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56화 (156/252)
  • 156화. 결정

    태웅의 어머니 윤지영은 태웅의 사건이 있던 당일, 태웅을 찾았었다.

    “아들!!!!”

    학교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윤지영은 태웅을 둘러싸고 있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이 우리 태웅이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십시오. 우리가 태웅이한테 뭘 했는지.”

    태웅의 담임인 강명문이 두 눈을 부릅뜨고 윤지영을 노려봤다. 그녀는 그런 강명문을 보며 흠칫 놀랐다.

    “오늘 있었던 일들, 태웅이에게 전부 들으셔야 할 겁니다. 기사로 보는 게 아니라, 아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유미나 유미 어머니를 공격할 게 아니라, 태웅이가 생각하는 바를 찾아보세요. 그게 지금 학부모회장님이 하실 일입니다.”

    그 말을 들은 윤지영이 뭐라 답하려 했다. 그러나 아들 태웅의 만류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 이틀이 지날 때까지 태웅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여전히 아들은 열심히 공부를 했고, 중간고사 대비 및 수능 대비를 했다. 학원을 다녔고, 과외를 받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태웅의 눈빛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러나 그녀는 태웅에게 선뜻 말을 건네지 못했다. 학원을 데려다주는 사이에도 형식적인 대화만 오갔다.

    “아들, 어제…….”

    “엄마, 나 공부해야 해. 나중에 이야기해.”

    무언가 꺼내려 해도 아들 태웅은 전에 없는 냉정한 말투로 이야기를 피할 뿐이었다.

    다른 주제를 꺼내 볼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태웅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부터 그녀와 태웅의 대화소재는 오로지 공부와 입시뿐이었다.

    과연 그걸 빼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태웅의 어머니 윤지영은 두려웠다.

    만약 아들과 다른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면 어떡하지?

    공부와 입시가 아니라면, 아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면서 십 년, 이십 년을 살아야 하지?

    그런 두려움이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엄마.”

    그러다 태웅의 사건 발생으로부터 사흘 뒤, 태웅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반가운 마음에 황급히 답했다.

    “으, 응! 아들, 왜?”

    “나 과외 그만둘래.”

    갑작스러운 과외 중단 선언. 그녀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대치동 일타강사 그룹과외를 형성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 덕분에 생긴 태웅의 결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너투스 선생님?”

    “응. 그거 불법과외인 거 알아 엄마.”

    윤지영은 숨을 삼켰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태웅도 그게 불법과외인 걸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이제 그런 과외는 안 할래.”

    “……유미 때문이니?”

    그 말에 태웅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엄마는 아직도 유미 타령해?”

    “그 기지배 때문에 아들이 그 꼴을 당했는데 안 그러게 생겼어?”

    태웅은 윤지영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 눈동자를 마주한 윤지영은 아들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왜 그거밖에 생각 안 해?’

    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엄마.”

    “……응.”

    “나, 그날 담임쌤이랑 이야기 나눴어.”

    옥상 펜스에 몸을 걸치고 담임인 강명문과 나누었던 이야기는 기사로도 많이 다뤄져서 유명하다. 강명문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 했지만, 태웅이 먼저 나서서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다고 인터뷰를 했다.

    그래서 윤지영도 그 스토리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나도 기사로 봤어.”

    “인터뷰에서는 말하지 않은 게 있어.”

    태웅은 어머니를 향해 강명문이 자신을 설득할 때 했던 말을 알려 주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만 하고, 무리해서 이해하려고만 하는 순간 스스로를 버리게 된다.”

    “!!”

    “그리고 부모와 소꿉친구는 너를 이해해 주지 않는데 왜 너는 양보만 하고 살았냐.”

    윤지영은 아들 태웅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생각했을 때도 태웅은 지금까지 자신이 알려 주는 스케쥴에 맞춰 공부했고, 다니라는 학원들을 다녔다. 불법임에도 고액과외를 잡아두면 군말 없이 따라다녔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생활패턴도 분 단위로 쪼개서 나누어 생활했다.

    모두 자신이 아들에게 강요한 일이었다.

    “하, 하지만 아들……. 그건 너도 좋아서 했던 거잖아? 그 덕분에 성적 많이 올랐다고…….”

