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52화 (152/252)
  • 152화. 태웅과 유미 (1)

    봉사가 끝나고 일요일, 이사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네, 이사장님.”

    [강 선생님, 뉴스 보셨어요?]

    “뉴스요?”

    이사장이 이야기한 방송 채널을 켜자 뉴스가 흘러나왔다.

    <강남서초 명문 사립고등학교의 사학비리, 더 커지기 전에 방지한 졸업생들!>

    그리고 뉴스에는 조사를 받고 나오는 한무회 이사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나타났다.

    <강문고 졸업생들은 후배들의 진로진학설명회를 위해 학교에 방문하다가 인근 PC방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제보 덕분에 후배들에게 맛있는 급식을 지켜 줄 수 있게 되었다며 졸업생들은…….>

    뉴스 내용은 학생들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또한, 강문고의 이미지 쇄신에도 도움을 주는 내용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사전에 방지를 했다거나, 학생들의 제보를 받은 교장과 이사장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거나 하는 등이었다.

    “괜찮은데요? 이사장님 작품입니까?”

    [호호, 정확히는 서윤수랑 같이 했지만요.]

    “서 교수님이요?”

    여기서 왜 서윤수 교수의 이름이 나오는지 몰라 궁금해했다. 그러자 이사장이 별것 아니라며 말했다.

    [서 교수 친구가 방송국장이거든요. 그 국장이랑 저도 대학 동기기도 하고.]

    “아, 역시.”

    이사장이 갖고 있는 인맥들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좋습니다. 그리고 이사장님 지원 덕분에 봉사활동에서도 잘 먹었습니다.”

    이번 해피플레이스 봉사활동에서 맛있는 급식을 먹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사장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부분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잘 먹었다니 다행이네요. 은솔이 어떤가요?]

    “요리도 잘 하고, 적극적입니다. 이번 입결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올해 입시 전형은 서울한국대를 비롯해 대부분의 학교에서 수시 전형을 확대한다. 그러다 보니 서류심사가 매우 중요해졌다.

    연희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희대는 지원자의 잠재역량을 중요 요소로 평가하는데, 그 평가가 2012학년도 입시부터 중요한 평가요소로 들어가게 된다.

    물론 학업역량, 적성역량도 평가를 하기 때문에 석차등급도 중요했다. 그래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말했었다.

    -오늘 봉사가 중요하기는 했지만, 너희들 내신 떨어지면 말짱 꽝이야. 확실하게들 준비해.

    민주의 멘토링을 받는 은솔이와 용희가 긴장감이 깃든 채 알겠다고 답했다.

    ‘어째 불안한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는 했다.

    그래서 멘토링을 좀 더 늘릴까, 아니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활동을 추가할까 고민하고 있기도 했다.

    “이사장님, 교장선생님도 옆에 계십니까?”

    [네,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여쭤본 거였…….”

    [역시 강 선생. 아주 귀신이 따로 없다니까 허허.]

    내 말을 끊고 강철면 교장이 말했다. 아마 교장이 있냐는 말을 듣자마자 이사장이 스피커폰으로 바꾼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은솔이랑 용희 학업 성적을 높이기 위해 학교에서 공식적인 멘토링 활동을 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학습플래너 경연대회도 열고자 합니다.”

    내 말에 강철면 교장이 끄응, 신음소리를 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한 교감이나 민 부장이 가만히 있을까?]

    “교감 선생님과 민 부장은 걱정할 것 없습니다. 오히려 김영호 부장의 견제가 있을 겁니다.”

    한 교감이야 걱정할 게 없었다. 민 부장도 우선적으로 제동을 걸어두었으니 괜찮았다.

    반면, 김영호 부장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3학년 학년부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3학년 학생들의 전체 행보를 주목하고 있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멘토링 활동을 늘리겠다고 하거나, 학습법 대회를 오픈한다 하면, 견제가 들어올 게 분명했다.

    “그래도 별수는 없을 겁니다.”

    내가 태연하게 말하자 강철면 교장과 이사장도 더 반대하지는 않았다.

    [혹시 모르니 조심하세요. 어떤 권모술수가 나올지 모르니까요.]

    김영호의 견제, 다른 이사진의 공격.

