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58화 (158/252)
  • 158화. 지원의 방식

    며칠 뒤, 급식실 인테리어가 바뀌었다.

    “대박. 봤어?”

    “응 봤어. 카페처럼 됐던데?”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급식실 문 앞에서 서성였다. 민주와 태웅도 급식실에 들어가서는 입을 떡 벌리고만 있었다.

    “어때! 나와 용희의 야심작!”

    그런 친구들 앞으로 은솔이 다가와 허리춤에 손을 얹고 어깨를 한껏 올렸다. 그 당당하면서도 귀여운 모습에 두 친구들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별로야?”

    “아니, 진짜 잘 바꿔서 그런 거야. 어떻게 된 거야?”

    “헤헤, 실은…….”

    은솔은 급식비 횡령 비리가 밝혀진 직후 담임인 강명문과 상담을 했다.

    -급식비 횡령으로 급식 메뉴 선정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그것만으로 끝나면 안 돼.

    -그럼요?

    -급식실 자체를 바꿔 봐.

    담임의 말에 은솔은 급식실 인테리어에 대해서 생각했다.

    -용희랑 같이 이야기해 봐도 좋고. 실내 자재들 교체 비용은 이사장님이 지원해 주실 거야.

    그 말에 은솔은 곧장 용희에게 연락을 했다. 용희는 인테리어 관련 상식을 뽐내면서 은솔과 급식실 내부 인테리어 작업에 들어갔다.

    “공사까지 할 수는 없어서, 전체적인 분위기만 바꿀 수 있도록 가구들 바꾸고, 커튼 바꾸는 정도만 했어.”

    “그래도 많이 바뀌었지?”

    은솔의 설명과 함께 용희가 급식실 안으로 들어왔다.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오는 용희의 모습이, 급식실 변화에 만족하는 듯해 보였다.

    “아예 각 잡고 싹 다 바꿀 수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만족하는 용희에 비해 은솔은 여전히 아쉬운 표정이었다. 은솔이 생각할 때 급식실의 카페화가 완성되려면 아직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식탁, 의자는 밝은 파스텔톤으로 바꾸었고, 검은색 커튼은 하얀색으로 변경했다. 각진 네모난 모양의 식탁만 두지 않고 둥근 테이블을 설치하기도 했다. 테이블 사이사이에는 노랑과 하늘색으로 가벽을 설치했는데, 그 두께가 얇아서 공간을 살짝 분리해 놓는 정도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은솔은 마음 같아서는 페인트칠도 다시 하고, 바닥 타일도 싹 다 바꾸고 싶었다. 급식 메뉴에도 분식을 추가해서 간단한 음식 정도는 방과 후에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기에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다.

    “쌤도 좀 아쉽지 않으세요?”

    급식실을 구경하러 온 박은환을 보며 은솔이 물었다.

    “이 정도면 잘 됐는데? 나는 괜찮은 것 같아. 그런데 이거 자소서에 어떻게 쓰려고?”

    박은환의 물음에 은솔이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 했던 일들은 용희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었다. 건축과 실내인테리어. 엮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음…… 그러게요.”

    “뭐가 그러게요, 야. 이렇게 카페식으로 바꾸니까 학생들의 만족도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조사하고, 실제로 식당이나 카페를 만들 때 인테리어가 고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면 되잖아. 가벼운 설문조사 만들어서 진행하고. 혼자 하기 어려우면 민주랑 같이 해. 민주도 경영학과 지망하니까.”

    어디선가 익숙한 설명이 옆에서 들려왔다.

    “쌤!”

    강명문이 종이몽둥이를 들고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급식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민주도 들었지?”

    “네, 네!”

    “관건은 설문조사야. 친구들, 후배들 눈빛 달라진 거 보이냐?”

    강명문이 주변에 모여 있는 학생들을 가리켰다. 확실히, 이전에는 급식실을 빨리 밥 먹고 일어나는 자리라고 여긴 학생들이, 이제는 눈을 빛내고 있었다.

    “혹시 밥 다 먹고 나서 써도 되나요?”

    “그럼. 점심시간에 공부하다가 가도 돼.”

    “카페처럼요?”

    “응. 방과 후에도 독서실처럼 써도 괜찮아.”

    박은환이 학생들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강명문은 그런 학생들을 보면서 은솔에게 말했다.

