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51화 (151/252)
  • 151화. 놀러 와

    태웅이는 쭈뼛거리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녀석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말했다.

    “다들 고생했다. 정리하면서 쉬고들 있어.”

    현장반장에게도 학생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나도 한국어교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이 태웅이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어…… 안녕?”

    마찬가지로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태웅이를 가만히 관찰했다.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일본인 학생들에게 물었다.

    “한국어를 공부해 본 적 있니?”

    태웅이의 질문에 남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볍게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태웅이가 학생들을 의자에 앉혔다. 이어진 이야기들은 일본어와 한국어가 섞인 형태로 이루어졌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학생에게는 일본어로, 한국어 기초가 잡힌 학생들에게는 한국어로.

    그렇게 5분쯤 지나자 태웅이는 이제 완전히 긴장이 풀렸는지, 책을 펼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잘 하는데?’

    학생들도 서서히 경계심을 풀면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했다. 태웅이의 질문에 웃기도 했고, 어떤 질문에는 심각한 얼굴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태웅이가 일본어로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쌤, 핸드폰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핸드폰?”

    “네. 제건 동영상이 안 되거든요. 쌤 스마트폰이시잖아요?”

    나는 알겠다며 핸드폰을 꺼내 주었다. 태웅이는 감사합니다, 라며 인사를 하고 곧장 학생들에게로 돌아갔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부터.”

    태웅이는 자기소개를 하는 학생들 하나하나의 모습을 내 핸드폰에 담았다.

    “아 그럼 K-pop 때문에 온 거야? 댄스 연습한다고?”

    “좋아하는 가수는? 케이뱅?”

    “연기를 배우고 싶어서? 어린데 벌써 목표들이 다 있구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태웅이의 얼굴 표정이 다양하게 변화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태웅이에게 자기 이야기를 한국어로 해 보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아직은 한국어 레벨이 낮다 보니 가끔씩 일본어를 섞으면서 말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학생들에게 태웅이는 올바른 한국어 발음과 표현들을 알려 주었다.

    “뭐야, 자기도 신날 때 있네.”

    쉴 만큼 쉬었는지 용희가 문 옆으로 와서는 중얼거렸다.

    용희의 말대로 태웅이의 표정은 올해 들어서 가장 밝아 보였다.

    “다 쉬었냐?”

    내가 용희를 돌아보며 말하자 용희가 차렷자세를 했다.

    “넵! 정리도 다 끝나갑니다.”

    “한 십 분 정도면 태웅이도 끝날 거 같으니까 잠깐만 더 기다려. 그 사이에 학생부에 넣을 내용들 생각 좀 해두고 있어라.”

    용희는 알겠다면서 다시금 태웅이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히죽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 * *

    결국 태웅이의 봉사는 30분이 더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다.

    “또 올 거지?”

    그새 정이 들었는지 일본인 학생들이 태웅이를 붙잡고 물었다. 태웅이가 미안한 듯 웃으면서 말했다.

    “자주는 못 올 거야.”

    “그래도 좋아!”

    학생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태웅이가 한국어교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어땠냐?”

    책을 들고 있는 태웅이에게 물었다. 태웅이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책을 나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녀석의 답변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게, 태웅이는 나에게 답을 하고 나서 곧장 민주, 은솔, 용희가 있는 곳으로 가서 방금 만난 일본인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괜찮기는 무슨. 아주 좋았던 것 같구만.”

    내 중얼거림을 들은 박 주임이 신기한 모습들을 본다면서 말했다.

    “이렇게 고등, 대학생이 같이 프로젝트 봉사를 한 건 오래간만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등학생들은 건축봉사만 하고 끝이거든요.”

    “아, 아무래도 3학년 학생들은 각자 희망하고 있는 분야에 맞춰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했습니다.”

    “그게 신기하다는 겁니다. 요즘 입시는 이렇게 준비를 해야 하나요?”

    박 주임의 질문에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입시를 위한 준비로 해피플레이스 봉사를 준비한 것은 맞았다.

    경영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민주. 외식경영학과를 노리는 은솔이. 건축학과를 희망하는 용희. 수시가 아닌 정시를 준비하는 태웅이.

    여기에 다양한 형태로 각자에게 필요한 입시 전형을 준비하는 3학년 학생들.

    녀석들에게 이번 봉사활동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에 대해 속단할 수는 없었다.

    다만, 분명 이번 봉사활동은 입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3학년 때의 협동, 배려, 나눔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오늘 있었던 봉사활동을 자기들끼리 나누면서, 누가 잘했네 못했네 자랑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동석이나 다른 연천대 선배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도 있었다.

