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57화 (157/252)
  • 157화. 선전포고

    홍 선생도 이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면서 그게 무슨 프로젝트인지를 물었다.

    “아마 내일이나 다음 주 월요일 정도에는 공지가 나올 겁니다.”

    “언제 열리나요?”

    “5월 6일입니다. 이사장님이 이번 태웅이 사건이랑 급식 비리, 내신 조작 문제를 보면서 우리 학교가 전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추진하신 겁니다.”

    내 말에 홍 선생과 경필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사장님이요?”

    “네. 직접 저에게 지시 내리셨거든요.”

    태연하게 답한 나는 경필이에게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필이 너의 문제점은 항상 네가 정의로운 일을 혼자 다 하려고 한다는 거야.”

    “헛,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 정의감은….”

    “네 정의론은 듣고 싶지 않고. 아무튼, 그게 문제야.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혼자만의 정의감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경필이가 놓치고 있는 지점. 그리고 내가 녀석에게 청소동아리를 추천한 이유.

    정의감을 표출하기에 좋기도 했지만, 또 하나는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의 적절한 정책들을 고민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학교에서 하면 좋을 정책들을 준비해 봐. 이게 경찰행정학과 입시에서도 도움이 된다.”

    민주, 은솔이, 용희, 태웅이의 입시 준비 방향 중 당장 고려해야 할 사항은 이번 중간고사 시험 결과였다. 그리고 그 세팅은 태웅이의 합류로 인해 더욱 단단해졌다.

    그럼 남은 건, 내년 입시를 준비하는 2학년 학생 중 요주의 인물인 경필이를 챙겨야 했다.

    “면접에서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물어볼 때, 이번 프로젝트 이야기를 활용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학교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교실 게시판에 붙여질 공지문, 가정통신문이 나왔다. 학생들은 공지문을 보면서 생각지도 못한 참가 대상에 놀랐다. 교사들은 전혀 계획에 없던 일정에 놀랐다.

    오직 나만 게시판에 붙은 공지문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

    <강문고 바른 학교 만들기 정책 제안 프로젝트!>

    일시:

    1차: 2011년 5월 6일 금요일 15:30~17:00

    2차: 2011년 5월 6일 금요일 17:30~19:00

    대상:

    1차: 강문고 전 학년 학생 및 학부모

    2차: 강문고 전 학년 교사, 행정직원 등 모든 구성원

    제출 방법: 자유양식으로 이사장 개인 이메일로 제출 또는 대면 제출

    [email protected]

    문의:

    강은숙 이사장

    국어교사 강명문(3학년 3반 담임)

    ※팀, 개인 모두 상관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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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니, 이사장님. 1차, 2차 나눈다는 말은 안 했잖아요.”

    나는 이사장실을 찾아가서 이사장이 내려준 녹차를 마셨다. 약간 투덜대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사실 이사장이 두 번으로 회차를 나눈 이유는 내 의견 때문이기도 했다.

    -교사들 개인의 역량을 확인해야 합니다.

    내 의견에 맞춰 공지를 올린 거기는 하지만, 나는 굳이 이사장실을 찾아가서 그녀에게 따지듯 말하고 있었다.

    옆에 한 교감이 불안한 듯 찻잔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이사장의 회의 내용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야 미리 알려 두면, 다른 선생님들의 반응이 뜨거울 것 같았으니까요.”

    이사장도 내 의도를 알고 있는지 빙긋 웃으면서 녹차를 호로록 마셨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가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무엇을….”

    이사장의 질문을 받은 한 교감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이사장이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강문고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들이 누구인지, 학생들과 학교를 위할 수 있는 직원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겁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곧 강 선생님에게 연락도 올 거예요.”

    “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미래교육 신미나 기자 문자였다.

    “언론에도 이미 알렸어요. 자세한 사항은 강 선생님과 말씀 나누시라고 했고요.”

    이사장은 이 정도는 예상했지 않나요? 라며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며 남은 녹차를 털어 넣었다.

    ‘언론에도 강문고의 노력을 보여 주고자 하는군.’

    게다가 이번 프로젝트는 이사진들도 딱히 반박을 걸거나 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어찌 되었든, 강문고의 이미지 쇄신은 필요했으니까.