    그리고 곧 이어질 태웅이 문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점차 쌓여만 갔지만, 그에 대한 대비책은 모두 생각해 둔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사장의 걱정을 들으면서도 두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 * *

    월요일 점심시간. 강문고 3학년 3반은 어느 때보다도 더 떠들썩했다. 바로 해피플레이스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갔다오기를 잘 한 거 같아.”

    “너도? 나도. 나 이걸로 국어 수행하려고.”

    “아 뭐야. 나도 그럴 건데. 나랑은 다른 얘기 써라?”

    “나도 갈걸……. 학원 그냥 뺄 걸 그랬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각자 봉사 현장에서 어떠했는지를 무용담처럼 펼쳤다. 현장에 참여하지 못했던 학생들은 같이 하지 못해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다.

    “태웅이도 갔다며?”

    친구들의 질문에 태웅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응. 가서 일본인 학생들한테 우리말도 알려 주고 그랬지.”

    “와. 너 이러다 통역사 하는 거 아냐?”

    “에이, 봉사 한 번 했다고 무슨 통역사를 해?”

    “혹시 모르지, 인생 어떻게 될 줄 알고?”

    민주와 은솔도 같이 태웅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점심 시간을 보냈다.

    그날, 하루종일 태웅의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시간이 없었다.

    * * *

    학교가 끝나고 태웅은 여느 때처럼 어머니의 차를 타고 학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일타강사의 비밀 그룹과외가 없기에 학원에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할 계획이었다.

    “태웅아!”

    그래서 저녁 먹을 시간도 비워 두었었다. 이제 막 식당으로 들어가려는데 옆 학원에 다니는 유미가 들어왔다.

    “너 봉사 갔다왔다며?”

    유미의 말에 태웅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오지. 재밌었는데.”

    “됐어. 학원 다니느라 정신없었는데 무슨. 그나저나, 너 봉사 갔다왔으니까 내가 이길 수 있겠네?”

    유미가 장난스럽게 웃자 태웅도 같이 웃었다. 공부만 해 오던 태웅에게 이번 해피플레이스 봉사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그 덕분에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 전까지 강문고에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용희와 유미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이번에 내기라도 할래? 그렇지 않아도 담임쌤이랑 약속했어. 봉사 갔다왔다고 내신 망치지 말라고.”

    태웅이 웃으면서 말했다. 유미는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저기, 태웅아.”

    가볍게 물은 태웅에게 유미가 표정을 싹 바꾸고는 심각한 얼굴을 했다. 태웅은 그런 유미를 보면서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응…… 그게…….”

    유미는 정말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너, 내신 포기하면 안 될까?”

    “뭐……라고?”

    갑작스런 유미의 말에 태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미는 당황하는 태웅의 옆에 가까이 다가가서 얼굴을 들이댔다. 숨소리가 태웅의 목덜미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질 때가 되자 유미가 말했다.

    “너 정시파잖아.”

    “그……렇지?”

    “난 이번에 모의고사도 봐서 알겠지만, 항상 성적이 간당간당해. 근데 내신은 나쁘지 않아서 스카이까지는 상향으로 노려 볼 수 있다고 들었어. 엄마 친한 분이 대치동에서 입시컨설팅 하시거든.”

    유미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또랑또랑하게 떴다. 그리고 태웅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번에 하면서 말했다.

    “내신은 양보 좀 해 주면 안 될까?”

    태웅은 유미의 얼굴을 겨우 피함과 동시에 시선을 음식으로 옮겼다.

    “내신은…… 좀…….”

    “아 왜에, 너 어차피 수능만 잘 보면 되잖아아.”

    유미가 애교 섞인 목소리를 하자 태웅의 얼굴이 붉어졌다.

    “만약에 내신 양보해 줘서 스카이 합격하면 내가 네 소원 뭐든 들어줄게!”

    “소, 소원?”

    소원이라는 말에 태웅이 관심을 보였다. 유미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응. 뭐든!”

    태웅은 생각했다. 유미가 말하는 소원이 무얼 말하는 걸까. 만약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의 연애세포를 깨우려고 하는 거라면 데이트를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전적인 거라면 유미네 집이 꽤나 잘 살았기에 고급 노트북이나 가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태웅의 머릿속을 지나간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유미의 숨소리가 들려와 얼굴이 붉어졌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차피 너 정시파니까 내신 안 해도 되잖아. 수시는 나한테 양보 좀 해 주라. 응? 너만 포기하면 이번에는 진짜 전교 3등까지도 올라갈 수 있고.”