    “봤지? 벌써부터 반응이 오잖아. 설문조사 하고 내용 분석해서 보고서 제출해. 그러면 학생부에 기재해 줄 테니까.”

    은솔과 민주는 어느새 수첩을 들고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은솔은 친구들의 반응도 놓치지 않으면서 시장조사를 했고, 민주는 친구들의 질문을 토대로 효과적인 설문을 만들었다.

    “용희는 자소서에 활용하기에는 쉽지 않을 거야. 대신, 퓨전한옥전문이라는 컨셉을 생각하면서 한옥 내부를 이렇게 카페처럼 꾸미는 걸 고민해 봤다는 정도로 활동 소감문 작성해서 제출해라.”

    “네! 알겠습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친구들을 보면서 태웅이 살짝 부러워했다. 강명문은 그런 태웅의 태도를 놓치지 않았다.

    “태웅이는 은솔이랑 민주가 설문조사하면 인터뷰 좀 해 줘.”

    “인터뷰요?”

    “그래. <전교권 학생들도 만족한 교내 카페> 라는 타이틀을 만들 수도 있잖아?”

    강명문이 장난스럽게 웃자 태웅이 기분 좋게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네!”

    그렇게 학생들은 각자 맡은 역할들을 하나하나 수행해 갔다. 다른 학생들은 급식실 의자에 앉아도 보고, 괜히 들고 온 교과서를 펼치면서 책을 읽는 척해 보기도 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박은환이 생각했다.

    ‘신기한 사람이야.’

    지금까지 강명문이 보여 준 모습들.

    작년에는 동석, 은장의 발굴. 정석과 명천의 변화. 태성, 정아의 목표대 합격 등을 비롯한 여러 학생들의 합격.

    올해는 민주, 은솔, 용희의 수시 준비. 봉사단체를 활용한 활동. 사고가 날 것을 예측하고 태웅에게 친구를 만들어 준 일. 내신 조작 비리를 밝히고 급식비 횡령 문제 공론화.

    ‘어떻게 이렇게까지 가능하지?’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아니, 작년 5월부터라 생각하면 이제 막 1년이 될까말까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뭘 숨기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강명문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강명문이 고개를 돌렸다.

    “왜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저한테서 빛이 나는 게 느껴지시나 보네요.”

    “빛이 아니라 저한테 빚만 지시는 거 같은데요?”

    강명문은 급식비 횡령과 내신 조작 사건에 박은환의 아버지가 힘을 써준 일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녀의 빽이 없었다면, 이렇게 빠른 수사가 진행되지는 않았을 터였다.

    “빚은…… 지기는 했네요. 네.”

    “갚으셔야죠?”

    “어떻게 갚을까요?”

    평소처럼 농을 주고받으면서 박은환이 말했다.

    “제가 궁금해하는 거 하나만 알려 주세요.”

    “여자친구라면 없고, 소개팅도 없고요. 자산이라면 애들 입시 도와준다고 올 초에 받은 인센티브도 다 까먹었고, 주식도 없고, 집도 없으며 부모님도…….”

    “그런 거 궁금한 게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다른 거 물어볼 거예요.”

    강명문이 박은환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떤 거 물어보시려고요?”

    “지금은 말고요. 나중에 물어볼게요. 그때까지는 마일리지처럼 빚 적립만 계속 해갈 거예요.”

    “추가 적립은 없을 겁니다.”

    그가 걱정할 것 없다며 말했다. 박은환은 그럴 리가 없다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모른 척하고, 강명문은 은솔과 용희를 향해 말했다.

    “도착하셨다고 하니까 준비해라.”

    “네? 누가요?”

    “미래교육 신미나 기자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급식실 문으로 키가 작고 귀여운 인상의 여성이 급히 들어왔다.

    “강 선생님!”

    신미나는 급식실에 들어오자마자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걸 이사장님이 지원하셨다는 거죠?”

    “맞습니다.”

    “인테리어는 학생들이 했고요?”

    “그렇죠.”

    강명문은 인테리어에 힘쓴 은솔과 용희를 신미나에게 소개했다. 신미나는 신이 나서 학생들에게 카페형으로 인테리어를 바꾸게 된 계기를 물었고, 주변에 있는 학생들을 가볍게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걸로 소재 하나씩은 챙겼네.’

    급식실에서 기뻐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강명문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 *

    “강문고 이사진의 사비 지원. 자세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급식실 변화로 시끄러운 그 시각, 강은숙 이사장은 천우원 이사와 만나고 있었다.