    ‘그래야 피 빨아 먹을 학교를 유지할 수 있을 거고.’

    나는 이사장의 말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신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신 기자님? 전화 인터뷰 필요하시다고….”

    [아, 그렇지 않아도 그거 말인데요, 선생님!]

    신 기자가 신이 난다는 듯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장님도 인터뷰하고 싶어요! 직접 가서요!]

    “…사진도 찍으실 건가요?”

    [당연하죠! 저희 편집장님도 허락하셨어요! 학생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이어 나간다! 화제의 고등학교 강문고 이사장님 전격 인터뷰! 라는 식으로요!]

    신 기자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이사장이 이번 인터뷰를 응한다면, 분명 이사진들을 향한 경고의 의미로도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와 학생을 생각하지 않는 인원들을 찾아내겠다는 경고로 말이다.

    “이사장님, 진짜 헤어랑 메이크업 하고 오셔야겠네요.”

    급식비 횡령 사건 때 이사장에게 말했던 걸 떠올리면서 이사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사장이 내 말을 듣더니 씨익 웃었다.

    “헤어라도 하게 인터뷰는 내일하면 어떨까요?”

    * * *

    다음 날, 이사장은 정말 헤어를 하고 와서 신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메이크업은 안 하셨네요?”

    “그것까지는 생각 없어서요. 그래도 머리는 예쁘게 됐요?”

    이사장이 넉살 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신 기자도 나와 이사장의 말을 들으면서 깔깔 웃었다.

    “그럼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인터뷰는 순조로웠다. 나에게 이번 프로젝트의 진행 방향에 대해 물었고, 거기에 답했다. 이사장에게는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고, 이사장이 그에 답했다.

    이런 식으로 준비된 질문들을 해가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점이 되었다.

    “이제 질문 두 개만 더 하고 끝내겠습니다! 최근 강문고에 사건사고가 많았는데, 이번 프로젝트 이외에 또 다른 혁신을 보여 주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그 말에 내가 이사장을 바라봤다. 이사장은 나에게 말하라며 손짓을 했다.

    “조만간 올 1학기 첫 번째 혁신이 나타날 겁니다.”

    “첫 번째 혁신이라 함은…?”

    “학생들 모두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바뀔 겁니다.”

    신 기자는 공용으로 사용하는 곳이 어디인지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수께끼 같았는지 나에게 몇 가지 힌트를 더 달라고 말했다.

    “지금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대신 오픈일 되면 기자님한테 제일 먼저 연락드릴게요.”

    그 말에 신 기자가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열심히 했다.

    “아싸! 감사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 해 주실래요?”

    내 말에 신 기자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나와 이사장을 돌아봤다.

    “마지막으로, 두 분의 목표를 알려 주시겠어요? 먼저 이사장님부터!”

    이사장은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저는 강문고등학교 이사장으로서 학생과 학교를 위하는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겁니다. 학생에게는 꾸준한 기회를 만들어 주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신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열심히 메모를 했다.

    “그리고 학교 교직원은 물론이고 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일원들 모두가 학생과 학교를 위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사장이 잠시 숨을 고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급식비 문제나 내신 조작처럼, 학생과 학교에 해를 가하는 사람이 있는지 학교 차원에서 조사하고 모든 일을 밝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부정한 일들에 관련된 관계자들은 철저하게 처벌하겠습니다.”

    그건, 강문고 이사진들을 비롯한 부정 청탁을 꾸준히 받아왔던 강문고 교사들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신 기자 역시 그 의도를 눈치챘는지 두 눈동자를 크게 뜬 채 나와 이사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사장님, 이거….”

    “쓰셔도 됩니다. 뭣하면 메인 제목으로 쓰셔도 괜찮습니다.”

    이번 기사는 오늘 내일 중으로 인터넷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게다가 강문고는 최근 가장 핫한 학교였다. 어지간한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으로 등록될 가능성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장은 모든 일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아마 당장은 무언가를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이사진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시점에서 활발히 움직일 생각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이사장이 자신의 힘을 키우기 좋은 시점이기도 했다.

    “강 선생님도 그 활동에 참여하시는 거죠?”

    과거와 달라진 현재. 달라진 이사장의 태도. 여러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등장. 이사장의 지원과 그녀의 인맥. 계속 상승해져만 가는 내 평판.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약 이사장이 지금처럼 세력을 키우기 위해 움직인다면, 언론의 힘은 필수적이었다.