    이어진 유미의 말 때문이었다.

    태웅은 유미의 말을 곱씹으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물었다.

    “유미야.”

    “응응.”

    “너……작년에도 조작했어?”

    유미의 웃음기가 얼굴에서 싹 사라졌다. 그 반응을 보고 태웅은 역시, 라며 중얼거렸다.

    “너, 작년에도 그런 거야?”

    “…….”

    “대답해. 너 정말 내신 조작해서 전교 5등 찍은 거야?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게 아니고?”

    이제 유미는 태웅의 시선을 천천히 피하기 시작했다. 태웅은 그런 유미의 시선을 마주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다 유미의 어깨를 붙잡고 자신의 방향으로 돌렸다.

    “대답해 줘. 제발.”

    “……그래, 했어.”

    유미의 대답을 들은 태웅의 손이 유미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그게 왜? 뭐 어때서?”

    “뭐, 뭐라고?”

    태웅은 유미에게서 떨어진 오른손을 허공에 그대로 들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식당 안에서 두 사람이 있는 공간만이 고요하게 느껴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어떻게 그걸 조작할 수가 있어!”

    “왜! 뭐가 문젠데? 너도 서울한국대 가고 싶잖아! 그래서 수능 공부하는 거고, 학원 다니는 거 아냐? 불법 그룹과외까지 하고 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유미는 이제 표독스럽게 태웅을 노려봤다. 태웅이 그 시선을 맞받지 못하고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거야 그렇지만…….”

    “거봐! 너도 당당할 거 없잖아! 그럼 나도, 뭐 나라고 당당하게만 공부해야 해? 나라고 노력 안 해 봤겠어? 나도 코피 터지게 공부했고, 하루에 한 시간도 제대로 못 자고 공부만 했어!”

    태웅도 알고 있었다. 부모들의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유미는 소꿉친구였다. 그래서 중학교 때도 유미와 가끔 만나서 간식도 먹고, 수다도 떨었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서로가 서로를 만날 때 항상 피곤에 찌든 모습만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자는 유미의 옆에 사탕봉지를 두고 가기도 했었다.

    “나도…… 나도 알아…….”

    그렇기에 태웅은 지금 유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걸 알면…… 그거 알고 있으면! 너도 나 좀 도와주면 안 돼? 알잖아, 우리 엄마 스카이 아니면 나 집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거. 나도 힘들어! 성적 조작해야만 스카이 도전할 수 있는 내가, 시험 볼 때마다 조마조마해야 하는 내 처지도 싫어! 그러니까, 제발……. 응? 내가 내신으로, 수시로 스카이 갈 수 있게 해 주면 안 돼? 서로 상부상조하자. 넌 정시파잖아. 소꿉친구인 너 아니면 내가 누구한테 부탁해? 그러니까, 3학년 때는 양보 좀 해 줘, 응?”

    유미의 말을 들은 태웅은 고민했다.

    만약 내가 유미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나는 집에서 멀쩡히 있을 수 있을까?

    부모님에게 내신 포기하고 수능에만 집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태웅이 내린 결론은, 불가능하다, 였다.

    그래서 고개를 좌우로 저으려는 찰나, 유미가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만약, 너가 도와주지 않을 거면…… 그냥 이 자리에서 죽어 버릴 거야.”

    “뭐!? 야, 왜 그래!”

    혀를 깨무는 시늉을 하는 유미를 태웅이 겨우 말렸다. 유미는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 울음소리가 식당 전체에 퍼졌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 알았어. 내가 도와줄게.”

    “진짜지?”

    유미가 고개를 들면서 빙긋 웃었다.

    “그러면 이렇게 해 줘.”

    “어떻게?”

    곤란해하는 태웅에게 다가간 유미가 또렷하게 말했다.

    “딱 한 달만, 병원에 입원해 있어 줘.”

    그 말을 들은 태웅은 어깨를 움찔하며 놀란 얼굴로 유미를 바라봤다. 유미는 그저 순진한 척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던 남자 대학생 한 명이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진짜로?”

    국인대 과잠을 입은 태성이 밥을 먹다 말고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작성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