    “몇몇 학생들에게는 전공적합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례가 되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도 되었을 겁니다.”

    은솔이는 무료급식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보여 주었다. 용희는 건축봉사 전반을 리드하면서 리더십도 보여 주었다. 민주는 지역개발을 위한 일환으로 후속 조치를 준비하면서 봉사활동이라는 하나의 그룹을 경영해 보고 있다. 태웅이도 일본인 학생들에게 자신의 일본어, 한국어 실력을 뽐낼 수 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역량을 보여 준 녀석들은, 봉사가 끝난 후 서로가 바라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떤 녀석들에게는 여태껏 알지 못했던 세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놀라움도 있었을 겁니다.”

    건축이라는 분야가 이렇게 힘들고, 봉사활동 한 번 하는데 많은 품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녀석들은 이걸 준비한 동아리원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특히 연천대 학생들은 더더욱 그랬다.

    “너희들 진짜 대단하더라. 우리 학교 오면 꼭 같이 동아리 하자!”

    “에이, 저희 문과라 못해요. 용희 쟤만 이과예요.”

    “대학교 동아리에 문과 이과가 어딨어! 관심 있으면 오는 거지!”

    나는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는 대학생들과 강문고 3학년 학생들을 보면서 말했다.

    “이번 봉사활동은 3학년들이 그나마 입시 준비하는 시간 일부를 뺄 수 있는 4월 첫째 주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중간고사도 4주나 남아 있고요.”

    “알고 있습니다. 아마 다음 봉사 때는 이 정도 규모로는 힘들겠죠?”

    박 주임의 말에 그럴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자 갑자기 뒤에서 무슨 소리냐며 민주가 소리를 질렀다.

    “쌤!!!!!”

    “아 깜짝이야. 왜?”

    민주는 하지 말라며 말리고 있는 태웅이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봉사 더 해야죠 당연히! 태웅이도 하고 싶데요!”

    “태웅이가?”

    은솔이와 용희도 옆에 와서 거들었다.

    “저희도 더 하고 싶어요. 한 번만으로는 약하잖아요? 쌤이 영양에 대한 부분도 양쌤이랑 이야기해 보라고 하셨고.”

    “저도 이번에 못 해 본 건축 실습 더 해 보고 싶습니다! 현장에서 배우니까 완전 다르네요!”

    그리고 녀석들의 뒤에서 다른 3학년 3반 학생들, 연천대 학생들까지도 또 하겠다며 아우성을 쳤다.

    그 옆에서 현장반장 아저씨가 실실 웃으며엄지손가락을 척 올리고 있었다.

    “허……. 너희들 그러다가 내신이랑 모의고사 망하면 어쩌려고?”

    “괜찮습니다. 공부 일정에 지장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내 의문에 답한 태웅이가 친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치?”

    “에이 그 정도는 당연히 맞춰서 하지!”

    라는 전교권 학생들의 반응에 대비해서

    “어, 어…….”

    “야…… 너네랑 우리랑 같냐…….”

    같은 일반적인 학생들의 반응도 있었다.

    아무래도 전교 3등이 하는 말은 다른 녀석들에게 와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몇 번 더 해야 할 것 같네요. 중간고사 끝나고 한 번, 기말고사 끝나고 한 번.”

    “아싸!”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환호성은 곧 공포심을 가득 담은 독백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수능 끝나고 스무 번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수능 끝나고 스무 번이요!?”

    민주와 용희가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이것들이 하고 싶다고 할 땐 언제고. 봉사를 입시의 도구로만 생각한 거 아니야?”

    내 말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한 너희들에게 주는 벌이다. 그래야 수능 끝나고도 잡생각 안 할 거 같아. 너희는 봉사 캠프 필참이다.”

    뒤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동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후배님들, 힘내요…….”

    * * *

    그날, 봉사를 마치고 학생들은 서로의 무용담을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야, 내가 제대로 옮기지 못했으면 단열재 작업 시작도 못 했어!”

    “무슨 소리? 너 망치질 제대로 안 해 봤지?”

    “페인트 벗겨진 벽에 벽화도 안 그려봤으면서? 우리가 작업했으니까 건물이 더 예쁘게 바뀐 거야!”

    그렇게 서로의 역할을 자랑하면서 학생들이 짐을 차에 실었다.

    “학생들, 또 오나?”

    그때 은솔에게 한 할머니가 다가왔다. 점심 시간에 무료급식을 받아간 할머니 중 한 분이었다.