    “물론이죠. 그런데 기자님.”

    다른 누구도 아닌, 강문고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언론인. 풍파에 찌들지 않고,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 스마트폰 사용에도 익숙하고, SNS나 너튜브 활용에도 능숙한 기자.

    “기자님도 함께하시면 좋겠습니다.”

    때문에 신입기자 신미나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당연히 부담된다면 빠지셔도….”

    “당연히 해야죠!!!”

    내 말을 끊으면서 신 기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거지! 이게 바로 언론이지! 진정한 언론인! 진실을 찾는 언론인! 그게 바로 제가 꿈꾸던 이상적인 언론인입니다! 제가 그 꿈을 교육언론에서 하게 될 줄이야! 꺄아악!!”

    신이 나서 허공에 주먹질을 마구 해대는 신 기자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혹시나 거절하면 어떡하나 잠깐 걱정하기는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제가 오늘 인터뷰 기사부터 제대로 뽑아 볼게요! 나중에 강 선생님 팀에서 저 빼먹으면 안 돼요!”

    “제 팀이 아니라 이사장님….”

    “저도 강 선생님 팀원이니까 꼭 저 자주 불러 주세요, 호호호.”

    이사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나를 놀려댔다. 나는 둘을 보면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 * *

    다음 날, 아침 뉴스를 신미나 기자의 기사가 가득 메웠다.

    <강문고 이사장, 공교육의 희망 강명문 교사와 비리와의 전면전쟁 선포!?>

    그 기사를 핸드폰으로 확인하고 있던 한무회가 이빨을 뿌득 갈았다.

    “강은숙….”

    한무회는 최근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떠올렸다. 어떻게든 급식비 횡령 문제는 참고인 정도의 조사로만 끝낼 수 있었다. 어쨌든 주범은 급식업체 직원들과 행정실장으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강명문과 강은숙이 생각한 건 자신의 구속이 아니었다.

    “…나를 갖고 놀아?”

    오히려 구속되지 않는 걸 원했다는 듯 강명문은 그 이후로 더 활개 치고 다녔다. 이제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학생을 구하면서 공교육의 희망이니, 아이콘이니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게다가 강은숙 이사장은 인터뷰에서 강명문과 함께 비리와의 전면전쟁을 선전포고했다.

    인터넷 댓글창도 난리였다.

    - 비리척결하냐 이제!

    - 근데 또 막히는 거 아님?

    - 그래도 저 선생이면 믿을만 함. 진짜 열심히 사심.

    - 내가 다닐 때도 저 선생님 열정과다였다.

    └ 어떤 쌤이었음? 자세히 설명 좀.

    └ 그런 걸 믿냐. 얘 강문고 안 다녔다에 한표.

    - 우리 학교도 저런 선생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비리 엄청 많을 거 같은데.

    열을 내며 댓글을 확인하던 한무회를 향해 천우원이 말했다.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인 줄 알아.”

    “하지만….”

    “형조 형님 말씀 못 들었어? 당분간은 근신이야.”

    그 말을 들으며 한무회는 속으로 화를 삼켰다.

    “그래도 이렇게 끝나는 건 억울하지.”

    천우원의 옆에서 커피에 설탕을 타던 주현서가 말했다.

    “들어보니 강명문이 상담할 때 자주 강조하는 말이 있다더군.”

    “어떤 말입니까?”

    천우원이 묻자 주현서는 설탕을 탄 커피를 커피스푼으로 휘휘 저었다.

    “코스프레.”

    “코…스프레…?”

    한무회가 그 뜻을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쉽게 말하면, 가면 쓰고 연극하라는 거야. 부모가 원하는 대로 공부하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원하는 학교, 학과 넣으라고.”

    주현서의 설명을 들은 천우원이 손뼉을 쳤다.

    “설마 형님도 이걸…?”

    “그래. 강명문은 우리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처럼 가면을 쓰고 다녔어. 그러다가 최근에야 이렇게 움직였지.”

    주현서는 잔에 담긴 커피를 바라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우리도 가면을 쓰도록 하지. 청렴결백한 가치관을 지닌, 강문고등학교 이사진으로 말이야.”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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