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태웅과 유미 (3)
태웅이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언가 말하려는 유미를 종이몽둥이를 세우며 저지했다.
“이태웅. 너는 지금 이런 애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냐?”
“하지만 유미는 제 소꿉친구고…….”
“그니까, 너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종이몽둥이를 붕붕 휘두르며 천천히 태웅이를 향해 걸어갔다. 태웅이는 나를 보면서 펜스를 꽉 잡았다.
“아, 아니에요, 쌤! 제가 친구들을 너무 생각 안 했어요. 제가 잠깐만 다치면 되는 일입니다!”
태웅이의 말을 들은 유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유미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요즘 친구끼리는 저런 표정도 짓나 봐?”
태웅이가 유미를 돌아봤다. 유미가 황급히 미소를 지웠지만, 태웅이도 유미의 미소를 확인했을 것이었다.
녀석의 표정이 방금 전과는 달리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이태웅.”
나는 불을 머금은 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태웅이를 노려봤다.
“저딴 인간은 친구가 아니야. 진짜 친구들은 따로 있다.”
“저딴……? 지금 그게 학생한테 할 소리예요?”
유미가 한 마디 던졌지만, 깡그리 무시했다. 태웅이는 방금 전 유미의 표정과 담임의 말을 들으며 펜스를 잡은 손과 살짝 안쪽으로 넣은 왼발에 힘을 더 주었다.
그리고 태웅이가 나를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어?”
태웅이의 시선이 내 등 뒤를 향했다. 뒤에서 세 학생들이 급히 옥상으로 달려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태웅, 이 새끼야!”
“야 이태웅!”
“뭐 하는 거야!”
나는 세 녀석들이 태웅이에게 달려들려는 걸 막아섰다. 혹시나 놀란 태웅이가 돌발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 멈춘 셋은 씩씩대면서 태웅이를 이글이글 노려봤다.
나는 유미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태웅이가 친구를 못 만들 줄 알았어?”
* * *
어제는 태성이에게, 오늘 아침에는 은장이에게 연락을 받았다. 녀석들의 연락을 받은 후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한 교감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옥상 개방 예정이 있습니까?”
한 교감은 교내 일정을 확인해보고는 말했다.
“자연과학 동아리에서 텃밭 시간 갖는다고 해서 열어둘 예정이네. 그런데 옥상은 왜?”
“아닙니다, 혹시 몰라서요.”
그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지만, 자세히 답변하지는 않았다.
만약 태성이와 은장이의 말이 맞다면 태웅이는 오늘이나 내일 중 사고를 칠 것으로 보였다.
‘전생에서는 수능 직전에 사고를 쳤지만…….’
이번에는 그 진행 속도가 빠를 것으로 생각되었다. 내가 과거를 하나씩 바꾸면서 학교의 분위기나 학생들의 태도, 학부모들의 움직임, 이사진의 결단 등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태웅이와 관련된 사건도 반드시 빨라질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선배, 부탁 좀 들어주십시오.”
전에 없이 예의를 차리며 부탁하는 나를 보며 지석 선배가 심각한 얼굴을 했다. 뭐든 이야기하라는 선배의 말에 나는 이번 주 내내 태웅이의 감시망을 더 넓혀달라 이야기했다.
“오케이.”
“특히 학교 고층의 창문, 인근 횡단보도 같이 사고 나기 딱 좋은 장소들 있지 않습니까? 그쪽을 봐 주세요.”
“경찰에 알리거나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말할까?”
나는 그 제안에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증거도 불확실하고, 다른 선생님들은 유미 어머니에게 뒷돈을 받았을 확률이 있습니다. 선배랑 박 선생님, 오 선생님, 차 선생님, 홍 선생님 정도로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넌?”
선배의 물음에 나는 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저는 옥상으로 가겠습니다.”
내가 옥상으로 향하려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전생에서 벌어졌던 태웅이의 사고.
그게 벌어진 장소가 바로 강문고 옥상이었다.
함께 있었던 학생은 자세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학교 친구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때 태웅이는 옥상에서 떨어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후유증으로 대입을 평생 포기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 사건에 대해 이렇게 다뤘었다.
<공부 압박을 이기지 못한 강남 사립 명문고 학생의 극단적 선택>
그렇기 때문에 올해 내가 태웅이를 맡게 되었을 때 다행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녀석의 담임이 되면 사건을 보다 세밀하게 바라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예상이 딱 맞아떨어졌다.
태성이의 제보와 은장이의 제보. 상담하면서 봤던 태웅이 어머니의 모습, 송유미와의 관계, 서윤주와 송유미의 특징. 각종 정보들을 수집한 결과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내신 조작, 친구 관계, 과도한 대입 경쟁.’