    “응……. 그렇게 생각했었어. 그런데 유미가 나한테 하는 행동들, 말들 때문에 극한으로 내몰렸어. 담임쌤이 내가 그렇게 된 이유를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해서 그렇대.”

    태웅의 말에 윤지영의 가슴 한켠이 쓰려왔다.

    “엄마는 친구가 필요없다고 했잖아.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옥상에서 그렇게 펜스를 잡고 있는데, 친구들 보니까 마음이 이상해지더라.”

    “…….”

    “그러더니 담임쌤은 친구들한테도 책임을 돌리래. 진짜 웃기지? 내가 잘못한 거라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쌤은 널 지금까지 제대로 봐주지 않은 친구들 탓으로도 좀 넘기라고 말하더라고. 그것도 친구들 있는 앞에서. 그런 말이 어딨어? 나도 어이가 없어서 살짝 웃었다니까.”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는 태웅의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밝아 보였다. 자신이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아니면 큰 사고를 일으킬 뻔한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태웅의 얼굴은 오히려 홀가분해 보였다.

    “이게, 내가 옥상 너머로 발을 넘기지 않게 된 이유야.”

    “…….”

    여전히 윤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까지 엄마랑 아빠 말만 듣고 공부했어. 그리고 성적도 높았고. 그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고맙고. 그런데 엄마.”

    태웅은 오래도록 고민한 사항이라면서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나 이제는 부끄럽지 않게 공부하고 싶어. 대치동에서 산다고 고액 과외 받는 게 아니라, 진짜 내 실력만으로 공부하고 싶어.”

    “……그랬다가 서울한국대 떨어지면?”

    “떨어지면 그게 내 한계인 거야. 오히려 어설프게 들어갔다가 학점 망가지면 그게 더 힘들지 않겠어?”

    “학점이 뭐가 중요해. 어차피 아빠 회사 이을 거면…….”

    어머니의 말에 태웅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 나 아빠 회사 안 이을 거야.”

    “뭐……?”

    “나 일본어 공부할 거야.”

    그 말에 윤지영이 숨을 한껏 들이쉬고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응. 나 일본어 공부해서 문화콘텐츠 전문가가 될 거야. 예전부터 한류가 유행이었잖아? 한류 전문가가 되는 것도 좋고, 아시아지역 콘텐츠 전문가도 좋아.”

    “하지만 경영학 공부는…….”

    태웅은 어머니의 반응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어머니는 아직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구나.

    그렇다면, 담임의 말대로 지금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령, 나중에 학과를 속여서 지원을 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밝혀야 한다.

    그게 지금 태웅이 다짐한 사항이었다.

    “경영 공부는 나중에 필요하면 할 수도 있지만, 아빠 회사를 물려받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

    “…….”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공부하고, 도전해 볼게. 안 되면 내년에 나도 성인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아르바이트를 하든, 군대를 바로 가든 내 앞길 내가 준비해 볼게. 그러니까 엄마.”

    고개를 숙인 윤지영에게 태웅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힘차게 말했다.

    “이번 입시, 나한테 맡겨 주면 안 될까? 학원, 과외 다 끊고, 부끄럽지 않게 공부해 보고 싶어.”

    윤지영은 태웅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아들의 말을 들어주는 게 맞을까? 혹시 청소년기 학생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자기확신에 찬 그런 말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걸 허락하게 되었을 때, 대학도 서울한국대는 커녕 연천대나 고구려대도 못 가는 거 아닐까.

    그런 여러 생각들이 얼기설기 얽혔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답을 내지 못했다.

    “며칠만…… 생각해 보자.”

    “아니, 지금 바로 결정해 줘.”

    아들의 당돌한 말에 윤지영의 눈이 커졌다.

    “차일피일 미루고 싶지 않아. 올해 입시잖아. 지금 바로 결정해 줘.”

    태웅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다.

    한 치의 거짓이나 두려움이 없는 당당한 눈빛.

    윤지영은 아들의 그런 눈빛을 생전 처음봤다. 그렇기에 지금 모습이 당혹스러웠고, 이런 상황이 어색했다.