    천우원은 이사진에서 강문고의 발전을 위해 개인 사비로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면서 각자 1억씩, 강은숙 이사장이 1억.

    이사진에서 퇴진된 조신자를 제외하고 4인의 이사와 이사장 1인으로, 총 5억을 우수 학생 장학금과 학교 시설 업그레이드에 쓰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천우원 이사뿐 아니라 미래교육의 추자인 기자도 자리해 있었다.

    “저희 강문고 이사진은 지금까지 학생과 학교의 발전을 위해 힘써 왔습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부에서 그런 부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학교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도 있었기에, 이번 지원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천우원은 준비한 멘트를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이사장님과 이사님들 모두가 함께 결정하신 사안이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항상 학생들만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러니 이런 일들이 발생했을 때 크게 상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안을 결정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원금은 어디에 쓰일 예정인가요?”

    “책걸상 교체나 교실 내부 커튼 교체 등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추자인은 천우원의 말을 녹음과 함께 중요 내용은 펼쳐 둔 노트북에 빠르게 정리했다.

    그렇게 몇 번의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삼십여 분쯤 더 지나자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그럼 기사 잘 좀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편집장님도 컨펌 주셨으니 오늘내일 중으로 올라갈 겁니다.”

    추자인이 노트북을 챙기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천우원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살짝 고개를 움직였다.

    그렇게 사무실을 나가는 추자인을 바라본 강은숙 이사장은 천우원을 향해 물었다.

    “갑자기 무슨 꿍꿍이죠?”

    이사장의 물음에 천우원이 순진한 척 웃음을 지었다.

    “왜? 우리 항상 이렇게 해 오지 않았나?”

    “지난번 조신자와 함께 왔을 때는 그렇지 않았으니 그렇죠. 그리고 지금까지 보여 준 이사님들의 행동…….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네요.”

    조신자 이사가 강명문을 공격하러 왔을 때, 곽형조와 천우원은 조신자의 공격이 내심 통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신자는 이사진에서 퇴진하게 되었다.

    급식비 횡령 문제나 내신 조작 역시 한무회 이사가 주도했지만, 천우원과 주현서, 곽형조가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이사장의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게, 한무회의 주치의의 아들을 행정실장에 앉히기 위해 이사진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이익의 일부를 본인들이 챙길 준비도 해두었을 것이었고 말이다.

    “그렇게 움직이던 분들이 갑자기 이러니까 저로서는 적응이 안 되네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우리도 신자랑 무회 일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으니까. 게다가 강문고의 이미지도 있지 않나. 이렇게 학교를 바꿔나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줘야 내년에도, 10년 후에도 학교를 유지할 수 있지 않겠어?”

    천우원의 말처럼 지금은 학교 이미지를 바꾸는 일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러한 이사진의 지원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사장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정말 학생들을 위해 움직이실 생각이 있는 거죠?”

    “당연하지. 이번 지원은 그 시작이 될 거야. 은숙이도 신자랑 무회 일 때문에 기분 상한 거는 알아.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변화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알아 줬으면 하는데. 어려우려나?”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천우원을 향해 이사장은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들이 정말 학교를 위하는 일이라면서 미래교육에도 이 일을 알렸고, 실제로 돈을 지원하기도 했다.

    ‘정말로 바뀐 건가?’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 이사장은 알겠다고 답했다.

    “대신, 또 이상한 건이 생기면 그때는 정말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안 그런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존처럼 입시에 힘써 줘. 조심히 들어가고.”

    천우원의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이사장은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가장 믿음직한 사람의 번호를 눌렀다.

    “강 선생님, 저예요.”

    이사장은 방금 전 있었던 일을 강명문에게 이야기했다. 최대한 상세하게, 인터뷰 현장에서 어떤 이야기가 돌았는지까지 모두.

    이야기를 모두 들은 강명문이 큭큭, 웃기 시작했다.

    [이사장님, 기회입니다.]

    “네?”

    [그 사람들, 지원금을 커튼 교체나 책걸상 교체 같은 걸로 말하지는 않았습니까?]

    강명문의 말을 들은 이사장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변함이 없네요.]

    황당하다며 헛웃음을 지은 강명문은 조용히 핸드폰 너머로 속삭였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놔둬 보죠. 아직은 숙성시킬 단계입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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