태웅이는 공부만 잘 하던 학생이었고 학교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친구들도 없었고, 태웅이 어머니의 태도를 보았을 때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전형적인 강남 대치동의 돼지엄마. 친구는 고학력자나 빵빵한 집안이 아니면 사귀어서는 안 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그런 배경에서 자란 태웅에게 유미라는 소꿉친구는 정말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태웅이에게 유미 이외의 소중한 친구들을 만들어 준다면 어떨까?
설령 유미나 서윤주, 혹은 부모님과의 갈등을 겪어도, 다른 소중한 친구들이 도와준다면, 태웅이가 마음을 바꾸기에 더 수월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태웅이에게 봉사동아리를 추천했고, 선배들과의 상담 자리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 봉사활동까지 다녀오게끔 지도했다.
그래야만 녀석이 설령 전생과 똑같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야 내 경력에도 흠이 생기지 않을 거고.’
만약 태웅이 사건을 막지 못한다면 학생에게 대입만 강조한 담임이라며 온갖 공격에 시달릴 게 뻔했다.
이미 조신자가 학생들을 감금하지 않았냐며 공격하기도 했던 마당에, 태웅이 사건이 발생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걸 막지 못하면 사학 비리 사건이 본격적으로 터졌을 때 살아남을 수 없어.’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고는 교무실을 나왔다. 그러다 홍 선생의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선배님! 태웅이 아프다고 수업 빠졌어요!]
그 연락을 받자마자, 나는 부리나케 옥상을 향해 달려갔다. 홍 선생에게는 119에 신고하고, 민주, 은솔이, 용희를 옥상으로 올려주라는 문자를 남겨두었다.
* * *
그리고 현재.
옥상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유미와 태웅이는 이야기를 많이 진행해둔 모양이었다.
“야! 저거 뭐야!”
그리고 그 모습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던 학생들이 발견했다.
“미쳤어! 저기 왜 올라갔어!”
“선생님 불러와! 빨리!”
“신고는?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이제는 태웅이가 옥상 난간에 서 있는 모습을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발견했다.
운동장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구급차량과 소방차량, 경찰차가 도착했다.
“저기다!”
“거기 딱 기다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태웅이를 향해 말했다.
“태웅아, 넘어와라.”
“…….”
“태웅아, 아냐. 제발 나 좀 도와줘!”
지금 상황에서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유미를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이번에도 유미의 말은 태웅이를 흔든 모양이었다. 녀석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선생님 저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태웅이가 침을 꼴딱 삼키고는 긴장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런 일을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유미도 저에게는 소중한 친구였고, 은솔이나 용희, 민주도 제 소중한 친구입니다.”
“이태웅 너…….”
“그런데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대입에 눈이 멀어서 학원만 다녔고, 불법 고액과외도 받았습니다. 그걸 다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제 성적을 위해서 눈 감았습니다. 그런 제가 이제 와서 정직하고, 착한 척하다니, 오만이고 만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태웅이가 다시 난간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옥상 안쪽으로 향했던 발도 다시 난간 바깥을 향했다.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건, 거기에 대한 죗값입니다. 대입에 정신이 팔려 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죗값이요.”
나는 가만히 태웅이의 말을 들었다. 녀석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려 왔고,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이태웅.”
“…….”
“이태웅!!!”
“……네 쌤.”
여전히 옥상 아래를 보고 있는 태웅이를 향해 종이몽둥이로 손가락질을 대신했다.
“네가 내신이라도 조작했냐?”
“쌤, 그게 무슨…….”
태웅이가 떨리는 눈동자를 하고서 나를 돌아봤다.
“시험지라도 빼돌렸어?”
지금 말하는 모든 일들은 태웅이가 한 일이 아니었다.
“OMR카드, 제출하고 다시 고치기라도 했냐?”
태웅이의 어머니가 한 일도 아니었다.
“친구들 뒤통수쳐서, 걔네들 시험 못 보게 방해라도 했냐?”
바로 옆에 있는 송유미와,
“그것도 아니면, 부모님한테 부탁해서, 쌤들한테 촌지의 대가라도 요구한 적 있냐?”
녀석의 어머니인 서윤주가 벌인 일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태웅이는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딴 거 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오만이고 만용이야? 뭐가 정직이고 죗값이야? 내가 볼 땐 그런 말을 하는 지금 모습이 오만이고 만용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지 못할 때가 있다.
불합리한 일에 대한 피해를 받고서도, 오로지 내 탓이라며 자기비하를 할 때도 있다.
그건 태웅이처럼, 오로지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걸 목표로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찾아왔다.
약간의 흠집만 있어도 다치고 쓰러져서, 평생 이겨 내지 못할 흉터가 생기기도 했다.
그럼 여기서 한 번 돌아보자.