    “아 할머니! 아까 짜장면 맛있으셨어요?”

    “그럼. 맛있었지. 학생이 만들었어?”

    “네!”

    “어린데 요리도 잘 하네. 대단해.”

    할머니와 잠깐 덕담을 나눈 은솔이 입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그건 그렇고, 또 올 거지?”

    “네. 그런데 저희 고3이어서 자주는 못 올 거예요. 대신! 수능 끝나면 스무 번 오기로 했어요!”

    “야 배은솔…….”

    “그런 건 왜 말해…….”

    친구들의 만류에도 은솔은 신이 나서는 이야기했다.

    “그때는 급식 더 많이 챙겨올게요! 늦게까지 있을 수도 있을 거예요! 같이 놀아요!”

    계획에도 없는 공약을 꺼내는 은솔에게 할머니가 호호, 웃었다.

    “그래. 또 놀러 와요.”

    할머니의 인사를 들으면서 학생들이 차에 올라탔다. 은솔이 손을 마구 흔들면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태웅은 은솔을 보면서 생각했다.

    ‘놀러 온다?’

    은솔에게 있어 이번 봉사는 봉사가 아니라 놀러온 것 같았다. 아니, 그건 용희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도 동분서주 돌아다니면서 주민들과 한국어교실 관계자들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뛰어다니던 친구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나 보였다.

    “이태웅! 너 일본어 진짜 잘하던데?”

    “응?”

    “그니까! 그렇게 잘하는데 왜 숨기고 살았데?”

    용희와 민주의 말에 태웅이 부끄러운 듯 볼을 긁적였다.

    “아, 아냐. 그냥 덕질하다 보니까 공부하고 싶어져서 했었던 거라…….”

    “그래도 너처럼 덕질에서 제대로 공부하는 애들은 드물잖아?”

    “맞아. 아까 일본 학생들도 좋아하던데? 잘 가르쳐 줬나 봐.”

    어느새 은솔까지 합류해서 태웅을 칭찬했다. 태웅은 한층 더 부끄러워져서 손을 휘저었다.

    “에이, 그, 그런 거 아니야.”

    “어, 뭐야. 얼굴 왜 빨개져?”

    친구들의 놀림에도 태웅은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실실 웃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추억했다.

    “아~ 재밌었다!”

    용희가 몸을 의자에 기대면서 털썩 앉으며 말했다. 그 말을 신호로 다른 3학년 학생들이 맞장구를 쳤다.

    “응 그러게. 재밌더라.”

    태웅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앞자리에서 강명문이 태웅의 목소리를 가만히 귀담아듣고 있었다.

    * * *

    해피플레이스 봉사가 끝나고 며칠 뒤, 태웅의 어머니는 송유미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유미는 왜 안 갔어? 여기 봉사 그렇게 잡기 힘들다던데 호호호.”

    태웅의 어머니는 유미 어머니를 노골적으로 놀리고 있었다. 아들이 봉사를 다녀와서는 이전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눈빛도 달라졌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리프레쉬 시간이 되었나 봐.’

    그렇게 생각한 태웅의 어머니가 유미 어머니에게 말했다.

    “다음번에라도 보내봐.”

    [웃겨. 다음에는 안 보낼 거잖아? 수능 준비 해야 해서.]

    유미 어머니의 말에 태웅의 어머니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무튼, 유미는 공부 잘 하고 있어?”

    [이번에 태웅이 모의고사도 이겼으니까 내신도 이길 수 있을걸? 학원도 바로 옆이던데 서로 방해하지 않게 해 줬으면 좋겠어.]

    “누가 할 소리? 유미나 우리 아들이랑 마주치지 않게 수업 시간 조정해. 저번에 유미 때문에 컨디션 조절 실패한 거 알지?”

    [뭐래. 진짜 방해가 뭔지 보여 줘?]

    서로 기싸움을 으르렁대며 하던 두 학부모는 십여 분을 더 말싸움을 하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흥. 기껏해야 조작이나 하는 년이.’

    태웅의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유미 어머니의 말을 가볍게 흘러넘겼다.

    유미 어머니인 서윤주는 태웅이 어머니와 전화를 끊고 딸을 불렀다.

    “유미야. 내일 태웅이랑 놀고 와.”

    “태웅이? 왜?”

    “이번에는 좀 세게 말할 필요가 있겠어.”

    서윤주의 말에 유미가 교활한 눈빛을 하면서 답했다.

    “강도를 좀 높여야겠네? 알았어.”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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