 학부모들이 학교로 전화를 하기도 했었다.
-강명문 선생님 상담 또 안 열리나요?
홈페이지에도 추가 컨설팅 기회가 없냐는 문의가 많았다.
-강 선생님 반 학생 아니면 상담 못 받습니까?
-우리 아이도 상담 좀 받고 싶습니다!
릴레이 상담을 받은 학부모들은 속이 뻥 뚫린 것 같다면서 학교 측에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한 교감은 이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다.
-강 선생, 한 번 더 열 수 없겠나?
그래서 기왕 열 거, 학생들도 움직이게끔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렇게 박람회 특전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진짜 일타 강사 같다 너…….”
지석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태연하게 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이걸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보여 주는 겁니다. 그리고 수상자 안에 하위권 학생들도 포함시켜서 그 학생들 상담도 해 주는 겁니다.”
“그러면요?”
“우리 강문고가 상위권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강남서초권 학교들의 문제 중 하나는 공부 잘 하는 상위권 학생들에게 집중한다는 점이었다. 전교권 학생에게 수상을 몰아주거나,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열심히 준비해 주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보니 소외된 학생들이 항상 존재했다.
그나마 3학년 3반 학생은 괜찮았다. 나와 상담을 무조건 해야 했으니까.
작년부터 나와 함께 활동했던 박 선생이나 지석 선배네 학급 학생들도 괜찮은 편이었다. 이제는 두 사람도 입시 지식이 풍부해졌으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은 교사들이 여전히 더 많았다. 그렇기에 입시를 모르는 담임을 만난 학생들은 제대로 된 입시상담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앞으로는 생길 수 있는 모든 비판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작년에는 최상위권 학생들 성과에만 집중했었다. 그게 첫 번째로 챙겨야 할 실적이고, 내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평가지표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올해는?
바로 중하위권이나 전문대 진학 사례를 만들어 둘 필요가 있었다.
<성역 없는 상담! 내신 9등급도 강명문을 찾아라!>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야, 추후에 이사진으로부터의 공격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명문대 갈 학생 아니면 관심도 없는 교사’라며 공격할 게 뻔하다.
“즉, 이번 행사는 다른 고1~고3 학생들 중 보석을 발굴해 내기 위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는 녀석들. 점수는 얼추 나오는 듯하지만, 일정 점수에서 벽에 가로막힌 녀석들. 공부를 하고는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녀석들.
그런 다양한 성격의 학생들을 이번 대회를 통해 만날 생각이었다.
“올해는 지방 4년제나 전문대도 가기 힘든 학생들 좀 만나봐야죠.”
이 박람회의 마지막 세 번째 소득.
바로 합격자 DB 확장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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