과연 사람은 양보만 하고 살아야 할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보를 했기 때문에 전생에서는 불합리한 공격을 받았고, 결국 잘리게 되었다.
이해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하면서도 대성하지 못하고 무시만 받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만 하고, 무리해서 이해하려고만 하는 순간 스스로를 버리게 된다.”
태웅이에게 지금 부족한 점. 그건, 지나치게 자기자신을 착한 방향으로 몰아넣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너희 부모는, 소꿉친구라고 하는 저 애는!! 너를 이해해 주지 않는데, 너는 왜 그렇게 양보하고 이해하려고만 하냐?”
때문에 모든 일을 자기자신의 잘못으로만 생각하려는 녀석의 성격을 고쳐야 했다.
“양보하는 ‘척’도 아니고, 계속 그렇게 네 잘못도 아닌 걸 네 잘못이라고 양보만 하고 살고 있냐?”
태웅이는 여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숨겨왔다. 유미에게는 하고 싶지 않은 일임에도 모의고사 성적을 조작하도록 도와줬다.
“네가 하고 싶은 게 있고,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네가 원하는 걸 하면 돼. 네가 하기 싫은 게 있으면 딱 잘라서 거절해.”
“……쌤.”
“당연히 당장은 어렵겠지. 네가 원하는 길이 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을 잡기도 어려울 거야. 그런데 말이다 태웅아.”
나는 태웅이를 향하던 시선을 옆에 있던 다른 세 학생들에게로 돌렸다.
“왜 넌 항상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려고 하냐? 가끔은 여기 있는 친구들한테도 책임을 미뤄라.”
“네!?”
“그게 무슨…….”
내 말을 들은 민주와 용희가 물었다.
“지금 네가 그런 이상한 선택을 하기까지 가만히 놔둔 이 친구들을 탓해 보라고. 왜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 가만 놔뒀냐, 왜 작년부터 나랑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았냐, 내가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할 때 왜 태클 걸지 않았냐, 따지란 말이야.”
“에이 그래도 쌤 그건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태웅이가 살짝 웃었다.
“친구가 별거냐? 서로 위해 주고, 입시를 준비할 때는 경쟁하면서도 도와주는 게 친구다. 그런데 지금 유미를 봐라. 쟤가 너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냐? 호텔 뷔페라도 사 줬어? 졸업하면 차라도 뽑아준다하디?”
태웅이가 유미를 돌아봤다. 나와 세 학생들도 유미를 노려봤다. 유미는 이미 옥상에서 도망치려고 준비 중이었다.
“어딜 가나?”
도망치는 유미 앞에 오 선생이 엑스칼리버를 들고 나타났다. 그 뒤로 박 선생, 지석 선배, 홍 선생도 들어왔다.
“그러니까 저딴 애 생각하지 말고 넘어와. 공부, 입시 방향을 모르겠다면 내가 잡아 준다. 쌤 누군지 알지?”
“푸흡…… 쌤이 누군데요?”
내 말이 황당하게 들린다며 태웅이가 물었다.
“강문고 입시 일타 강명문.”
내가 한껏 가슴을 펴고 말하자 태웅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태웅이의 손을 잡았다.
“넘어와.”
내 손을 잡은 태웅이가 안전 펜스를 넘어 옥상 안쪽으로 들어왔다. 녀석의 발이 옥상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 멍청아!”
그리고는 종이몽둥이로 녀석의 이마며 뒤통수, 어깨, 이마, 허벅지를 마구잡이로 때렸다.
“으악! 왜 이러세요!”
“벌이다 이 자식아. 감히 학교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해?”
태웅이가 온몸을 손으로 문지르면서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태웅이를 향해 민주, 용희, 은솔이도 달려들어서 마구잡이로 때려댔다.
“이 미친 새끼. 넌 나중에 뒤졌어!”
특히 용희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저기 있다!”
때마침 소방관과 경찰들이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들은 몰매를 맞고 있는 태웅이를 보며 어안이 벙벙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아파! 그만 때려!”
친구들에게 신나게 얻어맞은 태웅이가 울상을 지었다. 그러다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쌤, 저…… 진짜 괜찮을까요?”
나는 녀석을 향해 종이몽둥이로 이마를 한 번 더 때렸다.
“어디 속고만 살았나. 걱정하지 마.”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태웅이를 비롯한 학생들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학교라는 마지막 울타리 안에서, 내가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 주마.”
그렇게 빙긋 웃은 나는 운동장을 슥 내려다보았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기자님, 또 오셨네. 아주 상주하시나 봐 이제.”
지석 선배가 놀리듯 말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학생을 구한 선생이라. 조용히 넘어가긴 틀렸네요.”
이젠 지긋지긋하지만, 또 평판이 올라가 버릴 것 같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