    “엄마.”

    윤지영은 수분간 말을 하지 못했다. 태웅은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고민을 끝낸 윤지영이 입을 열었다.

    * * *

    “그래서 다 때려친 거야?”

    “네! 오늘부터는 자유롭게 공부할 생각입니다!”

    태웅은 전에 없이 밝은 모습으로 학교에 와서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 녀석의 얼굴을 보면서 웃었다.

    “그걸 뭘 결정을 받고 그러냐? 그냥 때려치면 될 것을.”

    옆에서 듣고 있던 용희가 답답하다면서 가슴을 퍽퍽 쳤다.

    “어…… 그래도 엄만데 의견 결정은 같이 해야…….”

    “너도 어지간하다 진짜.”

    용희가 한숨을 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은솔이가 나무랐다.

    “태웅이가 너무 착해서 그래.”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발전한 거 아냐?”

    민주의 말에 태웅이가 헤헤, 웃으며 고개를 긁적였다.

    “그럼 오늘부터는 친구들 멘토링하면서 공부하도록 하자.”

    “네. 누구 가르쳐 주면 되나요?”

    나는 조용히 은솔이와 용희를 가리켰다. 이번 시험에서 내신 성적이 반드시 올라야 하는 녀석들이었다.

    “민주가 가르쳐 주고는 있는데, 그래도 혼자서 둘을 다 커버하기는 쉽지 않아. 과목도 한두 개가 아니고.”

    용희와 은솔이는 이번 시험에서 반드시 내신이 올라야 했다. 특히 은솔이의 경우에는 작년까지의 내신이 중위권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1등급 후반 수준까지는 끌어올려야 했다.

    “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해 보겠습니다!”

    태웅이의 말을 들은 은솔이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그럼 성적 올릴 수 없다는 거야?”

    “어, 어, 아니 그건 아니고…… 쉽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있다는…….”

    “그니까 그게 그거 아니냐고!”

    토라지는 은솔이에게 태웅이가 쩔쩔매며 변명을 했다. 그런 둘의 모습과 달리 나는 은솔이와 용희의 성적 향상을 기대하며 몸을 일으켰다.

    * * *

    방과 후, 나는 홍 선생과 경필이를 보러 2학년 교실로 향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하교한 교실에는 홍 선생과 경필이 두 사람만 남아 있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갑작스러운 경필이의 경례를 받으면서 나는 심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태웅 선배님을 구하신 그 배포! 그 기개! 경찰을 희망하는 저의 롤모델이나 다름없으십니다!”

    거기에 롤모델 고백까지.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면서 헛소리 그만하라고 말했다.

    “됐고, 청소동아리 오늘부터 시작이잖아. 첫 장소 정했어?”

    “네! 도서관부터 하려 합니다!”

    경필이는 부원들이 30분 이내로 모이기로 했다면서 가슴을 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그런데……. 선도부에서 이런 걸 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태웅이 사건처럼 뭐가 생길 수 있으니까 정찰임무를 하겠다, 뭐 이런 거 아냐?”

    “헉!”

    경필이가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며 녀석의 이마를 종이몽둥이로 탁 때렸다.

    “정신차려 인마. 태웅이 같은 일은 정말 몇 년에 한 번 생길까 말까한 사고고, 그걸 학생들이 생각할 필요도 없어. 거기다 선도부 일이면 오석상 선생님께 여쭤봐야지 왜 나한테 물어봐?”

    “그…… 침묵의 권왕은 좀 무서워서…….”

    경필이의 솔직한 대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시간의 마왕은 괜찮고?”

    “선생님은 제 롤모델이셔서 괜찮습니다!”

    그놈의 롤모델.

    “어디가서 롤모델 나라고 하지 마라. 아무튼, 그런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면 선도부에서 하지 마.”

    “네? 그럼요?”

    며칠 전 이사장이 나에게 말했던 활동.

    그 활동이 지금 경필이에게 딱 어울리는 프로젝트였다.

    “바른 학교 만들기 정책 제안 프로젝트. 여기에서 해.”

    “바른 학교……요?”

    나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경찰행정학과 준비에 도움이 될 프로젝트가 곧 열릴 거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